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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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장종훈과 함께. 배우 정원중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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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빠지셔서 그런가 얼굴이...개그맨 이재포씨와 닮았다
이름장채근(張彩根 / Chae geon Jang)
생년월일1964년 3월 28일[1]
출신지전라남도 화순군
학력광주상고-성균관대
포지션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6년 1차 지명
소속팀해태 타이거즈 (1986~1994)
쌍방울 레이더스 (1994~1995)
지도자해태/ KIA 타이거즈 1군 배터리코치 (1996~2004)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2004~2005)
KIA 타이거즈 육성군 코치 (2007)
우리 히어로즈 1군 배터리코치 (2008)
홍익대학교 감독 (2011~)
수상 기록
1991년 한국시리즈 MVP

1988년, 1991년, 1992년 한국프로야구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 소개

전설을 찾아 장채근 상편, 전설을 찾아 장채근 하편, 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장채근편

한국프로야구해태 타이거즈,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 선수, 지도자. 포지션은 포수였으며, 낮은 타율에 비해 홈런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지금 보니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상당히 높다현역시절 우람한 덩치 때문에 노지심이란 별명으로 통한 바 있다.[2] 포수 리드에서 볼배합 측면에서는 당대 1위라 할 수 있는 팀 동료 김무종에게 우위를 점한 것은 아니었으며, 수비력도 블로킹 능력 (+ 트래쉬 토크) [3]을 제외하면 동 시대의 경쟁자들보다 월등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팀 포수들이 갖기 어려운 강점 2가지가 있었으니,

첫째, 체격.
워낙 체구가 컸던지라 장채근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으면 백스톱이 꽉 차있는 느낌이 들어 투수들이 마음놓고(?) 던질 수 있었다고 한다. "어딜 던져도 들어간다."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었던 것.

둘째, 소통.
투수를 최대한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다독이는데 능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투수가 가진 구위나 특기를 살리는데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벤치 및 일상에서의 팀 단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선후배간의 위계가 강하기로 유명했던 해태 야구단에서 포수로서 적절한 신체조건과 덕목을 제대로 갖추고, 큰 체구로 이따금 뜬금포까지 터뜨리는 후배 장채근의 존재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으며, 80년대를 주름잡은 왕조 구축에도 힘을 보탤 수 있었던 것. 이런 독특한 개성이 해태 타이거즈의 꼬꼬마 팬들이었던 지금의 30대 ~ 40대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선수로 기억되는 주 요인이라 생각된다.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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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한국시리즈에 우승하여 각동님 선동열 투수와 함께 포옹하는 사진이 주목되었는데, 당시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챙달린 포수헬멧(현재 포수/주루코치 겸용 헬멧)을 착용한 선수였다고 한다. 90년대 시절이라고 하기엔 시대가 너무 앞서간건가?

광주상고-성균관대를 다녔으며 특히 대학시절 배터리를 이룬 동기 한희민과는 둘도 없는 절친. 대학 졸업후에 1986년 신인지명 1차 9순위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으나 당시 주전 안방마님이던 김무종의 존재감이 워낙 막강했던지라 잘해야 1군 백업이었고 주로 2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찌어찌 백업 포수로 출전했다 해도 타석에선 대타를 써버리자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엔 경기 후 술에 잔뜩 취해서는 숙소의 김응룡 감독 방에 빠따를 들고 쳐들어가서 "나에게도 한번 기회를 달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으나, 김응룡에게 찍소리 못하고 제압당한 적도 있었다(...). 카더라에 의하면 당시 들고간 흉기는 맥주병과 돌멩이였다고...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김응룡은 장채근의 배짱을 높이 사게 되었고 그에게 주전 도약의 기회를 주기에 이르렀다. 무슨 아마존인가.

잠시 장채근과 김응룡의 에피소드를 덧붙여보자면, 동계훈련 때 김응룡이 장채근의 체중을 물었는데 진짜 체중은 95kg 였지만 장채근은 5kg를 줄여 "90kg입니다" 라고 답했다. 이에 김응룡은 "한달 줄테니 10kg 빼라"는 지시를 내려 장채근은 한달 동안 죽어라 고생한 끝에 간신히 5kg를 줄였다. 비록 10kg엔 미치지 못했지만 한달 만에 5kg를 줄인 게 자신으로서도 뿌듯했던 장채근은 김응룡이 다시 체중을 묻자 "옛! 90kg입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러자 김응룡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야 임마, 하나도 안 줄였잖아!" 라고 불호령(...). 장채근은 순간 자신이 애초에 체중을 속였다는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

이후 1987년 시즌 중반, 주전 포수 김무종이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자 김응룡은 장채근에게 안방을 맡겼고, 장채근은 이에 부응하여 잔여시즌 동안 나름대로 활약을 보이며 김응룡의 눈도장을 받게 되었다. 가끔 터지는 홈런포 외에 타격은 보잘것 없었지만 장채근의 최대 장점은 어떤 투수든지(선동열이던 전날 갓 올라온 2군의 무명 투수였던 간에) 넓게 포용해주는 푸근한 투수리드였다. 장채근은 경기 전날 항상 선발투수와 다음날 경기 운영에 대해 미리 의논했고 주로 투수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설령 투수가 자신의 후배라 하더라도 "다 받아줄테니 던지고 싶은 대로 던지라"며 편안하게 배려했기 때문에 해태 투수들 대부분은 장채근을 상대로 등판하는 것을 선호했고, 주전 자리를 조금씩 굳히게 된다. 여담으로 장채근이 안정적 리드를 바탕으로 성장시킨 투수들로 해태의 에이스였던 이대진, 문희수, 조계현 등을 들 수 있다.

드디어 1988년 시즌이 개막되고 장채근은 본격적으로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장채근은 그 해 당대 최고의 슬러거이던 팀 선배 김성한과 홈런왕 쟁탈전을 벌일 정도로 타격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물론 전매특허인 투수리드는 기본이었다. 장채근이 거둔 1988년 시즌 성적은 타율 0.249, 26홈런(2위), 58타점 으로 포수로선 상당히 준수한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는 해태 마운드를 잘 다독이며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장채근은 해태의 안방마님으로서 에이스 선동열과 찰떡궁합을 이루며 무려 6번의 한국시리즈 제패(1986~1989년, 1991년, 1993년)의 금자탑을 세우는 주역으로 이름을 남겼다. 199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3년 이후 기량이 쇠퇴하며 정회열에게 주전 자리를 넘기고 1994년 시즌 중 최해식과의 맞트레이드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이적하여 1995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4] 10시즌 동안 타율 0.228, 97홈런, 285타점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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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장채근은 1996~2004년 해태와 KIA 타이거즈의 배터리 코치, 2004~2005년 KIA 수석 코치, 2007년 KIA 육성군 코치를 역임하였으며, 2008년 이광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우리 히어로즈 1군 배터리 코치를 지냈으나[5][6] 1년만에 계약이 해지되며 현장을 떠났다.

한동안 야인 생활을 하던 장채근은 2011년 가을부터 홍익대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다시 야구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7]

홍익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서울대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2주간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게 되는데, 여기서 과거 선수/지도자들의 실태를 상징적으로 알려줄 말을 남긴다.
“내가 그동안 몰랐던 게 너무 많았다. 솔직히 OPS(출루율+장타율)도 몰랐다^^”

십수 년간 프로에서 코치생활을 한 현직 대학 감독이 고도로 정교한 세이버매트릭스 지표도 아니고, 그 당시 이미 야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OPS도 몰랐다는 건 국내 야구 지도자들의 통계 야구에 대한 관심이 아직 절박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는 방증.[8]. 막상 본인은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높고 장타력이 있었기 때문에 OPS를 살펴보면 '낮은 타율에 홈런만 잘치는 타자'로 불리던 시절보다 좀 더 고평가 받을 수 있는 선수였다.

이 후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이론 공부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면서 최근에는 놀림을 받기보다 그래도 배우려고 안하는 지도자들 보다 낫다는 평을 받았다.

대학야구 약체팀이었던 홍익대학교를 2013년 춘계리그 준우승(vs동국대)과 대통령기 준우승(vs건국대)으로 이끌었으며,드디어 2014년 하계리그에서 단국대를 상대로 우승하며 콩라인 탈출에 성공하였다.하계리그에서는 홍익대의 첫 우승이며, 전국대회 우승으로는 2004년 대통령기 우승(vs경성대)이후 10년만인 경사였다. 2015년에는 KBO총재기 대회 결승에서 동국대에게 승리를 거두며, 또 한 번의 우승을 선사했다. 어찌보면 선배인 선동열을 안 따라간 것이 신의 한수가 된 듯? 장채근 감독의 활약상

장채근 화보(?) #1, #2 이런 것도 있다 Aㅏ...

2016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로팀 감독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관련기사 2016년 하계리그 결승에서 연세대에게 1-3 상황으로 리드 당하는 상황에서 빅 이닝을 만들어냈고, 8-3으로 역전승을 거두며 2년만에 하계리그 패권을 탈환하였다. 2014년부터 3년 연속 우승이며, 부임 이후 3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인터뷰 그리고, 8월에 무등 야구장에서 개최된 대통령기에서 단국대를 제압하고 12년만의 대통령기 우승 및 '16시즌 2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2017년 KBO 드래프트에서 제자 나원탁, 원혁재, 김민섭이 지명받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런 성적을 인정받아 2016 WBSC U-23 야구 월드컵에 참가할 대한민국 U-23 야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4사구장타율출루율
1986해태 타이거즈2842.19081023305.357.277
19874077.208164039516.377.262
1988107338.2498416026
(2위)
58
(4위)
51236.527
(4위)
.321
1989102316.24477150103727038.386.324
199061192.224434072121017.354.287
1991114345.23581110174846046.414.322
1992112326.2648614023
(5위)
6259166.518.384
199367163.178294042017231.276.309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4쌍방울 레이더스3054.11160014102.167.143
199573126.17522504237011.310.237
통산(10시즌)7341979.228452740972852376258.413.316
  1. 호적상 이렇고 실제로는 1963년생이라고 한다.
  2. 외모나 체형 때문에 생긴 별명은 대부분 선수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장채근은 이 별명을 좋아했다고 한다.
  3. 한국시리즈에서 홈으로 쇄도한 주자를 잡으며 구수한 사투리 억양으로 "니가 살았을 것 같냐?"고 약 올리기도 했다. 이외 부분 추가바람.
  4. 허구연이 강연에서 회고한 바에 따르면 장채근이 최해식에게 밀리자 식칼을 들고 코끼리 감독에게 찾아가는 기행을(.....) 보였다고 하는데, 장채근을 밀어낸 것은 정회열이 맞으므로 허구연의 기억에 착오가 있는 모양.
  5. 해태 타이거즈 출신인 이순철 수석코치의 추천으로 여겨진다.
  6. 이 당시 강정호의 재능을 대단히 높이사서, 전문 포수로 나가 볼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뭐 워낙 만능맨이니...
  7. 이때도 비화가 있는데, 홍익대에서 감독 제안이 들어오자 역시 야인으로 쉬고 있던 선동렬에게 '무슨 움직임이 있느냐?'고 물었고, '없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제안을 수락했다. 만일 선동렬이 프로팀 감독으로 가면 자신도 당연히 데리고 갈 줄 알고 미리 확인한 것이다. 실제 야구계에서 장채근은 선동렬사단의 일원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근데 장채근의 홍익대 감독 취임 보름 후에 선동렬의 KIA 타이거즈 감독 부임 발표가 났다.-_-;; 장채근이 감독으로 간 직후에 KIA쪽에서 연락이 왔다면서 선동렬이 직접 장채근에게 해명을 했다고...
  8. 뭐 애초에 베이스볼 아카데미가 그런거 바로 잡으려고 만들어진 것이긴 하다. 앞으로는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수료해서 통과하지 못하면 지도자 라이센스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여담으로 이 서울대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총책임자는 이광환이다. 장채근을 히어로즈 시절 코치로 쓴 인물이니 이제 공부시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