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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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이 일으키는 1군 법정 전염병. 병균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 환자의 배설물등으로 전파된다. 잠복기간은 1~5일간이다.

과거엔 호열자(虎烈刺)로 불렸다. 일본어로 虎烈剌(코레라)라고 음차한 것에서 랄(剌)자를 자(刺)로 잘못 읽은 것에 '호랑이가 맹렬하게 할퀴는 병'이라는 의미가 붙은 것. 꿈보다 해몽이라고도 할 만 하다.

2 증상 및 치료

이 균에 감염된 환자의 특징은 대부분 열이나 오한등의 감기 증세 없이 물설사만 주룩주룩 하는 것으로, 죽는 이유는 설사로 인한 탈수 증세가 심해져서이다.

콜레라에 걸렸을 때의 설사는 갈색이나 황색 또는 먹은 내용물의 색깔이 아니라, 밝은 황색이거나 흰 쌀뜨물같은 설사가 나온다. 때문에 설사가 지속되는 경우 배변상태를 잘 확인해야 한다.

콜레라가 간단한 설사와 달리 정말 무서운 이유는, 간단한 수분흡수장애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설사라면 콜레라의 경우 균이 내뿜는 독소(cholera toxin)가 장벽 세포의 단백질을 마비시켜 내부의 전해질(electrolyte)들을 있는대로 없는대로 죄다 장 내에 쏟아 붓기 때문이다. 결국 세포는 전해질 부족으로 죽어가고, 장 내의 전해질 농도로 인한 삼투압 현상으로 몸의 수분이 계속 빠져나가게 된다. 환자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변기에 앉아있을 힘조차 없기에 실제로 환자들은 구멍 뚫린 침대 위에 누워서 계속 온 몸의 물을 쏟아내는 상황이 된다. 이 때문에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 급히 수분보충을 해주지 않는 다면 수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 위에서 설명한 전해질 불균형 때문에 염도가 전혀 없는 순수한 물은 거의 흡수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 치명적인 결과가 불과 수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이유는, 우리 몸에서 항상성(homeostasis)를 유지하기 위한 작용 중에 가장 서투른 작용이 첫째로 온도 조절이고 둘째가 염도 조절이기 때문이다. 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수분을 잃어가게 되면, 피의 농도가 진해지고 그 와중에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다. 비슷한 연유에서 설사 증세가 있거나 땀을 많이 흘리면 수분과 전해질보충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각종 이온음료의 효과가 바로 수분과 전해질 보충 두 가지를 도와주는 것.

그래서 보통 정맥에 관을 꽂아 공급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 3세계와 같이 그런 기구들마저 부족한 경우를 위해 WHO에서는 입으로 전해질과 물을 공급하는 수액을 개발해서 사용한다. UNICEF등의 구호기관에서 나온 안내책자 등을 보면 설사증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한 소금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경구수액요법에 사용되는 전해질이다. 수액요법이 발달한 덕분에 콜레라 사망율은 어마어마하게 낮아졌다. 경구수액 요법에 대해서는 항목 참고.

구강수액 자체가 콜레라를 치료하는 건 아니나, 콜레라의 사망원인인 탈수증상으로 빠져나가는 수분만큼 수분과 전해질을 공급해서 죽음을 막는다는 어어없이 간단한 원리. 이런 싸고 간단한 치료방법이 나오기 전에는 콜레라는 사망률 40-70%에 한번 터지면 수천 수만명이 죽어나가던 대표적인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실제로 19세기에는 인도에서 러시아, 유럽, 영국, 북아메리카와 멕시코, 동아시아로 싸그리 전파되어 몇 년간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경구수액요법이 개발된 이후 콜레라로 인한 사망률은 1/14로 줄어들었다.

3 여러 가지 일화들

사실 이 콜레라는 세균이라는 존재를 인류가 처음으로 각인하는 것에 공헌한 질병으로 1883년 독일로베르트 코흐가 인도의 캘커타에서 비브리오균이 콜레라의 원인균이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독일의 과학자 막스 폰 페텐코퍼(1818~1901)는 1892년 10월 콜레라 환자의 설사에서 찾아낸 세균들을 한데 모아 먹기도 했다(...). 그것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증명하고자 마셨다. 당연히 그후 복통을 호소하며 입원했지만... 그런데 페텐코퍼는 약간의 설사증만 보였을 뿐 4일후에 퇴원하였을 정도로 멀쩡했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신이 난 그는 세균과 콜레라는 아무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돌아다녔다. 당시 페텐코퍼가 실험을 조작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페텐코퍼가 멀쩡한 이유에 대해선 몇 가지 추측이 있는데 이중에는 페텐코퍼의 위장이 콜레라 원인균을 분해할 정도로 튼튼해서(...) 감염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고 페텐코퍼가 무능한 의사냐면 절대 아니고 오히려 이 사람은 집과 통풍, 대기와 의복 등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현대 환경 위생학의 창시자로 불리던 유명한 의사이다. 그는 세균이 아니라 더러운 물이 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해왔기에 반대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세균 감염이 정설로 받아들이면서 페텐코퍼는 무척 실망했고 끝내 세균 감염설을 인정하지 않다가 세상을 떠났다. 실제 콜레라는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되는게 맞기 때문에 사실 페텐코퍼의 생각도 반은 맞았다(...). 단지 오염된 물에 사는 세균이 병을 일으킬 뿐.

...여기서 끝났으면 쓸쓸했을 법한 이야기일듯 하지만, 사실 페텐코퍼는 제자인 루돌프 에메리히를 길동무 삼아서 콜레라균을 마시게 만들었다. 위장이 튼튼해서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은 페텐코퍼에 비하여, 에메리히는 격렬한 중증에 걸려버려서 죽을뻔했을 정도로 위독한 상태까지 가버렸다. 에메리히는 퇴원이후, 세균 감염설을 끝까지 믿지 않으며 더럽혀진 스승을 위하여, 콜레라 감염 경로를 연구하고 발표한 논문으로 학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존 스노우라는 의사는 콜레라 때문에 고통받던 런던 소호에서 조사를 한 결과,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 바로 옆의 정화조가 부식되어 콜레라균이 포함된 소량의 똥물(...)이 펌프로 유입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하수 펌프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다.아니 애초에 왜 정화조를 펌프옆에다 설치한거지.. 그리고 이 동네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가서 물을 길어 마시면서 콜레라에서 해방된 적이 있다. 지금도 이 동네에는 존 스노우를 기리기 위해 그때의 지하수 펌프가 그대로 남아 있다.

비슷한 일례로 차이코프스키도 음식점에서 식사할 때 음료로 끓이지 않은 생수를 주문한 다음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행적이나 생활상 등을 봤을때 이는 극히 의심스러운 사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인들은 콜레라로 죽었다는 당국 발표에 대하여 장례식에서 무척 기분나뻐하며 이래놓고도 콜레라라고 허풍을 치네요?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콜레라는 당시 불치병이나 다름없었기에 이걸로 죽었다면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무려 6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으며 러시아 모스크바 정교회 주교를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이 장례식 미사까지 하고 음악 동료,친구들,지인들,친척들도 죄다 참석했다. 더불어 장례식 끝나고 콜레라라 유행했다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차이콥스키는 해당 항목에 서술된 걸 봐도 꽤 부유하게 살았으며 활동 영역도 부유층, 귀족층에서 살았다. 이들은 깨끗한 물을 마시고 당시 콜레라는 더럽고 가난한 빈민층이나 걸리는 병이었고 사실이었다. 당시 빈민층은 지저분한 물을 마시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콜레라에 걸려죽었다는 점에 있어선 지인들이나 당시 친척들도 참 어이없어 했다. 일각에서는 차이콥스키가 당대의 실권자인 스텐본크 톨몰 공작의 조카와 동성애 관계를 맺었고, 이것을 알아차린 공작에 의해서 자살을 강요당해서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또한 다른 주장으로는 공작이 황제에게 차이콥스키를 고소하였으며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에서 동성애는 죽음의 죄, 혹은 최소 종신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이 고소장을 넘겨받은 검찰부총장이자 챠이콥스키와는 법률학교 동창인 니콜라이 야코비가 동창들과 소규모적인 비밀 명예 재판을 열고 독극물에 의한 음독 자살을 종용했다는 증거도 여럿 있다. 이것은 콜레라의 증거로 언급되는 쌀뜨물 같은 설사가 비소를 먹은 경우에도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가 없는 탓에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생각했었으나, 1979년에 러시아 문화성에서 부검한 결과, 그의 몸에서 비소가 나왔다.

4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의 경우만 해도 1960-70년대에는 연례행사처럼 콜레라가 발생했고 1990년대까지도 여름에 물난리가 나면 콜레라와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돌곤 했다. 참고로, 마지막으로 콜레라가 돌았던 2001년 콜레라 사태 당시에는 8월 30일 첫 감염자 발견 이래 9월 17일까지 132명이 감염되었다.

해외에서 감염된 뒤 입국해서 걸리는 경우는 제외하고, 이 때를 기점으로 콜레라 국내 발병이 사라졌었다. 하지만, 2016년 들어서 다시 유행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콜레라/국내 발생 현황 문서 참고.

5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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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이라면 얄짤없는 모야시몬에선 콜레라균 역시 모에화했다. Vibrio cholerae를 모에화.

경구수액법이 아주 간단한 치료법임에도 근래에 와서야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타임슬립물에도 쓰이는데, 타임슬립 닥터 JIN 및 드라마 닥터 진에서도 이 병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은 이 병때문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소금설탕을 섞은 수액을 만들어 공급해준다. 닥터 진에서는 조청을 사용하는데, 한국에서 설탕이 제대로 보급된건 구한말~일제초기였으니 닥터 진 답지 않게 나름 고증에 충실(?)한 현지화. 여담으로 일본의 경우는 류큐시코쿠 일부 지역을 통해 설탕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 히무라 켄신의 부모님 역시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검정 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도 이 병 때문에 죽을 뻔했다.

5.1 영화 개벽

1821년부터 돌기 시작한 전염병 콜레라는 20차례나 가까이 19세기 조선을 괴롭혔다. 사람들은 이를 요괴의 장난이라 하여 괴질(怪疾)이라고 불렀다.
- 임권택 감독 영화 개벽 中에서
괴질은 결코 요괴의 장난이 아닙니다. 괴질도 천지음양의 조화일진데 괴질도 하늘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님을 하늘님으로 막아야할 것입니다. 섣부른 미신에들 빠지지들 마십시오. 물은 반드시 끓여먹을 것이며 가래침과 대변은 반드시 파묻으시고 가싯물을 함부로 버리지 말것이며 찬밥과 새밥을 섞지말고 흘린 밥일랑 주워먹지 마시고 누구에게든지 먹던 밥이나 헌 반찬을 대접하지 마시고 밥을 지을 때 지성으로 씻으시오. 그리고 몸을 자주 닦으시오.
-영화 개벽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덕화)

영화 개벽에서는 요괴의 장난이라하여 괴질(傀質)이라고 불리며 등장 하였다. 극중에 나오는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은 괴질은 요괴의 장난은 결코 아니다라며 요괴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도 하였다.

다만 실제로는 괴질은 콜레라 자체가 아니라, 콜레라를 포함한 각종 전염병 전반을 총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6 기타

콜레라 독소는 생물 내부의 전해질이 배출되도록 하는 특성 때문에 특정한 생리학 실험등에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당연히 특별관리대상제제.

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