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의 인물이 카를로스 헤스콕이다. 그가 들고 있는 총은 M21 SWS |
Carlos Norman Hathcock II(1942년 5월 20일~1999년 2월 22일)
1 소개
미 해병대의 전설적인 저격수, One Shot, One Kill의 창시자, 카운터 스나이핑 마스터
미국 해병대 소속의 부사관으로 베트남전에서 신화적인 활약을 펼친 저격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강의 저격수라는 주장이 있다. 2차대전까지 포함시키면 더 한 굇수들이 있는지라...
저격술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는 역저격[1]에 누구보다도 뛰어나 공식사살기록인 93명의 반 가까이를 적 저격수 사살수로 채웠다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소유자.
특이하게도 베트남전 초기 헤스콕의 보직은 헌병이었다. 왜냐하면 해병대에는 특화된 저격수가 없었기 때문. 그 때문에 종종 월맹군 저격수가 기지를 향해 저격을 하곤 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급한대로 임시방편으로 경비임무를 맡은 헌병병과가 그 대응을 맡았다. 후에 저격학교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저격수 양성에 나선다. 해병대 저격수 관련 담당자가 찾지 않았으면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2 활약상
베트남 전쟁중 그의 공식 사살전과는 93명으로 미국 기준 제4위이나, 당시 미국 사살판정기준이 별도의 장교가 사살을 직접 확인해야지만 인정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 사살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아, 총 전과는 300명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알려진 활약상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중 몇가지만 소개하자면,
- 3박4일에 걸쳐 1.5km를 포복전진만으로만 월맹군 기지에 침투해 월맹군 장군을 사살했고, 아군 소대를 포위한 월맹 정규군 1개 중대를 관측수와 둘이서 우선 모든 장교와 통신병을 사살하고나서 5일간에 걸쳐 서서히 녹여 버렸다.[2]
레알 스나이퍼 엘리트!
- 한 전투에서 적 저격수 12명을 카운터 스나이핑(역저격. 적 저격수를 사살)으로 침묵시킨적도 있다. 이때 적 저격수의 조준경에 정확히 구멍을 내는 헤드샷을 쏘았는데, 실전에서는 현재까지 기록으로 남은 유일한 성공사례이다. Mythbusters 에서도 한번은 불가능이라고 했다가 여러번의 실패끝에야 성공했을 정도.[3]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톰 베린저의 스나이퍼 등 저격수가 나오는 각종 영화 등에서 나오는 같은 상황도 헤스콕의 이런 전과를 따온 것이다.
- 헤스콕이 M2 중기관총으로 세웠던 세계 최장거리 저격기록(약 2,300m)은 35년이나 흘러서야 겨우 깨졌다. 그밖에도, 물위를 달리는 고속보트 위에서 대략 700m거리밖의 베트콩을 저격하는 곡예에 가까운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역시 해병대 출신답다요약 하자면 물위를 달리는 고속보트에 달린 M2 중기관총으로 약 2,300m 떨어진 적 저격수의 스코프를 맟춰 사살한것을 우연히 찍은 로니 배럿이 보고 이걸 만들었다
그 때문에 베트콩들은 헤스콕을 "Lông Trắng", 하얀 깃털(white feather)이라고 부르며 두려워 했다. 이 별명은 위의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헤스콕이 부니 햇에 흰 깃털을 달고 다녀서인데, 헤스콕을 지목해서 역저격이 다수 행해지다보니 미 해병대 저격수들도 적을 유인하고 속이기 위해 마찬가지로 모자에 흰 깃털을 매달고 다녔다. 전쟁 중 몇 차레 있었던 헤스콕을 사살했다는 베트콩들의 주장은 이런 식으로 깃털을 달고 다녔던 다른 저격수를 사살한 것. 하다하다 안 되니 헤스콕의 목에 개인으로서는 최고금액인 미화 3만달러의 현상금이 걸리기까지 했다.
3 은퇴후
케산 공방전 당시 기계화 정찰대를 따라 이동중, 탑승한 장갑차가 지뢰를 밟아 부상을 입었으며, 차량이 불타기 시작하자 탑승한 동료 전원을 끌어냈으나 자신은 큰 화상을 입었고 특히 손을 심하게 다쳐 죽음의 고비에 몰리기도 했다[4]. 그러나 이후에도 역시 강한 정신력으로 재활에 온힘을 쏟아 이후로는 미 해병대 저격학교 교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이때의 화상으로 인해 후유증인 다발성 경화증(MS)가 남았고, 평생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화상의 후유증은 점점 악화되어 복무 20년을 채우기 55일 전에 군에서 방출된다. 이 때문에 헤스콕은 군이 자신을 쫓아낸 듯한 느낌이 들어 한동안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다만 방출은 헤스콕을 위한 일이였는데, 건강 문제로 은퇴하는 것이기 때문에 100% 장애 연금을 받게 되는 것이며, 반대로 20년을 채운 후 정상 은퇴할 경우에는 최종 월급의 50% 밖에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무튼 그는 전역후 상어 낚시를 하며 우울증을 극복했고 1999년에 후유증인 다발성 경화증이 악화되어 만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4 평가
헤스콕의 전설적인 저격 실력을 놓고 킬 수 많은 2차대전 때의 저격수들과 비교하곤 하지만, 사실 저격사에서 헤스콕의 위치는 단순히 킬 수 많은 정도가 아니라 미군의 저격술 학교 시스템을 정립하다시피 한 '저격 교관'으로서의 위치가 높게 손꼽힌다.[5] 미 해병대 저격학교의 모토인 "One shot, One kill."을 만든 것도 헤스콕이며, 네이비 씰 팀 식스와 많은 군경에 저격 강습을 한 것도 그다.
5 트리비아
- 영화 <스나이퍼>의 주인공 토마스 베켓 중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저격수 잭슨[6], 소설 <탄착점>, 영화 <더블 타겟>의 밥 리 스웨거는 헤스콕을 모델로 창조된 캐릭터들이다. 물론 탄착점에서는 '칼 히치콕'이라는, 카를로스 헤스콕을 의미하는게 분명한 베트남전 최고의 저격수가 언급된다. 주인공 밥 리 스웨거는 칼 히치콕의 뒤를 잇는 2위.
- 어떤 일화에 따르면 헤스콕은 저격수로 활동중 단 2발의 총알을 허비했는데 그게 전부 유령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가 출처다보니 신빙성은 별로 없다. 진지하게 생각하진 말자.
- 소셜게임 <워스토리>에서 독일군 미션의 보스급 미군 저격수 이름이 카를로스이다.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인데
- ↑ 먼저 쏜 쪽에서는 이미 차탄에 대한 정보들(적의 위치, 탄착위치)등은 이미 획득했지만, 저격을 받은 쪽은 적 저격수의 위치나 거리정보등에 대한 정보획득 시간이 필요하고, 또 그러려면 해당 정보들을 얻기위해 머리를 내밀거나 해야하기에 머리에 바람구멍이...!
- ↑ 소설 탄착점에서 밥 리 스웨거도 비슷한 일을 했다고 언급되고 이후 남미 특수부대를 상대로 동일한 일을 벌인다. 역시 헤스콕의 오마쥬, 단 영화는 시대배경을 달리하는 바람에 이런 이야기도 없고 그냥저냥한 폭발 액션으로 처리해버렸다
- ↑ 처음 시도때에는 렌즈가 크고 두꺼운데다가 여러개가 조합되는 방식의 현대식 스코프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총탄이 렌즈를 전부 통과하지 못했다. 두번째 시도때에는 베트남전 당시의 스코프를 사용해 간신히 성공. 참고로 당시의 스코프 렌즈 크기와 사용된 총탄의 구경은 거의 같았다.
- ↑ 심지어 이식할 피부 조직이 부족하여 온갖 동물들의 피부 조직까지 동원해야 될 수준이었다. 이식한 피부도 건조해지면 바로 갈라지고 피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 특히나 조심해야 했다
- ↑ 게다가 2차 대전때의 전설적인 저격수들도 전공을 보면 헤스콕 못지 않게 이게 인간으로서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기행을 벌인 기록을 몇개 정도는 가지고 있다.
- ↑ 영화 초중반에 잭슨이 적 저격수의 조준경을 뚫고 사살에 성공하는 장면 또한 카를로스 헤스콕의 오마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