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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No.45 | |
안영명(安永命 / Young-myung Ahn) | |
생년월일 | 1984년 11월 19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충청남도 천안시 |
출신학교 | 천안남산초 - 천안북중 - 천안북일고[1] - 대전대 - 우송대 대학원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3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한화 이글스) |
소속팀 | 한화 이글스 (2003~2010) KIA 타이거즈 (2010~2011) 한화 이글스 (2011~현재) |
등장곡 | 원타임-니가 날 알어? |
한화 이글스 등번호 38번 | |||||
오창선 | → | 안영명(2003~2008) | → | 김경선(2008~2009)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31번 | |||||
송창식(2004~2008) | → | 안영명(2009~2010) | → | 장성호(2010)[2] 윤경영(2010)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1번 | |||||
장성호(1997~2010) | → | 안영명(2010) | → | 손영민(2011)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11번 | |||||
신주영(2011) | → | 안영명(2011) | → | 김광수(2012~2015)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38번 | |||||
김태완(2013) | → | 안영명(2014) | → | 김성근(2015~ ) | |
한화 이글스 등번호 45번 | |||||
정현석(2013~2014) | → | 안영명(2015~ ) | → | 현역 |
"홈런은 점수를 주는 방식의 하나일 뿐입니다. 맞기 싫어 주자를 쌓아두다가 안타를 맞아도 점수를 주잖아요. 투수는 홈런 맞는다고 해서 야구인생을 패하는 게 아니라 승부를 피할 때, 도망갈 때 야구인생에서 패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승부를 두려워한다면 유니폼을 벗어야죠."ㅡ 이재국의 야구여행 - ‘홈런 공장장’ 안영명의 역습이라는 기사에서 안영명이 했던 말
목차
1 개요
2 아마추어 선수 경력
2001년까지만 해도 눈에 띄지 않았으나 2002년에 이르러 두각을 나타내 한 학년 아래인 김창훈과 북일고 마운드를 책임졌고, 양승학, 나주환과 함께 북일고의 전성기를 이끌어나갔다.
충청도 출신으로 북일고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연고팀 한화의 지명이 당연시되었던 한화의 성골이다.[3][4]
3 프로 선수 경력
2003년 1차 지명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에는 그런대로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이후 어깨 부상 등으로 1군에 진입하지 못하다가 2005시즌 말미부터 1군에 재진입했다. 2006 시즌에는 부상으로 빠진 최영필의 공백을 메우며 전천후로 뛰었고, 이 때 평균 자책점 3점대를 찍으면 처음으로 그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일 중 하나가, 2006년 7월 2일 대전 현대전에서 현대 타자 김동수에게 참교육을 당한 일이다. 그렇긴 한데, 정작 송회장님이 2호기에게 드롭킥을 날린 일이 더 이슈가 되었다.[5]
3.1 2007~2008 시즌
2007년에는 구대성 앞에서 던지는 셋업맨 보직을 받아 140 중후반대의 묵직한 직구를 선보이며 활약했다.
2007시즌 내내 61경기에 등판해서 94이닝, 특히 6월에는 26⅓이닝을 던졌는데, 이는 한화 투수 전체 이닝수에서 3위였다. 중간계투가 류현진과 세드릭을 제외한 팀내 선발투수보다 많이 던진 것. 이는 김인식 특유의 한 놈만 패는 불펜 기용의 병폐 탓으로, 6월 이후 구위가 하락하면서 시즌을 ERA 3.06 1승 1패 5세이브 15홀드로 마감지었다. 이 때 고군분투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당시를 애도하는 뜻으로 '멍멍이'(개처럼 굴렸다는 뜻)라고 부른다.
이듬해진 2008년에도 이 해에도 중간계투로 활약했으나, 혹사의 여파로 직구 스터프를 잃어버리면서 2008년에 ERA 5.31로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여담으로 9월 3일 한화와 두산 베어스가 잠실구장에서 벌인 연장 18회 1박 2일 끝장승부 당시의 패전투수였다. 4⅓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 놓고 18회말 투아웃 이후에 네 타자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했고, 이 밀어내기 한 점이 이 날 양팀 통틀어 유일한 점수였다.
3.2 2009 시즌
처음으로 선발로 전업해 풀타임 선발을 소화하며 11승을 기록, 2000년대 한화 1차 지명 투수 중 조규수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시즌 두 자리 승수를 거둔다.[6]
다만 떨어진 스터프는 어찌할 수 없는지 피홈런 개수는 무려 34개로 김상현과 홈런 경쟁을 하고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 단일시즌 34피홈런은 역대 최고로, 이전 기록은 1999년 해태 곽현희의 31개.
그래도 어쨌든 유원상과 김혁민이 제 역할을 못하던 한화의 2선발로 성장했다. 문제는 국방부 퀘스트.
3.3 2010 시즌
첫 경기는 등판해서 무난하게 던지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두 번째 등판에서는 롯데 장원준과의 매치에서 1회부터 두들겨 맞고 2회에 강습타구까지 맞으면서 강판. 그리고 이날의 경기는...
경기 이후 자신감을 잃은 건지 페이스가 급격히 다운된 건지 다음 등판인 SK전에서도 털린 다음에 결국 2군으로 강판되어 팬들에게 좌절을 줬다.
안영명의 부진은 2010년 한화 마운드의 상태를 잘 보여주었다. 유원상이 정신차리나 싶더니 안영명 안습화. 이건 뭐... 이게 다 2007, 2008년 혹사로 인한 구위하락을 더 이상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란 걸 생각하면 전임 김인식 감독의 책임이 너무나 크다.
이후로는 중간계투로 돌아와서 필승계투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6월 8일, 김경언과 박성호의 트레이드 때 김다원과 함께 쩌리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이때 김경언의 쩌리로 한화로 간 장성호와 배번을 서로 맞바꾸었다.
이적 후 첫 경기인 광주 두산전에서 유재웅만 상대하여 삼진을 잡고 내려온 후 9회말 이용규의 끝내기 안타 덕분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장스나는 삼진을 당했는데... KIA의 안씨들은 하여간 운빨은 끝내준다
6월 16일 장성호와 이적매치를 벌였다. KIA팬들은 홈런 맞으라고 하고 한화팬들은 삼진 잡으라고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 결과는 삼진. 이 때 안영명은 김태완, 최진행, 장성호 3타자 연속 삼진을 잡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한화팬들은 분노했고 KIA팬들의 반응도 별로... 별로 안좋아요.
이강철 코치가 투구폼을 수정한 이후 삼진덕후로 변화한 모습을 보였다. 팀 동료인 손영민, 곽정철의 과부하로 인한 구위 저하 여파를 어느 정도 메웠다. 특히 볼질을 잘 하지 않고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을 잘 꽂아 넣는 모습 때문에 KIA에서도 팬이 꽤나 많이 늘었다. 하지만 잘 던지고 있었음에도 하필이면 팀이 연패에 빠져서 빛을 보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자 맞아나가기 시작해 7월 15일 잠실 LG전에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잉금님에게 쓰리런을 맞으며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기도 했다. 이용규가 홈스틸까지 해줬건만 7월 22일 무등 삼성전에서는 5자책으로 무너졌다. 3년 전만해도 임태훈과 동급이었던 투수였는데 혹사 후유증이 실로 무섭다. 그저 킬인식을 원망할 수 밖에.
휘발유동훈방화범이 돼버린 유동훈을 대신해 KIA의 마무리를 맡았지만 성적은 도찐개찐. 8월 4일에는 1사 만루에서 올라와 5점을 내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7] 8월 6일 130개 던지며 호투한 로페즈 승리를 날려버렸다. 8월 8일 5:1로 지고있는 걸 9회말 타자들이 극적으로 동점으로 만들어 놓으니 11회에 역전시켜 버리며 패전투수가 된다. 그것도 하필 장성호가 홈런친 날에. 분명 포지션은 마무리인데 제대로 마무리한 경기가 없다. 마무리 전업 후 8월 6일까지 방어율이 27.00이다. 결코 2.70이 아니다. 그리고 2세이브할 동안 블론은 3개로 KBO 전체 6위. 망했어요
결정적으로 8월 21일 삼성전에서 타자들이 힘들게 4:4 동점 만들어 놓으니 바로 홈런을 얻어맞으며 팀의 4강에 호흡기를 떼고 만다.
8월 27일 SK와의 경기에서는 ⅓이닝 던져놓고 양아승리를 챙겼다. 운빨이 여전히 있기는 하다.
9월 5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끝내기 투런을 맞으며 또 로페즈의 승리를 날렸다. 9월 17일 역시 또 블론으로 패전.
그리고...
3.4 2011 시즌
3.4.1 친정팀으로의 귀환
2011년 2월 12일 FA 이범호의 보상선수로 8개월간의 KIA 교환학생 생활을 접고 다시 친정팀 한화로 건너갔다.
팬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돌아와서 좋긴 한데... 유망주나 3루수를 데려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가장 큰 문제가 군대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었다.
한화의 승리인지, KIA의 승리인지는 두고봐야 될 부분이긴 하나 한화가 선플로 내야수를 뽑을 것이라 밑밥을 투척했으니, KIA가 보호선수 선정에 있어 내야에 중점을 뒀으리란 추측이 가능하다. 김주형이나 박기남을 언급하는 한화팬이 있었는데, 김주형은 말 그대로 어찌될지 모르는 로또형 유망주였고, 박기남은 만년 백업 경험만 있었기에 주전감을 원하는 한화의 구미에 안 맞는 부분이기는 했다.[8]
투수에 있어서 김희걸 또한 많이 언급되었는데, 안영명과는 다르게 군필이란 메리트가 있긴 하나, 그걸 제외하면 딱히 비교우위라고 보기도 어렵고,[9] 그 놈이 그 놈이라면 천안북일고라는 성골 출신에 한화에 팬도 많고 형도 선수로 있는 안영명이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판단도 선다. 어차피 나이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필 김희걸이나 미필 안영명이나 그게 그거.[10]
안영명이 2012년 시즌 군입대라고 하나, 어차피 한대화도 1년밖에 임기가 안 남았기에... 반대할 명분은 없었으리라 본다.
팬들은 선인 이강철을 만나고 온 KIA유학, KIA체험이래나 뭐래나. 이런 식의 짤방도 등장했다(…). 조범현 KIA 감독도 부상경력에 군미필인 선수를 설마 뽑겠냐며, 보호선수 명단에 제외했다고 하는데 예상을 깨고 한화가 데려갔으니...
하지만 현실적으로 리빌딩하겠다는 팀이 뽑은 게 28살에 내년이면 공익가는 선수를, 그것도 현재 부상으로 스프링캠프 참가조차 못하고 있는 선수를 뽑았으니 한화 프런트가 정말 리빌딩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선수 본인은 새출발의 각오로 한화시절 유니폼, 글러브 등 장비들을 지인들에게 줬는지 야구관련 중고장터에 한화시절 쓴 글러브 등 매물들이 꽤 올라왔었는데 선수 본인도 다시 올 줄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므로 더 안습.
3.4.2 시즌 중
5월 22일 KIA전에 등판하였다. 그동안 미친듯이 구른 부상으로 인해 생긴 문제점들을 고치려는 듯 기존에 스트라이드 폭을 넓게 잡는 투구 폼에서 스트라이드 폭을 극단적으로 적게 잡는 폼으로 변경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투구 폼을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새털직구는 여전했다.
몸 상태도 성치 않았던 모양인지 이 경기만을 등판한뒤 다시 2군으로 퇴갤했으며 이후 2군에서도 소식이 없다.
3.5 군 복무
결국 시즌이 끝난 후에도 감감무소식이었다가 공익근무요원으로 2년간 군복무를 수행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윤규진하고 같은 곳에서 공익근무 복무를 했다고 한다.
3.6 2014 시즌
소집해제로 복귀해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팀 내에선 확실한 선발 한 자리를 맡아주길 바랐다.
2월 24일, KIA 타이거즈와의 연습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 2회에 만루를 채우고 폭투로 1점을 내준 후, 김주형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며 4실점. 2이닝 5실점으로 무너졌다. 홈런 공장장 클래스는 어디 가지 않는다
4월 18일, LG 트윈스 와의 홈 경기에 1군으로 콜업. 패색이 짙은 9회에 실전 감각차 전역 후 첫 등판하였다.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예전과는 달리 볼질이 조금 나오긴 했지만 잘 마무리.
4월 23일, 투구 도중 김재호의 타구에 가슴을 맞아 교체되었다. 정밀 진단 결과 명치뼈가 미세하지만 골절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심장쪽 뼈라 심장에 무리가 갈수있어 곧바로 입원했다. 엔트리에서는 당연히 말소되었고 대신 임기영이 올라왔다.
5월 13일, 팔꿈치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유창식을 대신해서 복귀 후 처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로 등판했으나, 4⅓이닝 4실점을 기록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1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 5이닝 2실점으로 제 몫을 해 줬다. 그리고 팀이 승리했지만 동점 상황에서 내려가 승리를 수확하지 못했다.
5월 2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1회 3실점, 2회 4실점했으나 3~5회는 모두 삼자범퇴로 어찌어찌 막아내면서 팀의 7회 대역전극의 단초를 제공했다. 5이닝 7실점(6자책점) ND. 승리는 임기영이 가져갔다.
6월 6일 대전 삼성전에서 1회초 최형우의 타구에 팔을 맞아 조기 강판당한 선발 유창식을 구원하여 2번째 투수로 등판, 6이닝 동안 5피안타 4볼넷 2K 3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팀이 역전승하여 소집 해제 후 첫 승을 거두었다. 김태균이 연타석 홈런을 쳐서 MVP는 되지 못했지만, 갑작스러운 등판에도 불구하고 호투를 펼쳐 김응용 감독의 칭찬을 받았다.
6월 10일 610 대첩에서 9회말 마무리 투수로 홀연히 등판하여 아웃카운트 2개를 잡으며 길었던 경기를 끝냈다. 이틀 후 선발등판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펜피칭 중이었는데 경기가 막장으로 투수전으로 흘러가다 보니 등판하게 된 것. 상대팀 기아의 이틀 후 선발예정이었던 김진우도 9회초에 등판했듯이 예상치 못하게 불펜소모가 많은 경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변칙운영이다. 그러나 정작 이틀 후 경기에서는 5회에 무너지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쯤부터는 중간계투로 전향하여 붕괴한 한화 불펜진을 메꿔 주었다. 선발로 등판할 때보다 구위도 좋아 보인다는 평. 그러나 문제는 어김없이 감독에 의해서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 올라왔다 하면 2이닝은 기본적으로 던지는데 연투를 밥먹듯이 하니... 다행히 올스타 브레이크가 끼어 있어 휴식을 취했다지만 혹사의 여파는 피할 수가 없었고, 이는 24일 NC 다이노스전에서 1이닝만에 4실점을 내주며 곧바로 드러났다. 그러나 윤규진, 박정진과 함께 필승조를 담당하며 한화에서 믿을 수 있는 불펜이 되고 있다.
8월에도 변함없이 필승조로 노예처럼 등판했다. 윤규진이 어깨 담 증세로 잠시 이탈했고 박정진이 8월 하순부터 혹사의 여파로 부진한 와중에도 6연속 등판을 포함해 13경기에서 18⅓이닝을 소화하며 ERA 3.44로 잘 버텨 주었다. 안영명의 호투에 힘입어 팀은 8월 한 달간 12승을 거두며 안영명의 투혼을 더욱 값지게 하였다.
노예로 구른 여파로 다음 시즌에 그의 얼굴을 1군에서 볼 수 있을가 걱정하는 팬들이 많은데, 9월 1일 현재까지는 괜찮다. 현재까지는. 그 이유는 우천취소, 휴식일, 올스타 브레이크가 절묘하게 맞물리며 연투를 막아줬기 때문. 그렇지만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를 앞두고 마지막 4일 경기 중 3경기에서 등판해서 5⅔이닝 113구(...)를 던졌다. 선발투수도 이 정도 던지면 휴식일을 확실히 지켜줘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불펜투수로서는 혹사의 극단을 보여준 셈. 더 큰 문제는, 불펜에 사람이 없어 이렇게 던진 게 아니라는 것. 불펜에서 박정진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상식적인 경우라면 박정진에게 1~2이닝을 맡겼어야 했다. 남은 정규시즌 12경기 동안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아시안 게임 이후로 한화의 12경기 중 5경기에 출장했는데, 최저이닝 투구가 1⅔이닝이었을 정도로 끝까지 혹사당했다. 특히 팀의 최종전에는 올라오자마자 선발 투수 앤드류 앨버스의 승계주자를 모두 불러들였음에도 마운드에 남아 3이닝 동안 53구를 던졌다.
결국 97⅔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4.52로 시즌을 마감했다. 기록이 일견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으나, 불펜 등판시 성적은 42경기 66⅔이닝 평균자책점 2.98로 리그 수위권의 성적이다. 평균자책점 기록을 경신한 한화 마운드에서 고군분투한 어려운 시즌을 마쳤다. 이제 킬끼리도 떠났으니 편히 쉬렴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등번호를 내주었다.[11] 이에 팬들은 "멍멍아! ㅜㅜ" 혹은 "양심적으로 니 등번호 감독님한테 얌전히 갖다바쳐라"라는 반응으로 나뉘어지고 있다(...). 마무리 캠프에서 일단 임시로 37번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12] 공교롭게도 37번은 그의 형인 안영진이 한화에서 활동했을 때 달았던 번호.
임시로 달았던 이 배번은 이후 45번으로 변경되었고, 37번은 FA로 입단한 배영수가 달게 되었다. 달았다 하면 뺏긴다 더불어 2015년에는 투수조 조장으로 임명되어, FA 영입 투수들과 힘을 합쳐 이글스의 마운드를 높여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3.7 2015 시즌
2009년 이후 6년만에 10승을 달성하다
2011년 류현진 이후로 4년만에 등장한 토종 선발 10승 투수
2015 시즌 한화의 승리 토템(...)[13]
3월 28일 개막전 7회에 구원등판하여 9번타자 유선정 상대로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고 바로 권혁으로 투수 교체되었다. 그리고 권혁은 유한준에게 투런을 허용하여, 평균자책점 무한대를 찍으며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상대 투수 방어율도 무한대로 만들어 버리는 무한준
4월 7~9일 동안 중간계투로 계속 나온 뒤 하루 쉬고 11일 사직 롯데전에 선발등판을 했다. 심지어 9일에는 2⅔이닝을 던졌었는데! 이 때문에 김성근 감독은 혹사 논란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영명은 6이닝 2피안타 3볼넷 1실점(무자책)으로 엄청난 호투를 보여주며 시즌 첫승을 챙겼다. 이후 이태양의 토미 존 수술이 결정되며 선발 투수로 보직이 고정되었다.
4월 17일 대전 NC전에선 몸에 맞는 공을 4번이나 던지며 고전했지만, 5이닝 2실점으로 분투하며 당시 NC의 에이스였던 손민한과의 싸움에서 판정승을 거두었다. 시즌 2승.
4월 24일 대전 SK전은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볼카운트 싸움에서 고전하며 5이닝 동안 108구나 던지는 등 쉽지 않은 경기를 했지만 위기관리 능력을 선보이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특히 한계 투구수에 다다른 상황에서 5회말 2사 만루 상황에 상대 4번 앤드류 브라운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승부가 이날의 백미. 기민한 1루 커버로 김태균과 함께 병살을 합작하고 홈으로 쇄도하는 임훈을 보살로 잡아내는 등, 제 5의 내야수로서의 활약도 만점이었다. 마운드를 이어받은 박정진과 권혁이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한화는 시즌 첫 팀 영봉승을 따낼 수 있었다. 시즌 3승으로 팀내 다승 공동 1위(+ 박정진)에 오르며, 선발 로테이션을 완벽하게 메꿔 주고 있다.
4월 30일 광주 기아전에선 5⅓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여 리그 다승 1위(4승)에 올랐고, 규정이닝도 넘겨 평균자책점 1위(1.69)에도 올랐다. 이것으로 갑작스런 선발 전환이었음에도 4전 4승, 4경기 평균자책점 0.42의 어마어마한 모습을 선보이며 KBO 4월 MVP에 선정되었다. 한화 선수로서는 야왕시대를 이끌던 카림 가르시아(2011년 6월 수상) 이후 두 번째 맞는 쾌거. 심지어 류현진도 못 해 본 월간 MVP다!
5월 12일 대구 삼성전에서 선발로 등판하여 2이닝 1실점하고 허리통증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5월 14일 대구 삼성전에서 또 선발투수로 나와 1⅓이닝동안 3안타 3사사구 3실점(2자책)으로 조기강판당했지만 경기를 이기면서 '안영명이 선발등판하면 뭘 해도 이긴다'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 당연히 승리투수는 못땄다[14]
5월 17일 선발로 예고됨에 따라 주 3회 선발등판이 확정. 앞선 2회가 조기강판이라 이번에도 상황에 따라 바람잡이 선발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든 최근 흔히 볼 수 없는 운영이다. 덕분에 승률이 딱 5할로 떨어진 것과 맞물려 각종 커뮤니티가 다시 시끄러워졌다. 결국 2⅓이닝 3실점으로 강판되며 이런 막장 투수 운용을 하는 김성근 감독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경기는 끝내기로 이기면서 '안영명 선발 = 어떻게든 이긴다'는 공식이 확립되고 있다 본격 승리 토템
그리고 6일동안 푹 쉬고 선발라인업으로 복귀한 5월 23일 KT와의 선발경기에서 1회의 불안함을 극복하고 6이닝 1실점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면서 시즌 5승을 드디어 달성하였다. 한화의 3연속 선발승을 이끌었고, 불안불안하면서도 맞춰 잡는 피칭을 한 것이 긴 이닝을 적은 실점으로 끌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5월 29일 롯데전에서 3회말 아두치의 타구가 그대로 안영명의 가슴을 강타해 4회말에 교체되었다. 그리고 승리토템이 교체되자 한화는 그대로 져버렸다 다행히 부상을 입지 않아 선발 로테이션을 계속 지킬 수 있었다.
6월 4일 넥센전에서 4회 1사에서 만루에 몰리자 박정진으로 교체되었는데, 박정진이 유도한 땅볼을 권용관이 홈으로 잘못 송구하면서 승계주자를 모조리 들여보내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5월 들어 무리한 등판 일정 등으로 성적에서 손해를 봤지만, 그럼에도 4월 성적이 워낙 좋았고 최근 활약이 좋은 유먼과 탈보트가 초반 부진으로 방어율이 좋지 못하기에, 2015년 한화의 나눔올스타 선발투수 후보가 되었다. 방어율 1위 양현종이 나눔팀 후보로 버티고 있어 투표로 선발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
6월 10일 삼성전에서 5이닝 3K 2볼넷 3피안타(1피홈런) 2실점으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그리고 이 날 경기에서 타선의 든든한 도움으로 경기에 승리하면서 이날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6승, 선발 등판시 팀 성적 9승 2패. 더불어 다음 날까지 한화가 승리하며 삼성을 상대로 한 7년만의 스윕시리즈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었다. 역시 승리토템
6월 16일 SK전에서 5⅔이닝 4K 3볼넷 7피안타(1피홈런) 2실점으로 좋은 활약을 하면고, 타선은 무려 4홈런이라는 어마어마한 화력지원에 힘입어 안영명은 또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7승. 하지만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지 못한 것과 피안타가 조금 많았던 것, 지난 경기 등판처럼 이번 경기에서도 홈런을 얻어맞은 것은 아쉬움을 남겼다.
경기가 끝나고 윤규진에게서 유먼 메달을 건네받았다. 표정 왤케 그윽해 이렇게 사랑이 시작되고 뒤에 탈보트가 이상하게 쳐다본다
7월 3일 NC전에 등판해서 4이닝동안 3실점 했다. 근우형 나한테 왜이래요 다만 투구수가 70개만 넘어가도 흔들리는지라...
8월 21일 kt전에서 8이닝 3실점 무볼넷 6K로 시즌 최고 피칭을 했다. 이로서 9전 10기만에 8승 달성. 그리고 동시에 팀 7연패를 끊었다. 공격적인 피칭이 빛났고 실점 과정도 뜬금 장타를 맞은것 뿐이라 이닝을 길게 가져갈수 있었다.
8월 26일 등판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한 채 5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선발인 로저스, 탈보트, 안영명을 4일 휴식으로 자꾸 땡겨쓰고 있어서 불펜으로 이번 시즌을 준비한 안영명에게는 무리였을 것이다. 특히 전 경기에 8이닝 120구 이상 던진 안영명을 4일 휴식으로 땡겨쓴 사실은... 사실 안영명은 원래 5이닝 80구 정도만 던져도 힘이 빠지는 스타일인데도 전 경기에서 투혼을 발휘해 120구를 던졌는데... 하지만 이겼으니 역시 승리토템
9월 2일 청주 KIA전에서 등판해 6이닝 2실점(2피홈런) 6K로 시즌 9승을 기록했다. 이제 1승만 더하면 한화로서는 2011년 류현진 이후 4년만에 10승 투수를 배출하게 된다.
9월 말들어서 등판을 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나 싶더니만 어깨에 통증이 있다는 이야기가 기사에 나왔다.#
10월 2일 잠실 LG전에서 5⅓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6년만에 다시 10승 투수의 반열에 오르며 10승 6패(125⅓이닝, ERA 5.10)로 페넌트레이스를 마무리했다. 2011년 어느 C급 좌완의 10승 이후 끊어진 토종 10승 투수의 명맥을 4년만에 잇는 호투였다.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거둔 이 승리는 팀의 8년만의 포스트 시즌에의 희망을 최종전까지 이어갈 수 있게 만든 의미있는 승리였다.
3.8 2016 시즌
한마디로 말해 개점휴업.
원래 올 시즌 이후 FA가 되는 선수이나... 현재 1군 2경기등판 1패 20.25의 처참한 성적 및 부상으로 인해 퓨처스리그에 머무는중. 7월 2일 퓨처스리그에서 4이닝 무실점 했으나, 김성근 감독이 본인 공을 못던지면 올리지 않겠다 했으니 언제 올라올지는 정말 미지수다. 후반기엔 올라올 것 같으니 기대해보는게? 살아나요 댕댕갓 ㅠㅠ
7월 19일, 지속적인 어깨 통증의 원인인 오른 어깨에 웃자란 뼈를 정리하는 수술(우측 어깨 관절 클리닉)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사실상 시즌 아웃을 알렸다. ???: 투수의 어깨는 쓸수록 단련된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작년에 똑같은 수술을 받고 올해 복귀한 절친 윤규진의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4 피칭 스타일
전형적인 우완 정통파 파워 피쳐로, 투구 폼이 부드럽고 릴리스 포인트도 이상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구속도 빠른 편이다. 천안북일고 출신으로 한화에 1차 지명을 받은 것을 보더라도 그의 기대치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선수의 장점은 쫄지 않고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넣을 줄 안다는 것이다. 또한 몸쪽 승부에서도 강점을 보이는데, 이는 대부분의 신인 투수들이 마운드에서의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볼질만 하다가 무너지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2000년대 중반 류현진을 제외한 많은 신인 투수들이 볼질로 무너졌던 것과 대비되어 한화 팬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다.
그러나 이 선수의 단점 또한 스트라이크 존에만 공을 넣는 다는 점이다.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구사만 할 줄 알지 무브먼트는 예리한 슬라이더를 제외하고는 안던지는게 나을 정도로 구리다. 그리고 시속 140km 후반을 찍을 수 있는 구속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 당시의 혹사로 구위를 잃어버렸고, 이 구위가 좋지 않은 공을 가운데에 꽂아 넣다 보니 당연히 피홈런도 많은 스타일이어서 평균자책점이 매우 높았다. 게다가 한화 시절 홈 구장은 당시 최악의 타자 친화구장인 대전구장. 2009년에 11승[15]을 챙기긴 했지만 그의 세부 스탯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그나마 슬라이더를 많이 구사하면 모를까 안영명의 최대 문제점은 바로 패스트볼만 던진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게스 히터들에게는 최고의 먹잇감이며 2010시즌에는 완전히 무너진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깡따구 하나만큼은 수준급. 홈런을 너무 많이 맞아서 그런지 홈런 맞고도 그냥 직구 3개를 뿌려넣어 삼진을 잡는다. 최의민 작가는 깡 하나는 전국구급이라고 만화에 그렸다.
2015시즌 들어 변화구의 비율이 높아졌다. 공 10개를 던지면 5~6개 정도를 변화구로 던지고 있다. 스타일을 바꾼 덕분인지 삼진을 잘 잡아내는 중. 하지만 유인구로 변화구를 자주 던지다 보니 투구수가 늘어나게 됐다.[16] 유인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도록 제구가 잘 잡히게 되면 선발투수로써 이닝도 많이 잡아먹을 수 있게 될 듯.
5 연도별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3 | 한화 이글스 | 34 | 44 | 3 | 0 | 2 | 1 | 1.000 | 3.89 | 44 | 6 | 17 | 26 | 19 | 19 | 1.341 |
2004 | 8 | 15⅓ | 0 | 1 | 0 | 0 | 0.000 | 6.46 | 16 | 1 | 13 | 7 | 11 | 11 | 1.630 | |
2005 | 10 | 20⅔ | 0 | 2 | 0 | 0 | 1.000 | 6.10 | 26 | 3 | 14 | 14 | 17 | 14 | 1.839 | |
2006 | 32 | 76⅔ | 3 | 4 | 0 | 5 | 0.429 | 3.29 | 71 | 9 | 35 | 48 | 30 | 28 | 1.330 | |
2007 | 61 | 94 | 1 | 1 | 5 | 15 | 0.500 | 3.06 | 78 | 9 | 43 | 79 | 33 | 32 | 1.245 | |
2008 | 46 | 57⅔ | 7 | 1 | 2 | 5 | 0.875 | 5.31 | 56 | 11 | 44 | 39 | 35 | 34 | 1.665 | |
2009 | 26 | 140⅔ | 11 | 8 | 0 | 0 | 0.579 | 5.18 | 148 | 34 | 52 | 87 | 88 | 81 | 1.372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0 | KIA 타이거즈[17] | 47 | 69⅓ | 6 | 8 | 3 | 3 | 0.429 | 6.75 | 80 | 15 | 38 | 82 | 54 | 52 | 1.659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1 | 한화 이글스 | 3 | 4⅓ | 0 | 0 | 0 | 0 | 0.000 | 4.15 | 7 | 2 | 2 | 4 | 6 | 2 | 2.077 |
2012 |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 |||||||||||||||
2013 | ||||||||||||||||
2014 | 48 | 97⅔ | 7 | 6 | 4 | 6 | 0.538 | 4.52 | 114 | 8 | 49 | 64 | 59 | 49 | 1.536 | |
2015 | 35 | 125⅓ | 10 | 6 | 0 | 1 | 0.625 | 5.10 | 137 | 15 | 71 | 82 | 77 | 71 | 1.57 | |
2016 | 2 | 2⅔ | 0 | 1 | 0 | 0 | 0.000 | 7.54 | 9 | 0 | 4 | 1 | 10 | 6 | 4.88 | |
KBO 통산(12시즌) | 352 | 748⅓ | 48 | 38 | 16 | 36 | 0.558 | 4.80 | 786 | 113 | 382 | 533 | 439 | 399 | 1.49 |
완투, 완봉기록 | ||
연도 | 완투 | 완봉 |
2006년 | 1완투 (7위) | 0완봉 |
통산 | 1완투 | 0완봉 |
(2009 시즌) |
6 그 외
-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집 아니면 운동뿐이라는 성실한 성격이라고 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자매들이 좋아할 만한 교회오빠 스타일!
- 2006년 8월 김동수에게 빈볼을 등짝에 던지고 죽빵을 얻어맞는 장면. 당시 안영명은 김동수에게 2연속으로 등짝으로 날아가는 코스로 공을 던져 문제가 됐다. 첫 번째 공은 실수로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김동수가 한 번 째려보고 끝났지만 연속으로 같은 코스로 공이 날아가자 꼭지가 돈 김동수는 고의성이 있다는 판단을 하고 마운드로 달려나갔는데, 너무 흥분해서 도중에 넘어지는 바람에 조금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는 했다. 저 직후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지면서 송진우의 날라차기가 작렬했고 당연히 송진우도 폭력을 행사한 김동수, 원인을 제공한 안영명과 함께 벌금을 물어야 했다. 당시 양 팀의 최고참이 가장 뜨거운 파이팅(...)을 선보였던 점이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40:48초부터 그러나 엉뚱한데서 범인이 밝혀지는데 사실 이때 빈볼도 구대성이 시켰다고.
- 2007 플레이오프에서 빈볼에 대한 보복구를 이종욱에게 던진 직후. 손짓이 인상적.
덕분에 '컴온요'라는 별명이 생겼다[18] 당시 중계화면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컴온요->커먼요->귀댄요의 순서를 거치면서 별명이 바뀌었다(...).
- 2009년 9월 20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얻어맞은 직후 0-1 카운트에서 김재현에게 던진 공이 발목을 맞혔다. 하필이면 고관절이 안 좋은 김재현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있었다. 이후 4심 합의로 안영명은 퇴장당했고, 경기후 코멘트에서 "맞히려면 등으로 던졌을 것이다. 고의가 아니다"라고 억울함을 표했다. 확실히 위 짤을 보면 그런것 같기도 하지만 해당 상황은 빈볼로 느낄 개연성도 분명 존재했기에 퇴장 판정은 어쩔수 없었다.
- 팬들에게는 착실한 교회오빠 이미지와 함께 시크한 표정 때문에 나쁜남자 이미지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KIA로 이적하기 전에는 락커룸의 냉장고 관리를 맡았다고 한다.
2015년 후반부터는 치어리더를 꿈꾸던 외국인에게 냉장고 관리가 넘어간듯 하다발음 탓인지 안멍멍이라는 별명도 있다.[19]
- 한때 KIA 팬들에게 얼빠를 부르는 얼굴로 추앙받았지만 계속되는 불쇼로 썰어버리고 싶은 투수로 뽑혔다. 더불어 디시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선 안멍멍이라는 별명에서 파생된 안ㄱㅅㄲ라 불렸다.
- 장성호가 어깨수술을 받는다는 기사가 나오자 KIA팬들은 안멍멍 데려가라고 난리를 쳤다. 물론 한화팬들은 역으로
사기꾼먹튀제발 장성호 데리고 가라고 열불을 냈다. 그리고 결국 안영명은 한화 이글스로 돌아왔다.
- 2011년에 1군에 데뷔한 한화의 투수 안영진이 그의 친형이다.
- 공익근무 복무 기간 동안 틈틈히 공부하여 스포츠심리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한다. 친구의 조언을 듣고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이 학구열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대전대학교를 졸업하고 우송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한다. 역시나 스포츠심리 관련. 본인은 석사과정까지 공부하겠다고 한다.
- 2013년 11월 30일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내 신선미 씨는 성균관대학교 재학시까지 탁구선수로 활약했는데, 재미있게도 안영명의 형 안영진의 부인의 대학시절 가장 절친한 탁구부 후배로, 선배의 소개 덕에 지금은 두 커플 모두 결혼해 선배가 아주버님이 되었다고.
- 2014년 시즌 이후로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기존에 달고 있었던 등번호 38번을 김성근 감독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고 본인은 45번으로 바꿔 달았다. 그리고 팬들은 일제히 "멍멍아! ㅜㅜ" 하면서 같이 슬퍼해주는 분위기.
- 한화 투수들 중에 발이 제일 빠르다. 100미터를 11초 33에 뛴다고. 이 스피드는 김주찬, 이대형 보다 빠르고, 김종호와 비슷한 스피드이다. 이러한 스피드와 민첩성 덕분인지 내야 수비수로서의 능력도 좋은 편이며, 커버 플레이도 뛰어나다.
지명타자 말소되고 출루하면 투수들 딥빡
- 래퍼 올티를 닮았다.
정확히는 올티가 안영명을 닮았다
- ↑ 김태균의 초·중·고등학교 직속 후배다.
- ↑ 입단 직후 이틀간만 단 이후 한화에서 1번을 달던 윤경영에게 양해를 구하고 배번을 맞바꾸었다.
- ↑ 천안북일고는 한화그룹에서 재단을 지원하는 학교다. 이 천안북일고 출신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은 높은 순위로 한화에 입단하며, 성골이라고 불리며 구단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좋은 대우를 해 준다.
- ↑ 그래서 천안북일고는 한화의 3군이라는 별명도 있다. 북일고 출신으로 한화의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은 선수로는 안영명 외에도 이상군, 한용덕, 김태균 등이 있다.
- ↑ 물론 타깃은 김동수였다. 그런데 김동수가 피해서 심광호와 송지만이 얼떨결에 맞게 되었다. 참고로 저 사구는 구대성이 지시했다고 한다.
- ↑ 인천광역시 출신의 류현진은 2차 1순위 지명.
- ↑ 볼넷 허용하고 폭투 기록한것 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다음 타구는 3루수 김상현이 충분히 잡을수 있는 공인데 놓쳤다. 어쨌든 장작은 지폈으니.
- ↑ 게다가 김주형의 경우 스포츠신문 기자들의 말에 의하면 보호선수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대화 감독이 키워보고 싶은 타자가 있었는데 보호선수로 묶여 있더라는 발언을 해서 그 대상이 김주형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 ↑ 근데 군필이라는 점은 확실히 안영명보다 비교우위에 선다. 거기다 안영명의 깃털공은 한시즌 34개 피홈런으로 이미 증명된 바 있으며, 김희걸은 SK와 KIA에 있는 동안 크게 혹사당하지도 않은 편이다.
- ↑ 결과론적이기는 하나 2011년 불펜이 좆망 상태인 KIA에서도 김희걸은 거의 중용되지 않았기에, 김희걸을 뽑지 않았다는 걸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물론 안영명을 뽑은 게 잘한 일이라는 건 아니지만...
- ↑ 김성근 항목을 참고해보면 알 수있지만, 본인이 38에 대한 여러가지 의미를 두고있디고 한다.
- ↑ 보통 배번은 스캠 전후로 공식 배정되기 때문에 임시로 달게 되었다.
- ↑ 2015년 6월 16일 기준 안영명이 선발로 나온 12경기에서 한화는 10승 2패(안영명 7승)를 기록하고 있다.
- ↑ 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두번 다 패배 - ↑ 한화 암흑기 시절 류현진을 제외한 유일한 10승이다(...).
- ↑ 볼넷과 홈런 때문에 FIP는 높은 편이라 플루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 앞으로 FIP가 낮아질지 ERA가 올라갈지는 본인 하기에 달렸다.
- ↑ 2010년 6월 8일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 여기서는 시즌 종료 시점에서의 소속팀인 KIA 타이거즈로 표기한다.
- ↑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볼이 어떻게 빠졌는지 손바닥을 살펴보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그놈의 표정.
- ↑ 팬들에게는, 발음 외에도 불펜과 선발 땜빵을 가리지 않고 '개처럼 굴려먹힌' 부분 때문에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