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인치 네일스

(트렌트 레즈너에서 넘어옴)

파일:ErYvqYP.jpg
Nine Inch Nails

1 소개

Nine Inch Nails, NIИ

나인 인치 네일스는 미국의 인더스트리얼 밴드이다. 1988년 트렌트 레즈너에 의해서 결성되었다.
밴드라고는 하지만, 보컬리스트인 트렌트 레즈너의 원맨 밴드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서포트 멤버이다. 레코딩은 모두 레즈너 혼자서의 힘으로만 작업하는 것이 특징. 드럼을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레즈너가 맡고 있으며, 앨범을 낸 후 공연 활동을 할 때 마다 서포트 멤버를 모집하여 쓴다. 좀 과장하자면 한마디로 트렌트 레즈너 = NIИ.[1]

2 이름의 유래

밴드 이름인 Nine Inch Nails는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기보다는, 축약하기 쉬워서 이렇게 지었다는 설이 있다.지금은 폐간된 월간 핫뮤직 1998년 3월호에 따르면,밴드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 50개 정도의 이름을 정해두고 각각 종이에 써서 집 여기저기에 붙여두었는데,2주가 지나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이름이어서 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추측으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박힐때 쓰인 9인치의 대못을 상징한다는 설도 있으며 또는 프레디 크루거의 9인치 손톱을 나타낸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또한, 영어로 축약된 NIN은 현대 히브리어로 야훼의 4자음 문자[2]와 유사하다.

두꺼운 테두리 안의 NIИ으로 표현되는 Nine Inch Nails의 로고는 레즈너와 게리 탈파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첫번째 로고는 NIИ의 첫번째 싱글인 Down In It에서 선보였으며, 이것은 토킹 헤즈의 앨범인 Remain in Light에서의 타이버 칼먼의 타이포그래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3 역사

어릴 적부터 피아노 교육을 받았던 트렌트 레즈너는 Exotic BIrd 라는 밴드의 키보디스트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각 스튜디오에서 보조엔지니어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이 때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레즈너의 성실함을 눈여겨 본 한 스튜디오의 주인이 그에게 데모 레코딩을 무료로 허락하여 나인 인치 네일스의 첫 데모가 녹음될 수 있었다.

살던 지방 근처의 엘러게니 대학을 다녔는데, 대학시절엔 아웃사이더였다고 한다. 물론 위의 모든 작업을 다 학업과 겸하려면 놀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과연 그 노력은 결실을 거두어, 첫번째 앨범인 Pretty Hate Machine으로 화려하게 데뷔를 하였으며, [3] 인더스트리얼의 대부[4]라는 별명을 얻고 미국 록계의 주목을 받는다. 다만, 초창기 시절이이서 그런지 인더스트리얼이라기보다는 디페시 모드 풍의 신스팝에 가깝다는 평이 대부분이지만, 대부분의 평론가들과 음악지들은 이 음반에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 주목이라는게 상업적 주목이었다는것. 음반사 사장은 자기 마음대로 활동하고 싶은 레즈너를 노예처럼 부려먹었고, 건스 앤 로지스의 오프닝 액트에 집어넣는[5]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아이러니 하게도 건즈 앤 로지스의 Chinese Democracy를 들어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환장한 레즈너는 소송을 제기하고, 길고 지겨운 싸움끝에 인터스코프 사가 그를 업어간다. 이때 나온 명작이 Broken 앨범인데, 이 앨범의 NIN 이니셜이 소문자로 되어있는 것은 레코드 이적이 끝나기 전인 애매한 상황에서 나왔기 때문. 일단 상황은 해결되었으나, 이때의 일로 레즈너는 약물과 알코올에 빠지게 된다. 이 음반부터 그는 헤비메탈을 대폭 수용했으며, 굉장히 폭력적이고 분노에 차 있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Broken 앨범은 뮤직비디오가 잔인하다고 악명이 높으나, 더 브로큰 무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건강을 챙기고 싶다면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후 정신을 가다듬고 발매한 두번째 앨범인 NIN 최고의 걸작 The Downward Sprial을 발매한 후로는 "미국의 록의 구세주"라는 식으로 인기를 얻는다.[6] 매스컴과 언론에서의 띄워주기가 상당하기도 했으나 그만큼의 인기도 대단했던 것도 사실은 사실. 쟁쟁한 게스트 멤버들이 참여했으며 그 중엔 킹 크림슨의 에이드리언 빌류, 머틀리 크루의 토미 리도 있었다[7]. 전작 Broken의 분위기가 일종의 예고편이었다면, 이 음반에서는 그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적인 구성과 헤비메탈, 인더스트리얼을 한데 뭉쳐서 굉장히 꽉 짜인 훌륭한 컨셉트 음반을 만들어냈다.

Broken에서의 분노, Downward Spiral에서의 절망은 5년후 발매된 앨범 The Fragile에서 끔찍한 우울함과 적막함으로 승화되었다. 더블 CD라는 방대한 길이와, 본인이 회상하기에도 이런걸 만든게 믿기지 않는 엄청난 퀄리티를 자랑하며 히트를 쳤다.[8] 이 음반을 작업하면서 그는 굉장한 중압감과 자신의 위치에 대하여 굉장한 부담감을 안고 작업했다고 한다. 이때 당시의 일화로 그전까지의 작곡 방식은 트렌트 레즈너가 작곡을 한 후에, 게스트 뮤지션들이 연주를 해주는 방식이었는데 이 당시에 그는 마릴린 맨슨이 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며 밴드 멤버들과의 공동작곡을 고려했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앨범 작업 중 "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한번에 20가지 정도를 생각해내는데, 다른 멤버들이 그것을 모두 파악할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좀 견디기 힘들다."라는 한마디로 내가 최고니까 너네는 그냥 거들라는 언급을 하면서 다시금, 예전의 작곡방식으로 돌아갔다. 음반의 평은 CD1쪽의 평가가 좋은 평이고 CD2의 완성도는 다소, 아쉽다는 평이 많다. 다만, 대중적이지는 않은 앨범의 특성상 이 앨범은 빌보드 1위를 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10위 밖으로 밀려나갔다.

하지만 그의 정신적 불안은 영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과 약물 남용으로 고통받고 있던 그는 앨범 활동 후, 장기간의 치료와 안정을 거치고 The Fragile 발매 이후 6년 만에 깔끔한 느낌의 With Teeth로 돌아온다. 이 앨범은 레즈너가 컨디션을 되찾았다는데 그 의미가 있는 앨범이며 상업적으로도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 데에 성공한다. (이는 나인 인치 네일스 앨범 중 The Fragile과 함께 유이한 성적이다.) 그러나, 기존 팬들에게는 대중적이라는 평을 듣고 평점도 전작만하지 못했다.( 평론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좋은 편이었다.)
.
With Teeth를 발매한지 2년 후인 2007년, 트렌트 레즈너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컨셉 앨범 Year Zero를 발매한다.,[9] 앨범의 평가는 꽤 호평이었고, 메타크리틱 평균 점수 76%를 얻었다.

컨셉 앨범 Year Zero의 이야기는 2020년의 미국이 배경이다. 2020년은 미국 정부가 미국을 다시 태어난 해로 정의하고 Year 0이라고 선언한 해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미국은 무수히 많은 테러를 당해 왔고, 그에 맞서 미국 정부는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이행한다. 국가 기업인 Cedocore를 조직하여, 국민들이 사용하는 물에 파레핀이라는 약물을 탄다. 이 약물에 노출된 미국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무관심하고 근심 없게 바뀌게 된다. 이 통제적인 정부에 저항하는 지하 조직이 있는데, 이들은 Art Is Resistance라고 알려져있다. 이 조직의 과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권위에 저항하기 위해 미래의 웹사이트를 2007년으로 시간여행시켜 전송하여 2007년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과거를 바꿔 어두운 미래의 싹부터 없애려고 하고 있다.

참고로 이러한 스토리를 배경으로 한 ARPG가 앨범 발매 전에 발매되었고 이 게임의 일부로서 사용된, 아직 발매되지 않은 Year Zero의 노래가 담긴 USB가 NIИ의 콘서트 화장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2008년 7집 앨범 The Slip을 발표하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가 결혼식을 올리고 휴식기간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How to Destroy Angels 돌리고 있는 중.

2013년 2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서 활동재개를 선언했다 구체적인 스케줄은 나와있지 않으나 속속 유명 록페스티벌 라인업에 들어간다는 말이있으니 조만간 다시 만나볼수 있을 듯 하다. 이 기간에 Hesitation Marks도 완성하여 발매하였는데 이제는 완전히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호평이 대다수이다.

2015년 12월 19일 트렌트 레즈너가 twitter를 통해 2016년에 컴백을 한다고 확정지었다.

4 Discography

Nine Inch Nails의 주요 작품

Pretty Hate Machine (1989)Broken(EP) (1992)The Downward Spiral (1994)The Fragile (1999)With Teeth (2005)
Year Zero (2007)Ghosts I-IV (2008)The Slip (2008)Hesitation Marks (2013)

5 수상 경력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미 어워드에서 2번의 수상경력이 있다. [10]

Wish - 메탈 최우수작 (1992년)
Happiness in slavery - 메탈 최우수작 (1995년)

6 트리비아

  • 각 앨범 간의 발매 기간이 꽤 긴 아티스트 중 하나이다. 1년 간격으로 낸 것도 있으나 거의 4년 간격으로 앨범을 발매하는 수준. 물론 그 사이사이 라이브 앨범과 리믹스 앨범을 발매하여 본인의 실험적 음악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 코트니 러브에게 스토킹을 당한 적이 있다. 레즈너는 이를 피하기 위해 모텔방 발코니에서 점프하고, 스튜디오에 게이 포르노 사진을 도배하는 등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
  • 레즈너는 헬스 매니아 라고 한다. 유일하게 갖고 있는 취미가 음악감상과 식스팩 만들기라고. 그리고 근육돼지가 되었다
  •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이드 소프트웨어의 FPS게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해서 퀘이크 1의 사운드와 BGM을 맡은 바가 있다. 퀘이크 1에서 네일건도 그의 영향력의 일부. 네일건 탄약상자에는 아예 NIN 로고가 박혀있다. 둠1 공식 확장에피소드 4-1에서 빨간키를 얻는곳에 철창으로 가려진 부분을 열면 NIN이라고 새겨진 공간이 나타나는데 함정이다. 참고로 본인은 이 사운드트랙을 실패작으로 본다고 한다. 음침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방방 날아다니는 실제 게임플레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에 그렇다고 한다. 의 인기가 절정에 달릴때는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바로 둠을 하러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둠 3에서도 사운드 작업에 참가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중간에 빠지고[11], 최종본에는 다른 사람이 만든 사운드가 사용되었다. 유출된 알파버전의 사운드가 바로 레즈너의 작품으로, 최종본에 쓰인 사운드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 2012년에는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의 메인 테마를 맡기도 하였다. 레즈너 자신이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광팬임을 자처하며 자신이 테마를 맡은 것에 대해 기쁜 반응을 보였고, 게임의 발매를 앞둔 현재 메인 테마의 샘플만 공개됐음에도 레즈너의 인더스트리얼 록 성향과 근미래전을 다룬 게임의 분위기가 상당히 어울린다는 호평을 받았다.
  • 국내의 짝퉁 티셔츠 중에서는 NIN로고를 살짝 변용한 NINI(...)라는 길바닥 브랜드도 있다. 일본 유명 브랜드 넘버나인의 카피 제품이다.
  • 데이빗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와 올리버 스톤의 내츄럴 본 킬러스의 사운드트랙을 프로듀스하기도 했다. 평단과 팬들의 반응은 좋은 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운드트랙은 호평인 반면, 두 영화의 평들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로스트 하이웨이에 수록된 Perfect Drug는 자신이 작곡한 곡들 중에서 제일 적인 코러스가 등장하는 곡이라고 자평한 바 있다.
  • 레즈너는 본인 명의로 2010년에 NIN의 프로듀서인 애티커스 로스와 함께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사운드트랙을 작업했다. 라디오헤드Creep 합창 버전을 사용했던 트레일러와는 정 반대되는, 본인의 직전 앨범 Ghosts I-IV와 비슷한 스타일의 사운드트랙을 만들어 평단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심지어 LP판으로까지 판매하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밀었고, 83회 아카데미 사운드트랙 상도 수상했다.
  • 핀처의 차기작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사운드트랙까지 맡기로 했다. 캐런 오가 보컬을 맡은 레드 제플린의 〈이민자의 노래(Immigrant Song)〉 커버에 맞춘 트레일러부터 난리가 났고, 《소셜 네트워크》에서 탄력을 받아, 그리고 팬 및 평단의 압도적인 반응과 연말 시상 성적을 의식했는지, 영화 러닝타임보다 더 긴 3CD 구성으로 음반을 발매했다. 사운드트랙 평도 아주 좋고 영화 평도 덩달아 좋은 것까진 좋았으나, 이번에는 아카데미 후보에도 올라가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화를 냈다. 핀처의 차기작인 <나를 찾아줘>의 사운드트랙도 맡았다. 가수가 가수이니만큼 일반적인 리듬이 아닌 특유의 느낌을 준다.
  • 이해하기 어렵게도, 뉴에이지풍 크로스오버 음악가 양방언이 NIN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동질감까지 느낀다나. 국내에서는 김사랑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 전 레이블과 갈등이 있어 레이블과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자신이 파일 공유 사이트에 자신의 음악을 업로드했다. 그래서 계약은 끝냈지만 레즈너는 이후 자신의 사이트에 앨범을 업로드하고 공짜로 받든 돈내고 받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16억원($1.6 Million)의 매출을 올렸다
  • 2015년부터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에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
  1. 실제로 투어 멤버나 스튜디오 멤버의 교체설이 나오면서 팬덤이 흉흉할 때면 누군가가 다시금 일깨워주는 말이 NIИ=Trent Reznor이다.
  2. 히브리어에서 하느님을 나타내는 4자, 즉 YHWH, YHVH 등
  3. 이 당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레즈너가 스튜디오에 틀여박혀서 겨우 1집을 완성하고 오랜만에 밖을 나갔는데 이웃 주민이 수염이 덥수룩한 레즈너를 보고 당시 수배 중이던 범죄자인 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그만큼 녹음에 열정적이었다는 의미
  4. 레즈너는 이 말을 가장 싫어한다. 아니 애초에 본인 음악을 인더스트리얼이란 틀에 가두는걸 싫어한다고. 헌데 후발 인더스트리얼 밴드들이 영향받은 밴드를 언급할때 심심하면 나오는게 이(들)이다.
  5. 당시 일부 록팬들에겐 이펙트 떡칠 음악은 이단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무대에 온갖 투척물이 날아들고, NIN 티셔츠를 입은 사람 한명이 어디 구석에서 뛰어다니다가 휩쓸려 사라졌다고.(...)
  6. 이앨범은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라가는데, 본인은 이 앨범이 그렇게까지 팔리고 흥할줄 몰랐다고. 참고로 1위는 사운드가든의 Superunknown
  7. 크리스천인 빌류는 처음 온 날,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주기도문을 외웠다. 레즈너는 "죄송하지만 지금 저희 앨범은 Antichrist Superstar 앨범의 아버지 삘입니다."라고 말했고, 빌류는 "그런가? 알겠네" 라고 대답하곤 아주 강력한 리프를 연주했다. Mr.Self Destruct의 기타리프가 바로 이 리프의 어레인지 버전이다!
  8. 이 앨범은 빌보드 1위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하고, 발매 첫 주만에 228,000장을 팔아치운다.
  9. 이는 앨범 발매 기간이 꽤 길었던 NIИ에게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10. 그것도 두 노래 전부다 Broken 수록곡이다!
  11. 레즈너는 With Teeth 완성 전까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 좋지 않은 상태였다. 중독증 치료를 위해/완벽한 작업을 할 자신감이 없어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