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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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용준(趙容浚)
생년월일1979년 3월 17일
출신지전라남도 여수시
학력여수중-효천고-연세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8년 현대 유니콘스 2차 5라운드 지명
소속팀현대 유니콘스(2002~2007)
넥센 히어로즈(2008~2010)
종교불교천주교[1]
2002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김태균(한화 이글스)조용준(현대 유니콘스)이동학(현대 유니콘스)
2002년 한국프로야구 구원왕
신윤호(LG 트윈스)조용준(현대 유니콘스)조웅천(SK 와이번스)
2004년 한국시리즈 MVP
정민태(현대 유니콘스)조용준(현대 유니콘스)오승환(삼성 라이온즈)

1 소개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투수이다. 굵고 짧았던 현대 왕조의 말기를 대표했던 마무리 투수. 빠른 슬라이더를 잘 던져 조라이더라는 별명이 있다. 2013년부터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 선수 시절

효천고등학교 시절에는 임시 코치였던 장호연에게서 훈련을 받았었다 그러나, 체구가 작고 [2] 이렇다 할 성적이 없어서 1998년 드래프트에서 2차 5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되었으나 연세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기량이 성장하였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계약금 5억 4,000만원을 받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며 허리디스크로 뛰다 부상당한 위재영[3]을 대신하여 마무리 투수로 활약, 이 때 고교 동기 강철민 역시 대학교에서 뚜렷한 성적으로 KIA 타이거즈로 입단을 받고 두 사람 비슷한 계약금을 받았다. 그러나 첫 해 1군과 2군을 돌아다녔다. 이후 조용준은 당해 KIA 타이거즈김진우를 제치고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로 뽑혀 금메달을 따고 병역 특례를 받기도 했다. 이 해 기록은 60경기 출장에 109이닝 116탈삼진 1.90의 평균자책점과 28세이브 4홀드.[4]

같이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김민우는 폭망하고 만다, 안타깝게 버린 톰 퀸란은 2002년에 은퇴선언을 해버린다.[5]

역대 현대 유니콘스 신인 중에서 가장 많은 계약금을 받았다. 2위는 빵횽

이후 2003년에는 2년차 징크스인지 잠시 주춤했으나[6]
이듬해 써클 체인지업을 다시 익혀서 2004년에 10승 3패 34세이브 2.28의 평균자책점으로 다시 이전 모습을 찾으며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다. 특히 정규시즌에서 피홈런이 0개다. 좌타자에게는 저승사자급이였다고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던지는 비슷한 체인지업을 던지는 것 같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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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는 빗속에서 승리를 지켜 냈는데 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역대 한국시리즈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의 성적은 7경기 12⅓이닝 2실점 비자책점 평균자책점 0.

그러나, 이후 무리한 투구 폼 이건 작은 하드웨어 때문이라는 한계점이다. 그리고 직구가 아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포크볼 위주로 피칭하다 보니, 투수코치였던 김시진이나 고교시절 은사였던 장호연도 보자마자 롱런은 좀 힘들고 경우의 판단에 중간계투나 마무리 투수로는 평범하겠다는 반응인데 당시, 현대는 투타가 폭망이였던과 조용준의 어깨가 좋지 않는 것에 보면 바로 출격 시켰던 것과 거기서 첫 해부터 이닝 조절을 잘못한 결과와 03년 부진에 털리면서 04년 또 다시 100이닝 근처에 갈뻔 한 이닝 수를 던져버렸다.과 자기관리 실패 탓인지 2005년에는 부진했다. 일반 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용준의 자기관리 소홀은 김진우와 함께 야구계에서 나름대로 유명했다. 김시진 감독에 의하면 급작스럽게 스타 플레이어가 되면서 자만에 빠졌던 게 문제라고 한다. 안그래도 김진우랑 연관 되어있는 것 부터가.. 데뷔년도는 동기이고 서로 방황하다가 복귀 후 세이브 기록 까지 보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조용준은 2010년도 부상에서 재기하지 못해 은퇴를 선언 한다

2005 시즌에는 구원 등판만 하면 이상하게 불을 잘 질러 조라이터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그래도 이 때 삼성 라이온즈 타자들에게만은 강했다(…). 아니, 통산 성적으로도 미키 캘러웨이 수준의 삼나쌩 수준이었다고... 지금의 더스틴 니퍼트보다 더 무서웠을 정도 이 양반들 셋 다. 경상도, 전라도 팀 킬러였다 캘 선생은 로나쌩 클럽회장을 2년씩이나 했으니...

이후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단 1경기도 등판하지 못한 채 2군에서 재활에 몰두하게 된다. 현대구단에서는 그의 자기관리 소홀을 우려하여 대선배였던 정민태와 함께 수술시키고 재활 프로그램을 짜 줬으나, 일설에 따르면 은퇴가 임박한 정민태보다도 재활 훈련에 소홀했다는 얘기가 있었다.[7]

전체적으로 자기 몸을 좀 소홀히 여겼던 편이다. 이미 대학교 1학년 때 오승환처럼 어깨수술을 받았다. 게다가 제대로 재활이 되지 않았고, 결국 프로 입단 후 구단에서도 이미 다시 수술을 받으라는 진단이 나왔으나 그걸 쌩까고 무시하고 4년을 던진 것이었다.

2007년 현대가 마지막 이름을 사용 할 때 그는 자리에 없었고 2008년에는 히어로즈 구단이 인수하고 창단식을 했을 때도 아예 없어서 다른 기자들이 기사에서 언급을 안하다가 2009년 초에 드디어 그의 거주에 대한 기사를 냈다. 때아닌 은퇴설/잠적설이 나오며 온갖 개소리 이상한 소리까지 들었으니 그는 스포츠 기사 기자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자기는 재활훈련에 몰두하고 있으며 야구장에 복귀한다고 언급까지 했었다고, 현대가 없어지고 히어로즈 라는 새 구단이랑 연봉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뉴스만 나오다가 결국은 연봉 8천만원에 복귀했고[8] 2009년 9월 10일에 1,455일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9:8로 이기고 있던 9회 1사 1루 상황에서 등판해 김태균에게 안타를 허용한 후 다음 타자 이도형에게 끝내기 피자포를 얻어맞고 전대미문의 역전패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정민철의 은퇴식만 더더욱 성대하게 만들어주고 말았다. 이날 넥센은 9:0으로 이기고 있다가 무려 11점을 내주고 패했다(…). 9점차를 뒤집은 역전승KBO 기록이었다.[9]

그러나 2010 시즌 직전에 부상이 재발하면서 스프링캠프 도중 신철인과 함께 조기 귀국했다.마무리 보직은 경찰청에서 갓 제대한 손승락에게 넘어갔으며, 손승락은 그 해 세이브왕을 차지했다. 이후 2010년 시즌 내내 강진 2군에서 재활만 하다가 2010년 10월 8일 자로 신철인과 함께 넥센 히어로즈에서 방출되었다. 기사에 의하면 6월부터 훈련이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향후 복귀가 어려워진 만큼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 때도 김시진의 혹사는 여러모로 대단했다. 신철인이 2년간 재활을 하고 돌아올 때 무리하게 던진 적이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건 있어 가지고 조용준이 했던 짓을 신철인에게 했더니 신철인은 또 다시 무너져버렸으며 돌아오지 못했다.

다만 본인은 현역 연장의 의지를 보였고, 다른 팀에서 새 출발이라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자택 근처에서 개인훈련에 매진했다. 그러나 부상 후유증, 자기관리 문제 등이 겹치면서 2011년 이후 어떤 팀에도 둥지를 틀지 못했고, 결국 은퇴하였다. 은퇴 당시 나이가 32세로 상당히 젊은편인데, 이 무렵 동기라고 할 수 있던 선수들이 현역으로 많이 뛰는걸 생각하면 여러모로 아쉽다.[10]

통산 116세이브로, 제대로 마무리로 뛴 시즌이 4시즌 밖에 안 됨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커리어를 쌓았다. 만약 자기 관리가 더 잘 됐다면 오승환과 더불어 KBO 양대 마무리가 되었을지도 아마 300세이브는 노려보았지 않을까 싶었다. 4시즌 116 세이브니 10년 정도 얼추 계산하면 200세이브 이상 거뜬하니.. 그렇지만.. 야만없 그리고 조용준 뒤에 신예 그 오승환도 현재 2016년 MLB에서 뛰고 있다. KBO 현 최다 세이브는 손승락이 가장 많다. 근데 이 사람은 정작 자기가 집필하고 시청자들 마저 간떨어지게 한다.

3 은퇴 후

2011년에는 5월에 목동야구장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2011년 6월 29일 간암에 걸렸다는 기사가 나와 팬들을 걱정하게 했다. 그나마 초기 수준이었다는 게 다행. 8월 23일 기사에 의하면 간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해당 기사

여담으로 배우 안재모의 혼삿길을 열어준 사람이기도 한다.

참고로 아마추어 시절 국제대항전에서 도핑 테스트를 거부한 적이 있다.[11]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게는 굉장한 악몽으로 남아있는 선수. 삼성이 봐서는 안되는 시리즈 타 팀 팬들이 느끼는 신인 시절과 2년차의 오승환이 출격해서 등판의 체감을 삼성 팬이 궁금해한다면, 그 때 야구를 봤던 사람 한정으로 2004년 조용준 등판한 느낌이라고 말해주면 아마 200% ~ 300% 공감할 것이다.

2013년부터 엠스플에서 박재홍과 해설을 맡기 시작했다. 해설 첫 데뷔전은 시범경기 삼성 라이온즈 vs. LG 트윈스 경기. 삼성팬들이 지리기 시작했다 카더라 차분하면서도 조곤조곤한 말솜씨를 보였으며, 목소리가 좀 지루하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수면제 야구 해설

다만 메이저리그 해설에서는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평이 좋지 않다. 팬들은 제발 웬만하면 한국프로야구 해설만 하라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2014년에는 메이저리그 해설만 하고 있다. 그것도 새벽 경기만.... 그러다 투수가 슬라이더를 던지면 투수코치로 빙의...

2014년 9월 24일 네이버 해외야구 MLB SHOW 코너의 "빅리그의 슬라이더 - 구간2. 슬라이더의 이면 with 조용준 위원" 편에서 한 청자가 삼성에게 강했던 이유를 묻자 당시 던졌던 140km 대의 공이 슬라이더가 아니라 체인지업이었다고 답했다. 자세한 내용

2015년에도 여전히 메이저리그 해설만 하고있으며 국내프로야구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만 출연중이다.그런데도 나아질기미가 안보이는 해설능력 롯데 팬 : 이보시오 그냥 우리팀에서 투수코치 해 볼 생각 없어요? 조용준: 응 아니야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2현대 유니콘스641099528
(2위)
41.908042116
20034753⅔2726
(3위)
13.52521939
2004637510334
(2위)
02.28672556
20054952⅓2127
(2위)
03.27472361
20061군 기록 없음
2007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8우리 히어로즈1군 기록 없음
2009히어로즈11901104.001176
2010넥센 히어로즈1군 기록 없음
통산234299231711652.59257116278
  1. 언젠가부터 어깨성모마리아 문신을 하고 난 이후로 개종하였다. 아마 2010년 넥센 2군 구장인 강진 베이스볼 구장에서 사진이 나왔다. 세례명추가 바람.
  2. 키 178 추정
  3. 실제로 2000년/01년 마무리를 뛰었다. 본인이 블론세이브 할 때마다 너무 정신적인 멘붕이오고 머리도 아프고 고통이 많았다고
  4. 순수 계투로만 출전해서 신인상을 받았다. 역대 신인상 중에서 가장 유이한 사례 였으나.. 2005년 오승환이 기록을 깼다. 그리고 비슷한 성적으로 신인상과 한국시리즈 MVP를 받았다.
  5. LG가 주어가나 이미 은퇴를 선언했던 선수가 뛰기에는 별 볼일 없던 성적이다. 10경기 21타수 0안타로 곧 바로 퇴출 된다.. 입쥐효과의 위엄
  6. 아마, 전년도 이닝 수를 보면 혹사에 가깝다. 김시진 당시 투수코치는 권준헌, 이상열, 신철인, 전준호, 박장희를 제외하면 던질 만한 투수가 없어서 8회에 집어넣을 때가 많았다.
  7. 다만 정민태는 2005년 ~ 2008년 까지 승리 없이 10패만 기록하며 완전히 퇴물이 되어버렸다고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고 그나마 10년 어린 후배 조용준은 쉽게 재기 할 수 있었다고
  8. 당시에도 히어로즈는 그 보다도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후두룩 했는데 시즌 후 60%의 선수들이 타팀으로 떠나거나 새롭게 계약을 했다.
  9. 2013년 5월 8일 SK 와이번스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10점차를 뒤집는 승리를 거두면서 기록은 경신되었다. 508 대첩 참고.
  10. 과거 현대시절 팀 선배인 송신영이나 박준수보다도 더 일찍 은퇴했다... 동갑내기 친구인 김수경이 그나마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11. 아는 분들은 추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