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호(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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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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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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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시절.

삼성 라이온즈 No.94
조진호(曺珍鎬 / Jin-Ho Cho)
생년월일1975년 8월 16일
출신지전라북도 전주시
학력진북초-전라중-전주고-원광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8년 쌍방울 레이더스 1차 지명
소속팀보스턴 레드삭스(1998 ~ 2002)
SK 와이번스(2002 ~ 2004)
삼성 라이온즈(2008 ~ 2009)
지도자삼성 라이온즈 3군 투수코치(2014 ~ 2015)
삼성 라이온즈 1군 불펜코치(2016 ~ 현재)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9번(2008~2009)
강현성(2007)조진호(2008~2009)이규대(2010~201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4번(2014~ )
라준성(2013)조진호(2014~ )현역

1 소개

대한민국야구 선수. 보스턴 레드삭스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었던 투수이다. 두 번째 한국인 메이저 리거이자 풍운아.

2 경력

2.1 선수 시절

원광대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김선우, 문동환 등과 함께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했다. 원광대학교 졸업 후 1998년 신인 지명 때 연고 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1차 지명을 받았으나, 당시 쌍방울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어 원하는 계약금을 받기 힘들어지자[1] 계약금 80만 달러를 받고 메이저리그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했다. 지명권은 쌍방울의 후신격인 SK 와이번스에 인계되었다.

1998년 7월 5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등판했다. 박찬호를 이어 한국인 2호 메이저리그 투수가 됨과 동시에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 1999년 6월 20일 텍사스 레인저스전에서 승리해 한국인 2호 메이저리그 승리 투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향수병[2] 때문에 점점 성적이 떨어지고, 2002년 6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결국 방출되어 귀국했다. 그 뒤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권을 계승한 SK 와이번스에 입단했는데, 선수 등록 마감 시한을 넘겨 2002년에는 뛰지 못했고 2003년 SK 와이번스에서 4승 5패 평균자책점 5.20을 기록했다. 2004년 병역 비리에 연루돼 구속,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SK에서도 방출되어 그라운드를 떠났다.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질 때 쯤이었던 2007년 말 입단 테스트를 받아 연봉 5,000만원을 받고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2008년 5월 5일, 드디어 5년 만에 한국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야말로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삼성 입단 이후 처음이자 현역으로서의 마지막 승리였다. 그 후 한 번도 승리를 얻지 못했고[3]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며 2년간 15게임에 등판해 1승 4패를 거두는 데 그쳤으며,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당했다. 2010년롯데 자이언츠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결국 불합격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2.1.1 연도별 성적

  • 투수 기록(MLB)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8보스턴 레드삭스418⅔0308.2028415
1999939⅓2305.72451016
통산13582606.52731431
  • 투수 기록(KBO)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3SK 와이번스1979⅔45005.20992022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8삼성 라이온즈112913007.45401111
200941001018.101466
통산34118⅔59015.991533739
  • 타자 기록(MLB)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1999보스턴 레드삭스11.0000000000
통산11.0000000000

2.2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성남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로 일했고, 2012년에는 대전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를 역임했다. 대전고 코치 재임 때에는 2013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받은 조상우를 전담 지도하기도 했다.

2013년 12월 16일 삼성 라이온즈에 영입되었다. 공식적인 보직은 2군 투수코치지만, 이미 2군 투수코치에 양일환이 있고 전년도 3군 투수코치였던 전병호kt 위즈로 옮겨서, 실질적으로는 3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2015 시즌을 마치고 계약이 만료된 후 일본으로 돌아간 카도쿠라 켄을 대신해 삼성의 1군 불펜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다만 불펜이 영 신통치는 않아보이는 듯. 2016년 9월 중에는 김태한 투수코치가 부친상을 당해 1군 투수코치 대행으로 나섰다.

3 기타

  • 외모가 박찬호를 닮아 이라는 별명이 있다. 보스턴, SK 시절에 박찬호의 트레이드마크인 61번을 달기도 했다.
  • 보스턴 시절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가뜩이나 힘든 시기를 보낼 때 팀 동료들이 조진호의 이름 'Ho'를 갖고 성적인 농담을 하곤 했다고. 그런 조진호를 당시 같은 팀에 있었던 최경환이 도와줬다고 한다. 이미 몇 년간 미국 생활을 경험해 미국 선수들에 대해 잘 아는 최경환은 조진호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 조진호를 놀리는 동료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진호 쟤 덩치[4]봐라. 쟤 원래 한국에서 갱스터였다. 한국에서 사고 치고 여기 와서 마음 잡고 운동하려고 하니 너무 그러지들 마라. 그러다 너네 쟤한테 훅 간다.
등의 말을 했다. 최경환의 말을 들은 미국 선수들은 더이상 조진호를 괴롭히지 않았다고.
  1. 단순한 돈 욕심 때문이 아니라, 폐암으로 투병하던 부친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2. 특히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고. 조진호의 아버지는 조진호가 미국으로 진출한 1998년에 돌아가셨다. 집에서는 혹시나 아들의 마음이 흔들릴까봐 임종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조진호는 시즌이 끝난 후 귀국해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3. 단, 2008 포스트시즌에서는 구원승을 따내긴 했다.
  4. 키 190cm에 미국에 있을 때는 체중이 100kg를 넘어 미국 선수들 못지 않게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