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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8년의 실제 사건
이정재와 이화룡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조직폭력배간의 충돌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신원 미상의 폭력배 집단이 이화룡이 장악하고 있던 구역에서 총을 쏘는 도발을 감행한 뒤 도주한 사건이었다. 당시 이화룡은 이정재와 대립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정재의 도발이라 판단, 즉시 도끼 등 무기와 지프차를 빌려 이정재의 근거지로 쳐들어간다.
하지만 이미 이정재 등 그의 부하 간부들은 피신한 상태였고, 도리어 이화룡의 부하들은 경찰과 마주쳐 검문을 받던 도중 도끼로 경찰을 위협, 이에 경찰이 대응하자 지프차를 타고 현장을 벗어난다. 그러나 현장에 남아있던 도끼를 비롯한 여러 무기들은 이들의 범죄 행각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되었으며, 이화룡에게는 설상가상으로 당시 이정재는 자유당의 정치깡패로 활동하며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화룡과 그의 부하들은 대부분 검거, 그를 포함한 주요 간부들은 징역형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이 때의 옥살이 덕분에 훗날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가 이정재 등의 정치깡패들을 대대적으로 체포, 처형할 때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이후 1965년 석방된다. 석방 이후 이화룡은 조직폭력배에서 손을 씻고 영화계에 투신하였고[1], 그의 폭력조직을 포함한 서울 일대의 조폭세계는 명동파의 부하였던 신상사가 접수를 하게 된다.
2 야인시대에서의 충정로 도끼 사건
야인시대의 중요 사건/사고 | |||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 | 중앙극장 습격 사건 |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 |
단성사 저격 사건 | 황금마차 습격사건 |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 | |
충정로 도끼 사건 | 고대생 습격 사건 | 국회 오물 투척사건 |
장충당 공원 집회가 끝난 후, 명동파가 동대문 사단에 사과를 하라는 전화를 보낸 후 부하들을 셋으로 나누어 각각 동대문과 종로, 서대문을 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듣고 있던 유지광은 어차피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으로 인해 기자들에게 얼굴이 팔려 검찰에 나가게 된 것을 이용해 한판 해보기로 결정했고 이정재도 장충단 공원에서 김두한에게 당한 것을 역이용해 유지광에게 명동파와 자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 이화룡과 정팔, 오상사, 맨발의 대장은 동대문 사단 휘하 화랑동지회를, 나머지는 서대문과 종로를 쳤다.
유지광은 기자들에게 얼굴팔리는 것을 감안하면서까지 오상사와 싸우다가 엉성하게 마무리를 지었고, 곽영주의 지시를 받은 경찰부대가 몰려와 명동파와 유지광을 잡아가면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