조승훈

祖承訓

생몰년도 미상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장수.

명 요양(요동) 부총병이었다. 조선에서는 조 총병이라고 한 직급 높여 불렀다. 조.. 조총병? 명군 첫 원병의 장수.

“귀국은 중국에 있어서 순치(脣齒)의 관계에 있는 나라로서 운남(雲南)이나 섬서(陝西)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병마(兵馬)가 오래 머무는 동안 장수들이 좋은 사람 나쁜사람 모두 한결같지 않았고 이제 철수하여 돌아갈 때도 소란을 피우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민폐 좀 끼치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선조 32년(1599 기해 / 명 만력제(萬曆) 27년) 2월 9일 1번째기사)

처음으로 명군을 이끌고 조선을 지원하러 온 장수. 그러나 이 당시 명은 조선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모르고 있었으며 일본군이 얼마나 강한지도 잘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1] 조승훈은 꼴랑 5천(혹은 기병 3천)의 군사로 평양성을 공격했으나 당연해 처참하게 깨졌다. 절반이 넘는 명군이 전사했으며 부장 사유도 전사했다. 명은 이에 식겁해 이여송에게 5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구원하게 했다.

조승훈은 명의 조선 원병에서 북군이 중심이 된 좌우중군 중 우군의 부대장 격으로, 총병인 장세작 밑에 있었다. 송응창 밑에 이여송, 그 밑에 양호, 이여백, 장세작 인 셈. 비슷한 급으로는 남군(왜구버마와 격돌)출신으로 역시 부총병을 거쳐 서로 총병으로 승진한 승리자 유정이 있을 것이다.

이후 조승훈은 다시 평양성 공격에 참가해 공을 세우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은 이미지는 파병와서 깨진 장수로 인식되는 정도...

그런데 임진록2에서는 보병 근접형 장수들 중 최강으로 나온다. 다른 장수들이 모두 똑같은 피통에 공격력을 공유하고 있지만 조승훈은 피통과 공격력이 훨씬 더 높다. 조선의 반격에서는 아이템 착용이 가능한데 몇 개만 끼워줘도 차원이 다를 정도. 때문에 임진록으로 조승훈을 아는 사람들은 조승훈이 명장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1986년에 MBC 임진왜란에서는 평양성 전투에서 대패한 모든 책임을 조선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가 이여송에게 패한 놈이 말많다고 닥치라는 욕이나 처먹는 찌질이로 나오며 퇴장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잠깐 등장하는데 대조영에서 대중상의 동생이었던 돌발역의 장순국씨가 열연.

징비록에서 역시 요동부총병으로 등장. 평양성전투에서 대패한 모든 책임을 조선탓으로 돌리는건 1986년 MBC임진왜란과 같다. 하지만 다시 이여송과 함께 조선으로 출전한다.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 유정 역할을 한 손호균씨가 열연.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지에 나오는 조자룡 후손으로 알려진 듯 한데, 조승훈과 조자룡은 이름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다. 저런 놈이 정말 후손이라면 조자룡이 울고 있을 듯.
  1. 이건 명나라 탓을 하기 힘든게 조선조차 허접한 군사활동때문에 심각성을 몰랐기 때문이다. 애초 조선이 명에게 평양성에 있는 왜군의 규모를 2천명 정도라고 알려주었다. 당연히 그 정보를 믿은 조승훈이 5천명으로 함락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다가 처참히 깨진거다. 당연히 명 측에서 '너님들 왜군 병력수를 왜 속이나요? 조승훈 말로는 2천명이 아니라던데? 너네들 진짜 왜군하고 손잡고 우리나라 공격할 생각 아니겠지?' 라고 항의를 할 정도였고, 이때문에 조선 측에서 '저희쪽 첩보활동으로는 왜군병력 적다고 해서 그렇게 알려드렸는데... 저희가 잘못 알았나봐요. 죄송해요.'라고 사과해야만 했다. 여담으로 이후에 평양성의 병력은 심유경이 일시 강화협상을 맺고 난 뒤 고니시에게 '곧 겨울이 오니 털모자를 선물해주겠다'는 전령을 보내 '털모자 15000개가 필요하다'는 고니시의 답변으로 평양성 주둔 왜군 숫자를 대충 알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작전을 수립한 후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벽제관 전투때도 왜군 3만과 교전을 벌여 명군이 처참히 깨지고 난 후 이여송은 정탐을 해서 한성 왜군 병력을 20만정도로 예측했는데, 유성룡은 '적군 병력이 매우 적은데 왜 진격 안하나염 징징' 소리를 할 정도였다. 이에 이여송은 "너네들은 사세를 알지도 못하면서 왜 시끄럽게 떠드냐"고 일갈할 정도. 확실히 이여송의 왜군 20만설은 오버이긴 하지만, 10만 이상이 운집했던건 사실이고, 이 시기에 퐁토병때문에 명군 요동 기마대의 말 12000필을 잃은 상태였던데다, 고작 명군 5만명에 조선군 수천명으로 한성을 공격했다간 분명히 조명연합군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이후 전란 내내 명군은 조선군이 제공하는 정보를 불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