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시기의 괴수 출현 소동

1 소개

조선 중종 때 일어난 괴수출현 소동. 조선왕조실록UFO 출현 기록과 함께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형상이 큰 를 닮았다는 것이 약 200년 뒤 프랑스에 나타나는 제보당의 괴수와 비슷한데 사실 큰 검은 개에 대한 괴담은 의외로 전세계적으로 있는 편이다.# 제보당의 괴수와 중종시기 괴수 출현도 이와 비슷한 사례이다. 바스커빌 가의 개 역시 검은 개에 대한 괴담에서 약간의 모티브를 얻었다.

2 상세

밤에 개같은 짐승이 문소전(文昭殿) 뒤에서 나와 앞 묘전(廟殿)으로 향하는 것을, 전복(殿僕)이 괴이하게 여겨 쫓으니 서쪽 담을 넘어 달아났다. 명하여 몰아서 찾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사건의 발단은 중종 6년인 1511년 5월 9일에 시작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한 괴수가 궁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궁내 경호실에서 이를 쫒았으나 서쪽 담을 타고 넘어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런 괴수가 나와서 돌아다니자 궁이 크게 소란해졌다고 한다. 이 괴수의 형상에 대해서는 삽살개같이 생기고 크기는 망아지 같았다고 하며, 대단히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날 이후에도 이 괴수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고 거기에 귀신까지 보태지면서 괴수인지 귀신인지를 두고 조정에서 설왕설래했다고 한다. 괴물 소동이 얼마나 궁을 소란스럽게 했던지 중종 22년인 1527년 6월 26일에는 사헌부에서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요괴로 인하여 이피(移避)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자전의 뜻에서 나온 것이므로 신들이 감히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당초 괴물을 보았다면서 떠들 때에 병조·도총부(都摠府) 및 위부장이 엄히 금지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스스로도 두려워하고 겁냈기 때문에 어리석은 군사들이 더욱 경동하였습니다. 또 병조의 입직 당상(入直堂上)과 낭관(郞官)은 의당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해야 할 것인데, 버려두라고 명하셨으므로 군령이 더욱 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뒤엔 감히 전같이 경동하여 떠드는 자가 있으면 모두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하게 하소서.

쉽게 말해 "요괴 괴담이 궁궐 내에 돌고 있으니 다들 겁에 떨고 있습니다. 루머 퍼트리는 놈들을 족치시길 아룁니다."라는 내용인데 중종은 이 상소에 대한 비답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동안 잠잠하나 싶었는데... 괴물이 또 나타났다. 그것도 대비전까지 나타나서 창벽을 마구 두드리기까지 했다. 이러한 소란으로 대비전이 경복궁으로 이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대비전경복궁으로 이어하였다. 대전(大殿)·중궁전(中宮殿)·세자빈(世子嬪)이 이때 함께 이어하였고 세자가 제일 나중에 이어하였다.【대비가 거처하는 침전에는 대낮에 괴물이 창벽(窓壁)을 마구 두드리는가 하면 요사한 물건으로 희롱하기도 했다. 상(上)이 곁에 모시고 있지 않을 때에는 못하는 짓이 없이 마구 난타했으므로 이어한 것이다.】

중종 68권, 25년(1530 경인 / 명 가정(嘉靖) 9년) 7월 16일(계묘) 1번째 기사

요사스러운 물건이 무엇인지 신경쓰면 지는 거다.

그리고 2년후인 중종 27년 5월 21일에는 괴물이 궁궐에서 날뛰기까지 했다.

금군(禁軍)이 밤에 놀랐다. 어떤 자가 망령된 말로 "(馬)같이 생긴 괴물이 나타나 이리저리 치닫는다."고 하자, 금군들이 놀래어 소리치면서 소동을 피웠다.

궁궐을 수비하는 금군이 소란스러웠을 정도였으니 당시 괴수 출현이 얼마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지 알 만할 듯. 심지어는 중종이 죽고난 뒤 인종이 즉위한 뒤에도 이 괴수는 나타났는데 인종이 죽은 지 하루 후인 인종 1년 7월 2일에 등장했다. 이 기록을 끝으로 괴수는 궁에 나타나지 않았는지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경성(京城)에 밤에 소동이 있었다. 상께서 승하하시던 날에 경중(京中) 사람들이 스스로 경동(驚動)하여 뭇사람이 요사한 말을 퍼뜨리기를 "괴물이 밤에 다니는데 지나가는 곳에는 검은 기운이 캄캄하고 뭇수레가 가는 듯한 소리가 난다" 하였다. 서로 전하여 미친 듯이 현혹되어 떼를 지어 모여서 함께 떠들고 궐하(闕下)로부터 네거리까지 징을 치며 쫓으니 소리는 성안을 진동하고 인마(人馬)가 놀라 피해 다니는데 순졸(巡卒)이 막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3∼4일 계속된 후에 그쳤다.

3 괴수는 실존했나?

대체로 실록의 기록을 보면 괴수를 직접적으로 목격했다기보다는 괴수를 목격했다는 소문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실제 이 괴수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긴 하다. 중종 시기에 중종반정조광조 일파 숙청, 김안로 숙청 등의 정치적 혼란이 일으킨 심리적인 동요가 괴수라는 형상으로 나타난 거라는 지적이 있다.

4 트리비아

해당 사건을 소재로 다룬 웹툰으로 단장(웹툰)이 있다. 그리고 이를 소재로 영화도 제작 예정이다.# 제목이 작서의 변인 거나 '왕을 위협하는 물괴(物怪)와 왕의 자리를 넘보는 훈구세력과의 사투'라는 영화 소개를 보면 1527년에 일어난 작서의 변과 괴수 출현 소동을 엮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