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번호

1 개요

배번(背番)

운동선수가 같은 팀 동료와 구분을 위해 다는 번호. 역사적으로는 메이저리그 야구의 뉴욕 양키스가 처음으로 1929년부터 등번호를 달기 시작해 이후 다른 종목으로 확산되었다.[1]

영어로는 유니폼 넘버(Uniform Number) 또는 져지 넘버(Jersey Number)라고 한다. 후자가 조금 더 많이 쓰인다. 백넘버(Back Number)는 저글리쉬.

2 등번호의 의미

일부 스포츠에서는 편의를 위해 등번호와 포지션을 연결시킨 것이 이어지고, 프로스포츠가 활성화되면서 등번호가 선수의 상징이 되면서 등번호만 보고도 그 선수의 포지션이나 플레이스타일등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단체 구기종목에서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이는 이후 영구결번이나 등번호 계승등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2.1 축구

일부 국가는 정식 국제대회 참가가 아닌 A매치 데이 소집 경기의 경우 등번호를 포지션별로 그냥 준다. 또한 A매치 배번 규정이 추가되어, 1번은 무조건 골키퍼만 달게 되어있다.

2.1.1 정석

클래식한 등번호는 다음과 같다. WM 포메이션을 그리고 오른쪽부터 차례로 번호를 주는 방식에서 나왔다.

1번 : 골키퍼
2번 : 라이트백
3번 : 레프트백
4번 : 센터백
5번 : 수비형 미드필더
6, 8번 : 중앙 미드필더
7번 : 오른쪽 미드필더
11번 : 왼쪽 미드필더
9, 10번 : 공격수

12, 23번 : 백업 골키퍼
14, 16, 17번 : 백업 미드필더
18, 19, 20번 : 백업 공격수
15, 22 : 백업 수비수
13, 21 : 기타 백업 선수

전통적으로는 10번을 에이스가 달며, 9번은 팀의 간판 공격수, 11번이 가장 빠른 선수, 8번이 볼배급을 하는 선수, 6번이 중원 담당 선수, 4번이 수비를 가장 잘하는 선수가 단다. 물론 현대 와서는 어느정도 희석되었으나 아직도 10번과 9번은 의미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이유는 A매치 규정상 선발 선수는 1~23번까지 밖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인데, 그래서 보통 주전임을 내세우기 위해 1~23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선호된다. 이게 더 고착화 되면 11번 이하의 번호만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12번 부터는 원칙적으로 백업 멤버가 차는 등번호이기 때문이다.

2.1.2 기타

그 외 특이한 경우는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에이스에게 4번을 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대표팀의 4번은 공격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 때 맨유에서는 오언 하그리브스 덕분에 사실 상 4번이 영구결번(...) 취급 받은 적도 있다.

또한 레알 마드리드 CF맨체스터 유나이티드7번 계보가 유명하다. 특히 레알의 경우 레이몽 코파 - 아만시오 - 후아니토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라울 곤잘레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이어지는 계보가 유명하다. 맨유의 경우 7번을 단 유명인이 바로 백암선생. 사실 백암선생 이전까지는 일부 구단에서나 7번에 의미가 있었지 세계적으로는 별로 인지도가 없었는데, 백암선생이 이 번호를 달고 월드컵에 나오게 되자 에이스가 7번을 선택하는 게 일반화 되었다. 안타깝지만 지성팍 때문이 아니라네 7이 행운의 숫자이기도 하니 선호될 법도 하다.

9번이 스트라이커의 등번호라는 점에는 모두 인정하지만 10번과 11번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10번은 공격수의 번호임과 동시에 공격진 에이스를 나타내는 번호이기에, 공격형 미드필더가 다는 경우도 있다. 11번의 경우 레프트 윙어의 번호이긴 하지만 보통 팀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해당 포지션을 맡기에 11번을 단 공격수도 종종 존재한다.첼시시절 드록바AC 밀란시절의 즐라탄이 대표적. 또한 애초에 윙어가 스트라이커로 전향하는 사례도 많다.

한편 아스날 FC의 9번에는 마가 끼었다. 팀의 간판 공격수인 티에리 앙리(14번)와 데니스 베르캄프(10번)가 9번을 달지 않은 탓에 9번을 단 스트라이커들에게 기회가 적었고, 벵거볼로 인해 스트라이커의 비중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그분도..그런데 9번 자리에 항상 클래식 스트라이커를 박으려 하는데, 문제는 클래식 스트라이커의 경우 벵거볼에서 비중이 낮기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12번의 경우 일부 클럽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도 하는데, 팀의 12번째 선수가 팬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경우 국대 간판 공격수가 18번을 선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유는 애창곡 내지 장기를 뜻하는 일본어인 십팔번(十八番)에서 비롯되었다.

세컨드 골키퍼는 12번을 달지만 스페인 리그에서는 13번을 달고 프랑스 리그에서는 16번을 다는 경우가 많다. 21, 23번은 주로 서드 골키퍼가 많이 달았으나 21번은 피를로의 영향으로 23번은 베컴의 영향으로 미드필더도 많이 달고 있다.

24번 부터는 후보 선수들의 등번호이기 때문에 선호되는 번호는 아니지만, 본인의 취향에 따라 24 이상의 수를 등번호로 쓰는 경우도 있다. 또 자신의 출생 년도를 번호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AC 밀란에서 1980년80번을 사용했던 호나우지뉴가 있다. 역시 외계인

2.2 야구

야구에서 최초로 등번호를 사용한 것은 1929년 뉴욕 양키스. 선수들 구별하기 편하라고 시작했다. 당시에 등번호는 그냥 타순으로 줬다. 베이브 루스가 3번, 루 게릭이 4번인 것은 그들이 그 번호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타순이 3,4번이었기 때문.

이후에는 야구기록지 작성의 편의로 인해 포지션 별로 등번호를 부여하여

야구의 수비 포지션
1.투수(P)2.포수3.1루수(1B)
4.2루수(2B)5.3루수(3B)6.유격수(SS)
7.좌익수(LF)8.중견수(CF)9.우익수(RF)

로 1~9번까지 등번호가 포지션별로 부여되었다. 이를 지키는 대회가 바로 고시엔.[2]

2.3 미식축구

미식축구의 경우 NFL과 대학교,아마추어의 제한이 각각 다르며, 포지션 별로 달 수 있는 등번호는 지정되어 있다.

NFL은 1952년부터 유니폼 등번호 규정이 생겨나고 몇번의 수정을 거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때문에 NFL에서는 선수 등록시 등번호와 함께 포지션도 등록하게 되어 있으며, 등번호도 그에 따라 강제된다.

공격팀의 경우

수비팀의 경우

스페셜팀의 경우

이 번호만 달 수 있다.

대학교,아마추어의 경우에는
Backs 1–49번
Snapper 50–59번
Guard 60–69번
Tackle 70–79번
End 80–99번

을 추천할뿐 공격 라인맨만 제외하면 제한이 없다. 다만 쿼터백의 등번호는 불문율에 가깝게 되어있어서 웬만하면 1~19번 안의 번호를 단다. 또한 공격팀과 수비팀이 갈리기 때문에 같은 등번호의 선수가 2명 있더라도 둘이 동시에 나오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다.

3 등번호 관련 이것저것

대개 구기 종목에서는 3자릿수의 등번호를 피하는 것이 불문율로 통한다. 그러나 3자릿수의 등번호를 단 선수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과거 실업야구 시절 한국화장품 감독겸 투수 김호중이 207번을 달았다.당시 기사[3] 또한 현대 일본야구의 경우[4], 선수단 규모도 커지고 불펜포수나 배팅볼투수처럼 선수라기보단 팀 보조원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번호를 부여해 팀 선수단 목록을 보면 선수나 코치임에도 100번대나 200번대의 번호를 달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대개 코치나 2군선수들이 세자릿수 번호를 달고 있다. 2012년 삼성 라이온즈가 프로야구단 최초로 세자릿수 번호를 단 선수가 나왔다[5]. 또한 같은 해 10월 4일에는 삼성의 김영훈이 세자릿수 번호를 달고 1군 경기에 출장한 첫 선수가 되었다.

또한 자연수(0 포함)로 등번호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특이한 예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칠레 출신의 축구선수인 이반 사모라노가 달고 있는 1+8번. 자신이 뛰고 있던 인테르에 호나우두가 영입되어 오면서 원래 사모라노의 등번호인 9번을 구단에서 호나우두에게 주었는데, 9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고. 등번호 9번은 축구계에선 스트라이커의 대표적인 등번호이며, 그 자체로 팀의 주포라는 의미가 되기에 9번에 애착을 보인 것이다. 물론 공식적인 등번호는 어디까지나 18번. 1과8 사이에 임의로 + 표시를 넣은 것 뿐이다.

별도로 매우 대단한 업적을 기리는 선수에게는 영구결번이라고 하여, 다른 사람이 달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4 등번호 관련 선수 일람

4.1 팀별 등번호 일람

4.2 선수별 등번호 일람

등번호/선수 참조.

5 일본의 밴드

  1. 다만 실험적인 의미로 1928년 8월 25일, 아스날 FC VS 웬즈데이(現 셰필드 웬즈데이)와 첼시 FC VS 스완시 타운의 경기에서 아스날 FC첼시 FC가 최초로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온적은 있다.
  2. 대회 진행 중엔 등번호 변경이 불가능해서 선발 포지션 변경 등의 이유로 꼭 들어맞는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1회전에서는 거의 100% 들어맞는다.
  3. 하지만 그 해 등판한 9경기에서 전패하고 다시 두자릿수 등번호로 바꿨다고.(…)
  4. 왜 일본만 예로 들었냐면, 미국의 경우엔 일본이나 한국처럼 한 구단 내에 단순히 1,2군이 나뉜게 아니라 한 구단 안에 메이저, 트리플A, 더블A등의 등급별로 별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고, 한국의 경우엔 아직 일본야구만큼 선수단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
  5. 물론 그 전에도 세자릿수 번호를 단 선수들이 있었지만 대다수 군입대를 앞두고 임시로 단 것이었다. 세자릿수 번호를 달고 경기에 출장한 것은 삼성이 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