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정치인)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파일:/image/421/2016/04/14/1878695 article 99 20160414021206.jpg

1 개요

1966년 10월 15일 생. 더불어민주당 소속 20대 부산 사하갑 지역구 국회의원.

부산 동인고등학교, 부산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88년 부산대 총학생회장을 거쳐 노무현의 비서로 처음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노무현과 함께 정치적 고락을 같이 하면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비서관으로 자리 잡았고, 참여정부 출범 이후에는 청와대 언론비서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선거는 모두 부산에서만 출마했다. 제일 먼저 출마한 것은 2002년 8.8 재보궐선거였는데, 당시 해운대구-기장군 갑에서 출마했지만, 서병수 후보에게 지면서 패배했다. 그리고 2004년 탄핵 역풍 속에 치뤄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출구조사 결과는 당선으로 나왔지만, 실제 선거에서는 45% 득표로 만족하면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 후 선거구를 사하 갑으로 변경한 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출마하지 않았다. 그래도 부산권에서 계속 정치권에 남아 도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시당 위원장도 지내는 등, 입지가 아주 없지는 않은 인물이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사하 갑에 도전했는데, 상대인 문대성 후보가 논문 표절 의혹으로 곤경에 빠지면서 어느 때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고, 실제로도 출구 조사에서도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결과는 또 다시 2,000표 차이의 패배였다. 17대, 19대 모두 출구조사에서 이기고 실제 선거에서 졌다고 붙여진 별명이 바로 출구조사 재선의원.

이후, 조경태의 당내 분란 야기를 비판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 과정에서 구축된 혁신위원회의 위원을 맡아 이해찬의 용퇴를 주장하는 등 소신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하구 갑 공천을 단독으로 차지하였다. 마침내 출구조사와 본선에서 모두 이기면서 처음으로 금배지를 다는데 성공했다. 부산 지역 더불어민주당의 돌풍의 근원 중의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며, 부산권 선거에 출마한지 14년 만에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영남권 몫의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20022002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6대 국회 부산 해운대/기장 갑)[1]
새천년민주당8,065 (20.1%)낙선 (2위)[2]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해운대/기장 갑)열린우리당57,539 (44.4%)낙선 (2위)
2012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갑)민주통합당28,075 (41.6%)낙선 (2위)
2016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갑)더불어민주당34,080 (49.4%)당선 (1위)
  1. 전임자 손태인 의원 작고
  2. 출처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