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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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데이비드 린치 (David Lynch)
본명데이비드 키스 린치 (David Keith Lynch)
국적미국
출생1946년 1월 20일, 몬타나 주 미줄러
거주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학력펜실베니아 미술학교
직업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화가, 음악가
활동1966년 – 현재
조직데이비드 린치 재단, 초월 명상법
위원데이비드 린치 재단
배우자페기 렌츠 (1967 ~ 1974)
메리 피스크 (1977 ~ 1987)
메리 스위니 (2006 ~ 2006)
에밀리 스토플 (2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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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소개

미국영화 감독. 일명 컬트의 귀재.

가끔 이름이 같은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데이비드 핀처와 묶여 언급된다. 이 셋 중에서 가장 난해한 영화를 만든다. 크로넌버그 감독은 《폭력의 역사》 dvd 코멘터리에서 "나의 영화는 린치처럼 어렵지 않다."라고 말할 정도다. 감독이 변태라 난해하다 카더라

몬태나 주 미줄라에서 태어나 미술을 전공했으며, 1966년 〈6명의 아픈 사람들(Six Figures Getting Sick)〉이라는 단편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1977년 첫 장편영화 <이레이저헤드 Eraserhead>를 만들었으나 제대로 개봉도 하지 못했다. 내용도 난해하고 굉장히 기분 나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떤 극장주의 눈에 들어 심야영화로 장기상영하게 되고,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 때부터 그는 컬트의 귀재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이레이저헤드는 제작비가 부족해서 1972년부터 5년간 알바를 뛰면서 만들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빨간방>에서 주인공이 자기 집의 문을 열고 닫는 장면을 만드는데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고 언급한다. 주인공을 맡은 잭 낸스(1943~1996)는 미스터리하게 [[http://today.movie.naver.com/today/today.nhn?newSectionCode=SPECIAL_REPORT&sectionId=1801%7C죽었다.

이후 전설적인 코미디언인 멜 브룩스 눈에 띈다. 브룩스가 제작하고 린치가 감독한 두 번째 장편영화 <엘리펀트 맨 Elephant Man>는 1980년에 개봉한다. 조셉 메릭이라는 실존인물의 이야기로, 작품상을 포함,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에 지명된다. 그러나 전부 수상실패.

1983년 조지 루카스제다이의 귀환 감독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1984년 프랭크 허버트(한국어 제목은 <사구>)을 동명영화로 제작한다. 그러나 제작자의 과도한 편집으로 시망. 원래 4시간 분량이었으나 2시간으로 절반이 잘리고 엉망이 되었다. 원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연출하려고 하는데, 런닝타임을 16시간으로 만들고 살바도르 달리까지 출연시킨다는 말도 안되는 계획 때문에 당연히 린치에게 넘어갔다.

1986년 같은 제작자의 투자를 받아 <블루 벨벳 Blue Velvet>이라는 영화를 만든다. 전작과 달리 흥행에 성공하고 그의 황금기가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도 4시간 분량에서 2시간으로 편집이 되었다. DVD가 출시될 전까지는 삭제 장면들이 폐기되었다고 알려져 10분 정도 분량의 추가 편집본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5주년 기념 블루레이가 발매되면서 50분 이상의 삭제 장면이 추가되었다. 국내에는 미출시.

1990년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를 만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모티브로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이다. 그 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기묘하게도 린치는 자신만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추구한다면서 정작 영화 속 수많은 상징들은 전부 〈오즈의 마법사〉에서 가져왔다. 이것은 앨리스와 도로시의 신개념 융합

같은 해에 린치는 TV용 드라마인 트윈 픽스를 제작했다. 미스터리 수사극으로, 조용한 시골 마을의 아이돌격인 소녀가 시체로 발견되고 FBI 수사관이 파견되면서 마을과 주민들의 흑역사가 드러나는 내용이다. 시즌2로 막을 내렸고 1년 뒤 극장판도 나왔다.

1997년 <로스트 하이웨이 The Lost Highway>를 만든다. 지금까지도 씨네필 사이에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영화이며, 가장 난해하다.[1] 이 영화로 린치의 전성기 1부는 막을 내린다. 다만 OST는 대 호평. 스매싱 펌킨즈, 나인 인치 네일스, 마릴린 맨슨, 데이비드 보위, 매거진배리 애덤스, 람슈타인 같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1999년 <스트레이트 스토리 The Straight Story>를 만든다. 위독한 형을 보기 위해 트랙터를 타고 미 대륙을 횡단한 어느 노인의 실화를 각색했다. 어둡고 음산했던 전작들과 달리 밝고 감동적인 내용의 영화[2]였다. 린치가 이런 영화까지도 만들 수 있냐며 비평가들과 영화팬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겉으론 밝고 감동적이면서도 속을 보면 현실 속 어두움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이 영화로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노배우 리처드 판스워스는 그 이듬해 엽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했다. 자살의 이유는 으로 인한 고통 때문이라고.

2001년 TV 드라마 파일럿을 하나 제작했으나 외면당했다. 그 때 프랑스의 어느 영화제작사가 자금을 지원해서 40분 가량을 덧붙여 영화로 완성했으니, 그 이름은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 이 영화로 그는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고 다시 마니아들을 열광에 몰아넣는다.

2006년 <인랜드 엠파이어 Inland Empire>을 만들었다.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에 달하는 이 영화는 사실 로라 던(여배우, <광란의 사랑>의 여주인공)이 린치의 옆집으로 이사 왔는데, 둘이 우연히 만나서 수다 떨다 디지털 캠코더[3]로 짧은 동영상 몇 편을 찍기로 했고,[4] 그렇게 찍고 놀던 중 린치는 이것을 영화로 개봉하기로 결심하고 단편들을 모은 다음 몇몇 장면을 추가로 찍어 내놓은 것이다(...). 심지어 제목도 던과 수다떨다 나온 LA의 지역 이름을 그대로 차용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영화도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았다.

2008년 칸 영화제에서 특별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 Chacun son Cinema>의 한 편을 제작했으며, 그 해 칸 영화제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린치는 명상을 매우 좋아하며, 자신이 쓴 책 <데이비드 린치의 빨간 방>에서 자신이 명상에 빠지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명상교육 보급을 위한 자기 이름을 건 재단도 운영 중이다.

커피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자신의 이름으로 유기농 커피를 팔고 있기도 하다. 어떤 팬이 만든 커피 광고

최근에는 가수 모비(Moby)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 모비가 린치 광팬인데 안 쓴 필름 Footage라도 보내주십사하고 타진했는데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 모비가 광분을 하며 떡실신했다고 한다.

6년째 장편영화가 안나오고 있는데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단편 영화와 음반을 내는 중. 2013년 7월 8일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 나왔는데 노래가... 오진다. 요즘 젊은 애들보다 영감님들이 더 익스페리멘탈해요.

2016년, 트윈 픽스 새 시즌을 제작할 예정이다.

DVD나 블루레이가 나올때 챕터 구분 기능이 없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정확히는 감독이 관여한 블루레이나 DVD에만 없다.

전처였던 화가 페기 린치의 사이에 낳은 딸 제니퍼 챔버스 린치가 있다. 딸도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페데리코 펠리니와 생일이 같다, 그가 죽기 전에 병문안을 간 적이 있기도 하다.

캐리》에 출연한 시시 스페이섹과 그의 남편인 미술 감독 잭 피스크와 친구다. 첫 작품인 이레이저헤드를 후원하기도 했으며, 피부가 심각하게 손상된 사람(대본상에서는 한 행성에 사는 남자)로 나온다.
  1. 박찬욱도 자기 책에서 대놓고 깐 적 있다.
  2. 이우일은 만화로 이게 과연 밝고 감동적인거냐며 역시 린치답다는 평을 내렸다. 더불어 국내 개봉판 포스터에 나온 월트 디즈니가 드리는 올겨울 최고의 선물이란 문구 글을 보고 참 엿같네라고 만화로 깠다.
  3. 기종은 소니의 PD-150
  4. 린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만들 때까지도 디지털 영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디지털 캠코더를 접해보고 디지털 영화 촬영에 매료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