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주의. 이 문서는 도시전설을 다룹니다.
해당 문서는 실제로 발생한 것으로 증명되지 않은 현상을 다룹니다. 따라서 카더라 통신에 기반한 증명되지 않은 비윤리적이거나 비과학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문서에는 일부 이용자들이 혐오하거나 범죄 등 불법적인 내용 및 따라하면 위험한 내용도 일부 포함할 수 있으므로 문서를 열람하실 때 주의하세요. 또한, 문서의 하단에 이 틀과 함께 분류:도시전설을 포함해 주세요.
케네디 가문에 전해내려온다는 저주에 대한 이야기. 케네디가의 비극(Kennedy tragedies)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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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케네디가에는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결정적이었던것은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아들 존 F. 케네디와 그 동생인 로버트 F. 케네디의 암살일 것이다.
물론 도시전설로 봐야할게, 사실 케네디가는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어느 대가족이나 있을수 있는 불행한 일을 케네디 대통령 형제의 암살로 매스미디어가 부풀린 감이 없지 않다는 것.
케네디 가의 외손들도 포함한다.
이 경찰아저씨의 학살극과는 전혀 상관없다. 말단 경관이 막장도시하고 잘못 엮여서 남은 평생을 B.O.W.들과의 사투에 휘말린 걸 보면 상관이 있을지도
2 케네디가 저주 연표
- 1941년 :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장녀이자 첫째인 로즈메리 케네디는 어린 시절 입은 뇌손상으로 약간의 정신지체 장애[1]가 있어 정신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비밀리에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으나 실패했다. 사실 그녀의 증상은 오늘날로 보면 조울증에 해당되는 것 같았지만... 이후 보호시설에 수용되어 여생을 보냈다. 이 부분은 2014년 12월 28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 1944년 8월 12일 :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장남이자 둘째인 조지프 P. 케네디 주니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기 조종사로 복무 중 아프로디테 계획에 참여하였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 1948년 5월 13일 :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차녀이자 셋째인 캐슬린 캐번디시 후작부인이 결혼하고는 실제로 5주간만 남편과 함께 했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남편이 벨기에에서 전사함에 이어, 새로운 애인과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던 중 프랑스 세벤느 산맥에서 추락사고로 사망. 어머니의 눈밖에 난 자식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에는 오빠인 조지프만 참석했고, 장례식에는 아버지만 참석했었다고 전한다.
- 1955년 :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차남이자 넷째인 존 F. 케네디의, 아내 재클린 리 부비에 케네디가 유산한다.
- 1956년 8월 23일 : 재클린 케네디가 사산된 딸을 낳는다. 이 딸은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부부의 무덤에 그냥 딸이라는 묘비만으로 안장되었다. 후에 조사에 의하면 케네디 부부는 이 딸에게 아라벨라라는 이름을 붙여주려고 했다고.
- 1966년 2월 :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4녀이자 여섯째인 패트리샤 케네디가 영화배우 피터 로퍼드와 결혼했다가 이혼한다. 피터가 알코올 중독과 여성편력이 심해서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지 못했다.
- 1968년 6월 6일 :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3남이자 일곱째인 로버트 F. 케네디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 로스엔젤레스에서 서한 비샤라 서한[2]에게 암살. 이 때부터 케네디가의 저주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 1969년 7월 18일 : 에드워드 케네디가 마서스 비니야드(Martha's Vineyard)섬 인근의 작은 섬 채퍼퀴딕(Chappaquiddick)에서 파티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밤중에 빗길 속에서 몰던 차가 다이크(Dyke) 다리에서 추락해 동승하고 있던 비서인 메리 조 코펜(mary jo kopechne)이 사망했다. 이것을 채퍼퀴딕 사건이라고 한다. 에드워드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다음날 아침까지 경찰에 사고를 신고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의문점들로 인해 에드워드 케네디는 평생의 멍에가 돼 대통령 선거 도전을 포기해야 했다.
- 1973년 8월 13일 : 로버트 F. 케네디의 장남이자 첫째인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 주니어가 자동차 운전 부주의로 남동생 데이비드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남동생의 여자친구는 하반신 불수가 되게했다.
- 1973년 11월 17일 : 에드워드 케네디 부부의 장남이자 둘째인 에드워드 케네디 주니어가 12살의 나이에 골종양으로 오른쪽 다리의 일부분을 절단했다.
- 1975년 10월 30일 : 마사 목슬리가 10대 때부터 알코올 중독에 빠진 마이클 스케이클에게 살해당한다. 이름만 보면 연관이 없을 것 같지만 마이클 스케이클은 로버트 F. 케네디의 미망인인 에델 케네디의 조카였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 1984년 4월 25일 : 로버트 F. 케네디 부부의 3남이자 넷째인 데이비드 케네디가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한 호텔에서 마약인 코카인과, 마약성 진통제인 데메롤의 과다복용으로 사망. 데이비드는 앞서 언급한 맏형 조지프의 부주의한 운전으로 척추를 다쳤을 때 통증을 치료하면서 약물에 중독되었다.
- 1986년 : 에드워드 케네디 부부의 차남이자 둘째인 패트릭 조지프 케네디 주니어가 10대일 때에 코카인 중독에 빠져 치료를 받았다.
- 1991년 :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5녀이자 여덟째인 진 케네디 스미스 부부의 차남인 윌리엄 케네디 스미스가 플로리다의 팜 비치에 위치한 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명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무죄를 선고 받아서, 미국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많았다.
- 1999년 7월 16일 : 존 F. 케네디의 장남이자 셋째인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로버트 F. 케네디 부부의 4녀이자 11째인 로리 케네디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내 캐럴린 등과 함께 경비행기를 몰고 가다 경비행기 추락으로 사망. 하필이면 추락한 곳이 에드워드 케네디가 채퍼퀴딕 사건을 일으킨 마서스 비니야드의 대서양 상공...
- 2002년 : 로버트 F. 케네디 부부의 장녀이자 첫째인 캐슬린 하팅턴 케네디 타운센드가 메릴랜드주 부(副)주지사를 지낸 후 주지사에 도전했지만 연방하원의원 민주당 예선에서 아깝게 떨어졌다.
- 2004년 : 국제 재활 센터의 전 직원이 윌리엄 스미스가 1999년에 성적으로 폭행했다고 주장하며 민사 소송을 했다. 윌리엄 스미스는 그녀에게 한 혐의를 부인했다. 2005년 1월 5일에 법원은 직원의 소송을 기각했다.
- 2005년 : 로버트 F. 케네디 부부의 3녀이자 일곱째인 메리 케리 케네디 쿠오모가 어느 폴로 선수와 바람을 피워서 마리오 쿠오모와 이혼했다.
- 2009년 : 존 F. 케네디 부부의 차녀이자 둘째[3]인 캐롤라인 부비에 케네디 슐로스버그는 평범한 삶을 살아오다 숙부 에드워드가 뇌종양 판정을 받아 미 상원에서 '케네디'란 이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2008년 1월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내 아버지와 같은 대통령(A President Like My Father)'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버락 오바마를 공개 지지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섰고, 뉴욕주 상원에서 국무장관에 기용된 힐러리 클린턴의 후임으로 뉴욕주 상원의원에 도전했으나 가문의 후광과 재력 이외에 정치적 재능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4]을 받으면서 워싱턴 중앙 정계 진출의 꿈을 접고 일본 주재 미국 대사 자리로 만족해야 했다.[5]
- 2010년 2월 14일 :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4남이자 아홉째인 에드워드 무어 "테드" 케네디 부부의 차남이자 셋째인 패트릭 케네디 연방 하원의원이 재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패트릭은 조울증이 있고 진통제 중독증에도 걸린 적이 있고 아버지와 아들 모두 알코올 과용문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 건강을 위한 입법활동에 주력해 왔다. 패트릭은 내년 초 임기가 끝나면 연방 의회와 행정부 고위직에서 케네디란 성씨는 당분간 사라질 전망이다. 하지만 가문이 크게 기울었어도 이 가문이 미 정가에 영원한 작별을 고할 것 같지는 않다. 최소한 5~6명의 또 다른 후손들이 정계 진출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가 전했다.
- 2011년 5월 11일 : 조지프 P. 케네디 부부의 3녀이자 다섯째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부부의 장녀이자 둘째인 마리아 오윙스 슈라이버 슈워제네거가 전직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남편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이혼을 발표했다. 이미 몇 개월째 별거 중이었다던 듯. 아놀드의 주지사 생활 이후의 미래에 대한 구심점을 찾지 못해 대화 끝에 갈라서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 5월 17일에 양측이 아놀드가 약 10여년 전에 가정부와 아이를 가졌다는 새로운 성명을 발표했다. 아놀드는 주지사 임기가 끝난 1월에 마리아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 이후부터 부부가 별거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지사 당선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니 정말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셈. 가정부의 이름은 밀드레드 퍼트리샤 바에나로, 슈워제네거 가정에서 20여년간 일했으며 올해 초 은퇴했다고 한다. 양육비는 당연히 아놀드가 계속 부담해 왔다는 듯. 이 사건의 영향 때문인지 거버네이터를 비롯해서 아놀드가 복귀할 예정이던 모든 프로젝트가 중단되어버렸다. 이 이혼 스캔들로 인하여 아놀드는 이런 아내를 배신함으로서 다시는 케네디 가에 발도 들여 놓을 수 없게 되어서 정치 생명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숨겨진 아들 두 명이 더 있다는 떡밥도 있다. 2011년 12월 17일에 마리아 슈라이버가 이혼은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혼여부 결정을 보류했다. 그래도 결국 이혼해서 둘은 남남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아직 별거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4년 9월 19일 결국 이혼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성탄절 전에 소송을 완료할 것이라고 한다.
- 2012년 7월 13일 : 케리 케네디가 졸피뎀으로 추정되는 것을 먹고 자동차 사고를 냈다. 케리는 매일 먹는 갑상선 약으로 인해 실수를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케리는 2014년 2월 28일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 ↑ IQ 60~70의 정신장애. 사람들은 그가 외조부모가 6촌간 이어서 우생학적으로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 ↑ 요르단계 미국인. 전설적인 프로파일러 로버트 레슬러는 이 사람을 면담한 후 전형적인 편집증으로 인해 이러한 사건을 저질렀다고 분석.
- ↑ 아라벨라가 사산되었기 때문에 첫째로 보기도 한다.
- ↑ 예를들어, 1988년 뉴욕시에 유권자 등록을 해놓고 실제 투표한 횟수가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데다 정치적 입장도 불확실했다. 게다가 언론과의 인터뷰도 서툴러서 30분을 인터뷰하면서 "있잖아요(You know)"란 말을 168번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 ↑ 하지만 존 F. 케네디의 유일하게 생존한 자녀가 대사로 왔다는 상징성 때문에 일본에서 칙사 대접을 받고 만족하고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