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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성사 | 성체성사 | 견진성사 | 고해성사 | 병자성사 | 성품성사 | 혼인성사 |
1 개요
가톨릭의 세례성사 | 정교회의 세례성사 |
가톨릭 및 정교회의 7성사 중 가장 기초적인 성사이며 입문 성사.
말 그대로 세례를 받고 이전의 죄를 용서받는다. 7성사 중에서도 매우 특징적이며, 굳이 가톨릭과 정교회가 아니더라도 이 행사만큼은 그리스도교 계열의 다른 종교에서도 행한다. 가톨릭과 정교회의 경우 세례를 받을 때 세례명을 받는다. 성수(聖水)도 세례성사의 기념이란 의미에서 기원한다.
일반적으로 세례성사를 받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 일반적인 세례 : 6개월 정도 교리교육을 받고 세례 받는 경우. 간혹 성당에 따라 속성반이라고 하여 4개월 정도로 기간이 줄여지기도 하고, 아예 1년이나 질질 끄는 경우도 있다. 의외로 중도탈락률이 높아서, 보통 70~80% 정도만 세례를 받게 된다.
- 유아세례 :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장 간편하지만 나중엔 빼도박도 못하게 된다.[1] 갓난아기에게 세례를 주면 유아세례가 된다. 권장사항. 유아세례를 받은 아기들은 성장하여 초등학생 쯤 되었을 때 교리를 배워 첫 영성체를 한다.[2]
- 대세 : 위독 환자에게 급히 주는 세례이며, 가톨릭 신자라면 아무나 대세를 집전할 수 있다. 세례 받는 사람이 의식 없는 상태라도 대충 앞뒤 상황 판단하여 세례를 줄 수 있고, 대세를 받은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6개월 교리교육 받고 세례 받은 사람과 동일하게 신자가 된다. 물론 대세를 받았는데 죽지 않고 병세가 호전되면, 성당에 나와서 부족한 전례적 절차도 마쳐야 하고 교리도 들어야 한다. 심지어 이론적으로는 신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남에게 세례를 줄 수 있다(...).
- 가톨릭에서는 비록 급박한 사정이 닥쳐 대세를 주어야 하더라도, 세례 받는 사람에게 다음의 사항을 숙지시켜야 한다.
- 천주존재(天主存在): 하느님은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항상 계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분이시라는 것.
-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이신 하느님은 나눌 수는 없지만 성부 성자 성령 3위를 포함하여 계신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 이 도리는 하느님께서 계시로써 가르쳐 주신 것이므로 그대로 믿어야 한다.
- 강생구속(降生救贖):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습을 취하시어 이 세상에 오시어 가르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상에서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
- 상선벌악(賞善罰惡): 사람에게는 불사불멸의 영혼이 있어, 이 세상에게 행한 행실대로 영원한 상을 받거나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것.
가톨릭의 경우 다른 교파에서 개종할 적에 기존에 세례받은 것을 인정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는데, 보통은 인정해 주는 것이 맞다. 원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성공회, 정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교단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세례성사 때 제대로 했는지 증명할 방법이 없고, 교단에 따라서 대충 세례를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 가을 주교회의를 거치면서 개신교 세례 역시 인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단, 세례성사의 가장 필수요소가 '성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받는 것이니, '성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받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증거자료(세례증서, 사진 등)와 함께, 예비신자처럼 일정한 교리교육 기간을 거치면 인정하는 것으로 최종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지금도 신부나 평신도들이나 '웬만하면 저희 천주교 정식 영세로 다시 받으세요'라고 강권하는 분위기다.[3] 어쨌든 교리교육은 받아야 해요, 여러분
가끔 성인이 된 후 세례를 받는 예비신자들 중 "정말 머리에 물을 촤르륵 쏟아붓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아니고, 이마를 물로 살짝 씻어낸 후 성유를 바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정교회나 침례교 분파에서는 얄짤없이 몸 전체를 물 속에 꼬르륵 담갔다가 나와야 한다. 이 때문에 성당 한 구석에 사람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세례조가 있으며, 물에 3번 완전히 잠겼다 나왔다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동방교회이면서 서방교회의 전통을 많이 받아들인 교회 문화 때문인지, 세례성사도 동방교회치고는 천주교처럼 매우 간소화되었다. 그런데, 여기는 물을 최소한 붓기라도 하는 천주교와 다르게 더욱 간소화(?)되어, 사제가 세례 받을 사람의 손을 3번 세례조에 넣었다가 담갔다가 한 뒤 세수를 한 번 시켜준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세례조는 그래서 세례조라기보다는 벽에 딱 달라붙은 성수대 같이 생겼다.
예비신자들은 '세례식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요?' 라는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남성에게는 정장을, 여성에게는 한복 또는 흰 옷을 권한다. 정 옷을 구할 수 없을 때는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색의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오면 된다. 학생의 경우 교복이 무난하다.
한국 천주교에서 가장 세례를 쉽게 받는 방법은 남자 한정으로 천주교 군종교구에서 세례를 받는 것이다(...). 특히 신병교육시설의 세례는 인스턴트급 세례인데, 6개월 동안 받아야 할 교리교육을 1~2시간 속성으로 받고 사실상 면제 세례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초코파이를 받는다. 공군 교육사령부 기본군사훈련단은 안 받는다 후반기교육에서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2~3주간 교리를 하고 세례를 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쪽도 도찐개찐이다. 공군교육사령부 성당과 해군교육사령부 성당의 경우 명함 사이즈의 세례성사 증명서를 발급하기도 하는데 교회법상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세례를 받았으니 교적 생성에 필요한 정보를 잊지 말고 사회에서도 이어서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 통합양업시스템이 구축된 다음에는, 천주교 군종교구에서 세례신청서에 적어놨던 주소에 속하는 교구 성당으로 전역일에 맞춰서 알아서 개인정보를 보내준다. 사실 집 가까운 아무 성당이나 가도 이름과 생년월일만 있으면 교적을 생성하고 신앙생활을 이어서 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천주교 제주교구에서는 주교의 허락을 받고 시험적으로 침례를 거행한 적이 있었다. 실제모습.
정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침례(浸禮, 온 몸이 물에 잠기게 하는 예식)로 거행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 번 온몸이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3일만에 부활한 것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다. 가톨릭의 세례성사와 또 다른 차이점은 세례성사에 이어 곧바로 견진성사를 받는다는 점이다.
2 유아세례는 필요한가?
가톨릭의 유아세례성사 | 정교회의 유아세례성사 |
만일 누가 어린이들은 신앙고백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은 후 신자들의 숫자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고, 그러므로 분별력이 생기는 아이에 도달하면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어린이들에게는 본인의 신앙 없이 교회의 신앙만으로 세례를 주는 것 보다 세례를 주지 않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 트리엔트 공의회, 제7차 회기 제1교령 <성사> 中 |
종파에 따라 다르나, 유아에게 세례를 해야 하냐는 점에서 다투는 경우도 있다. 왜냐면 유아라도 세례를 받을 경우 혹시 그 아이가 크기 전에 죽어버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나, 받지 않은 채로 죽어버리면 애매하기 때문. 머리 아프기 짝이 없는 신학적 가설 림보도 다 이 문제 때문에 생겼다.
단, 아이에게 동의를 받고 성사를 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이 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자칫 아이에게 종교를 강요하는 형태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황령에 거주하던 유대인인 에드가르도 모르타라는 1858년 6살 때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그의 유대인 부모와 강제로 격리당해 바티칸에서 사제 교육을 받았다. 그가 갓난아기 시절 그를 돌보던 보모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았다는 이유뿐이었다. 그나마 보모 역시 아기인 모르타라를 반드시 천주교 신자로 만들겠다는 심각한 입장이 아니었고, 단지 나이 어린 보모가 '세례를 받지 않은 아기는 천국에 못 간다'는 말을 믿고 순진한 마음에 세례 흉내를 낸 것 뿐이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이와 같이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교황청 측에게 격리당한 유대인 자녀들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9세는 비가톨릭 세력에게 강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재세례파(아나뱁티즘)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나온 종파로, 이들은 유아세례는 자신의 의지로 받은 세례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받는 세례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재(再)세례를 베풀었다. 가톨릭 외에도 루터교회나 칼뱅파 등의 주류 개신교 파들은 재세례파 신도들을 탄압했다. 루터파나 칼뱅파처럼 지역 도시나 군주에게 보호받지 못 했기 때문에 개신교중에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가톨릭이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으로 재세례파들을 탄압할때 루터파와 칼뱅파도 재세례파를 탄압했기 때문.[4]
견진성사가 이런 문제를 보완하려고 존재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으나, 견진성사는 5세기까지는 세례와 세트로 묶여서 하나의 예절로 집전되었다. 서방 교회에서 이걸 둘로 나눈 것. 원래 모든 성사는 주교가 거행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세례 또한 신부가 줄 수 있게 하되, 마무리 의식은 기름 바르기, 즉 견진성사만큼은 주교가 주게 하고자 이를 분리했다. 반면 동방교회에서는 신부가 견진성사까지 다 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에서도 어른이 세례를 받을 경우에는 신부가 견진성사까지 함께 줄 수 있게 하였는데, 이는 본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가 하나의 예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 천주교에서는 어른이 세례 받을 경우에도 신부가 견진성사까지 하지 못하도록 했다.
어쨌든, 가톨릭의 현재 방침은 다음과 같다.
1. 유아 세례는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다.
2. (림보 떡밥의 경우) "애초에 애매모호한 상태에 빠뜨리지 말고 가능한 한 태어나자마자 유아 세례를 줘라."
3. 지성을 갖춘 후 자녀가 성당에 오기 싫어한다면 안 오면 그만이다.
특히 1번과 2번의 경우,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은 '독감 예방 주사' 등에 비유하여 설명하곤 한다. 즉 예방 주사를 유아에게 동의하고 접종하지는 않듯이, 유아 세례도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 사실 도킨스가 소개한 사례의 경우 이미 유아 세례라기 보다는, 세례를 이유로 부모와 격리시킨 당시의 주변 환경이 문제이기도 하고(...) 다행히 가톨릭 교회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 성당에 안 오겠다고 할 때 붙잡지는 않고 신자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아무튼 이러한 가르침들에 따라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태어난 지 불과 서너 시간 만에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마르틴 루터는 태어난 다음날 세례를 받았다.
결국 가톨릭과 그 외부의 유아 세례에 대한 시각 차이는, 세례성사를 단순한 입교 의식으로 보느냐 혹은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선물로 준 성사로 보느냐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960년대 가톨릭 전례개혁 당시, 이러한 유아세례에 관한 신학적 문제는 세례를 주는 양식까지도 바꾸었다. 가톨릭에서는 이전까지는 아기도 '작은 어른'처럼 간주해서 어른과 똑같이 세례를 주었다. 여기서는 신부가 세례받을 사람에게 신앙에 동의하는지 묻고 답하는 절차가 있는데, 아기가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으므로 대부/대모가 될 사람이 아기를 대리하여 대답하였다.
20세기의 유명한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는 가톨릭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다만 개신교계를 항하여 유아세례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성사와 전례를 개신교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톨릭 내의 신학자들은 칼 바르트가 제기한 문제를 훨씬 중대하게 의식하였다. 이런 신학적 논의가 전례개혁에 반영된 결과, 가톨릭에서는 아기에게 신앙의 동의 여부를 묻는 절차를 생략하고, 대신 아기를 키울 양육자의 책임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렇게 어른 세례와 유아 세례의 절차가 달라짐은 교회 역사에 전례가 없는 대신 더 합리적이 되었다.
정작 사회에서는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눈에 확 띄게 믿음이 있는것도 아니다. 일부는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자가 된 사람도 있다. 또한 유아세례를 받고 성인될 때까지 교회를 다닌 사람에게 성경이나 교리 내용을 물어보면 대부분이 잘 모른다고 하거나 재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문제다. 유아세례만 받았지 무교인 사람들과 성경이나 교리에 대해서는 지식 차이가 별반 다르지 않기에,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믿음이 크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선교 한 명 하기도 힘든데 유아세례라고 다를 게 없다.) 물론 믿음과는 별개로,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하여 전례나 기도 등에 대한 생활 지식이 몸에 배인 경우는 은근히 있다. 이를테면 아무리 봐도 그냥 대인관계 때문에 성당에 오는 것 같은데, 묵주기도는 물론이요 성무일도까지 무의식중에 익숙해 한다던가(...).
여담으로 세례를 받는 유아 입장에서는 상당히 무서울 듯하다. 세례 받으려 많은 사람이 모인 낯선 상황 + 차가운 성수가 닿아서 놀람 + 낯선 인물이 자신을 만지는 상황 등 새카만 옷 입은 아저씨 누구에요 무서워요 실제로 유아에게 세례를 줄 때 실수로 성수가 아기의 콧구멍에 들어가 아기가 울고불고 난리 났던 경우가 잦다(...).
3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세례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자 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았는데, 그가 받은 세례는 다른 신자들의 세례와는 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독특하게 결합되어 있는 특성을 지닌다. 사실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만 의문 중 하나가, "죄 없으신 예수님은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라는 질문이다. 즉 애초에 세례는 원죄와 본죄를 씻고 새롭고 깨끗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성사인데, 어째서 씻을 죄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았냐는 질문이다.
심지어 세례자 요한 역시도,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마태오 복음서 3, 14, 공동번역
신학적으로는 세례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프롤로그라고 설명된다. 당시 히브리 문화권에서 '물'은 죽음을 상징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물속에 잠기었다가 다시 물 위로 떠오르는 예식을 통하여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세례란 '물을 통하여 죄를 씻는 행위'이다. 즉 당시의 요르단 강은, 더 나아가 이후의 신자들이 세례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씻은 물은, 죄가 가득한 일종의 '구정물' 같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구정물에 들어가서 죄인들과 결합했고, 스스로 그 죄를 짊어진체 물 속으로 가라앉았으며(죽었으며) 그 후 물 위로 떠올랐다(부활했다).즉 신자들이 받은 세례는 '죄를 씻는다'가 중점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세례는 '죄를 짊어진다'가 중점이다.
예수는 온 인류의 죄를 당신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그 짐을 날라 요르단 강 속으로 가라앉히셨다. 그분의 첫 공생활은 바로 죄인들과 자리를 함께하시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십자가를 미리 짊어지는 일이었다. 그분은 말하자면 참된 의미의 요나다. 요나는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요나 1, 12) 예수의 세례가 갖는 모든 의미, 곧 '모든 의로움'을 지고 가신다는 의미는 십자가에서 비로소 밝혀진다. 세례는 인류의 죄를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중략)
그분은 하느님과 동등한 분이시기에 세삭의 모든 죄와 허물을 떠맡으실 수 있었으며 낮은 데로 내려가 그것을 남김없이 겪으시며 그 바닥에 넘어져 있는 사람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셨다.베네딕토 16세의 <나자렛 예수> 中
- ↑ 사실 싫으면 성당 안오면 그만이긴 하지만(...).
- ↑ 아기들은 아직 성체를 녹여 삼킬 줄 모르고, 성체성사에 대한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 ↑ 개신교 진중세례에서 도유를 안했다는 것을 문제시하여 정식 영세를 받을 것을 권유하는 신부도 있다.
- ↑ 그나마 루터파 지역과 영국국교회(성공회)지역이 재세례파에 관대했다. 잉글랜드의 경우 처음엔 경고, 2번째 걸릴때 추방 3번째에 사형이었으니, 칼뱅파도 마냥 탄압만 한건 아니었고 츠빙글리시절 스위스 형제단이 분리되 나가기전 츠빙글리는 이들을 계속하여 설득하려 했고, 칼뱅의 아내도 재세례파 교인 과부와 결혼했다. 어쨌거나 교화의 대상으로 본것. 재세례파는 20세기 초반까지 유럽각지에서 탄압받았 북미지역으로 많이 정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