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관계


советский-китайские отношения(소베츠키-키타이스키예 아트노셰니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1949년부터 1991년까지의 양국 관계.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양국 관계는 중러관계추가바람.

소련중국냉전 시대때부터 공산권의 맹주 자리를 두고 다투었던 나라이다.엄밀히 말해서 한쪽은 자멸(?)한거고 다른 한쪽은 명목상으로만 공산주의 국가고 실제로는 자본주의다.[1]

1 소련 - 중화민국 관계

소련레닌은 제3세계의 민족주의를 지원함으로서 고립을 벗어나려고 했고, 이는 쑨원국공합작노선과 일치했다. 이에 소련은 군사고문 등을 내전상황의 중국에 파견했으며, 이 관계는 장개석 때까지 지속된다. 소련레닌 이후 일국사회주의론을 펼쳤기에 실리적으로 쑨원 사후 중국 국민당의 주도권을 쥐게 된 장개석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 오히려 스탈린마오쩌둥을 경계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정식 수립되자 소련은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양국은 적대 관계에 들어섰다. 중화민국은 중공의 주요 정치인들을 소련의 앞잡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2 냉전 시대

냉전 시대에는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적 앞에 단합을 꾀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국공내전까지는 소련이 물주인 동시에 은근한 견제세력이었다. 북한에게 (6.25 전쟁 이전) 간도요동을 떼어주려고 하질 않나, 장개석중국 국민당편을 들지를 않나..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의 집권으로 소련이 수정주의 노선으로 갈아타면서 이념적인 대립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념상의 문제로 중소결렬이 일어났다. 1960년대 말까지는 이런 노선 싸움이 그저 양국의 선전기관들에 의한 말다툼에 그쳤지만, 문화대혁명 이후에 소련-중국 국경분쟁으로 말다툼이 주먹싸움으로 악화되었다. 이후 중국제3세계와 연대하고, 소련의 영향력을 제3세계에서 배제하는데 주력했다. [2] 그리하여 칠레에서 아옌데 정권을 무너트린 쿠데타로 피노체트가 집권하자, 아옌데 정권을 지지했던 소련은 이를 규탄했지만, 중국은 이를 환영했다. 마찬가지로 친중이었던 당시 쿠바 경제장관이었던 체 게바라에 대해 소련은 싸늘한 태도로 일관, 체계바라가 쿠바를 떠나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처형되되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이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이 방중, 한국전쟁 이래 계속적으로 중국을 적대시 했던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지지했다. 1979년, 미국은 결국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고 여러가지 군사교류를 시작했다. 하지만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한다며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재검토했고, 모든 군사교류를 취소했다. 이러자 중국은 소련에 다시 접근, 1989년 극적으로 중소는 화해하였다. 그런데 2년뒤 소련이 망했잖아 이후 중국과 소련의 후신 러시아는 공통의 적 미국을 두고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3]

3 소련 붕괴 후~현재

1991년 이후의 자세한 설명은 중러관계 참고.

  1. 물론 명목상으로는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니까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 명목상으로는 공산권의 맹주가 되긴했지만(...)
  2. 대표적으로 1980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빌미로 중국보이콧을 선언하였다. 이 때문에 중국의 올림픽 데뷔는 늦어지게 되었다.
  3. 국제관계를 잘 모르는 일부 밀덕들이 냉전시의 중소결렬이 아직까지 이어진다고 중국과 러시아가 대립관계라고 알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는 나토의 확장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더욱 기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