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퍼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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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키킹과 함께 공을 던지려는 퍼시벌

이름트로이 유진 퍼시벌 (Troy Eugene Percival)
생년월일1969년 8월 9일
국적미국
출신지캘리포니아 주 포타나
포지션투수 (마무리 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0년 드래프트 6라운드
소속팀캘리포니아·애너하임 에인절스 (1995-2004)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2005)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7)
탬파베이 레이스 (2008-2009)

전직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로, 에인절스에서 K-ROD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꾸준한 마무리로 활약했다. 하지만 퍼시벌도 K-ROD도 없는 지금의 천사네는... 지금은 거리신이 계신다! 국내 한정 별명으로는 '시발이형', '금기어'[1].

1 현역 시절

1.1 에인절스의 수호신

원래는 포수로 뛰었으나 투수로 전향한 사례. 포수로써는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해도 안 될 놈은 안 되더라 성장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퍼시벌의 강한 어깨를 주목한 코치들은 퍼시벌에게 마무리 투수로 전향할 것을 제의했고 퍼시벌은 그 후 마무리 투수로서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2]

1995년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며 빅리그로 콜업된 퍼시벌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개막전에서 팀이 2:3으로 털리는 와중에 뜬금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데뷔한다. 이것을 시작으로 첫 해에 중간계투로 29홀드와 1.9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고, 74이닝 동안 93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1996년부터 리 스미스를 대신하여 에인절스의 마무리로 본격 기용되게에 이른다.

퍼시벌은 부동의 마무리로 전환한 1996년, 36개의 세이브, 2.3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였다. 거기다 이 해에 퍼시벌은 74이닝 동안 100개의 탈삼진 (9이닝당 12.16개의 삼진을 잡은 셈)을 잡는데, 이로서 퍼시벌은 에인절스의 마무리로서는 역대 네번째로 100탈삼진을 기록하게 된다.

1997년에는 어깨 부상으로 주춤했으나, 1998년 42세이브를 거두며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2001년까지 4년 연속으로 30세이브를 올리면서 꾸준히 에인절스의 뒷문을 책임졌다. 2002년에는 퍼시벌과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등 불펜진의 활약에 개럿 앤더슨, 팀 새먼, 트로이 글로스 등을 중심으로 하는 강한 타선이 가세하면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데, 퍼시벌은 그 유명한 봉주신 본즈신[3]제프 켄트가 있었던 그래봤자 본즈/켄트 외 전부 잉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대결에서[4] 3차례나 뒷문을 잠그며 에인절스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마무리를 책임진다.

1.2 '첫번째' 은퇴

퍼시벌은 2002년 생애 두번째로 40세이브를 기록했고, 2004년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며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더 오래 있기엔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의 포스가 너무 강했고, 몸값이 엄청나게 비싼데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는 퍼시벌을 에인절스는 잡으려 하지 않았다. 나믿K믿 결국 퍼시벌은 에인절스를 쫓겨나다시피 떠나, 데뷔전 때 자신이 꽁꽁 묶었었던 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2년 계약을 맺는다. 짠돌이 디즈니 개갞기 해봐 그러나 팔꿈치 부상으로 연봉만 집어드시더니 결국 2006년 2월 은퇴를 선언한다. 2007년 퍼시벌은 에인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는 형식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개막전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퍼시벌은 에인절스에서만 통산 316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는 에인절스 프랜차이즈 최다 기록.

그리고 에인절스가 그토록 사랑하던 K-ROD는 역시나 돈문제로 팀과 틀어져 2009년 뉴욕 메츠로 떠나는 바람에 퍼시벌의 기록을 깨지 못했다. 게다가 여러 사건들이 겹치면서 K-ROD의 위엄도 예전같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더 참담한 것은 그 이후의 에인절스. 2009년 K-ROD 대신 콜로라도 로키스의 마무리 투수였던 좌완 브라이언 푸엔테스를 영입하고 푸엔테스가 48세이브를 기록하며 2009년 세이브 1위에 오르긴 했지만... 7블론세이브 1승 5패 방어율 3.93의 무늬만 클로저인 성적으로 불안을 주었고, 거기다 결정적으로 뉴욕 양키스와의 ALCS 2차전에서 연장 접전끝에 1점을 따낸 11회 말에 등판해 리그 공인 포스트시즌 막장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동점홈런을 쳐맞으면서 패배 원인을 제공하는등 전혀 믿음을 주지 못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불엔테스. 푸엔테스가 못미더우니까 푸엔테스를 대체하려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데려왔던 마무리 페르난도 로드니는 클로저 정착조차 실패하는 막장 제구로 불드니라는 비아냥까지 받으며 무너졌고[5], 로드니 대신 팜에서 끌어올린 강속구투수 조던 월든은 첫해 32세이브 10블론세이브의 로드니보다 더한 볼질+불질을 선보이더니 2012년엔 부진+부상으로 아예 전력에서 이탈, 허겁지겁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서 에르네스토 프리에리를 트레이드 해와서 기존의 좌완 스캇 다운스와 플래툰으로 겨우 마무리 자리를 땜빵하고 있다. 그야말로 퍼시발,K-ROD 이후의 에인절스 뒷문은 그야말로 흑역사.

그리고 한 때 시대를 빛낸 클로저가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는가 싶었는데...

1.3 카디널스와 레이스에서

내가 은퇴를 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에인절스와 웃으면서 은퇴한 줄 알았던 퍼시벌이었지만 그건 함정이었다. 에인절스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투수 인스트럭터로 후배들을 양성하던 퍼시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뜬금없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다시 계악한다. 카디널스에서의 첫해에는 세이브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불펜 투수로서 3승 4홀드와 1.8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나름의 공백기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08년 2년 간 8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탬파베이 레이스와 계약하여, 비록 평균자책점이 4점대 중반에 허덕이긴 했지만 28세이브를 거두면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그리고 2009년 부상으로 결국 "이제는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진짜로 은퇴를 선언했고, 그 뒤로 더 이상 퍼시벌은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이후 고등학교 야구팀에서 선수들을 지도해오고 있다가, 2014년에 UC 리버사이드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때가 되면 메이저리그 코치를 맡고 싶다는 듯. #

이후 2015년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자격을 얻어 이름을 올렸지만 고작 0.7%(4표)만 얻고 시원하게 광탈했다.
  1. 시벌, 혹은 시발 때문에 금기어로 등록되어서 어지간한 사이트에서는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2. 트레버 호프만도 유격수로 뛰었으나 부진하다, 강견 덕분에 투수로 전향해서 평생직장의 수호신으로 각성했다. 투수 전향의 좋은 예. 반면 크보는 글쎄..
  3. 2차전에서 9회초 11:9로 앞선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본즈와 만났는데, 자신있게 정면승부로 98마일 패스트볼을 던졌는데 그걸 본즈가 넘겨버렸다(...) 이 동영상 5분 38초부터.
  4. 2002년 월드시리즈 내내 에인절스는 선발투수가 한번도 6이닝 이상을 던지지 못했다.
  5. 그런데 계약 만료되어 쫓겨나듯 탬파베이 레이스로 이적한 그는 2012년 방어율 0.60 48세이브의 말도안되는 슈퍼클로저로 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