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미국 4대 프로 스포츠
농구미식축구아이스하키야구
NBANFLNHLMLB
미국의 야구 리그
구분명칭
프로1군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내셔널 리그 / 아메리칸 리그
2군마이너 리그 베이스볼
AAA / AA / A+ / A / 쇼트싱글 / 루키+ / 루키
윈터리그애리조나 윈터리그 / 애리조나 가을리그 / 캘리포니아 윈터리그
독립리그프론티어 리그 / 아틀란틱 리그 / 페코스 리그 /
캐나디안 아메리카 협회 야구 리그 / 아마리켄 독립 야구리그
대학NCAA Division I / NCAA Division II / NCAA Division III
고교야구지역별 권역 대회
Division I / Division II / Division III
유소년리틀야구 /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북중미&남미 프로야구 리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도미니카 프로야구
(LIDOM)
멕시코 태평양 리그
(LMP)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리그
(LVBP)
푸에르토리코 프로야구
(LBPRC)
쿠바 프로야구 리그
(SNB)


1 개요

전세계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이자 세계 최고 프로 야구 리그

보통 줄여서 MLB 또는 빅 리그(Big League)라 부르기도 하며[1], 국내에서 메이저리그라고 하면 보통 이걸 이야기한다. 수많은 야구 선수들이 선망하는 꿈의 리그. 공식 사이트는 [MLB.com]. 상위(major) 리그가 있으니 하위(minor) 리그도 있기 마련, 그래서 메이저리그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마이너리그(MiLB)도 있다.

북미 프로야구리그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리그이며 아메리칸 리그(American League)와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로 구성된다. 내셔널 리그에 15개팀, 아메리칸 리그에 15개팀으로 총 30개팀이 등록되어 있으며, 29개팀은 미국에 연고지를 두고 있으며 토론토 블루제이스만이 캐나다 토론토를 연고로 하고 있다. 사실 2004년까지는 캐나다에 2개팀(몬트리올 엑스포스, 토론토 블루제이스)이 있었는데 몬트리올 엑스포스워싱턴으로 연고 이전을 하여 하나로 줄어버렸다. 어쨌든 캐나다가 참여하고 있는 관계로 공식적으로는 북미 프로야구리그다.[2] 여태까지 캐나다 팀은 두 구단만 있었고 지금은 그 중 한 팀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 프로야구나 다름없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메이저리그를 미국 프로야구로 표현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 점은 캐나다 구단들이 꽤 많이 참가하고 있고 캐나다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NHL과 대조적이다.[3]


2 역사


1876 ~ 2015년도까지의 메이저리그 소속 구단 로고 변천사

미국 야구 역사에서 '최초'라는 타이틀과 관련하여 최초의 프로팀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 최초의 리그는 1869년부터 1870년까지 지속된 [NABBP(National Association of Base Ball Players)], 최초의 프로리그는 1871년부터 1875년까지 지속된 [NAPBBP(National Association of Professional Base Ball Players)]이다.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가 소속된 NABBP의 경우 프로팀과 아마추어팀이 혼재된 리그였으며, 레드스타킹스의 해체 이후 아마추어팀을 완벽히 배제한 리그를 원했던 프로팀들이 모여 새로이 결성한 것이 바로 NAPBBP였다. 이 NAPBBP에 참여한 팀들 중 보스턴 레드스타킹스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는, 1875년 NAPBBP가 해산된 이후에도 이듬해에 창설된 내셔널 리그로 소속을 옮겨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의 해체 없이 지속되고 있다.

바로 이 1876년 내셔널 리그가 시작된 것을 메이저리그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물론 초창기에는 시장성이 없었고 경기도 열기 힘들어서[4] 선수들이 박봉에 시달리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양대리그 체제가 확립된 것은 1901년이다. 그 때문에 현대적인 형태의 메이저리그는 1901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원래는 내셔널리그 8개팀, 아메리칸리그 8개팀으로 총 16개팀이 미국 동부와 동부에 인접한 중부지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각 리그도 별도의 지구구분이 없는 단일리그로 편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리그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5] 여러 새로운 팀들이 창설되어 메이저리그에 참여하였고, 기존 팀들이 미국 서부 지역으로 연고지 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리그 확대와 팀의 증가, 연고지의 이동에 따라 여러 팀들의 원정거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늘어나게 되자 1969년 연고지를 기준으로 서부와 동부지구로 재편하였다. 1969년 2개 지구제로 리그가 확대 되었을 때의 규모가 양대리그 각각 10개팀 씩 총 20개 팀이었다. 이후 1977년과 1993년 두 차례에 각각 AL와 NL에 신생팀이 2팀씩 생겨 총 28개 팀이 참가했고, 1994년 리그 확대에 맞춰 다시 서부, 중부, 동부지구로 재편하였다. 이에 따라 지금의 양대리그 3개 지구 체계가 완성되었다.

초창기에는 경기수를 못박지 않아서 140~150경기를 전후로 순위를 가리기 위해 경기 수가 들쑥날쑥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1904년 한 시즌을 한 팀당 22경기 씩 치러 총 154경기(7팀×22경기)로 확정을 지으면서 정리가 되었다. 그래도 순위를 가리기 위해 1~2경기를 더하는 경우도 있었고, 어차피 순위가 이미 확정돼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경기는 취소될 경우 그냥 생략해버리는 경우도 있었기에 실제 정확히 154경기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6] 시즌은 4월 말에 시작하여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끝났으며, 보통 시즌이 9월 말~10월 극초면 끝났기 때문에 10월 초에 양대리그 우승팀이 격돌하는 월드 시리즈를 가지는 형태였다.

1919년 잠시 한 시즌을 한 팀당 20경기로 줄인 적이 있었는데 바로 흑역사. 이듬해 다시 22경기로 늘어나면서 154경기로 계속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1962년 리그 확대로 각 리그의 팀이 10개로 늘어나면서 팀당 18경기 씩, 총 162경기(1962년 당시, 9팀×18경기)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3월 말~4월 초에 시즌이 시작하고 10월 초에 시즌이 마무리되는 형태로 변경이 되었다.

2013년 현재 162경기는 보통 동일 지구 76경기(4팀×19차전)+동일 리그 다른 지구 66경기(팀당 6~7차전)+다른 리그 20경기(팀당 2~4차전)로 구성된다.

자세한 것은 메이저리그/역사 항목 참조.


2.1 야구는 왜 국기가 되었나

문화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아메리칸 패스타임(American Pastime)"이라고 부를 정도로 대한민국태권도씨름, 일본스모가라데와 같이 미국에서는 야구와 미식축구가 나라의 국기(國技) 스포츠이다. 아이스하키는 캐나다인이 만들었고 미식축구 역시 캐나다인이 창시했지만 미식축구와 야구만큼 미국인들의 문화, 생활이 반영된 스포츠는 없다. 농구는 캐나다인이 아니라, 캐나다계 미국인이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만들었다.

그마저도 야구는 미식축구보다도 이른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유일한 프로스포츠며, NFL이 리그 기간이 매우 짧고 팀당 16경기 밖에 안 한다고 가정할 때[7], 미국의 모든 스포츠 중 유일하게 봄-여름-가을 7개월에 걸쳐 매일매일하는 프로스포츠 리그, 미국의 국기 그 자체가 바로 MLB이다.

미국인들의 문화적 동질에 관해 첨언하자면, 미식축구의 경우는 서부개척시대 미국인들의 "땅따먹기"를 반영하여 좀더 진보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야구의 경우는 냉전시대에 소련과 맞붙던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상징하고 미국 특유의 자본력이 그대로 스포츠에 옮겨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야구장 문화로 햄버거, 핫도그패스트푸드를 즐기는 미국인들의 여가문화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또 미식축구와 야구에 반영된 미국인들의 성향도 있는데, 미식축구나 야구나 공수 기회가 공평하게 돌아가고 플레이와 플레이 사이에 텀을 두는, 이른바 '턴(turn)제 스포츠'로 기록적이고, 분석적이며,[8] 긴장감 있는 것을 선호하는 심리와 동시에 미식축구의 과격한 몸싸움, 태클이나 야구의 홈런, 탈삼진과 벤치 클리어링 등 파워풀하고 경쾌한 마초적인 것을 좋아하는 취향 등 미국인들의 심리가 잘 반영되어 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 메이저리그/역사 항목에서 왜 야구가 미국에서 인기있었는지 알 수 있다.


3 꿈의 무대

우선, 결론적으로 메이저리거는 법적으로도 미국을 이끄는 최고집단이 확실하다. 미 연방법상 메이저리거는 최고 연방세율 39.6% 적용자의사, 변호사 등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 저 연방소득세법상 기준이 연소득 40만 달러인데 메이저리거 최소연봉이 똑같은 40만 달러다. 즉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미국 전역에서 엘리트 소리 들을 만한 사람이 된다. 최고 연방세율 적용자라는 것 그 자체가 미국에 정착한 사람으로서는 아메리칸 드림의 완성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높은 기준이며 따라서 미국 국세청에서는 최고 세율 적용자를 전문직에 준하는 인원으로 간주한다.

메이저리그는 중남미 소년들에게도 '꿈의 무대'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많은 나라들(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멕시코, 쿠바 등등.)에는 오로지 메이저리그의 야구선수가 되기위한 야구사관학교까지 꽤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배가 빅리그에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는 걸 동경하며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야구에만 전념하던 야구소년들이 많았다. 그러나 중남미 아이들이 미국까지 빚져가면서 왔으나 정작 야구선수가 되지 못하자[9] 갱이나 도둑으로 전락하면서 미국 치안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부작용이 많이 생겼다.[10] 때문에 현재는 우리나라마냥 운동선수가 꿈인 애들은 죽어라 운동만 시키는 게 아니라 선수생활이 힘들게 될 경우를 대비해 영어, 미국문화도 많이 가르치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11] 이는 카리브해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미국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카리브해 인근 국가들도 대부분 자체 야구 리그가 있고, 캐리비언 시리즈 등 국가 간의 국제전도 있으나 사실상 MLB에 비해 규모가 작고, 미국과 지리적, 문화적으로 차이가 적어서 거의 유망주 조공(?)하고 있는 상태다. 또 대표적인 아마야구 최강이라 불리는 쿠바는 특유의 폐쇄적인 사회주의국가라 프로리그가 없어 미국과의 수교 전에는 미국으로 야구선수가 되려고 밀입국하는 청년들이 많아 사회문제가 되었다.

쿠바 야구리그의 선수들은 주로 해외 대회 출장 시 선수단을 이탈해서 다른 나라 국적을 따는 방식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입했었다.[12] 그러나 이제는 돈 많고 유망주에 관심이 많은 미국 야구단들이 쿠바에 스카우트들을 대거 파견하여 펑펑 돈지랄 중이다.특히 돈많기로 소문난 이 팀이 팀이... 그리고 2015년 7월 미국-쿠바의 재수교로 쿠바 유망주의 메이저리그 러시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이자 전 구단 영구결번자인 재키 로빈슨으로 인해 1947년 미국 내에 흑인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물꼬가 트이고 이름을 날린 흑인 선수들도 많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흑인 선수와 유망주들의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대부분의 흑인 스포츠 유망주들이 '흑인의 강점인 운동능력을 살리기에 더 적합하고', '길고 고달픈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치지 않고 즉시 데뷔할 수 있고', '장비와 훈련에 돈이 덜 들며 장학금이 더 빵빵해서 경제적 부담이 덜한' 농구미식축구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야구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히스패닉, 유럽, 동아시아 선수들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에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흑인 주전 포수는 씨가 마른지 오래고[13], 여기에 흑인 선발투수 숫자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반대로 적응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외야수 쪽으로는 흑인선수들이 뛰어난 운동력을 바탕을 빠른 적응력을 보이기 때문에 흑인 외야수들이 제법 많은 편이다.[14]

아시아의 야구국가들도 마찬가지고, 네덜란드라든가 호주 등 중남미가 아닌 국가들에서도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은 박찬호 열풍 때 많은 유망주들이 건너가는 유망주 러시도 있었다. 일본 같은 경우 유망주로서 바로 진출하는 경우보다 일단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눈도장을 찍어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받거나 직접 문을 두드리는 쪽 비중이 높다..

성공하면 얻는 이득 역시 두드러진다. 메이저리그에 43일만 로스터에 등록되어도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며[15],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하면 연금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연봉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는데, 메이저리그는 전 세계 모든 스포츠 리그를 통틀어서 가장 높은 계약규모와 연봉을 지불하는 리그이다. 이 부분만큼은 NFL조차 제치며, 르브론 제임스조차 부러워한 적이 있다(..)[16] 더 알기 쉬운 비유로는 추신수의 연봉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비슷하며, 그게 7년 보장이다.[17] 첫 문장에도 있듯 연방법 최고세율 적용자가 된다. 연방세법 최고세율은 엘리트를 가르는 기준 중 하나로 자주 인용되는 기준이며 메이저리거는 의사, 변호사 등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엘리트 전문직 대우를 받는 집단이다. 이것은 관습적인 것이 아니라 연방소득세법상의 기준이다.

그에 비해 마이너리그의 푸대접[18]역시 유명하기도 하다. 'Winner takes it all'로 대변되는 미국의 빈부격차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 급여도, 대우도, 그냥 동네 슈퍼 알바 수준이라 보면 된다. 연방세법 최고세율을 다 뜯기엔 그들은 너무나 가난하다(...)

4 포스트시즌

포스트시즌은 원래 초창기 단일리그로만 구성되었던 시절에는 양대리그 1위팀이 맞붙는 월드 시리즈밖에 없었으나, 1969년에 지구가 2개로 분할되면서 각 지구의 우승팀이 맞붙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가 추가되었다. 1994년에 다시 지구가 3개로 분할되면서 각 지구 우승팀과 리그에서 와일드카드팀이 맞붙는 디비전 시리즈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2012년부터는 와일드카드팀이 각 리그마다 한 팀씩 늘어나게 되었다[19].

와일드카드 팀간의 대결인 와일드카드 게임은 단판제로 시행되고 있고, 디비전 시리즈는 5전 3선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원래 5전 3선승제였다가 1985년 7전 4선승제로 변경되었으며, 월드시리즈는 원래부터 7전 4선승제였다. 다만 중간중간 9전 5선승제를 시행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포스트시즌만 거의 2주~3주에 달한다. 그 영향으로 초창기 10월 초반이면 끝나던 포스트시즌도 거의 10월 말이 돼야 끝나는 상황이다. 이처럼 포스트시즌 경기수와 참가팀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팬들은 더 긴장감있고[20] 긴 야구시즌과 긴박하고 드라마틱한 포스트시즌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사무국과 구단과 방송국은 관심도가 집중되는 포스트시즌 경기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리지만, 한편으로 선수들은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까지 합쳐 더 많은 경기를 뛰게 된 탓에 피로감을 호소하거나 실제로 이듬해 부상 또는 부진을 겪는 경우도 많다.


5 양대리그의 차이와 리그 구성

원래 내셔널 리그나 아메리칸 리그나 그냥 리그에 소속된 팀이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었지만, 1973년 아메리칸 리그가 지명타자제도를 도입하면서 두 리그의 모습이 달라졌다. 그리고 원래는 양대리그는 올스타전과 포스트시즌의 최종 라운드 월드 시리즈를 제외[21]하면 정규리그에서는 맞붙지 않는다는 원칙 아닌 원칙이 있었다. 그런데 1994년 선수단의 파업으로 야구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자 버드 셀릭 커미셔너가 인터리그 제도를 채택하면서 시즌 중에도 서로 맞붙게 되었다.

그 결과 연고지가 같거나 인접한 팀들의 대결이 지역 팬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면서 어느정도 인기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정통주의 야구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제도가 야구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면서 까고 있다. 또한 같은 디비전에서 자주 만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놓고 경쟁하는 팀들끼리도 일정이 균등하지 않게 배정되는 원인으로도 지목되면서 여러 팀들에게 불만을 사기도 한다. 가령 보스턴 레드삭스는 메이저리그 한때는강팀[22]이자 인기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매년 한 차례씩 인터리그 시리즈를 갖는데, 뉴욕 양키스는 필리스와는 상대도 안되는 전력의 같은 동네 어메이징한 팀[23]과 6경기를 치른다. 시카고 컵스는 같은 동네 팀인 시카고 화이트삭스[24]와 매년 6경기씩 치르는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캔자스시티 로열스와 만나고[25] 신시내티 레즈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만난다. 이런 불균형 대진에도 불구하고 인터리그 제도를 고수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26]

결국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 배치된 팀 수의 불균형으로 2013시즌부터 한 지구 5개팀, 각 리그 15개 팀으로 재편하였다.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의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로 옮겨갔다. 이렇게 재편되면서 그간 각 팀마다 다르게 편성되던 팀간 경기수[27]가 아래와 같이 고정되었다. 인터리그 상대팀을 결정하는 방법은 3년마다 지구별로 순환하여 맞붙는 매치업과 지역 라이벌전 매치업, 이 두 가지가 있으며, 이를 모두 합쳐 20경기를 치른다. 자세한 설명은 인터리그 항목 참조.

상대팀들팀당 경기수총 경기수비고
동일 리그 동일 지구19763연전, 4연전 혼합편성
동일 리그 타 지구6~7663연전, 4연전 혼합편성
상대팀마다 홈경기 숫자가 다름
인터리그-[28]20모든 팀을 상대하지 않음
단, 지역 라이벌간 경기는 1년에 4~6경기 편성[29]


6 커미셔너

현재의 메이저리그가 정립된 1903년에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내셔널 위원회(National Commission)'라는 조직이 있었다. 당시 양대리그 총재와 위원회 의장(Commission Chairman) 총 3인이 내셔널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런데 위원회 의장은 양대리그의 중재자 역할이었기 때문에 각 리그의 총재에 비해서 힘이 적었다. 하지만 1919년 블랙삭스 스캔들이 발생하자 양대리그 총재들보다 상위에서 리그 전체를 총괄할 권위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했고, 결국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할하는 커미셔너가 등장했다.

커미셔너는 MLB 사무국의 수장으로서 메이저리그 전체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 그런데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 최정점에 있는 커미셔너는 늘 구단주들과 서로 견제하는 위치에 있다. 한편, 시대별로 메이저리그가 놓여진 상황에 따라 커미셔너들의 성향이 조금씩 달라진다.

초대 커미셔너인 케네소 랜디스는 블랙삭스 스캔들이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흑역사를 해결하고, 구단주들이 가진 입김을 억제하기 위해 강직하게 리그를 이끌었다. 해피 챈들러나 포드 프릭은 메이저리그의 확대를 위해 힘써 진보적인 커미셔너로 손꼽힌다. 피터 위버로스와 버드 셀릭은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가치를 상업적으로 확대하는데 성공한 커미셔너였다.


6.1 역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커미셔너

기수이름전직재직기간주요 업적
1대케네소 랜디스
(Kenesaw M. Landis)
연방판사1921.11.12 ~ 1944.11.24
(23년 13일, 역대 최장수)
블랙삭스 스캔들 조사 및 연루자 처벌,
커미셔너의 권한 증대 노력
2대해피 챈들러
(Haapy Chandler)
정치인[30]1945.4.24 ~ 1951.7.15
(6년 83일)
흑인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개방,
은퇴선수 연금기금 마련
3대포드 프릭
(Ford Frick)
스포츠기자1951.9.20 ~ 1965.11.16
(14년 59일)
리그의 규모 확장(연고이전팀·신생팀의 승인)[31]
4대윌리엄 에커트
(William S. Eckert)[32]
미 공군 중장1965.11.17 ~ 1968.11.20
(3년 3일)
이사회의 권한 강화,
구단 프랜차이즈의 안정적인 운영을 도움[33]
5대보위 쿤
(Bowie Kuhn)
변호사1969.2.14 ~ 1984.9.30
(15년 230일)
약물 복용·도박 등 부정행위 연루자 처벌,
커트 플러드와의 송사[34],
월드 시리즈 개최시간을 프라임 타임으로 이동,
커미셔너의 권한 강화 노력
6대피터 위버로스
(Peter Ueberroth)
사업가[35]1984.10.01 ~ 1988.9.30
(4년)
도박으로 처벌받은 윌리 메이스미키 맨틀 복권,
피츠버그 마약 재판,
CBS와 12억 달러 중계권 체결,
FA 제도를 둘러싼 구단주들과의 갈등
7대바트 지아마티
(A. Bart Giamatti)
교수·교육행정가[36]1989.4.1 ~ 1989.9.1
(5개월, 역대 최단기)[37]
피트 로즈의 승부조작 사건 조사 지시(다우드 보고서)
8대페이 빈센트
(Fay Vincent)
변호사1989.9.13~1992.9.7
(3년 4일)
피트 로즈의 영구제명 지시,
1989년 월드 시리즈 3차전 개최 연기 지시,
1990년 스프링 캠프 시즌 파업,
도박과 데이브 윈필드의 뒷조사 등의 부정으로 조지 스타인브레너 축출,
리그 3개 지구 개편 시도
9대버드 셀릭
(A. Bud Selig)
사업가1992.9.7 ~ 2015.1.24
(22년 140일)
리그 3개 지구 개편, 4개의 신생팀 창단,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제도 시행, 1994년 메이저 리그 파업,
인터리그 시행, 올스타전 승리 리그에 월드 시리즈 홈필드 어드밴티지 부여,
미첼 리포트·바이오제너시스 스캔들 등 약물 스캔들 발생-도핑 규정 강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출범, 비디오 판독 시행·확대
10대롭 맨프레드
(Rob Manfred)
변호사2015.1.25 ~ 현재리그 확대 추진[38]


7 흑역사: 약물 스캔들

미첼 리포트로 밝혀진 약물 스캔들로 인해 1990년대~2000년대 중후반까지 역사가 모조리 흑역사화하고 있다 통산 최다 홈런, 한 시즌 최다 홈런약물 혐의자의 기록이며, 투수쪽에서도 로저 클레멘스[39]가 약물 혐의자다. 마이클 조던에게 완벽하게 눌렸던 야구인기를 다시 회복시킨 마크 맥과이어새미 소사 역시 약물 복용자이며, 현존하는 최고의 노동자 인기스타 역시 약물 복용 경력자이다. 연속 무블론 기록의 마무리투수도,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을 두번이나 같이 이끌었던 도미니카 출신의 다이나믹 듀오 매니 라미레즈데이빗 오티즈도, 위의 마크 맥과이어와 같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타선을 이끌었던 호세 칸세코도 전부 약물 혐의 또는 복용사실이 드러난 경력이 있다. 한마디로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야구팬들이 플레이를 보며 환호했던 선수들 상당수가 약물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라이언 브론의 약물 적발 이후 2000년대 데뷔한 선수들도 약물에서 깨끗한 세대가 절대 아님이 증명되었다.

이같은 사태에는 사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안이한 대처가 가장 큰 역할을 했는데, 사실 웬만한 프로스포츠계는 다들 약물때문에 한 번씩 홍역을 치른 역사가 있다. 육상을 비롯하여[40] NBA, 유럽 프로축구등도 약물관련 스캔들이 다 있었다. 다만 스캔들 이후 철저히 단속하여 지금은 많이 근절된 상태.

반면,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경우에는 80년대 후반 이미 선수들의 약물 복용사례를 알고 있었고, 90년대에도 여전히 약물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야구열기 부흥을 핑계로 단속을 의도적으로 자제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일단 소기의 목적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나, 결국 시궁창으로 알아서 뛰어든 셈. 그래서인지 2013년 터진 바이오제너시스 스캔들에서는 전보다는, 어디까지나 전보다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여 관련자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일부는 저 종목들은 운동량이 많아서 약물을 하면 신체에 부담이 되므로 선수들이 자제하게 되었고, 야구는 정적인 스포츠라서 그렇지 않다라는 주장도 펴는데, 철저히 단속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약물단속에 걸리는 선수가 나온다.[41] 또, 96년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던 켄 캐미니티가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한 예로 보아, 야구선수라고 안전한 건 아니다.

단, 확실히 할 것은 약물 관련해서 선수들이 법정에 출석하여 증언하고 이러다보니 약물 복용 자체가 범죄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선수들은 전부 증언하러 나온거다. 피의자가 아니고. 문제가 되는 클레멘스나 본즈의 경우에는 위증때문에 말이 많은 상태이지 약물 복용 자체가 범죄는 아니다. 사무국에서 징계는 얼마든지 때릴 수 있지만.

약물 혐의자가 너무 넘쳐나다보니 사무국 입장에서는 이 선수들의 기록을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것도 문제고[42], 팬들 입장에서도 배신감을 넘어서 약을 했어도 어쨌든 우리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준건 사실인데 무작정 비난해야 하나? 라는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43][44] 뭐라고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개인의 판단에 맡길 문제이지만, 그래도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데릭 지터,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블라디미르 게레로, 프랭크 토마스, 켄 그리피 주니어, 크레익 비지오, 알버트 푸홀스, 칼 립켄 주니어, 토니 그윈, 스즈키 이치로, 트레버 호프먼, 마리아노 리베라 같은 수많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선수들이 하악.. 엘리트가 몇장이여아직까지 약물 혐의 드러난 바 없는 깨끗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현역 메이저리거들 중 이름있는 선수들 중에도 약쟁이가 아닌 자기 실력만으로 활약하는 선수들도 있다.


8 리그 수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선전하고 미국이나 중남미 팀들이 부진하면서 국내에선 메이저리그를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국제대회에서의 성과는 어디까지나 변수가 많은 단기전에서 이뤄낸 결과일 뿐이다. 종합적인 실력이나 인프라에서 KBO보다 월등한 NPB조차 메이저리그에 비하면 훨씬 못미치고 그 일본에서 최고 소리듣던 선수들이 대부분 성적이 하락하거나 먹튀로 전락한 곳이 메이저리그다. 심지어 10년 연속 200안타를 기록한 스즈키 이치로도 일본시절에 비해 기록이 하향된 것이다. 물론 데뷔 시즌에는 AL MVP를 차지하긴 했지만.

물론 그렇다고 한국과 일본 대표팀이 이뤄낸 성과를 평가 절하해서도 안되겠다. 사정이 어찌됐든 이긴 건 이긴 거니까. 다만 성과를 너무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중남미나 미국 선수들은 스프링 트레이닝 대신 출전하는 형식으로 다치지 않게(심지어 이반 로드리게스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오퍼하는 팀이 나타나지 않자 메이저리그 팀한테 건재를 과시하려고 쇼케이스 형식으로 일부러 출전한 것이다.) 조심조심 플레이한 반면 한국과 일본 선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다. 실제로 시즌 전에 행해지는 WBC와는 달리 시즌이 끝나고 치뤄져왔던 미일야구의 대전 성적은 압도적으로 메이저쪽이 높다. 단순히 시리즈 전적이 아닌 역대 총경기수의 승률로 따져도 85%이상. 특히 06년에 치뤄졌던 미일야구에서는 메이저쪽에서 WBC에서 당한 망신을 갚으려고 이를 갈고 나와서였는지 압도적인 실력차를 보여주며 4:0으로 눌러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일본야구의 승률 15%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82년 시즌 승률 .188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특히 허구연를 필두로 해설자들까지, 심지어 한 팀의 감독까지 MLB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지만 덕분에 작전 구사를 하지 않는 투박한 야구라고 까대는데 세이버메트릭스가 어디서 나왔는지, 어디가 가장 철저하게 사용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병크. 다만 허구연은 본인이 매일 메이저 리그 경기를 시청하고 메이저 리그와 연줄이 제법 있다는 점 때문에 몰라서 왜곡하는 게 아니라 다 알고도 한국 야구를 띄우기 위해 일부러 왜곡한다 는 의심을 받는다. 이 쪽이 더 악질이지만...그리고 2013년 류현진의 경기에서 신시내티가 야시엘 푸이그의 오버런 기질을 철저히 분석해 푸이그가 안타를 치자 포수가 푸이그 시야 밖인 뒤에서 달려와 1루를 밟고 아웃을 시키는 멋진 플레이를 펼쳤는데, 이 장면에서 힘드립의 창시자가 힘드립을 깠다! 메이저 리그가 힘만 센 리그가 아니라 철저한 분석과 작전이 있는 리그라고. 즉 지금까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곡된 해설과 평을 해 왔다는 이야기.

분석을 해도 공략을 할 수 없는 잉여, 이제는 9의 신 괴물들이 끊임없이 데뷔해 활약하다보니 이들의 플레이를 보면 그냥 강속구 꽂아넣고 냅다 휘두르고 끝이네 뭐라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그거야 그 인간들이 괴물인거고(...) 조금만 야구를 봤고 야구팬을 자처한다면 절대 메이저 리그가 작전 구사 못한다는 소리는 못한다. 특히 내셔널리그를 주로 보는 이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 실례. 힛앤런, 런앤힛 같은 작전이야 이론적으로 양대리그에서 모두 동등하게 나올 수밖에 없으나,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특성상 희생번트라든지 대타 기용 등 그 작전구사의 정교함에 있어서는 내셔널리그가 아메리칸리그보다 앞선다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편견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해외야구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국내 해설자들이 '일본야구는 변화구나 유인구로 약점을 파고들고 미국야구는 강속구로 정면승부한다'라는 식의 해설을 자주 하는 바람에 이런 편견이 들어선 것도 있다. 실제 메이저리그 전문으로 출발한 송재우, 민훈기 해설이나 김형준 기자를 포함한 몇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야구인들 해설이나 칼럼 내용을 보면 메이저리그에 관해서 기초적인 내용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메이저리그 32개팀 드립친 김모씨나 사사구에서 아담 던이 누군지도 모르던 이모씨 등등

실제 한/미/일 야구를 모두 경험한 이상훈은 한국보다 일본이 파워가 있고, 일본보다 메이저리그가 훨씬 정교하다 라고 이야기했다. 역시 한/미/일 야구 모두 경험한 구대성도 미국과 일본 타자들 상대하다가 돌아와서 한국 타자들을 상대하니 쉽게 느껴지더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이런 편견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일본에도 퍼져 있는 듯, 원아웃을 그린 카이타니 시노부도 이 편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메이저 리그를 정정당당히 승부하는 바보들이라고 알고 있는데 게임을 보면 그 녀석들은 오래전부터 우리보다 훨씬 약았고 이기는 법을 잘 알고 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다. 애초에 30개 구단이 단 하나의 정상 자리를 놓고 아웅다웅하는 살벌한 승부의 세계에서 치밀하게 이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건, 애초에 성적은 장식이고 선수 여럿을 적당히 잘 키워서 돈벌이(...) 수단으로 삼겠다던가 한탕주의라는 엄창난 비난을 받으면서한번에 이익 땅기고 끝낸답시고 구단을 해체(...)하겠다는 의미밖에 없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프로야구/리그 레벨차 논쟁 참조.

9 한국에서의 인식

당연히 야구빠라면 모르거나 관심을 안 가질 리가 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면 박찬호의 진출이 시초. 메이저리그에 대한 인지도가 사실상 전무했던 90년 초중반까지 메이저리그는 그저 미국에서 하는 야구대회라는 것으로 대중에게 인식이 박혀있던 것이 사실이다.[45] 낯설고 머나먼 미국 무대인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의 성장과 활약은 IMF라는 시대적 불운에서 대중들에게 희망을 심어줬고, 유망주들에게 메이저리그 진출 꿈의 계기가 됐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박찬호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메이저리그 팀들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응원하게 되는 한국인들이 생겨났고,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들도 탄생했다. 하지만 박찬호가 전성기가 지나며 부상과 부진으로 대중의 관심을 잃게 되자 일부 야구빠를 제외한 대중들에게 메이저리그는 한동안 잊혀졌다.

그리고 2012년을 기점으로 류현진의 한국야구 최초로 메이저리그 직행, 박찬호 이후 사실상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활약하고 있는 추신수에 대한 재조명 등으로 대중에게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가 인식되었다. 90년 메이저리그 경기를 시청하다 캔자스시티 로열스팬이 되어 20년동안 팀을 응원했던 이성우씨의 사연이 미국 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 사실 당시만해도 메이저리그에 대해 아는 바 없던 시절부터, 그것도 거의 듣보잡격인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는 것이 미국 사회에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결국 올 2014년 시즌 팀의 초청으로 캔사스시티로 간 이성우씨는 그가 다녀간 후 로열스가 8연승으로 아메리칸리그 중부조 1위로 오르면서 팀의 '행운을 부르는 존재'로 다시금 거듭나게 되었다. 여기에 강정호가 2015년 시즌을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관심이 더욱 커져질 전망이다. KBO 야수 출신으로는 첫 메이저리그 진출이기에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강정호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덕분에 나머지 KBO 선수들 역시 메이저리거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46]. 2015년 시즌 후 넥센 히어로즈박병호가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주목받았고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포스팅에 성공하고 계약까지 체결하면서 2016년 메이저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또한 김현수이대호까지 함께 진출하며 역대 최다의 코리안리거가 활약중이다. 아울러 2015년 시즌 후 메이저리거로 오를 뻔했던 양현종김광현 역시 재도전 가능성이 있다.[47][48]

다만 이후 너나 할거 없이 메이저리그 노린다는 의견도 나왔고 결국 손아섭이 어느 구단도 응찰하지 않는 결과를 맞이했다. 이를 두고 스포츠조선은 손아섭에 대하여 정작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별로 관심도 없던 걸 강정호 수준이라며 멋대로 500만 달러 정도 가능이라고 설레발을 떨던 국내 야구계나 언론이 김치국 마셨다고 분석했다. 이에 포스팅 도전이 늦었다는 박동희의 실드도 있었으나, "실력이 좋으면 아프리카라도 가는데 뭐가 늦어서 아몰랑 무시했다는 거냐? 메이저리그에서 필요없으니까 응찰이 아예 없는 거다." 라는 반응을 메이저리그 어느 스카우터가 보이면서 메이저리그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거 아니냐고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리고 손아섭에 이어 도전한 황재균도 결국 똑같이 무응찰로 메이저리그 도전은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49]

한편 이에 따라서 국내 선수가 진출해있는 팀을 응원하는 경우가 많아져 자연스럽게 타팀의 선수내지 감독 간에 마찰이 생기면 다소 분위기가 나빠져 그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매국노로 몰리기도 한다. MLB/팬덤 참조.
한국인으로서 메이저리그 진출을 한 선수 목록은 한국인 메이저리거 항목 참조.


1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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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설로 공식 로고의 모델은 홈런왕 하몬 킬러브루라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68년 디자인된 이 로고를 만든 제리 디올은 모델이 없다고 밝혔다. [출처]
  • 공식사이트인 MLB.com의 경우 모든 구단이 공동으로 운영을 하고 있으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모든 구단이 공평하게 분배하는 독특한 형태이다.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50]
  • 미국의 다른 메이저 스포츠들과 마찬가지로 유니폼 및 용품 협찬사가 1개 기업(마제스틱[51])으로 동일하다.[52]
  • 23년 최장기 커미셔너로 직무해온 버드 셀릭의 바통을 이어받아 롭 맨프레드 신임 커미셔너 체제하에 2015년 시즌을 시작한다.


10.1 MLB를 시청하는 방법

과거엔 MLBkorea라는 곳에서 결제하면 한국어 사이트에서 MLB를 라이브로 시청할 수 있다는 큰 메리트가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MLBkorea는 서비스를 중단하였고, 지금은 얄짤없이 영어 사이트인 MLB.com의 MLB.tv를 (프리미엄 기준) 109.9달러 주고 신청해야 전 경기를 라이브로 볼 수 있다. NBA에서 출시하는 리그패스마냥 한 팀의 경기만 볼 수 있다거나 하는 패키지는 없이 그냥 전 경기를 시청할 수 있는 패키지이다. 자세한 것은 MLB.tv 항목 참조.


10.2 야구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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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단부터 우향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컵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신시내티 레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콜로라도 로키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캔자스시티 로열즈, LA 에인절스, LA 다저스, 마이애미 말린스, 밀워키 브루어스, 미네소타 트윈스, 뉴욕 메츠, 뉴욕 양키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애틀 매리너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템파베이 레이스, 텍사스 레인저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워싱턴 내셔널스 순 이다. 구단의 로고가 들어간 야구 모자는 하나의 패션 아이템화 되어, 길거리에 젊은이들이 그런 모자를 쓰고 다니는 걸 흔히 목격할 수 있다. 같은 팀 모자를 쓴 사람끼리 만나게 되면 의외로 어색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국에 뉴욕 양키스 팬이 이렇게 많았나요. 여자팬들도 정말 많네요. 따라서 그걸 피하고자 개성있는걸 쓰기 위해 비인기팀이나 좀 특이한 문양을 가진 팀을 선택할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지라... 결국은 자기 나름대로 개성있기 선택했다고 해도 얼마 못가 똑같은 모자 쓴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53][54] [55]

이런 정품모자를 주로 만드는 회사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한국내 라이센스 생산판매를 취득한 MLB코리아(F&F OEM) 제품이며 그 뒤를 이어 뉴에라 3930 핀치히터나 5950이 있고 저가 보급형으로는 미국에서 직수입해오는 Outdoorcap사의 제품이 있다. 다 같은 정품이지만 아무래도 선수용으로 직접 구단에 납품하는 뉴에라를 더 쳐주는 편. 실제 뉴에라의 5950 어센틱 라인은 메이저리그의 공식 경기용 모자로, 다른 5950 라인과 달리 측면에 뉴에라 로고가 없으며 모자 챙 위에 붙어있는 스티커에 The Official On-Field Cap of Major League Baseball이라고 적혀있다.


북한에도 진출했다(…) ...물론 합성일 수도 있으나 중국산 짝퉁 모자일 수도?


10.3 공인구

미국의 Rawlings(社) 제품으로 1977년도부터 공식적으로 쓰이고 있다(이전에는 NBA 공인구로 유명한 Spalding(社) 제품). 현재는 코스타리카 공장에서 수제품으로 생산된 제품들이 전량 수입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MLB 공인구는 공식경기에 앞서 진흙에 발라져야 한다는 것인데(MLB규정 - Rule 4.01c), 여기에 쓰이는 진흙은 1938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3루코치 리나 블랙번(Lena Blackburne)이 뉴저지주 델라웨어강에서 낚시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고운 진흙이 대대로 쓰인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따서 상품화한 리나블랙번 베이스볼 러빙머드(Lena Blackburne Baseball Rubbing Mud)(社) 제품이 1950년대부터 MLB에서 공인되어 쓰이고 있다. 해당업체의 소개에 따르면, 75달러의 한 통(900g)이 연간 250여개 정도 팔리고 있으며 따라서 한해 매출액은 2만달러 남짓(한화로 2천 3백여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의외로 독과점에 따른 이익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1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팀

11.1 내셔널 리그


11.2 아메리칸 리그


12 관련 항목


12.1 나무위키에 항목이 작성된 역대 명승부 모음


12.2 관련 게임


12.3 커뮤니티 일람

대한민국의 MLB 팬은 박찬호 열풍 이후로 신규 MLB팬이 급격하게 늘은뒤로, 상당수가 박찬호 까와 박찬호 빠로 나뉘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뮤니티 발전도 특이한 양상을 보였는데, 인터넷 초창기부터 박빠와 박까의 싸움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커뮤니티가 여러갈래 쪼개진것도 특징. 이중에서 엠엘비파크와 MLB코리아 트루엠엘비 카페를 전신으로 두는 MLB투어 등이 파생되고 이러한 MLB커뮤니티 사이트들을 통칭 업계라고 하는것같다.

해외야구 팬사이트 형태를 갖추면서도 디씨로 말하자면 은근슬쩍 잡갤 경향을 보이며, 야구와 별 관련이 없을것같은 찌질이들이 출몰(...)하는것 또한 특징. 특히 엠엘비파크와 엠엘비투어가 그렇다. 과거 엠엘비코리아는 당시 DCinside 역사 갤러리, 인조이재팬 등에서 악명높았던 일빠[56]이라는 사람이 유입되고 ㄹ의 친일발언에 부화뇌동하는 커뮤니티원들이 많아서 역갤과 야갤, 엠엘비투어가 동맹을 맺고 ㄹ을 축출해서[57] 엠엘비코리아에 수정펀치를 날린적도 있다.

  • 엠엘비네이션 - 신흥 아카이브 사이트. 세이버매트릭스 강세. 팟캐스트 운영.
  • 엠엘비바다 - 가뭄에 콩나게 글이 올라온다.
  • 엠엘비투어 (속칭 뚜어) - 여기서 빠져나갈 날이 멀지 않았다[58].
  • 엠엘비파크 - 난장 1. 포털 사이트 스포츠 게시판의 느낌에 전문성 살짝 더한 정도의 분위기.
  • 해외야구 갤러리 - 난장 2. 동족혐오중. 진입장벽 때문인지 신규유저의 유입이 거의 없고 몇몇 고정닉에 의해 굴러가는 폐쇄적인 분위기지만 코리안리거의 활약 여하에 따라 갤이 잠시 활발해지기도 한다. 속칭 5일장(...)
  • 베이스볼파크 - 듣보. 2008년 말, 엠엘비파크 운영자의 독단적인 운영[59]에 불만을 가진 유저들과 광우병 소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주도한 진보적인 경향을 가진 유저들이 동아일보의 관계를 우려해 개설. 엠엘비파크 MK-2[60]
  • 엠엘비코리아 - 폐쇄
  • 엠엘비드림 - 폐쇄. 엠엘비코리아 공중분해 후 갈 곳 없어진 유저들이 만든 사이트. 엠엘비코리아의 주요 유저들이 그대로 넘어와 그럭저럭 잘 굴러갔으나 전 엠엘비코리아 부운영자의 병크와 미숙한 운영으로 유저들이 대량 탈퇴, 얼마 못 가 멸망했다.
  • 엠엘비랜드 - 폐쇄. 엠엘비드림에서 탈퇴한 유저들이 만든 사이트. 초반엔 그럭저럭 굴러갔지만 이미 명망(?)있는 유저는 떠난데다 자게 위주의 과도한 친목질만 반복하다 유저수가 급감하여 명맥만 유지하다 폐쇄되었다. 사이트 초기 모금한 서버호스팅비가 제법 많아서 였는지 사이트 자체는 꽤 오래 유지되었다. 글이 없어서 그렇지 운영자의 독재을 막겠답시고 일정기간마다 선거를 하여 운영자를 선출했으나 유저수가 급감하며 매번 나오던 사람만 나오고... 이하생략.
  • 하드볼 - 폐쇄. 엠엘비드림에서 파생된 사이트. 자게 위주의 엠엘미랜드와 달리 야구글 위주의 사이트를 지향했는데... 사람이 없어서 망했다. 말기엔 엠엘비드림과 별 의미 없는 합병을 하기도.
  • MYMLB : 폐쇄. 1990년대말 박찬호의 다저스 시절에 활성화됐던 사이트. MLB 굿즈를 공식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초 닷컴 열풍으로 타 회사에 흡수합병이 되어 잠시 사이트를 닫았다 후에 MLB 굿즈 전문 판매 사이트로 재오픈됐다. 그러나 배송지연 문제라든가 무성의한 고객 대응 등으로 업계에서 꽤 구설에 오르다 결국 폐쇄가 됐다.
  1. 중남미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는 Las Grandes Ligas라 부르고, 일본에서는 이를 직역해서 大リーグ(다이리그)라고 부르기도 한다.
  2. 그래서 미국과 캐나다 팀이 경기를 할 때에는 경기 시작 전에 미국과 캐나다의 국가를 모두 연주한다. 물론 캐나다 팀이 둘 있었던 시절 캐나다 팀끼리 경기를 하게 되면 경기 시작 전에 캐나다 국가만을 연주했다.
  3.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국내에서도 NHL을 '미국 아이스하키 리그' 보다는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라고 부르는 편.
  4. 미국 땅넓이를 생각해보자.
  5. 물론 먼저 나선 것은 아니고 당시 메이저리그 소속 야구팀이 거의 없었던 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새로운 제3의 야구 리그가 창설할 조짐이 있자 그것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었다.
  6.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포스트시즌 진출 여부를 가릴 필요가 있을 때는 163번째 경기를 시행하며(이른바 원게임 플레이오프. 둘다 탈락하는 경우는 상대전적으로 순위를 정한다.), 취소되고 재편성되지 못한 경기가 순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는 해당 경기를 치르지 않고 시즌을 마감한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시즌을 마감하는게 아니라 최소한 160경기는 치르고 시즌을 마감한다.
  7. 다만 현재 NFL이 미식축구의 글로벌화 차원에서 정규시즌의 해외경기격인 NFL International Week를 신설,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개최한다. 아울러 해외경기를 확장 계획 중에 있다. 자세한 건 NFLNFL 인터내셔널 시리즈 항목 참조.
  8. 특히 기록과 분석을 계량적인 측면에서 집대성시킨 것이 야구에서의 세이버메트릭스다.
  9.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이 반드시 성적으로 직결되지 않는 야구의 특성과 마이너리그에서 길고 고달픈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스템 탓에 야구는 유망주의 실패율이 유독 높은 편이다.
  10. 여기서 미국을 유럽 대륙으로, 야구를 축구로, 중남미 유망주를 아프리카 출신 유망주로 치환하면 유럽에서 일어나는 사회문제와 동일해진다. 즉, 아프리카 출신 축구 유망주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갱이나 도둑으로 전락하여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것과 유사하다는 얘기.
  11. 이와 관련해서 2012년에 KBS 다큐 '세계는 지금'에서도 한 번 취재한 적 있다.
  12. 대표적으로 리반 에르난데스 & 올란도 에르난데스, 호세 콘트레라스, 아롤디스 채프먼,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야시엘 푸이그 등이 이런 과정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다만 쿠바 아마추어 리그에서의 경력조차 없이 어린 나이에 망명한 선수들은 대개 학교 교육을 병행하기 위해 미국 외의 국가보다는 미국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다. 호세 페르난데스가 그 예.
  13. 과거 플로리다 말린스, LA 다저스에서 뛴 찰스 존슨을 사실상 마지막 흑인 주전 포수로 보고 있다.
  14. 다른 포지션에 비해 요구되는 기술이 적은 편이라 흑인선수 중에 늦은 나이에 야구를 접해 메이저리거까지 되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캔자스시티 로열스로렌조 케인이 그 예.
  15. 국내 방송사에서 하루만 등록돼도 연금이 나온다고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바람에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1일 등록되면 나오는 것은 연금이 아닌 헬스 케어이다. 일종의 의료보험 개념. 다만 공공 의료보험이 취약하고 의료요금이 무시무시한 미국에서는 이것도 꽤나 중요한 혜택이다. 미국의 일반 직장인들은 실직하면 직장 의료보험을 잃고 의료비 폭탄의 위험에 노출되는 반면 메이저리그에 단 하루라도 등록됐던 선수는 '평생' 헬스케어의 혜택을 받는다.
  16. 하지만 이 인간이 부러워하는 건 적반하장이다. 연봉이 좀 모자란다고 투덜거릴 뿐이지 광고 덕분에 실수입은 훨씬 위다. 그냥 NBA의 샐러리캡이 미워요 징징징일 뿐이다.
  17. 게다가 이게 오히려 축구가 따라잡은 것이다. 10년 전 박찬호 선수의 연봉은 탑클래스 축구 선수 몇 명을 더해야 했다. 다만 최상위 리그의 축구선수들은 세계적인 인지도에서 MLB선수들보다 크게 앞서기 때문에 광고와 홍보모델 등으로 부가수입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부분은 확실한 정보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FA 계약 금액을 전부 공시하는 미국의 메이저리그와 다르게 해외축구의 경우 모든 계약 조건을 비공개에 붙이기 때문. 때문에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축구선수들의 연봉이나 주급은 전부 추정치에 불과하며, 언론사마다 추정치도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연봉이 얼마인지는 알길이 없다. 애초에 메이저리그와 다르게 해외축구 클럽팀은 연봉이 아닌 주급으로 계산한다.
  18. 흔히 눈물에 젖은 햄버거라고 통칭된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미치고 메이저에선 죽을 쑤는 AAAA리거들이 아시아로 용병을 오는 이유도 바로 그 것.
  19. 와일드카드를 획득한 두 팀은 단판승부전으로 경기를 치르며 승자가 다음 단계인 5전 3선승제인 디비전 시리즈에 오른다.
  20. '20개팀 중 2개팀만' 월드시리즈에 나가던 시절에는 각 리그에서 1위 가능성이 없어진 팀과 그 팬들은 일찌감치 시즌을 포기하거나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각 지구 2위까지 와일드카드를 얻는 등 '30개팀 중 10개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지금은 전반기를 5할 위아래로 마감한 팀이라도 끝까지 희망을 갖고 순위다툼을 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가 트레이드 마감 시한일 전에 일어나던 트레이드 규모가 점점 커져가고 있는 추세다.
  21. 그 외에도 플로리다와 애리조나에서 진행되는 스프링 트레이닝 리그와 시범경기에서는 소속 리그에 관계없이 같은 지역으로 전지훈련 온 팀들끼리 몇차례씩 붙는다. 하지만 이쪽은 말그대로 연습경기.
  22. 메이저리그는 워낙 역사가 길기도 하고 성적이 안좋을 때는 대놓고 주축선수를 팔아 유망주를 사오는 리빌딩을 하기 때문에 강팀일 때와 약팀일 때를 반복한다. 필리스의 경우 200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이 했으나(강팀 작성 시점) 2010년대 초반 기준으로 리빌딩 중으로 리그 최하위팀이다.
  23. 항목 작성 시점에선 약팀으로 표현했으나 2015년 기준으로 들이 넘치는 팀으로 작성자의 의도와 반대 의미로 상대도 안된다!!
  24. 화이트삭스는 양키스와 함께 인터리그 최고 승률을 자랑하 팀이다. 이 각주의 작성 시점에선 화이트삭스가 잘 나갔으나 지금은 크리스 세일 빼고는...
  25. 2010년대 초중반 기준으로 그동안의 흑역사를 딛고 강팀이 되었다.
  26. 다만 이런 불합리성을 일부 개선할 예정이라 한다. 6경기씩 치르는 주요 라이벌리 매치를 3경기로 축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개선해나가고 있다.
  27. 총 경기수는 162게임으로 동일했으나 팀마다 일정상의 차이가 많았다.
  28. 일정하지 않고 때때로 변화함. 자세한 설명은 인터리그 항목 참조
  29. 2013~2014년 시즌에는 4경기가 배정되었고 2015년 시즌에는 다시 6경기가 배정되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인터리그 항목 참조.
  30. 켄터키 주지사 및 상원위원.
  31. 1950년대 말에 과거 메이저리그 팀이 있던 도시와 서부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제3의 야구리그인 '콘티넨탈 리그(Continental League)'의 출범을 저지하는 대신 신생팀들이 창단하도록 기틀을 마련했다. 프릭이 재직하던 시절에 무려 4팀의 신생팀과 4개의 연고이전팀이 승인됐다.
  32. 여담으로 에커트를 커미셔너로 추천한 이가 석기시대 매니아커티스 르메이였다(...).
  33. 구단과 연고지 지방정부와의 구장 장기임대 계약 등의 비지니스 모델이 이 시절부터 시작됐다.
  34. 선수에게 트레이드 거부권을 부여하지 않는 점 때문에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커트 플러드의 송사가 있었으며, 훗날 FA 제도가 탄생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35. 위버로스는 1984 LA 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미국올림픽위원회의 위원장으로도 오랫동안 있었다.
  36. 예일 대학교 총장이기도 했다.
  37. 애연가를 넘어서 헤비 스모커라 결국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임기중 사망으로는 케네소 랜디스 이후 두번째.
  38. 현재 양대리그 각각 15개 팀이 구성된 상황에서 시즌 중 인터리그를 수시로 벌이고 있다. 약간 절름발이로 리그가 진행되는 셈. 그래서 신임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2개의 신생팀을 더 만들고 싶어하는데, 몬트리올이 맨프레드 커미셔너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39. 토론토 시절부터 약을 했다는게 지배적. 즉 레드삭스에서 받은 3번, 브라이언 맥나미와 접촉하면서 시작된 약물복용 이전의 토론토 블루제이스 첫 해을 제외한 1번(블루제이스 두번째 해에 브라이언 맥나미가 토론토 트레이너로 오면서 약물 복용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보스턴을 떠나 토론토로 가자마자 부활했다는 타이밍이 워낙 절묘하기 때문에 첫해부터 약을 했을 것이라는 말도 그럴듯하다)을 제외한 3번의 사이영상은 약빨이라는 것...
  40. 88 서울 올림픽에서 벤 존슨의 금메달이 박탈된건 유명하다.
  41. 매니 라미레즈의 경우 09시즌 도중 배란억제제의 복용이 걸리면서 50경기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사실상 이 복용으로 인해 매니는 약을 했다는게 99.999% 드러나 버린 셈이다. 여기에 확인사살로 11시즌 스프링 트레이닝 당시 또 다시 양성 반응이 밝혀지면서 완전히 흑역사로 사라졌다.
  42. 약물 복용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투표 당시 약물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다는 이유로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헌액된 선수가 적지 않은데다, 약물 혐의자들에 대해서 별표를 붙이거나 하는 것도 약물이 걸리지 않았다고 약물을 안한 것은 아니라는 반박이 가능하기에 문제. 그렇다고 약물 혐의자들의 기록을 삭제하자니 약물 혐의자들을 상대한 선수들의 기록에도 구멍이 뚫리는, 사실상 MLB의 역사를 뒤흔드는 꼴이 된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현재의 상태마냥 아무 조치 없이 냅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오지만 그에 대한 여론은 영 좋지 않다.
  43. 중요한 건 금지 약물 복용은 스포츠 정신을 더럽히고 모독하는 것이다. 또한 응원한 팬들을 기만하고 모독한 짓인데 그것을 어쨌든 즐거움과 감동을 주지 않았냐는 생각을 가지는 건 매우 위험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약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실력과 철저한 노력으로 깨끗하게 활약한 선수들을 엿 먹이는 것이기도 하다. 약을 안 하면 바보가 되는 거라는 인식이 심어져 약물로 쌓아가는 가장 권위있고 위대한 꿈의 야구무대라는 명성에 더욱 돌이키지 못할 먹칠을 할 수 있다.
  44. 오죽하면 일부 팬들은 야구 못하는 선수를 볼 때면 제발 약 좀 빨아라. 걸리지만 마라. 혹은 제발 걸려줘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도 많은 놈들이 몰래몰래 빨아대니 형평성 때문에라도 누구만 찝어서 까기도 뭐하다는 말.
  45. 그래서인지 박찬호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야구한다며 배신자에 매국노 취급하며 테러를 가했던 사고도 있었다.
  46. 실제 박병호를 보러왔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가운데 박병호외에 김현수를 스카우트 가능성에 염두를 두고 주목 중이다.
  47. 다만 이들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을 듯하다. 이미 한 번 도전 한 경력이 있고 게다가 그때와 별다른 변화를 보인 모습이 보여지지 않았기에 그다지 관심을 보일 구단은 많지 않을 것 같다.
  48. 또한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당장 류현진은 2년만 하고 결국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반면, 추신수는 부상으로 주춤할때가 있기는 해도 건강하기만 하다면 주전 멤버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타자들은 본인이 진짜 관리 못해서 심한 부상이라도 당하지 않는 한 은퇴할 때까지 뛸 수 있기에 나이가 좀 들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투수보다 타자들이 성적 지속성이 높은 것도 문제. 박병호에게 거액의 포스팅비를 책정한 것이나 강정호가 메이저리그에 가자마자 바로 주전이 된 것은 야수였고,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손아섭, 김현수도 강정호나 박병호만큼은 아니지만 그 점은 동일하다. 이대호 역시 나이는 많지만 꾸준한 활약상을 보여줬기에 메이저리그 입장에서는 메리트가 어느 정도는 있다.
  49. 손아섭이나 황재균은 메이저리그에서 메리트를 느낄 정도의 등급의 선수라고 보기는 힘들다. 당장 강정호는 유격수에다 40+넘는 홈런을 쳤다는 점이 메리트였기 때문에 타구단이 영입을 노렸지만 손아섭은 호타준족이긴 해도 그 정도급의 선수는 미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수급이 가능하고 황재균은 홈런타자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편이다.
  50. 사실 공식사이트가 출범하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구단 웹페이지의 통일된 형식이 없이 운영됐다. 그러다 인터넷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공동운영 공식 웹사이트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51. 모자는 뉴에라.
  52. NFL은 나이키, NHL은 리복, NBA는 아디다스가 리그 공식 용품 협찬사이다. 다만 선수 개개인의 장비에 대해서는 별 간섭을 하지 않고 있다. 어디까지나 유니폼에 한정돼 있을 뿐이다.
  53. 대표적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모자. 인디언 그림이라는 특이한 모습 탓에 이런 용도로 쓰였으나 추신수가 뜨고 난 다음부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54. 대체로 가장 유행하는 모자는 역시 상술한 양키스 모자이며, 그 외에 보스턴 레드삭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시카고 화이트삭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모자 등이 있다. 박찬호, 류현진으로 인해 인기를 끌 것 같다고 생각되게 마련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모자는 선수들이 쓰면 멋있지만 그 선명한 파란색이 일반인과는 좀 맞지 않고, 박찬호가 뛰던 1990년대 국내에 하도 뿌려저서 인기가 없다. 대신 다저스 캡로고는 그대로 살리면서 다른 색깔을 쓴 모자들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카더라.
  55. 하지만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같은 모자 쓰고 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한국서 인기가 없다.
  56. 일본 전국시대 모 무장의 이름을 필명으로 쓰기도 함. 근년이후 국까천국인 역갤에서 상상도 할수 없겠지만 당시 역갤에서 환빠일빠는 출입금지 대상이었을정도로 개념갤이었다.
  57. 일빠 혐의 말고도 학력위조가 들통났다
  58. 한국 메이저리그에서 최대 화제였던 다저스의 포스트 시즌 글이 딱 1개다. 애초에 메이저리그와 한국 야구의 구별도 없다. 2013년 현재는 차오포비아 사이트 비슷해진 상황. 사실 본가보다는 차오포비아를 주제로 한 파생사이트가 되려 더 흥하는 판국이니...
  59. 2008년 윤길현 욕설 사건 때 운영자가 일방적으로 KIA 타이거즈 팬 편을 들어주면서 SK 와이번스 팬들을 떠나게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걸핏하면 게시판 오류로 글쓰는 것은 물론 글보는 것조차 어려웠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계속되는 유저들의 항의에 마침내 서버 증축과 함께 게시판을 리뉴얼하게 되었는데, 한국야구만 다루던 한국야구타운을 기존의 일본야구타운과 같이 묶어 'KPB&NPB 타운'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중 소위 이치로 사건이라 불리는 일이 결정적이었다. 리뉴얼된 불펜 게시판 상위에 운영자가 '세월이 변하지 않는 건 이치로의 3할...팀 던컨의 20-20...(후략)'이라는 문구를 남겨놨다. 엠엘비파크라는 사이트 명칭이 박찬호 때문에 생겼음에도 박찬호를 제쳐 놓고 이치로를 찬양하는 문구를 넣은 것. 또한 당시 1회 WBC 이후 이치로에 대한 여론이 한창 안 좋을 때였기에 굳이 이치로의 3할을 넣어야 했는지를 두고 유저들이 항의했다. 이에 운영자는 아무런 해명 없이 시간만 질질 끌다가 박찬호의 열정이란 문구를 제일 앞에 추가해 넣고 이치로의 3할을 가장 뒤로 옮겨 유저들의 반발을 무마하려 했다.
  60. 원래는 유저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져 운영되었지만 2014년부터는 경향신문 산하의 스포츠 경향에서 운영 중. 원래 엠엘비파크에서 따로 나간 사이트다 보니, 엠엘비게시판-한국야구게시판-불펜이라는 게시판 이름이 완벽한 Ctrl+C, Ctrl+V를 보여주고 있다. 게시판 관리자의 노력도 있어서 사이트가 살아서 굴러가고는 있으나, 인지도 측면에서는 여러모로 좌절스러운 수준. 딱, 네이버와 다음 혹은 네이트 정도의 위치라고 보면 된다. 항목 개설도 없고, 언급 자체도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