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Curtis Michael "Mike" Scaparrotti
커티스 마이클 "마이크" 스캐퍼로티
미국의 군인. 미국 육군 소속으로 2013년 ~ 2016년까지 주한미군(U.S. Forces Korea) 사령관을 역임했다.[1] 2016년 5월부로 NATO군 사령관이 되었다.
2 경력
2.1 초기
1956년생으로 오하이오 주 로건에서 태어났다. 1974년에 미국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1978년에 졸업하여 임관했다. 병과는 보병이었고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에는 육사로 돌아와 전술학 교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보스니아, 자이르 등에 파병되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근무했다.
2.2 주한미군 사령관 시절
주한미군 사령관 시절의 프로필 사진 |
한국 육군 특전사를 방문하여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좌측), 박선우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우측)과 함께 |
2013년 10월, 제임스 서먼의 후임으로 주한미군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동시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2014년 한국국방연구원(KIDA) 주최 세미나에서 '고고도 요격체계 미사일', 즉 THAAD의 배치 필요성에 관한 소요를 미 국방부에 제기했음을 밝혔다. 이는 해당 무기의 한반도 배치에 관한 미군 측 당국자의 첫 공식 언급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물론 스캐퍼로티 장군 본인은 주한미군 사령관의 위치에서 군사적 필요에 따라 결정한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과 미국, 나아가 중국을 포함하는 외교적 쟁점으로 확대된 THAAD 논쟁을 촉발시킨 장본인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2016년 2월 북한의 광명성 로켓 발사 직후, 한미 양국이 THAAD의 배치 논의에 공식 착수하고 마침내 5개월이 지난 7월에 배치 결정이 확정되면서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관철된 셈이 되었다.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때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과 함께 위문을 갔다. 본래 사건 직후에 먼저 위문을 가려고 했으나, 한국군 장교들의 만류로 인해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후문. 간단히 말해서 '한국군 수뇌부가 주한미군 사령관보다도 늦게 부상 장병들을 위문하는' 모습으로 비난 여론이 생길 것을 우려했던 셈.
2.3 이후
2016년 3월 11일, 미 국방부는 스캐퍼로티 사령관을 NATO군 사령관 겸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 내정했다. 현 필립 브리드러브 사령관의 후임으로 가는 것. 주한미군 사령관으로서의 임무 수행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기사 주한미군 사령관이 타 보직으로 영전한 것은 32년만에 처음이다.[2] 김정은에 관한 걱정은 이제 끝났지만, 앞으로는 푸틴을 걱정해야 한다. 후임자는 빈센트 브룩스 태평양 육군사령관이다.
4월 25일, 이순진 한국군 합참의장의 참석 아래 환송식을 가졌다.
1주일 후인, 5월 3일 독일에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나토군 사령관에 정식 취임했다.
3 트리비아
나이와 직책에 비해 체력이 대단하다. 2015년 용산 미군기지에서 치러진 한미연합사 4마일 달리기 행사에서, 상당수의 젊은 병사와 장교들조차 점점 뒤로 처지는 와중에 계획보다 더 긴 코스로 돌아가기까지 하며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팔팔한 20대 군인들에 밀리지 않을 만큼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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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과는 달리 실제로는 안경을 착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