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존 서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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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my John Surgery
Ulnar Collateral Ligament (UCL) reconstruction.
팔꿈치 내측 인대 재건 수술

1 개요

투수의 던지는 팔에 일어나는 부상 중 가장 심각하고 재활기간이 길게 걸리는 두가지 부위가 팔꿈치 인대와 어깨 회전근(rotator cuff)이다. 이 중 어깨 회전근 수술은 성공확률 그 자체가 낮은 반면, 토미 존 서저리는 수술 자체는 매우 쉽고 성공률도 높으나 재활이 매우 어렵고 긴 수술이다. 이 때문에 투수들 최고의 절망이자 최후의 희망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 쓰이게 되는데 과장이 아니다.

명칭은 당시 팔꿈치 척골 측부인대 부상으로 데드암에 걸리고, 이 수술을 처음으로 받은 투수 토미 존에서 유래했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혹은 '팔꿈치 인대 교체 수술', '측부 인대 재건술'이라고 풀어쓰기도 한다.

2 역사

1974년 토미 존의 팔꿈치 인대 교체 수술의 성공으로 인해 프랭크 조브 박사는 일약 스포츠 의학계의 거두로 떠올랐고, 2012년에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그 후로도 201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꾸준히 활동했다. '조브 클리닉'은 프로야구의 투수들이 다치면 일단 향하는 병원이 되었고.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해야했던 샌디 쿠팩스가 이 수술을 받았더라면 계속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쿠팩스의 은퇴와 존의 수술이 단 8년 차이밖에 안난다는 것. 만일 조브 박사가 8년 일찍 이 수술법을 생각해냈다면 토미 존 서저리가 아니라 샌디 쿠팩스 서저리가 되었을 것이다.

보통 이 수술을 받으러 미국에 간다. 처음 이 수술이 시작된 것도 미국이고 미국에 토미 존 서저리 관련하여 유능한 의사가 많은 것도 이유가 되는 듯. 특히 이 수술을 제안한 프랭크 조브가 있던 LA 조브 클리닉(Kerlan-Jobe Orthopendics Clinic)이 가장 유명하고, 루이스 요컴 박사도 2013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많은 선수들의 수술을 집도했다. 일본에서는 이토 요시야스 박사가 있는 군마현에 있는 게이오 정형외과[1] 및 요코하마 미나미 공제병원[2]이 유명하다. 한국내에도 이석범 정형외과/김진섭 정형외과/CM충무병원 등 몇 군데에서 이 시술을 하고 있다.[3] 한국 내 스포츠 전문병원은 링크 참조 : ##

3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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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되거나 끊어진 인대는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통 다른 쪽의 힘줄을 이용해 교체해준다.[4][5] 요즘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손목 인대를 이용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인지라. 15% 정도는 저 인대가 없어서 허벅지나 발바닥에 있는 인대를 이용하기도 한다.

3.1 수술과정

1. 일단 손상된 인대를 제거한다.
2. 손상된 인대를 대체할 힘줄이 있는 부위에서 힘줄을 떼낸다(!).
3. 팔꿈치를 이루는 위쪽 뼈와 아래쪽 뼈에 각각 두 개씩의 구멍을 뚫는다.
4. 신선한(?) 힘줄을 8자 모양으로 끼운다.

요즘엔 8자 모양의 윗부분을 서로 연결시켜 줌으로써 신장력을 더 크게 하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식된 힘줄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대처럼 변해 팔꿈치를 지지해 줄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 더욱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수술 자체는 1~2시간 내외로 끝날정도로 간단하나 지독하게 버티기 힘든 건 그 다음. 수술 후 열흘간은 팔에 부목을 댄 채 움직이지 않아야 하며 부목을 제거한 후에는 보조기를 착용한 뒤 30도 가량 구부리고 100도 가량 펴는 운동을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운동량을 늘려가며 이 재활훈련은 1년 이상(약 12~18개월 정도)이 소요된다!

3.2 재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힘든 시기. 이 한마디로 축약 가능하다. 토미 존이 저 수술을 받던 시기엔 성공률이 5%에 불과할 정도로 암울했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에 들어선 기술이 발달했고 의사들의 경험도 많아져서 요즘엔 수술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수술 실패로 투수생명을 끝내는 선수는 드물다.(LA 조브 클리닉은 2014년 기준 수술 완치 가능성은 95% 이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재활을 잘못해서 훅 가는 선수들이 많다. 예를 들어 재활을 게을리 해서 예전만 못하게 된다든가, 급히 복귀하다가 진짜로 선수생명이 끝나버린다든가. 그래서 구단과 코치들이 이러한 선수들 재활에 유난히 신경쓰는 이유.

이 수술을 받은 토미 존의 말을 기억하라. "결코 서두르지 마세요. 빨리 회복하려고 서두른다고 팔이 빨리 낫는 건 아닙니다. 당신이 재활프로그램을 충실히 한다면 메이져리그에서 이제까지 당신이 던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선수들과 구단은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재활해야한다. 끝없던 절망을 헤쳐나와 다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4 투수 유형에 따른 부상정도

척골 측부인대 손상의 가능성이 가장 큰 투수유형은 아무래도 오버핸드가 되시겠다. 어떤 방식이건 어깨위로 던지는 것은 인체의 자연스런 움직임이 아닌지라 근육과 인대에 큰 무리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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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자세는 일명 inverted-W라는 피칭 동작이다. [6] 이런 용어가 나온 것은 inverted-W를 까기위한 것이 아니라,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위와 같이 팔꿈치를 어깨 위로 올려보자. 등쪽의 근육이 움직이게 된다. 인대가 상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어깨만을 이용하고 등 근육이 그에 따라 발달되지 않기 때문이기에, 아예 팔꿈치를 들어올려서 등쪽의 근육을 사용하면 구속 증가와 함께 등 근육도 발달되어 부상의 위험을 줄이는 일석이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크 프라이어를 비롯하여 애덤 웨인라이트 등 리그를 대표할만한 투수들이 부상을 당해서 비판의견도 만만찮은 편이다. 즉 위와 같이 던지는 팔의 팔꿈치를 등 뒤로 끌어당기거나 어깨 위로 올라오는 이런 자세는 팔꿈치에 무리가 많이 가기 때문에 척골 측부인대 손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언더핸드나 사이드암은 이런 부상이 거의 없다. 이쪽은 오버핸드나 스리쿼터에 비해 대체적으로 팔동작이 큰 투수들이 많고 팔꿈치를 능동적으로 쓰는 투수들이 드물기 때문이다.[7] 대신 허리와 무릎에 부하가 많이 걸린다.

5 수술 후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선수들의 경우 손상된 인대가 싱싱한 인대로 대체되므로 수술 후 오히려 구위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사실 토미 존 수술의 핵심은 1시간 정도밖에 안걸리는 수술 그 자체가 아니라 약 18개월(짧게는 12개월, 길게는 24개월) 가량 걸리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재활 과정이다. 최초의 시술자 토미 존을 비롯한 토미 존 수술 후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간 모든 선수는 이 고통스러운 재활 기간을 훌륭히 수행해낸 선수들이다.

이 수술을 받은 후 구속이 수술 전보다 좋아진 덕분에 멀쩡한 인대를 가지고 있는데도 토미 존 서저리를 하는 게 낫지 않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수술 받고 좋아진 건, 수술 전 인대상태가 심하게 안좋았거나 재활과 노력 혹은 투구폼을 다시 만들면서 발견하게 되는 행운 정도이다. 팔꿈치 인대 손상은 투수에겐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부상이기 때문에 손상된 인대로 던지는 공보다 수술받고 쉬면서 재활한 후 던지는 공이 빠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착시효과. 의사들도 토미 존 수술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운이 좋으면 다치기 전과 동일한 구속이라고 단언한다.[8]

6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선수

토미 존 이후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야구선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MLB에서는 이제 상당히 흔한 수술.

한국에서는 1992년 태평양 돌핀스의 신인투수였던 정민태가 최초로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알다시피 이후 매우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이후에는 류현진오승환이 토미 존 서저리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데 두 선수 모두 재활을 충실하게 한 탓에 수술전보다 구속이 증가되었다. 두 선수 모두 아마시절 이 수술을 받아서 부상 재발 위험때문에 드래프트에서 실력에 비해 픽 순위가 낮아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임창용의 경우에도 수술 전보다 수술 후 구속이 더 증가된 케이스.[9] 권오준, 권혁 등 한국에도 많은 선수들이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한기주도 수술을 받았다.

재활 실패 사례도 있는데 배영수의 경우엔 너무 빨리 재활을 끝내서 복귀 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0] 서재응의 경우에도 수술 후 전성기때의 구속은 결국 돌아오지 않아 제구/변화구 위주로 스타일을 바꾸었다. 주형광, 조성민은 복귀 시점을 너무 빨리 잡아서 부상 재발로 은퇴한 케이스.

주요한 피시술자들은 토미 존 서저리/피시술자 항목을 참조바람.

7 기타

토미 존 본인도 투수고 팔과 관련된 부상이어서 투수들만 받는 수술이라고 착각하기 쉬우나 야수는 물론 다른 종목 선수들도 팔꿈치 인대를 다치면 거의 다 이 방법으로 치료한다.(특히 미식축구쿼터백이 많이 받는 편.) 투수 말고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선수 중에는 추신수가 있다. 추신수의 경우 우익수 수비에서의 허슬플레이 중에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 받은거라고 하지만 사실 이전부터 고교 야구 시절 투수로 하면서 연투를 많이 했던 것도 쌓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도 홈런 타자 박병호가 2010시즌 중에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존 수술을 받았으며, 외야수 유한준도 2011시즌 직후에 받았다.

일반인은 사실 받을 일이 거의 없는 수술이다. 일반인이 팔의 인대가 끊어지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이며, 설령 끊어졌다해도 단순한 재건술만 시켜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야구 투수들은 쓰는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면 몸에서 다른 인대를 가져와 써야 할 정도로 팔이 재산 1호인 직업이다, 일반인들은 팔 한쪽 인대가 끊어졌다고 다른 팔에서 안 가져와도 잘 살 것이다.

많은 스포츠 선수들의 선수 생명 연장에 공헌한 프랭크 조브 박사는 2013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4년 3월 7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1. 권오준이 일본에서 수술을 받았고, 조정훈도 여기에서 받았다.
  2. 한화 이태양, 송광민이 여기서 받았다.
  3. 류현진과 오승환은 아마 시절에 한국내에서 시술을 받았다.
  4. 첫 수술을 받은 토미 존의 경우 반대쪽 팔, 즉 글러브를 낀 오른팔의 인대를 떼어내 교체했지만 지금도 간간히 이 수술법이 쓰인다.
  5. 인대와 힘줄은 별 구별없이 쓰이지만 명백히 다른 인체 구조물. 인대는 뼈와 뼈사이를 연결하는 구조물이고, 힘줄은 뼈와 근육을 연결해준다. 인대는 가는 여러개 고무줄 다발로 생각하면 되고, 힘줄은 강력하고 굵은 고무줄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그러니까 터져나간 고무줄 다발을 때내고 강하고 튼튼한 통고무줄을 뼈에 구멍을 뚫고 넣어주는 것.
  6. 흔히 한국에서는 견갑골장전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팔을 견갑골 쪽 으로 크게 끌어당긴다라는 의미에서 쓴다.
  7. 팔꿈치를 능동적으로 쓰는 사이드암 투수들이 없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투수가 한현희 신승현 그리고 역시나 토미존서저리를....
  8. 인대가 멀쩡햇을 때보다 구위가 증가한 경우도 있기는 하다. 바로 최초 수술자인 토미 존. 그래서 토미 존을 토미 존 서저리 최고의 성공사례로 뽑는다. 다만 이는 수술보다도 수술후 재활 당시 마이크 마셜과 함께 피칭 메카닉을 손본게 유효해서 그렇다고 한다.
  9. 2009년 5월 15일 한신과의 경기에서 160km/h 까지 찍힌적이 있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두 번째로 높은 구속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마크 크룬의 162km/h.
  10. 배영수는 역대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투수 중 팔꿈치 상태가 거의 최악이었다고 한다. 보통은 인대가 너덜너덜해지는 정도인데 배영수는 아예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박찬호가 배영수의 소식을 듣고 '2년 재활 생각해라'라고 조언을 했지만 본인의 의지인지 팀에서 그렇게 시켰는지 아무튼 1년만에 재활을 끝내고 복귀했다. 그 결과야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