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판잣집의 모습. 이미지 출처 |
板子(ㅅ)집 / Shank, Shanty
1 개요
판자로 사방을 이어 둘러서 벽을 만들어 지은 집. 그렇기 때문에 허름한 경우가 많다. 이게 모여서 마을을 이루면 판자촌이 된다.
판자는 간단한 목재 가공품이며, 제대로 된 단열재를 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온기가 집 내부에 감돌기 힘들다. 부식 등 외부의 위협에 취약하다. 판자촌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
다른 사람의 땅에 허락 없이 집을 세워서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때는 대한민국 법률상 일단은 불법이다.[1] 정확히는 지어진 집에 들어가 사는 건 불법이 아닐 수도 있지만 허락 없이 집을 지으면 무조건 불법이다.[2]
실은 일제시대 '하꼬방'(はこばん, 箱版)의 순화어에 해당한다. 일제 당국의 산미증식계획 및 식민지 조선의 산업화는 결과적으로 농촌사회에서 빈민층으로 전락한 계층을 만들어냈고, 이들이 대도시의 달동네에 모여들어 아무렇게나 판잣집을 짓고 살았던 것. 일본어로는 상자로 지은 집이라고 하여 하꼬방이라고 했다. 외국에서 흔히 '슬럼가'라고 불리는 곳의 형성과정과 동일하다.
서울의 판자촌은 현재의 남산 갈월동 일대와 명동 뒤편으로 넓게 퍼져 있었고 청계천에도 청계 8~9가까지 이들 판잣집이 어지러이 얽혀있었다. 특히 6.25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들며 이들의 규모는 아현, 미아리, 용산까지 넓어져 산으로 올라가 '달동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게 되었으며[3],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도 판잣집 집락촌이 많이 늘어나게 된다. 대부분 이런 곳에는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동네가 많다. 이 때문에 주거개선 사업은 대한민국 정부의 최우선 정책사업 중 하나였는데, 와우아파트, 시범아파트사업, 소공동 개발, 여의도 개발, 심지어 강남 개발(당시는 영동개발)까지도 개발명목은 '주거환경 개선사업'이었다.
판잣집은 경제가 발전하고 특히 주택 200만호 공급사업의 일환인 1기 신도시 사업이 비교적 성공리에 마무리되며 거의 사라졌지만, 의외로 지금도 드문두문 남아 있다. 특히 부촌이라고 알려진 서울의 강남구 및 서초구 변두리에 이런 판자촌들이 숨어있다. 구룡마을, 재건마을 등이 그렇는데 여기에는 20세기 개발사의 일그러진 단면이 숨어 있다. 그 외에도 중소규모 도시의 외곽이나 도서 접경지역 등에서도 보인다.
반면, 정부의 협조 하에 자체적으로 판잣집 주민들이 다시 모여서 새로운 도시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기도 화성시 두레마을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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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을 관광화하는 경우도 있는데, 위 이미지의 청계천 판자촌 테마존이 이에 해당한다.
2 문학 속의 판잣집
-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무허가 판자촌이 난립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등장인물인 난장이가 직접 집을 지었다. 결국 해당 판잣집은 철거반원에 의해 철거된다.
- 최일남의 《노새 두 마리》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진다.
- 이범선의 《오발탄》에서 주인공인 철호 가족이 전후 해방촌의 판잣집에 거주한다.
-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서 주인공 권기용이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잃고 경찰로부터 감시당하는 이유가 광주대단지사건의 주동자로 휘말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