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탈보 타고라(Talbot Tagora)는 영국의 탈보(구 루츠 그룹)가 푸조-시트로엥 그룹 산하에서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생산한 대형 세단이다. 지난 세대의 기함이었던 크라이슬러 180/2리터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준비한 유럽시장용 기함급 차량이었으나, 전임자처럼 별다른 호흥을 얻지 못했다.
2 역사
2.1 배경 및 개발 과정
1960년대 중반부터 프랑스의 생카(SIMCA) 및 스페인의 바레이로스(Barreiros)와 함께 미국 크라이슬러의 유럽 지사로 있었던 루츠 그룹에서는, 유럽 지역만을 위해 개발한 기함급 차량인 크라이슬러 180/2리터의 상업적 실패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크라이슬러 역시 1차 석유파동의 여파가 빠르게 없어져가는 시점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유럽의 대형 고급차 시장에 참여하고 싶어했고, 따라서 새로운 대형차 프로젝트로 C9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크라이슬러 알파인과 생카 호라이즌의 선례를 따라 기술 개발은 프랑스의 생카가 맡고, 디자인은 영국의 루츠 그룹이 맡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로이든 액스(Royden Axe)와 아트 블레이크슬리(Art Blakeslee)가 이끄는 루츠 그룹의 디자인 팀에서는 시트로엥 SM에서 영향을 받은 현대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대형 세단의 디자인을 제안했다. 본래는 낮은 벨트라인과 긴 휠베이스, 이로 인해 만들어진 넓은 실내공간, 뒷바퀴를 살짝 가린 뒷팬더, 그릴 대신 적용된 유리 패널[1], 수직형 후미등 등이 적용되어 있었는데, 미국 측 경영진들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디자인 변경을 지시했고[2], 따라서 앞뒤 펜더에 각을 넣고 벨트라인을 높였으며 후미등도 수평으로 바꾸고 평범한 그릴이 유리 패널 대신 장착되었다.
개발 과정에서 개발진들을 괴롭힌 중요 이슈 중 하나는 엔진이었는데, 대부분의 경쟁차들이 고급 사양에 6기통 엔진을 장착하는 상황에서 C9 프로젝트는 180/2리터의 4기통 2리터 엔진을 물려받을 예정이었고, 그보다 더 큰 엔진을 만들고 있질 않았다. 처음에는 미쓰비시로부터 직렬 6기통 엔진을 구하려고 했으나 테스트 과정에서 출력과 토크, 정숙성 모두가 떨어지는 바람에 푸조-르노-볼보의 PRV 2664cc V6 "도브린(Douvrin)" 엔진[3]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엔진 크기가 작으면서도 성능도 적절했지만, 이 엔진을 개발하는 데 관여했던 푸조가 경쟁 업체였던 크라이슬러를 경계하고 있었다.
또한 유럽 크라이슬러에서는 매년 6~7만대의 차량을 생산할 계획을 짰고, 프랑스 생카의 주 공장이었던 푸아시(Poissy)에서만 생산할 계획이었다. 크라이슬러에서는 생산 부문에 6천만 달러 이상의 돈을 투자해 당시 유럽 점유율 7퍼센트에다가 5퍼센트의 점유율을 더 추가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1979년 1월 1일, 리 아이아코카가 주역이 되어 위기를 수습하고 있었던 크라이슬러에서는 유럽 지사를 푸조에게 통째로 매각했고, 푸조가 루츠 그룹과 생카의 명줄을 담당하게 되었다. 비록 고급차 시장에 겹치는 차가 많음에도, 푸조에서는 C9가 워낙 급진적이라 개발을 중단시키키가 어려웠고, 대신 푸조가 직접 C9의 개발에 관여하기로 했다. 푸조에서는 일단 PRV V6엔진을 장착하는 것으로 결정을 짓고, 푸조 604와 시트로엥 CX의 틈세를 매꾸는 방식으로 차량을 판매[4]하기로 계획을 짰다. V6엔진 장착을 위해서 차량을 일부 수정[5]하고 계획을 다시 짜느라 개발 기간이 연장되었다.
엔진 라인업으로는, 앞서 말했던 V6엔진과 2304cc 푸조 터보디젤 엔진[6]이 확정되었으며, 6만대가 매년 팔릴 거라는 예상 때문에 크라이슬러 180에서 쓰던 2155cc 생카 4기통 엔진을 라인업에 추가했다. 개발 기간이 불과 몇 개월밖에 추가되지 않았기에 1980년 파리 오토살롱에서 "탈보 타고라"라는 이름으로 공개되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디자인 역시 여전히 혁신적인 느낌을 주었으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푸조 604와 너무 겹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영국 시장에서는 포드 그라나다 등의 다른 경쟁차들과 충분히 겨룰 만한 차로 인식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2.2 판매 및 생산
타고라는 당대 다른 대형차들처럼 앞엔진 뒷바퀴굴림 설계에 세로배치 엔진 설계로 이루어져 있었고, 변속기로는 4단이나 5단 수동, 그리고 4기통 엔진에 적용되는 3단 자동변속기가 제공되었다. 2155cc 생카 엔진은 OHC 구성에 2배럴 솔렉스(Solex) 카뷰레터를 얹어 115마력을 냈고, 4단 변속기 전용으로 GL[7]과 GLS 트림에서 고를 수 있었다. 2304cc 푸조 터보디젤 엔진은 OHV 구성에 최고출럭 80마력으로 DT 트림 전용이었으며, 2664cc PRV 엔진은 OHC 구성에 3배럴 웨버(Weber) 카뷰레터 2개[8]를 얹어 최고출력 166마력을 기록했고, 최고급 사양인 SX 트림[9]에서 "2.6 SX"로 제공되었다.
1981년 3월에는 모로코에서 시승단을 모아 놓고 차량을 시승하게 했는데, 당시 시승단의 반응은 "엔진과 차대 설계는 뛰어나지만 디자인에 카리스마가 없다"는 평가가 주류였다.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선 같은 시기 무난한 디자인의 중형차였던 탈보 솔라라(Solara)를 불려 놓은 차처럼 보였고, 특히 좋은 베이스에 비해 세부적인 디자인이 "고급차"로 불리기엔 너무 불충분했다. 게다가 오펠 레코드, 포드 그라나다, 로버 2300, 볼보 244 GL과 비교했던 시승기에서는 가격은 두번쩨로 비싼데, 정적 타고라 자체는 속력, 가속력, 실내공간, 차대 셜계 등의 분야에서 특별히 뛰어난 점이 딱히 없다는 평가도 나왔고, 호의적으로 평가된 핸들링 역시 그리 뛰어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2.2 GLS 트림을 시승해 본 오토카(Autocar) 지에서는 "훌륭하지만 아주 뛰어나진 않다"고 결론내렸으며, 카(Car) 지에서는 다른 경쟁차들과 비교시승을 하고 나서, 특히 기준점이자 최고 평가를 받은 볼보 차량과 비교하면서 "문제 많은 신입"으로 평가했다.[10]
타고라의 강점은 넓고 편안한 실내공간, 2.2리터 엔진의 연비, 넓은 트렁크 공간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오히려 볼보 244를 비롯한 다른 차들에게 밀리는 상황이었다. 즉 눈에 띄는 단점도, 뛰어난 장점도 없는 차라는 평가인데, 1979년에 닥쳐온 2차 석유파동과 딱히 없는 특장점, 낮선데다가 고급스러움이 부족한 디자인, 그리고 사실상 갑툭튀 수준이었던 탈보 브랜드로 출시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미 나름대로 명성을 쌓아 놓은 다른 경쟁차들의 견재와 부족한 홍보로 인해 제대로 묻혀 버렸다. 따라서 4년간 영국에서 19389대만 판매되고, 전 세계적으로 23400대 정도만 생산하고 단종되었으며 2016년 8윌 기준으로 9대가 영국에 등록되어 있다.- ↑ 번호판이 여기에 장착될 예정이었다.
- ↑ 특히 이때는 크라이슬러에게 있어서 정말 다급한 시기라, 급진적인 디자인을 내놓기에 적절한 시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 ↑ 3개 업체가 같이 사용하는 엔진으로, 푸조 604, 볼보 264/265, 르노 30, 심지어는 들로리안 DMC-12도 같은 엔진을 사용했다.
- ↑ 즉, 이미 푸조-시트로엥 그룹은 대형차를 여럿 판매중이라 C9/타고라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는 말이라서, 당시 개발진 중에서는 "차라리 604 후속으로 출시되어야 했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 ↑ 엔진 장착을 위해 앞바퀴를 앞으로 좀 더 뺐다.
- ↑ 다른 엔진들에 비해 좀 늦게 제공되었다.
- ↑ 4단 수동만 고를 수 있었으며, 파워스티어링이 옵션으로 제공되었다.
- ↑ 다른 차들은 카뷰레터 대신 연료 분사 장치가 적용되었고, 타고라는 출력을 높이기 위해 카뷰레터를 고수했다.
- ↑ 옵션이 훨씬 많았으나, 자동변속기는 제공되지 않았다. 당대 푸조 계열 차들 중에서 출력이 가장 높았고, 1083대만 생산되었다.
- ↑ 모터 스포츠(Motor Sport) 지에서 "운전하기 쉽고, 매우 편안하다"고 호의적으로 평가한 곳도 있긴 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