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포지션 야수의 수비 포지션 / 투수의 포지션 | |||
클래식 분류 | 선발 투수 (Starting pitcher, SP) | 중간계투 (Middle relief pitcher, RP) | 마무리 투수 (Closing Pitcher, CP) |
특징별 분류 | 스윙맨 (Swing Man) | 원 포인트 릴리프 (One-point Relief) | 패전처리 투수 (Mop-up Pitcher) |
† KBO 리그에서는 '패전처리 투수'라는 용어 대신 '추격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
1 개요
중간계투+마무리 투수를 합쳐서 부르는 말로 마무리 투수인것 같지만 왠지 6회부터 나오거나, 심지어는 5회 1사나 2사 후에도 나오는 투수를 일컫는 말이다.결국 노예
2 사례
2.1 메이저리그
세이브를 공식적인 기록으로 인정한 것은 1969년이었다. 지금과 같은 1이닝 마무리가 등장한 것은 1988년으로 당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감독이었던 토니 라 루사가 데니스 에커슬리에게 1이닝 마무리를 맡긴 것이 시초였다. 그 이전까지 불펜 투수는 선발 투수가 던지지 못하는 이닝을 다 책임지는 투수라는 인식이 팽배했던지라 선발투수가 조기강판되면 남은 이닝이 얼마가 됐건 닥치는 대로 던졌다. 마무리 투수라고 다를게 없어서 일단 이기고 있다면 7, 8회에 올라오는 일은 당연시되었고 심지어 5, 6회부터 던지는 일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1974년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을 탄 마이크 마셜 같은 투수는 팀 162경기 중 106(…)경기에 출전해 208이닝을 던지고 15승 12패 21세이브를 올렸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투구. 게다가 마셜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스크류볼러였다.
2.2 한국프로야구
1980~1990년대에 잘 던진다 싶은 투수들은 대부분 중무리 경험이 있다. 가끔 송진우나 구대성처럼 선발+중간+마무리까지 다 합친 완전체 투수가 나오기도 하지만, 선발로 주로 뛰는 투수의 경우는 보직 변경이라는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서 중무리라는 이름을 붙이진 않는다.
가장 대표적 중무리는 임창용. 임창용의 별명이 애니콜이었던 이유는 언제라도 승기를 잡거나 위기 상황일 때 명색이 마무리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6회에도 나와서 던져야 했기 때문에 나왔던 별명이었다. 또한 두산의 진필중 역시 전성기 땐 중무리였다.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시즌이었던 2002시즌의 노장진도 전형적 중무리였다.[2]
노장진과 같은 해 현대의 신인 조용준도 중무리 역할을 맡았다. 원래는 베라스라는 용병과 더블스토퍼 체제여서 7회부터 8회 2이닝만 던지고 9회에 마운드를 인계하는 역할이었지만 베라스가 박살난 이후 자연스럽게 9회까지 던졌다. 다른 사례들에 비해 5~10이닝 정도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109이닝을 던지고 만다. 결국 대학시절부터 가해져오던 혹사의 여파에 2002년의 영향까지 받아 인해 다음 시즌에 완전히 퍼져버렸다.
오승환도 2005년 데뷔시절, 위 사례보다는 낫지만 비슷한 역할을 했다. 시즌 초에는 중간계투로 권오준의 앞에서 버텼지만 중반 이후부터 그 구위를 인정받아 마무리로 들어서는데 시즌이 끝나고 보니 61경기 99이닝을 던졌다. 그나마 관리를 해서 이정도를 던진 것이다. 물론 급박한 상황에 등판한 것만은 아니고 우승이 확정된 후에 10승을 만들기 위해 마지막 경기에서 위장선발 라형진이 3이닝을 던지자 4회 계투로 등판해 3이닝을 던지고 승리를 챙기기도 했다.
1990년 중반, LG의 감독이었던 이광환이 선진적으로 선발 투수-중간계투-마무리 투수의 투수 분업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2000년대 중반 선동열, 김경문 등 불펜 야구를 중시하는 감독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중무리 투수 같은 기용은 거의 없어지긴 했다. 대신 중간계투 중에서 노예들이 생겨났을 뿐(…).
2011년 4월 17일에 롯데 자이언츠가 연패를 끊기 위해서 마무리 투수 고원준을 6회 1사부터 등판시키는 파격을 부린탓에 오랫만에 다시 중무리 투수가 회자되었다(…). 사실 그 전에 임태훈이 정말 오랫만에 7회에 올라오는 초강수 경기가 있었지만 고원준의 임팩트에 묻히고 말았다.
2013년에는 한화 이글스의 송창식이 중무리로 활약하였고, 시즌이 진행될수록 점점 지쳐가는 게 눈으로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한화 이글스/2013년 참조.
2014년 한화 이글스의 윤규진이 제대 후 돌아와 중무리로 활약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필승조 안영명. 박정진이 후반기 들어 활약했기에 동점이거나 이기는 상황에 등판하여, 구대성이나 송창식처럼 비인간적인 혹사는 당하지 않았지만, 이 친구도 혹사와 부상으로 신음했던 전력이 있음을 생각하면 분명히 문제가 많다.
2015년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불운의 사나이 심수창이 결국 넥센 히어로즈를 상대로 3이닝을 혼자 틀어막으며 세이브를 기록하는 상황이 나왔다. 답답해서 내가 막는다 그 외 kt wiz의 장시환이나 한화 이글스의 권혁도 중무리로 굴려졌다. 후반기에 들어서는 KIA 타이거즈의 윤석민이 중무리로 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