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시절.
현재는 '최고루'라는 중국집을 차려서 프랜차이즈도 만들 만큼 사업가로 성공했다.
이름 | 최해식(崔海植 / Hae-sik Choi) |
생년월일 | 1968년 9월 30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전라북도 이리시 |
학력 | 이리초-군산남중-군산상고-건국대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 1차 지명 |
소속팀 | 쌍방울 레이더스(1990~1994) 해태 타이거즈(1994~2001) |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22번 | ||||
장채근 (1987~1994) | ➡ | 최해식 (1994~2001) | ➡ | 김상훈 (2002~2014) |
1 개요
전직 KBO 리그 선수. 해태 타이거즈 황금기 말엽의 주전 포수로 이름을 날렸다. 현역 시절 등번호는 22번. 동글동글 한 외모 때문에 풀빵이란 별명으로 통했다.
2 선수 시절
군산상고와 건국대를 졸업한후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문했지만 전종화, 김충민, 박경완에 밀려 별 다른 활약은 없었다. 1994년 장채근과 맞트레이드 되어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고, 정회열을 제치고 해태의 안방 마님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이후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 김상진 등의 화려한 투수진과 호흡을 맞추었고, 타선에서는 이종범, 박재용 등과 함께 힘을 합쳐 1996년과 1997년 해태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타격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는 못했지만 투수리드와 블로킹 등 수비가 일품이었다. 송구능력이 뛰어나 도루저지율이 50%에 달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2루 송구 시간이 1.60초로 역대 포수 중 1위![1]
특히 조인성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앉아쏴의 원조가 바로 이 분. 하지만 선배들에게는 건방지게 보였던 듯. 이 때문인지 고2 때 세계청소년선수권 대회 엔트리에도 뽑히지 못했다. 이후 더이상 앉아쏴를 하지 않았다고.
정회열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면서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주전 포수로 자리 잡았는데, 문제는 그나마 그를 받쳐줘야 할 백업 포수인 김지영, 권오성의 실력은 그닥이었고, 2000년 1차지명 신인 김성호와 1996년 2차 2순위인 황성기는 성장하지 못하고 쓸쓸히 잊혀졌다. 거기에 김상훈과 차일목은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1998~2000 시즌 동안 주전포수로 혹사를 당해야 했다. 이 시기 최해식의 출장경기수는 1998년 114경기, 1999년 130경기 2000년 101경기로 3년간 무려 88.2%나 경기에 출장했으니 얼마나 혹사당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최해식은 3시즌 간의 혹사로 어깨가 물어깨가 되어버렸고 2001 시즌에 플레잉코치로 1시즌을 더 뛰고 은퇴한다.[2] 그리고 해태-KIA는 2000년에 입단한 김상훈이 2001 시즌부터 김상훈이 주전포수를 맡게 된다.
11시즌간(1990~2000) 통산 성적은 375안타, 17홈런, 165타점, 타율 0.217. 수비는 좋았으나, 타격이 시망인지라 그의 타율은 500경기 이상 출전선수 중 최하타율 10위를 기록하고있다.[3]
3 은퇴 후
- 2003년까지 KIA 타이거즈 2군 배터리 코치로 재직하다 야구계를 떠나 사업가로 변신하여 광주광역시에 배달전문 중국집 최고루를 차렸고, 직접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배달가방을 들고 뛰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이 개발한 볶음짬뽕이 빅히트를 치며 순식간에 사업 규모를 확장시켰다. 현재는 가맹점 15개에 연매출 약 1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야구계에선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한편으로 매달 한번 씩 광주시내 보육원 등을 순회하며 아이들에게 짜장면 200~300그릇을 대접하는 등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이 덕분에 광주시에서 표창을 받기도.
- 덧붙이자면 학창 시절부터 야구만 하며 살아온 선수 출신으로 사회에서 성공하기는 상당히 드문 일인데, 최해식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1990년 프로 입문 동기이자 야구선수로서는 자신보다 훨씬 스타였지만 은퇴 후 사업에 실패하고 안좋은 일에 휘말린, 해태 시절 팀메이트였던 어떤 양반과는 극과 극의 비교대상으로 오르기도 한다. 최해식의 경우 남의 말에 꾀여 사업을 확장 한다든가 하는 욕심 없이 하고 있던 중국집 경영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이런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도 있다.
- 2014년까지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야구를 가르치고 있었다. 2016년 현재는 바쁘셔서 야구 강의 강사가 바뀌었다고 한다.
- 2013년도부터 광주방송 MY FM에서 KIA 타이거즈 편파중계 방송 '말로 홈런' 해설을 맡고 있다. 한때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기아가 7위로 추락하자 냉정하게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여러가지 조언을 하였다. 기아 타이거즈 `우승 조급증’에 멍들다
- 그의 아들인 최상인 군도 광주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수비 포지션은 투수. 고졸로서 2016년 신인드래프트 대상에 포함되는데 KIA에 지명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고. 다만 기록이 좋지 않아서 상위권 지명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결국 2015년 8월 24일 실시된 신인 2차지명에서 NC 다이노스에 2차 5라운드 지명되었다.
한편 아들인 최상인 군이 프로로 진출하면서 광주광역시야구협회에 1000만원을 기부했는데, 본인이 아들에게 권유했다고 한다. 팬들은 상위픽도 아니여서 계약금을 많이 받은것도 아닌데 기부를 해서 훈훈하다는 반응이다.
- 질 안 알려져 있지만 이분도 타율이 나쁘기로는 톱 10위 안에 든다. 통산 타율이 0.217로 500경기 이상 출장하고 은퇴한 타자 중 타율 최악 10걸에 들어간다.
- ↑ 투구 포구 후 2루 송구 시간을 '팝 타임(Pop Time)'이라 하는데, 메이저 리그 기준으로 1.92초 이내가 수준급 평가를 받고, 1.98초 정도가 마지노선이다. 2.0초대를 넘기면 강한 어깨로 팝 타임을 상쇄시키더라도 '물어깨'라는 평가를 받을 수가 있다. 현역 최고의 포수로 손꼽히는 야디어 몰리나의 팝 타임은 1.8초를 넘기지 않는다고 한다.
- ↑ 2001년은 부상으로 인해 1군기록 없다. 참고로 같은 해에 어떤 양반도 플레잉코치로 뛰다가 은퇴했다.
- ↑ 그 말고도 1위로는 염경엽, 그 밑으로 조범현,김경문 등이 있다.
염경엽빼고 다 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