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4세

역대 영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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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III)
조지 4세
(George IV)
윌리엄 4세
(William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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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Augustus Frederick
1762년 8월 12일 ~ 1830년 6월 26일

영국하노버의 군주.

1 개요

1762년 조지 3세와 샬럿 사이에서 태어났다.

2 생애

왕세자 시절에 품행이 나빴다. 왕실 비용의 절반 수준인 빚을 졌고 영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왕가(루이 18세)를 후원했으며, 경마 등에 가명으로 나가 돈을 탕진했다. 거기에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정치에 적극 개입하고 싶어했다.

1811년부터 아버지가 정신병 증세를 나타내자 섭정을 했으며 1820년에 왕으로 즉위했다.

애인인 마리아 피츠허버트와 비밀 결혼을 했으나 그녀가 과부에 가톨릭 교도였기 때문에 인정 받지 못 했고 빚 탕감을 조건으로 사촌인 브라운슈바이크[1]의 캐롤라인[2]과 결혼하였다. 조지 4세와 캐롤라인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삐꺽거렸는데 조지 4세는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결혼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브랜디를 연신 마셔댔고 캐롤라인은 조지 4세가 뚱뚱하다고 조롱하였다. 조지 4세는 아내를 병적으로 싫어했고 섹스를 첫날밤 이후론 안 했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다녔다. 이 와중에 기적적으로 딸 샬럿이 태어난다. 샬럿은 비난과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와는 달리 영국인들이 동정하고 사랑하는 공주였으며 그녀가 사망한지 10여년이 지난 후에도 차기 왕위 계승자인 빅토리아의 이름을 샬럿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3]

샬럿이 태어난 이후 부부는 별거를 하게 되고 캐롤라인은 결국 연금을 받는 조건으로 영국에서 쫓겨나 유럽을 돌아다니게 된다. 수많은 추문에도 불구하고 캐롤라인은 대중들에게서 동정을 받고 있었는데 조지 4세의 사생활도 만만치 않게 막장(...)이었으며 조지 4세가 캐롤라인이 딸 샬럿과 만나지도 못 하게 하는 것도 한 몫 했다. 심지어 1817년 샬럿이 출산 중 사망한 것도 알리지 않아 캐롤라인은 사위인 레오폴트[4]를 통해 그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조지 4세가 즉위하자 그녀는 왕비로서 귀국하였으나 근위병들의 저지로 대관식에 참석하지도 못 하였다. 주로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는 영국 의회 상원은 간통을 이유로 캐롤라인에게서 왕비 자격을 박탈하는 법안을 발안하였으나[5] 대중들의 반발에 밀려 결국 폐기되었으며 캐롤라인은 영국 왕비로 남았으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821년 사망하였다.

조지 4세가 얼마나 아내를 증오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일화가 있는데 나폴레옹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하가 기뻐하며 "폐하의 최대의 적이 죽었습니다!"하고 알렸는데 조지 4세는 "오, 그럼 그 여자가 죽었단 말인가!"하고 기뻐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그 여자란 자신의 아내 브라운슈바이크의 캐롤라인을 말한다.(...) 나폴레옹보다 더 싫은 아내[6]

유일한 적자였던 샬럿이 먼저 사망한 탓에 1830년 그가 죽자 왕위는 동생인 클래런스 공작 윌리엄에게 넘어간다.

스코틀랜드를 방문할 때 킬트를 입기도 했다. 당시 동행했던 월터 스콧의 아이디어였다고. 요새 영국 왕실에서 스코틀랜드에 갈 때면 킬트를 입는 이유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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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에 그린 초상화인데 어쩐지 야라나이카다. 왕위 하지 않겠는가?

섭정기간 중 휴양지 브라이튼에 로열 파빌리온이라는 별궁을 지었는데 그 디자인이 그야말로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마법사의 궁전 형상이어서 당대에는 많은 빈축을 샀다. 이야기 속의 궁전을 현실화해버린 것이나, 당대에는 욕을 먹고 후대에는 관광자원이 된 것으로 보자면 루트비히 2세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원조격.
  1. 구지 설명하면 조지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이쪽은 볼텐뷔펜.
  2. 캐롤라인의 어머니 아우구스타는 조지 3세의 누나다. 참고로 캐롤라인의 아버지 페르디난트는 프로이센 원수로 프리드리히 대왕의 조카다. 페르디난트는 1806년의 독일.폴란드 원정의 예나 전투에서 전사한다
  3. 샬럿과 빅토리아는 사촌 관계.
  4. 후에 벨기에의 왕이 된다
  5. 이때 캐롤라인은 자기가 간통을 한 번 한 적이 있긴 한데 상대는 마리아 피츠허버트 부인의 남편, 즉 조지 4세라는 농담을 던졌다.
  6. 여담으로 캐롤라인은 나폴레옹이 죽은지 3달 뒤에 죽어서 결국 조지 4세의 소망대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