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진의 역대 황제 | |||||
11대 폐황제 해서공 사마혁 | ← | 12대 태종 간문황제 사마욱 | → | 13대 열종 효무황제 사마요 |
묘호 | 태종(太宗) |
시호 | 간문황제(簡文皇帝) |
연호 | 함안(咸安, 371년 12월 ~ 372년) |
성 | 사마(司馬) |
휘 | 욱(昱) |
자 | 도만(道萬) |
생몰기간 | 320년 ~ 372년 |
재위기간 | 371년 ~ 372년 |
태흥 3년(320년)에 사마예와 정아춘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도만으로 3살 때 낭야왕, 7살 때 회계왕이 되었다. 영화 원년(345년), 무군대장군이 되고 상서를 관장했으며 이듬해 2월, 황제 보좌에 참여했다. 태화 원년(366년) 10월에는 승상이 되고 함화 원년(366년) 11월, 환온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사마혁의 할아버지 사마소의 이복동생이었으므로 사마혁의 작은 할아버지였다. 황제에 즉위한 후, 대사마 환온을 불러놓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은근히 양심이 찔리던 환온은 땀을 흘리며 아무 말도 못했다.
사마욱은 어릴 때부터 총명해서 사마예의 사랑을 받았고 풍채가 좋았다. 몸가짐이 단정했고 학문에 관심을 보였으며 서예를 좋아했다. 장성해서는 마음이 깨끗했고 욕심이 적었지만 큰 뜻은 없었다. 환온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친필로 '만약 진나라의 복이 오래 지속된다면 경이 이 나라를 섬겨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나라를 알아서 하라'라고 보냈다. 이에 환온은 정곡을 찔려 땀을 흘리며 대경실색했는데 그래도 환온의 위엄이 내외에 떨쳐 있어 사마욱은 항상 폐위될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태화 2년(372년) 7월, 재위 8개월 만에 53세의 나이로 태극전 동당에서 사망하고 10월, 고평릉에 안장되었다.
참고로 사마욱의 증손녀[1] 왕씨(왕헌원)는 송나라 효무제 유준의 황후가 되었다. 유준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 바로 희대의 폭군 전폐제 유자업이다.
- ↑ 아버지는 왕언, 할아버지는 왕하, 할머니는 파양장공주로 파양장공주는 사마욱과 이릉용의 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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