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요소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문서에 쓰여진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마십시오. 편집할 시에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신중히 검토한 뒤 작성하십시오. 또한 문서의 사실에 관한 내용을 수정할 때에는 신뢰가 가능한 출처를 기입하시거나, 토론 과정을 거치신 뒤 하시고,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넣지 마십시오.
이 틀을 적용할 경우, 문서 최하단에7성사 | ||||||
세례성사 | 성체성사 | 견진성사 | 고해성사 | 병자성사 | 성품성사 | 혼인성사 |
병이나 노화로 고통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베풂으로써, 온 교회는 병자들을 수난하시고 현양되신 주님께 맡겨 드림으로써, 그들의 병고를 덜어 주어 구원하시도록 청하고 병자들도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자유로이 결합시켜 하느님 백성의 선익(善益)에 기여하도록 권하는 성사다.
예전에는 신자가 죽기 전에 한 번 주는 종부성사란 명칭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죽음을 예고하는 행위'처럼 느껴져서 신자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무위키식으로 얘기하자면 신부님이 종부성사 주러 왔다고 하면 너는 이미 죽어있다처럼 들리게 되어버리는 부작용이 생기고 [1] 또한 가톨릭 교리에서 죄를 용서받는 효력이 있는 성사는 고해성사와 세례성사뿐 임에도 불구하고, 종부성사가 마치 고해성사로도 다 용서받지 못한 죄를 죽음을 앞두고 다 씻어주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아무리 냉담자라도 평생에 3번은 사제를 만난다는 말이 있는데, 첫째는 태어나서 유아세례를 받을 때고, 둘째는 혼인성사 받을 때고, 마지막으로 죽음 문턱에서 종부성사를 받을 때라고 한다. 그만큼 죽음 직전의 종부성사는 당연한것이고 못 받고 죽으면 불행한 것으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이 성사의 본래 의미와 비교하면 옳지 않다는 판단 아래, 다시 초세기처럼 병자성사란 이름으로 바꾸고, 꼭 죽을 위기가 아니더라도 아파서 특별히 은총을 구하고 싶은 신자들이라면 받을 수 있는 성사로 복구했다. 그래서 와병이 오래된 사람들은 몇 번씩이나 병자성사를 받기도 한다. 신부님이 왔다 갔다…
요약하자면 원래 초기 교회 당시부터 존재했던 것은 병자성사 쪽이지만, 10세기 경에 종부성사로 바뀌었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다시 병자성사로 돌아왔다.
8세기까지는 주교가 병자성사용으로 축성한 기름을 평신도들이 집에 가지고 있다가, 가족이나 친지들이 아프면 상비약처럼 쓰기도 했다. 또한 악마에 씌었다고 생각할 때에도 사용했는데, 이는 악마 들림마저도 넒은 의미에서 '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사제만이 베푸는 성사로 유보되었다.
집에 신자 중에 앓는 이가 생기거나 갑자기 입원하는 이가 생기면, 먼저 신부님에게 전화하여 병자성사를 요청한다. 신부님이 오시는 동안 작은 상 하나를 준비해, 흰 보자기나 천이 있으면 상을 덮는다. 그리고 십자고상을 놓고 촛불을 켜놓는다. 또한, 신자가 성체를 영할 때 목구멍에 잘 못 넘길 경우에 대비해서 물과 숟가락을 준비하도록 하자. 신부님이 도착하시면 먼저 병자의 고해성사를 듣는다. 고백을 듣고 난 후 병자성사가 시작되는데, 병자성사는 환자의 이마와 두 손바닥에 병자성유를 발라주는 예식이 핵심이다. 병자성유는 그리스도의 은총이 환자에게 내리도록 기원하는 표시다. 기름을 바르고 나면 환자에게 성체를 영해 준다. 특히 임종하는 이에게 성체를 영해주는 것을 "노자성체"라고 부르는데 황천길로 떠나는 영혼의 노자돈에 비유한 표현이다. 병자성사는 오직 신자들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세례받지 못한 이가 위독할 경우 약식으로 서둘러 세례를 주어야 한다. 이를 "대세"라고 한다. 혹시 대세를 주는 요령을 잘 모르겠으면 빨리 본당 사무실로 연락해 대세를 청하여야 한다.
오래 앓고 있는 신자가 있는 가정은 매월 첫 금요일에 있는 정기적 환자 방문을 본당에 신청하는 것이 좋다. 이를 봉성체라고 하는데 본당 신부님은 1달에 1번씩 앓고 있는 신자들을 방문하여 성체를 영해 주고 있다.
정교회에서는 병자성사를 '성유성사'라고 부른다.[2] 이 성사를 줄 때엔 원칙적으로 사제 7명이 모여서 거행하도록 되어 있다. 촛대 7개에 불을 밝히고 복음서를 7번 읽는 것이 정교회 성유성사의 특징인데, 사제 7명이 모이는 것은 성유성사가 가지는 공동체성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웬만큼 큰 교구가 아닌 이상 7명이 다 모이기 힘드므로, 사제 1명이서도 집전이 가능하나, 가급적이면 복음서를 7번을 전부 읽을 것을 권하며,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것이 힘들 경우에는 3번만 읽고 성유축성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가톨릭 병자성사와 비교하면 크고 장엄하지만, 그만큼 번거롭다.
한편 이 성유성사는 단순히 병자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이 정교회에선 '성유성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이다. 이는, 정교회는 '병자'의 범주를 육신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의 질병, 죄를 안고 있는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 때문에 부활절 전 성 대 수요일에는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유성사가 있으며, 모든 신자들은 죄의 용서와 육신과 영혼의 치유를 기원하는 이 성유성사에 참석하는 것을 권장받고 있다.
성유성사에 대한 해설과 진행을 보여주며, 병원에서 약식으로 진행되는 성유성사도 보여주고 있다.
파일:TeYePRT.jpg
전쟁 때 군종 신부들의 주 업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신부들은 신자(즉, 장병들)한테 성사가 필요하다면 그곳이 총포탄의 헬게이트라도 달려가야 했다.[3]
7성사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한 성사가 병자성사이다. 다른 성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중요한 신학적 문제, 혹은 교회 정체성 문제가 걸려 있지만, 병자성사만은 별로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남아 있는 옛 기록이 적었고, 따라서 7성사 중 역사적 변천과정을 확인하기가 가장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