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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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항목: 한국 영화/목록,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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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3년 3월 21일에 개봉한 한국 독립영화제주 4.3사건을 다룬 작품. 감독은 오멸. 제목인 지슬은 지실(地實)에서 온 말로 감자를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다.

5.18 민주화운동은 여러번 영화로 만들어진 반면, 4.3 사건은 인지도가 떨어지는 탓인지 이를 소재로 한 몇 안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밖의 4.3 사건을 다룬 영화로는 이 영화말고도 故 김경률 감독이 감독한 ‘끝나지 않은 세월’도 있는데, 김경률 감독은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1]

2 소개

여태껏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어이그 저 귓것', '뽕똘' 같은 영화를 만들던 오멸 감독이 4.3 사건을 대상으로 찍은 영화이다. 영화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쉰들러 리스트. 난징 대학살을 다룬 난징! 난징!같은 학살 소재 영화들처럼 흑백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대사가 제주어(제주 방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한국 영화인데도 한국어 자막이 뜬다.[2] 배우들은 상당수가 감독 주변의 제주도 이웃이라고 한다.

13년 4월 4일 독립영화로선 높은 관객수인 7만 관객이 극장을 찾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6일까지 8만, 8일에는 9만 관객을 넘기면서 거뜬히 10만 이상을 돌파할 예정이다. 전국 상영관이 겨우 81개에 일부 상영관은 교체상영까지 하고 있음에도 엄청난 선전이다. 4월 11일 누적관객수는 9만6808명이다. 이런 흥행 덕에 11일부터 상영관 10개를 추가해 총 66개관에서 상영되었으며 18일부터는 14개 상영관이 추가되었다.

2013년 4월 12일에는 드디어 누적 관객수 10만을 돌파하였다.# 지슬의 10만 돌파 전까지 독립영화로서 1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전설이 된 293만 관객이 본 워낭소리,44만 관객이 본 울지마 톤즈, 12만 관객이 본 똥파리 그리고 외화 독립영화로 22만 5천 관객이 본 원스까지 여지껏 모두 4편에 지나지 않은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흥행이다.

그 밖에 8~9만 관객을 넘긴 독립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9만 7천 관객을 동원한 소명(2010)과 9만6천 관객을 동원한 위대한 침묵[3]이 있을 뿐이며 독립영화로 관객 3만을 넘겨도 엄청난 대박이다.

17일에는 전국 11만 5천 관객을 넘겼으며 박스오피스 8~9위권을 계속 지키고 있다. 똥파리 흥행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 듯.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슬'은 22일 893명 관객을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12만3253명을 기록하면서 똥파리를 넘어섰다. 3월 21일 전국 개봉 이후 한 달여 만이다. 4월 30일까지 13만 2215명 관객을 넘어섰다.

여담인데 흥행이 가장 많이 되는 지역은 1위가 서울(5월 6일까지 전국 13만 5천 관객)로 29개 상영관에서 5만 8천이 넘는 관객이 봤으며 그 다음이 바로 제주로 겨우 3개 상영관에서 상영함에도 2만 7천명이 넘는 관객이 봤다.

6월 들어서 이젠 전국 2개 상영관에서 상영하는 수준이지만 전국관객 14만 1500명을 넘어섰다.

3 수상 실적

  • 제 19회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황금 수레바퀴상 (오멸)
  • 제 29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월드드라마) (오멸)
  •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 CGV 무비꼴라주상 (오멸),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 (오멸), 시민평론가상 (오멸),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오멸)

4 그밖의 이야기

지역언론 제주의 소리의 기사에 따르면 영화 등장인물 중 마약 중독자에다 민간인 여성을 겁탈하고 살해하는 인물로 나오는 김상사는 탁성록이라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탁성록 항목 참조.

초반부에 나오는 제기나 파트별로 붙여진 제사와 관련된 소제목, 마지막 장면의 지방태우는 장면 등 제사를 지내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한다.

15금인데도 슴가노출이 나오긴 하지만 선정적인 느낌 같은 건 없다. [4] 배우 본인도 흔쾌히 촬영에 임했다고.

해외에도 알려져, 미국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잡지인 variety지에 호평하는 리뷰가 평가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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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편향성주장

이 영화 역시 일각의 극우적인 편향성 시비가 있었다. 왜냐면 남로당 학살은 안 나오고 토벌대의 학살만 나온다는 이유이다.

실제로 남로당 무장대도 양민학살과 약탈을 저질렀다.[5] 하지만 4.3 사건에서 토벌대가 벌인 행위는, 단순히 양비론으로 넘어가줄만한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한 미군보고서[6]에 따르면 1949년 3월말까지 약 1만 5,000명이 죽은걸로 추정되는데 최소한 80%가 토벌대에게 살해됐다고 한다. 그리고 빨치산 영향력과는 심하게 거리가 먼 바닷가 마을 사람들도 엄청나게 자주 학살당했다. 애초에 빨치산 잡으려면 산악지역에 주둔해야할텐데, 어처구니 없게도 당시 진압대는 해안마을에 있었다. 당시 4.3 사건진압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사실이다. 그때문에 제주도민들은 무서워서 산속으로 피난갈 정도였다. 여기서 피난이란 말은 절대 좌편향적인 말이 아니다. 다음 내용은 당시의 상황을 유재흥 장군이 증언한 내용이다.

제주도에 가보니까 산중에 피난민 2만 명 정도가 있었어. 그리고 바닷가에는 경찰‧군인이, 산쪽에는 공비하고 피난민이 있는 등 서로 갈라져 있으면서 밤이 되면 욕하고 싸우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나는 ‘군인은 무조건 산으로 올라가라, 공비토벌 해야 한다’며 3개 대대와 1개의 유격대대 등 4개 대대를 한라산 중복지역으로 이동시켰어. 처음에는 각기 전투지역이 있으니까 각 대대가 다니면서 소탕을 했고, 마지막에는 내가 4개 대대를 기동시키면서 작전을 했지.[7]

당연하지만 산속일 수록 빨치산이 많고, 바닷가일 수록 토벌대가 많다. 당연히 산속으로 피난갔다는건 토벌대가 재앙이였다는 것이다. 한국군 1대장군인 유재흥장군도 피난민이라 표현할만큼 당시 진압대는 엉망이였다.

5.1 별점테러

특정 사이트 유저들이 영화내용과 실제 역사를 왜곡하는 댓글을 남기고 별점테러를 하여 네이버 영화 평점란이 개판이 됐다. 영화에선 남로당 미화는 없는데도 남로당 미화한다고 거짓선동을 하고, 일부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남로당을 묘사하며 영화를 안 봤다는걸 인증했다. 그리고 많아봐야 최대 500명선을 넘지 않는 작은규모 였던 무장대를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민 1~2만명을 죽인 초토화작전을 빨치산 토벌이라 왜곡하거나 양민학살을 남로당 탓으로 몰기도 하며 일부는 당시 빨갱이토벌을 위해선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는 피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테러를 받은 영화의 관계자들은 네이버에 항의하였고 # 이에 네이버는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별점란을 리뉴얼할 계획을 하고있다고 한다. #

6 외부링크

6.1 인터뷰모음

  1. 오멸 감독이 김경률 감독의 뒤를 잇는다는 생각으로 제작총괄로 이름을 올리고 영화의 부제도 '끝나지 않은 세월2'로 정한 것.
  2. 군인들은 표준어나 다른 지역 사투리를 쓰는데 이것도 같이 자막처리 된다.
  3. 종교영화가 아닌 일반 상영관 10개에서 장기간 상영하면서 이뤄낸 것이라 순위에 들어갔다. 그러나 두 영화는 특정종교 성격이 강해서 모르거나 신도들 단체관람으로 이뤘다는 지적도 있다.
  4. 영화를 보면 알겟지만 절대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는 장면이다.
  5. 물론 서북청년회 등 우익관련 인사들에 대한 학살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빨치산에 의한 본격적인 도민 피해는 중산간이 초토화되고 한라산 금족령이 발효되면서 도민들과 빨치산이 단절된 이후에 나타났다. 봉기 초반에는 이전에 벌어진 사태들이 있었기에(...) 도민 여론이 빨치산에 호의적이었고 부락들도 대체로 빨치산에 협조적이었으나 토벌대에 의한 학살을 경험하면서 빨치산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에 빨치산은 물자 수급 등에 있어 난항을 겪게 되었고 특히 군경에 의해 주민들로 구성된 민보단이 조직되어 빨치산과 대치하게 되면서 우익세력에 선별적으로 한정되어 있던 빨치산의 학살이 전면화되었다.
  6. Hq. USAFIK, G-2 Periodic Report, No. 1097, April 1, 1949.
  7. 劉載興(82세,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당시 제주도지구전투사령관, 국방장관 역임, 2002. 9. 6. 채록)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