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무(용의 눈물)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의 등장인물. 배우는 장항선.

1 초반부

조선 개국 전부터 이방원의 충실한 심복으로 일해왔다. 정몽주 척살에 기꺼히 동참했으며 조선 건국후 세자 책봉에 불만을 품고 내관들을 포섭한 민씨와 협력해 세자빈 유씨가 내시 이만과 눈이 맞은 걸 잡아내기도 했다. 제1차 왕자의 난때도 이천우와 콤비를 이뤄 대활약.

그렇게 자기들 세상이 온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이방원이 정도전의 사병혁파 정책을 이어가자 불만을 품고, 밤중에 방원의 사저를 찾아가 따지기도 한다. 사병혁파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잠시 섭섭한 마음은 접어두고 자신의 사병을 아낌없이 동원해 반군에 맞선다.[1] 이때도 이천우와 콤비를 이뤘는데 처음에는 숫적 열세로 고전했지만[2] 방원이 종친과 신료들의 지지를 모으고 도성밖 군사를 동원하면서 역전에 성공한다. 또 한번 큰 공을 세웠으니 더 이상 사병혁파는 없을거라 기뻐했지만 세자로 책봉되 권위가 더욱 강해진 방원이 변함없이 사병혁파를 진행시키자 노발대발 한다.

급기야 사병 명부를 접수하러 온 삼군부 군관을 붙잡아 곤장을 쳐버린다. 이에 방원은 조영무, 이천우, 이거이, 조온, 이저 들을 귀양보내기로 하고 밤중에 송별의 주연을 마련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부름을 받고 찾아온 조영무는 잠시 떠나 있어야겠다는 이방원의 말을 듣고 박포의 말이 맞았다며 원망을 드러낸다. 그 뒤 술을 받고는 다시는 사나이의 의리를 운운하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이것만 보면 꼭 절연의 장면처럼 보였지만...

2 중반부

귀양지에서 서책도 잡고 석공의 취미도 익히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가던 중, 공신들 일부를 복직되면서 복귀하게 된다. 이 때 직접 찾아온 이숙번을 보고 화를 내며 따귀까지 날렸지만, 복귀 사실을 알고 감복해한다. 이후 조사의의 난때 종군해 다시 공을 세운다. 이후 이성계가 환궁하고 한양으로 천도하여 완전히 반석에 오른 조정에서 정승의 반열에 올라 죽을때까지 영화를 누린다.

그렇게 잘사나 싶다가 말년에 사고를 치게 되는데, 태종의 궁녀 하나를 건드려 첩으로 삼은것. 본인은 모르고 한 일이었기에 이 사실을 알고 안절부절해 하다가 태종이 이 일을 거론하며 성화를 내자 우물쭈물해 하는데, 이 다음의 반응이 참으로 압권이다. 태종이 내놓을 거냐 안 내놓을 거냐 불호령을 내리자, 이 때까지 우물쭈물거리던 안면을 싹 몰수하고 뻔뻔하게 "내놓지 못하겠사옵니다. 용서하시옵소서!"라고 패왕색 배째라를 시도한 것. 외척이었거나 문제 있는 공신이었으면 역모 + 사형 크리였다. 다행히 여자문제에 관대한 태종이 그냥 넘어가면서 유야무야되었다.[3][4]

이후 나이가 들어 병석에 눕게 되었고, 임종이 머지 않은 가운데 이숙번과 만나게 된다. 본인은 스스로의 생에 별 후회가 없었다. 다만 그 역시 자신과 마주한 이숙번의 순탄치 않을 앞날을 직감하고 있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3 캐릭터 평가

초반부와 중반 이후의 캐릭터가 상당히 다르다. 2차 왕자의 난 때까지는 이방원에게 충성하는 우직한 무장이었는데 사병혁파로 귀양간 후 조금씩 개그 캐릭터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조사의의 난이 평정된 후 더이상 전장에 나갈일이 없어지고 정승으로 유유자적 나이를 먹다보니 장기 좋아하고 사람 좋은 영감님이 된다.

공신들 중에서도 태종에 대한 충성심은 가장 깊었다. 방원과는 사돈지간인 이거이는 방원이 사병혁파를 추진한 이래 대놓고 반목하며 수시로 딴 생각을 했고, 방원의 사촌형 이천우와 이사촌 조온도 사병혁파에 반대하다 귀양갈 때는 진작 군사를 일으켰어야 했다고 이를 갈았다.[5] 이숙번도 현명한 주군을 선택했을 뿐 맹목적인 충성과는 거리가 있었던(그래서 정도전과 이방원 사이에서 저울질 하기도 하고 이방원이 압도적 열세였던 초기에는 간을 상당히 본다.) 반면 조영무는 고려때부터 죽을때까지 무조건 충성이다. 사병을 빼았기고 귀양가는 순간에도 사사될 각오를 하고 방원이 남아의 의리를 저버린 것을 탓했지 반란을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태종 또한 조영무에게 공신과 충신으로써 후하게 대접해주었다. 물론 수시로 딴 생각을 하는 이거이는 가차없이 서인으로 강등시켜서 유배크리를 먹여버렸다.

귀양지에서 뒤늦게 서책을 잡은 후 한 번씩 문자를 주워섬기는데, 이환경이 잘못 알고 쓴 건지 캐릭터를 코믹하게 표현하려고 일부러 그런 건지 몰라도 잘못된 고사를 들기도 했다. 태종이 민씨형제를 쳐낼때 읍참마속의 고사를 거론하는데 그 상황에서 적합한 고사는 토사구팽이다. 작가인 이환경이 알아주는 삼국지빠인 데다가 작 중 조영무 캐릭터가 머리가 나쁜 건 결코 아니지만 가방끈이 짧은 캐릭터로 묘사되는 걸 감안하면 일부러 틀렸을 확률이 높긴 하다.

그래도 나중엔 세월의 흘러감을 탄식하는 태종 앞에서 인생여구과극(人生如駒過隙)[6][7]같은 어려운 말까지 읊는 등 나름 많이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조영무처럼 칼잡이부터 시작해서 정승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후 문자를 주워섬기는 기믹은 후일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를 통해 다시 한 번 등장했다.
  1. 이때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싸운 공신들은 조영무와 이숙번을 제외하면 전부 이방원의 친인척들이다.(이화, 이천우, 이저, 민씨형제) 이숙번이야 사병혁파에 찬동하는 입장이었고 방원의 사돈댁이자 사병이 가장 많은 이거이는 계속 관망하다 전세가 방원측에 기운 다음에야 참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영무의 충성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2. 숫적으로 불리했던 초반에 주력이었던 탓에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는 수십명만 남기고 죄 소모되어 후방으로 빠져 재정비해야 했다.
  3.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신료들에겐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며 안면몰수한다.
  4. 《태종실록》 권23 12년 6월 6일 기미 3번째 기사. [1]
  5. 물론 이들도 귀양 후 관직과 공신의 지위를 회복시켜주는 등 충성에 대한 대가를 확실히 제공해줌으로써 뒷말이 나오지 않게 확실히 대우해줬다. 특히 이천우는 종친으로써의 대우를 확실하게 해줌으로써 그의 출신성분에 대한 컴플렉스를 해소하여 그 사이를 돈독히 했다.
  6. 인생은 마치 흰 망아지가 문틈 사이로 획 지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인생은 순식간에 슬쩍 지나가고 만다는 말이다.
  7. 그것도 쉬운 책이 아니라 장자(莊子), 송사(宋史)에 나오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