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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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권력의 중심지
서울의 맨해튼[1]
넓이 만능 측정기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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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의 전경[2]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있는 .
영등포구소년가장.
봄만 되면 떠나고 싶은 섬. 차막히니깐

버려진 모래섬에서 서울과 대한민국의 중심지로 발돋움한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KBS 등 국가 핵심 시설이 위치한 으로서 대한민국 정치, 경제, 연예계 자체를 '여의도' 로 지칭할 만큼 강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명칭의 기원

여의도는 역사적으로 잉화도(仍火島), 나의도(羅衣島), 여의도(汝矣島) 등으로 불렸는데, 이 명칭들의 유래는 '넓은 섬'이라는 뜻이다.

  • 잉화도(仍火島) : 잉(仍)은 고유어 '느' 또는 '너'를 한자 표기로 옮길 때 사용되는 글자이다. [3] 여기에 화(火)는 중세국어에서 '블'이라고 표기되는 바, 종합해보면 '너블섬' 정도의 의미가 된다.
  • 나의도(羅衣島) : 나(羅)는 '너'를 음차한 것이고, 옷 의(衣)자는 '벌'의 한자 표기로 보인다. 결국 '너벌섬'이라는 뜻. 나의주 (羅衣洲)라 불리기도 하였다.
  • 여의도(汝矣島) : 여(汝)자는 '너 여'자로 뜻을 빌린 것으로 보인다. 어조사 의(矣)자는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으나 유래가 '너벌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기존 명칭 '나의도'를 '여의도'로 바꾸는 과정에서 기록자의 실수가 개입된 것은 아닐까 추측된다.

일설에는 '여의도'가 물에 자주 잠기는 탓에 '너나 가져라'는 뜻의 '너의섬'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근거가 희박한 이야기이다. 니나 가라 여의도 웬만큼 큰 물난리가 아니고서야 여의도 전체가 물에 잠기는 일은 드물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주인없는 땅도 아닌 조선왕조 내내 국립목장으로 사용되던 토지를 '너나 가져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낮다.

발음의 동일성 때문에 여의도의 '여의'를 '여의주'(如意珠)의 여의로 잘못 아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사실 용은 고대로부터 '물'과 관련이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4] 기다란 한강을 용에 비유하면 여의도는 마치 그 용이 손에 쥐고 있는 여의주와 비슷하기는 하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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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구한말 이전

근대 이전에는 농사에 쓸모가 없던 별 볼 일 없는 모래섬이었다. 그렇지만 섬 서북쪽에 가축을 키울수있을 정도의 수풀이 우거진 나지막한 산(양말산, 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있었던데다가 섬 지형 특성상 가축이 달아날 염려가 없어 방목하기 좋았기 때문에 동물을 키우는 목축지로 사용되었다.

<영등포의 역사와 지명이야기>(민긍기)에서 조선왕조 이전의 여의도는 지금의 영등포, 금천, 광명 일대와 함께 잉벌노 땅이었을 것으로 비정하고 있다.

세종 3년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수연(水碾)과 잉화도(仍火島)에서 양·돼지·닭·오리·기러기 등을 나누어 길렀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왕조 초기부터 이 곳에 국립목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종 25년 편찬된 신증동국전지승람에는 '잉화도(仍火島)'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어 "서강(西江) 남쪽에 있고 축목장(畜牧場)이 있다. 사축서 전생서(司畜署 典牲署)의 관원 한사람씩을 보내어 목축을 감독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명종 11년(1556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잉화도에는 전생서와 사축서의 관노비들이 거주하면서 이들이 근친 간 통혼을 일삼고 물을 건널 때에도 함부로 옷을 벗으며 남녀 간에 손을 잡고 다니는 바 습속이 음란하므로, 섬의 인가를 모두 철거하여 서울의 본청[5]으로 옮기도록 하고, 가축 기르는 일은 일체 남자만 하도록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후에 다시 촌락이 형성되었는지 영조 27년(1751년) '도성3군문분계총록'[6]에서는 한성부 북부 연희방 내에 여의도계(契)라는 구역이 등장한다. 여의도라는 명칭이 최초로 등장한 것이다.

고종 대에 편찬된 '동국여지비고'에서 " 나의주(여의도)는 예전에 목장이 있어서 사축서와 전성서의 관원을 보냈으나 이를 폐지하였다. 지금(고종 시절)은 사축서의 양 50마리, 염소 60마리 만을 놓아기른다"고 기술되어 있다.

3.2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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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비행장의 모습. 갓 완공된 윤중제(둑)와 서울대교(현 마포대교)와 서울교의 모습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1960년대 말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가 1916년 간이 비행장[7]을 건설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비행기가 발명된 것이 1908년으로, 아직 항공기 역사의 극초반이었으므로 자연히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1920년 이탈리아의 공군중위 페라린과 마지에로가 조종하는 공군기가 처음으로 여의도에 착륙하여 서울 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탈리아와 일본이 서로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행사를 치르기로 한 것인데, 원래는 신의주에만 기착하고 서울은 상공만 선회하고 가려 했으나 서울 시민들이 간절히 원한다는 소식에 서울에 기착한다.

이 당시 수만명의 인파가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아침부터 여의도를 가득 메웠다고 하며, 착륙한 조종사들은 악단과 무용수 등 극진한 대접을 받고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1922년 안창남의 고향방문 비행으로 인하여 여의도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 항목 참조.

1929년 4월에는 여의도비행장이 본격적으로 정식비행장이 되고 일본-한국-만주를 잇는 항공수송의 요지로 되어 비행장이 여의도 전체를 거의 뒤덮는 형식이 되었다.

하지만 여의도 비행장은 장마철마다 침수되는 문제로 인해 일제 당시인 1936년부터 이미 김포비행장(현 김포국제공항)과 투 트랙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갓 창설된 대한민국 공군은 장마철마다 짐을 싸서 옮겼다가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이윽고 1958년 김포국제공항으로 여객 업무가 이관되고 공군기지 자체는 1971년까지 남아 있다가 완전히 폐쇄되었다. 이 즈음부터 밤섬 등의 면적을 줄이면서 간척 사업이 시작되었다.

3.3 여의도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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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여의도 개발계획. 현재와 비슷해 보이지만 디테일 면에서 상당히 다르다. 동서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1층은 차로, 2층은 보도데크로 이루어져 있고[8] 중앙부에 상업지구가 들어가 있다. 좌측(서쪽)에는 국회의사당과 서울시청, 우측에는 법조단지가 예정되었다.

비행장이 폐쇄된 이후 김현옥 서울특별시장이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신시가지 개발을 목적으로 여의도 개발 계획을 세웠고, 1970년 2월 10일 밤섬 폭파로부터 불과 110일만에 여의도 윤중제(제방)가 준공되었다. 당시 김수근은 그의 도쿄대학 은사였던 단게 겐조(丹下健三)의 '도쿄계획 1960'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여의도종합개발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지금 보아도 상당히 SF적인 입체도시 계획이다. 그러나 윤중제 공사만으로도 서울시 재정은 상당한 압박을 받고, 김현옥이 벌인 다른 동시다발적 공사 중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면서 김현옥은 경질된다.[9] 참고로 1988년 이전에는 광역자치단체인 시에 속한 구(區)는 자치단체가 아니었고 특별시·직할시에 속한 구든 도(道)소속 시에 속한 구든 모두 일반구였다.]

김현옥의 후임인 양택식 시장은 김수근의 입체도시 계획을 완전히 갈아엎고 여의도를 평면계획으로 변경하여 일반에 분양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서울시청 이전 계획과 함께 여의도 지역을 전국 유일의 야간통행금지 해제 지역으로 만들겠다고 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 추후 여의도 택지 사업 대금은 실제로 빈사 상태의 서울시 회계장부를 겨우 숨통 트이게 만들었으며, 이 중 10억원이 전용되어 개통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서울 지하철 1호선 종로구간이다.

1971년 첫 입주가 이루어진 시범아파트는 양택식 시장의 민자사업 중 첫 단추에 해당한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인해 서울시는 민간으로부터 강한 불신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시 입장에서는 이러한 인식을 일거에 해소하려는 전시효과도 노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도 입주하려 하지 않아서 공무원 등에게 반강제로 입주케 하기도 했으나 1974년 삼익주택, 한양건설을 비롯한 민간 건설 사업자들도 진출,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민간 고층 아파트 단지[10]가 생겼으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고층 고속 엘리베이터, 중앙 집중식 난방 등이 설치되었고 특히 여의도를 특별 학군으로 분류하는 조치를 단행하여 소득 높은 고학력층들이 많이 이주했다.

이어서 1968년 첫 삽을 뜬 대한민국 국회의사당1975년 8월 15일에 준공되었다. 원래 동여의도에는 법원과 검찰청 등 법조단지가 계획되어 있었으나[11] 이 부지가 시범아파트로 팔리며 김수근 사단의 여의도 개발계획은 좌초되고, 이어서 5.16광장(현재의 여의도공원)이 여의도 한가운데를 떡하니 가르고 들어오면서 여의도 입체도시 계획은 완전히 박살나게 된다. 당시 한국 재정사정으로 볼 때 어차피 실현하기는 어려웠겠지만, 만약 여의도 계획이 실현되었으면 종로-마포-여의도-영등포-부천-인천을 잇는 선형 도시계획 메갈로폴리스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도쿄계획 1960의 모방이란 얘기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도쿄계획 역시 선형계획이기 때문.) 하지만 구자춘 시장에 의해 서울의 도시계획은 강남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고.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지 않게 되면서 여의도는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된다.[12] 그러나 서울특별시의 부도심 중 하나로 급속하게 개발이 진행되어 대한민국의 주요 기능 중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 요지 중 하나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일단 국회가 이전할 일은 없다

3.4 1980년대 이후

1976년 KBS 사옥이 준공되고, 1980년 TBC(현 KBS 별관), 1982년 MBC, 1990년 SBS가 입주하고 다수의 증권업체와 금융기관이 들어서는 등... 다만 방송가의 경우는 상당수가 여의도를 떠나 상암DMC로 밀집하면서 현재는 KBS만이 여의도에 남아 있는 상태.

이 시기에 서울 지하철 5호선이 들어와 도심과 연결되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서울특별시의 3핵 중 하나로 무섭게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단 여기에 들어서기로 예정된 초고층 빌딩은 서울국제금융센터(SIFC)와 전국경제인연합회신사옥(전경련회관), 파크원, 교원공제회빌딩 등... 여러모로 10년 뒤 스카이라인이 많이 기대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다만 이런 급속한 재개발 와중에 여의도의 공실률이 높아진 건 문제. 파크원이 완공되고 동여의도 일대가 급속히 재개발되면 심화될 걸로 보인다. 서여의도 재개발 어떻게하지

2030년 달성 예정으로 작성된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여의도는 한양도성, 강남과 함께 서울의 3도심중 하나로 지정되어 육성될 예정이다. 지금도 3핵중 하나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법정계획인 도시기본계획에 반영된건 처음.

4 면적

언론에서 어느 지역의 넓이를 대충 가늠해서 표시할 때 항상 여의도 면적과 비교한다. 일본 언론이 항상 도쿄돔의 몇 배라고 표현하는 것에 비하면 한국 쪽 스케일이 좀 더 크다 잠실야구장 몇 배 크기라고도 하잖아 가령 '새로 만들어지는 수도권 공단의 넓이는 여의도의 20배'라는 식. 면적계의 전투력 측정기. 지방민들에겐 좀처럼 감이 안 잡히는 단위라는 게 함정 사실 수도권 사람들도 감이 그리 잘 잡히진 않는다.

여의도동의 공식적 면적은 8.48 km2로, 이 경우 (坪)으로 환산했을 때 약 2,565,200평이 된다. 여의도 1배 크기 그런데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여의도 면적'의 기준은 4.5 km2심시티5 가장 큰 맵이 4 km2다!! 여의도에서 즐인데, 이는 제방 바깥의 한강 둔치까지 포함한 면적이다. 8.48 km2는 어디까지나 여의도동의 면적으로 한강 수역+밤섬의 일부를 더한 것이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섬의 면적이 아니다.

결국 2012년에 국토해양부에서 여의도로 면적을 비교할 때는 윤중로 제방 안쪽 면적인 2.9 km2를 기준으로 하기로 정했다. 이를 평으로 환산하면 약 87만 평, 290 헥타르로 순수 택지로서의 여의도를 계산할 때는 이 쪽이 기준이다. #여의도 면적과 관련하여 다룬 신문기사 그냥 87만 평이라고 외워두고 비교하자 앞으로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고 기사를 쓸 때는 2.9 km2를 기준으로하자.

참고로 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의하면 여의도 면적에 비교하는건 지방차별적인 표현이라고 깐다(...)

5 구성

행정구역으로는 영등포구에 속해 있으며, 대표적인 부촌 중 한 곳으로 영등포구 평균 땅값의 상승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경제적인 요인 뿐 아니라 정치적 지지등의 성향에 있어서도 여의도는 타 영등포구 지역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형국이다. 여의도공원을 기점으로 국회의사당쪽은 서여의도이고 63빌딩쪽은 동여의도로 구분된다.

국회의사당과 함께 한 때는 3대 지상파 방송국인 KBS, MBC, SBS가 모두 여기에 있어서 방송중심지로 여겨졌으나 2004년 SBS가 양천구 목동으로 사옥을 이전했고 MBC도 일부는 일산으로, 나머지는 2014년에 디지털미디어시티[13]로 완전히 이전해서 이제는 KBS만 있다. KBS도 일부 부서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있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여의도는 그 옛날 국회의사당을 짓던 시절의 의원들께서 미관에 좋지 않다며 고도 제한을 거는 바람에 고층 빌딩이 적다.[14]

이 때문에 서여의도에 있는 회사들의 건물 층수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대림이라든가 삼환이라든가 현대카드[15]같은 회사들의 층수는 그렇게 높지 않다.

KBS 본관과 신관, 국민일보 본사, 한국산업은행, 한국정책금융공사, 중소기업중앙회도 서여의도에 위치한다.

반면 동여의도가 꽤 번화하다. 강남, 도심과는 또 다르게 서울의 주요 금융센터이다. 1950년대 이후 부터 서울 남대문로가 금융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면, 섬 개발 후 증권사들이 모여들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이 곳이 금융의 중심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월스트리트로 불려지고 있다. 옛날에는 한국거래소본사가 있었다.[16] 하지만 여의도에 있는 거래소지점에서 증권중개업무를 처리. 증권매매를 실질적으로 하는 한국예탁결제원 본사도 여기에 위치. 기술적으로 장내증권매매의 처리속도가 여의도에서 가장 빠르며 여의도에서 멀어질 수록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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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여의도 증권가 빌딩들의 모습[17].

이에 따라 약속이나 한 것처럼 미래에셋대우,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유안타증권[18], 하나금융투자, 미래에셋증권[19] 대신증권, 유화증권, 교보증권, 이트레이드증권, 한화증권, 유진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SK증권, 하이투자증권, 메리츠종합금융증권, 부국증권, 동부증권, 한양증권, IBK투자증권, HMC투자증권, 신영증권이 동여의도에 모여 있다. 그외 국민은행, 한국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영업부는 여의도공원 근처에 있다. [20] 이러한 특성 덕분에 여의도 지역을 관할하는 영등포세무서의 경우 서울 도심인 남대문세무서와 함께 세무서 별 전국 세수 실적 랭킹 1,2위를 다투고 있다.조세일보 기사 참조 이는 법인세를 비롯하여, 주식 등을 거래할 때 발생하는 증권거래세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 이 곳에 증권사 본사가 밀집한 영향으로 본사가 납부하는 증권거래세의 상당수가 관할 세무서인 영등포세무서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등이 부산광역시로 이전하면서 부산 수영구 세무서가 전국 1위를 찍었다. 영등포세무서는 4위로 추락. 기사

63빌딩을 비롯한 LG 트윈타워(34층, 144m), 서울국제금융센터(55층, 284m), S트레뉴(36층, 165m), 전경련회관( FKI타워 50층, 245m), 파크원(2014년 현재 공사중단), 금호리첸시아(40층, 151m)와 같은 고층빌딩은 동여의도에 집중해 있다. 여의도성모병원이 63빌딩 근처에 있으며, 여러 아파트들과 학교들[21] 역시 동여의도에 몰려있다. KBS 별관[22]샛강역 근처에 있는데 본관 및 신관은 여의도공원 건너편에 있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영등포구에 위치한 유일한 대사관이다.

주거형태의 경우 개인주택과 단독주택없고 모두 아파트, 오피스텔, 주상복합공동주택 밖에 없다. 1970년대 중반부터 아파트가 들어선지라 노후한 아파트가 굉장히 많으며 실제로 몇몇 단지는 재건축을 완료하고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있다. 계획은 있지만 진전은 없을뿐
현재 국제금융로 10길을 경계로 한 쪽은 여의도중학교(한양, 삼익, 장미, 목화, 공작, 서울아파트), 다른 한 쪽은 윤중중학교로 배정이 되는데 윤중중학교로 배정되는 쪽은 인근의 신길동, 대방동 아이들과 섞이는 걸 꺼려해서 배정기간에 위장전입하는 사례가 많다. 헌데 이 길을 중심으로 윤중중쪽으로 배정되는 아파트들이 대부분 자이, 리첸시아, 트럼프월드, 롯데캐슬,리버타워 등등의 고가 주상복합이 대부분이라 그 코딱지만한 동네에서도 나름의 부심이 있는 편.. 그렇다고 여의도중 배정되는 아파트들이 싼 것도 아닌데 볼때마다 이해 불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날 때마다 "이번 수능 난이도가 어땠나요?"라고 물어보는 뉴스는 여의도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괜히 멀리 가기 귀찮기 때문이다(…)[23] 마찬가지 이유로 "매서운 한파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하는 식의 자료화면도 보통 샛강 건너편의 대방역 근처에서 찍는다.[24]

의료시설로는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도 동여의도에 있다. 세계적으로 규모가 크다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여기, 정확히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여의도에 존재한다.

6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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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는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다. 국회의사당, 여의도한강공원[25], 샛강생태공원, 한강 유람선, 63빌딩, 여의도공원벚꽃길 등이 유명하다. 특히 매년 10월 초순에 한화그룹이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불꽃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인기도 좋은 편. 다만 과도한 관람객[26] 밀집으로 인한 교통 혼잡이나 쓰레기 처리 문제, 휴대 전화 이용 불가 및 소음 문제로 인하여 여의도 주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축제마다 벌어지는 여의나루역의 미어터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27]

7 교통

이 섬에 존재하는 지하철역으로는 여의도역(5호선, 9호선), 여의나루역(5호선), 국회의사당역(9호선), 샛강역(9호선)이 있다. 여의도 공원 부근에는 버스 환승 센터도 존재한다. 서울 시내 버스나 혹은 부천 시내 버스들이 많이 다닌다. 이 섬에 있는 지하철역은 아니지만 샛강 건너 대방역(1호선)에서 내려 영등포10, 영등포11 등의 버스 노선으로 환승하거나 여의도 동쪽이라면 걸어서 여의도로 진입하는 방법도 있다.[28] 또 여의도에서 인접한 영등포역(1호선)이나 신길역(1호선, 5호선)에서 내려서 여의도 방향 버스로 환승하기도 한다.[29] 1호선 신길역에서는 샛강다리를 통해 여의도로 걸어서 진입할 수 있다. 여의도와 별 상관없어 보일수도 있으나 2호선이나 6호선 유저 중에 5호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여의도 서부 등의 지역으로 가는 환승객들은 2호선 신촌역이나 광흥창역 등에서 153, 753, 5713번 등으로 환승하기도 한다. 광흥창역 환승을 위해서 맞춤버스 8153번이 따로 존재했을 정도. 5호선도 없을 때는 더 심하였겠지만, 9호선이 개통하기 전까지는 올림픽대로노들길 등의 고속화도로를 제외하면 영등포 및 마포 방면에서 수직방면으로만 교량이 연결되어 있는 여의도의 특성상 당산역이나 노량진역 등지는 여의도에서 직선거리 상으로는 바로 옆인데 샛강이나 노들길. 올림픽대로, 경부선 등의 장애물에 가로막혀 여의도로 가는 교통편이 영 좋지 못한 편이었는데 9호선 개통으로 여의도로 진입하기 꽤 좋아졌다. 이로 인해 여의도가 회차지점이던 상당수 노선들이 수요를 잃고 여의도 구간이 폐선되기도 하였다.

또한 6권역을 지나는 상당수의 버스 노선들이 여의도를 경유하며. 461, 463번 등 상당수 노선의 회차지점이기도 하다. 서울특별시의 어느 지역이 안 그렇겠냐만은 업무지역이라는 여의도의 특성 및 사방이 강으로 둘러싸인 여의도의 특성상 이런 여의도 경유 노선들을 통해 매일 아침 여의도로 들어가려는 혹은 저녁에 여의도를 빠져 나오려는 사람들의 전쟁이 벌어진다. 여의도에 진입하기 직전 혹은 진출하기 직전 정류장에서는 버스에 탈 수가 없을 정도이다. 더불어 여의도와는 별 볼일 없지만 이들 노선을 타고 여의도를 통과하여야 하는 승객들도 더불어 지옥을 맛본다.

실제로 여의도 내에서는[30] '영등포'라 하면 샛강 건너편에 있는 '영등포구 본토(또는 영등포역 일대)'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여의도 자체가 영등포구 관할인데도 말이다.

현재 샛강역에서 서울 경전철 신림선이 공사중이고 서울 경전철 서부선, 신안산선도 들어올 계획이나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자전거 대여서비스가 있어서 1,000원으로 24시간 동안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는 대여 코드를 살수 있다. 여의도 중요 기점마다 대여소가 설치되어 있어 여의도를 둘러보거나 단거리 이용시에 매우 도움이 된다. T-Money나 휴대폰 소액결제 등으로 결제하면 6자리의 코드를 주는데, 이것을 자전거에 입력하면 대여가 가능하다. 대여 코드 유효기간은 24시간이나, 한번 탈 때 총 4시간을 탈수 있고 이 시간안에는 반납 후 재대여가 가능하다.

(주의 : 대여시 탈 수 있는 4시간 중에서 연속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 1시간이라 이후 이용 1시간마다 1,000원씩 올라간다. 그러니 1시간 이상 타려면 1시간씩 조금 못 되게 타고 다시 대여하는 것이 좋다.[31] 또한 여의도 곳곳에 스테이션이 있기는 하지만 제방 위에만 있고, 당연하지만 한강공원의 자전거 대여소 등과는 호환되지 않는다. 무턱대고 자전거 끌고 한강공원으로 내려갔다가 반납시간이 임박하여 자전거 스테이션 찾다가 추가요금이 부과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미리미리 스테이션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32] )

또한 정액제로 자전거를 몇 개월 동안 빌릴수 있는 방법도 있으니 서울특별시 공공자전거를 참조하길...

주말이나 공휴일에 여의도 한강공원에 자가용을 가지고 오진 말길 바란다. 일단 공원 주차장은 만차일 뿐만 아니라 '주말인데 설마 단속하겠어?' 하는 생각으로 근처에 무단주차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여의도는 특별관리대상이다. 일요일이고 나발이고 견인되기 싫으면 주차 문제를 해결하고 오든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여의나루역 근처에 영등포구 소속 견인차 수십대씩 상주하니 뭐 알아서 판단하도록..

8 상업

2012년 서울국제금융센터 내에 IFC몰(구 여의도 중소기업박람회장 자리, 별명은 "리버")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렇다할 상업 시설이 없는 곳이 여의도였다. 물론 여의도의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식당이나 카페 등의 가게들은 적지 않으나 이들은 오피스텔이나 사무 빌딩 내에 꼽사리를 끼다시피한 수준이지 본격적인 번화가를 이룰 정도는 아니었다. 여의도백화점이라는 건물이 있어서 '여의도에 있는 백화점'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을 낚는데 여의도백화점은 그냥 상가다. 대형 할인점으로는 이마트 여의도점(샛강역 근처)가 유일한데 그나마 이곳도 다른 이마트 지점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 물론 거주민들은 아파트마다 있는 상가에 슈퍼보다 잘 갖춘 마트들이 예전부터 있어서 큰 불편없이 지내는 중

8.1 식당

식당들의 음식 값이 상당히 비싸다. 2010년부터는 6,000원 이하의 점심을 먹기가 힘들다. 간혹 6000원 이하 먹을만한 밥집이 있다해도 아침 일찍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그래서 여의도 근무 신입사원, 인턴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식당예약이라 카더라 거기다 여의도 편의점들은 장사가 매우 잘 되기 때문에, 끼워팔기 행사 등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먹을 데가 없으니 식당에 가서 줄을 서든가 편의점에 가서 줄을 서든가 해야 한다. 물가 상승이 계속되자 구내식당 이용객도 많아졌고, 회사에 구내식당이 없을 경우 이웃 회사 구내식당으로 가는 증권맨들도 많이 보인다. 심지어 근성을 발휘해서 여의도 서쪽 끝인 국회 의원회관 구내식당까지 가는 직장인들도 있다!

MBC의 구내식당이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나 언제부터인가 MBC 사원증이 있어야만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못미. 그리고 MBCDMC로 이사갔다.

여의도역 6번 출구 앞에 24시간 영업하는 버거킹이 있다. 패스트푸드를 좋아한다면 이 쪽이라도... 그런데, 버거킹은 패스트푸드 중에서 비싼 축에 끼잖아? 안될거야.

IFC 건물 바로 옆에있는 메리츠빌딩 1층에는 타코벨이 있고, IFC 지하에는 온더보더, 토마틸로 등의 멕시코 음식을 판매하는 곳도 많기 때문에, 다른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곳들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여의도공원 옆 IFC 몰 지하 2~3층(L2, L3)에는 맥도날드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푸드코트가 있다. 가격은 비싼 편에 속한다. 그리고 근처에 미니스톱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실내에 테이블이 좀 설치되있는 편이라 인근 직장인들도 도시락 사먹으러 많이온다.

90년대에 63빌딩에는 드물었던 웬디스가 입점해 있었다. 여의도에 오래 거주 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기억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편이다. 또한 63빌딩에 당시 국내에 몇 안 되는 써브웨이가 있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회사가 미국 본사로 바뀌고 하면서 사라졌다. 90년대에는 의외로 인지도가 높았던 것 같다.

적은 확률로 일본의 오다이바가 로컬라이징을 거치면 이 곳으로 나온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디지몬 어드벤쳐명탐정 코난[33]

KBS별관 뒷편-한국거래소 언저리의 금융기관 몰려있는 동네는 주말에 찾아오면 도심 공동화 현상이 뭔지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문 연 상점도 없어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식당들이 주말에 평일보다 싼 값에 음식을 파는 기이한 현상까지 목격할 수 있다. 그나마 별관 뒷편엔 음식점리라도 있지, IFC에서 심야영화를 보고 지상으로 나오면 IFC와 기타 증권가들 사잇길은 음식점도, 가로등도 하나 없어 혼자 다닌다면 충공깽 그자체. 아포칼립스를 방불케 한다.

한국거래소 주변에 유명한 모 사진관이 있는데, 방송사 연예인들의 전속 사진관으로 유명하다. 일반인도 그 사진관으로 와서 증명사진 찍을 수 있는데, 촬영 및 현상비용이 동네 사진관보다는 비싼 편이지만 포토샵 작업과정까지 지켜볼 수 있고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인화하며 우리집 앞 사진관도 이렇게는 해주는데... 사진관이라면 당연하거 아닌가, 원본 사진파일까지 몽땅 공짜로 준다. USB 메모리를 미리 준비해올 것 요즘엔 USB도 필요없다. 고객님 이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시죠?

9 정치

국회의사당이 있어 대한민국 정치의 상징이 된 곳이다. [34]그래서 1980년대 이후 국회 주변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주요 정당 당사들이 이 곳에 자리를 잡아왔다.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의 성향이 강해 영등포구의 주요한 보수표 공급지이기도 하다. 1980년대~90년대 초반엔 이 지역이 동부이촌동과 함께 당시 민주정의당의 지지율이 강남보다 높았었다. 현재는 강남3구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60% 이상의 표가 보수당에게 간다.[35]

오래된 아파트[36]에 연령대가 높은 상류층들이 거주하니 아무래도 여당 성향이 많을 수 밖에 없다.[37] 또한, 조선시대 때부터 4대문 안 지역에서 거주하던 서울토박이들이 일제강점기 때 현 영등포구 지역으로 넘어와 정착했다가 1970년대 여의도 개발초기에 재정착하여 그 후손들이 지금까지 여의도에 살고 있는 비율이 높다. 이들의 성향은 대구,경북지역(일명 TK) 출신보다 보수적이고 절대 다수가 여당을 지지한다.

10 기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대개편때 고양군용강면[38] 소속이었다. 그러다 1936년 다시 서울로 환원 되었다.
전화번호는 78X 국번을 사용하였으나 여의도전화국 관할 국번이 포화되어 몇 개가 더 있다. 추가바람. 하여튼, 서울 전화번호 중 78X 국번은 무조건 여의도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요즘은 쓰던 번호 그대로 갖고 가는 시스템이라.. 열에 하나 정도는 여의도가 아닐 수도 있다. MBC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이 앙카라공원 뒤편에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여의도의 강이 감싸고 있어서 재물은 모이지만 모래와 바람의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민심이 모이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의도 국회의사당국회의원들이 욕을 먹는가 보다 남동쪽 여의도가 상대적으로 풍수가 좋지만 바람을 맞는 변두리는 운이 좋지 않다. 강물이 서해로 흐르기 때문에 결국 돈이 맴돌기만 하고 결국 모이지는 않는다라는 주장도 있다. 산이 없어서 화목한 기운이 깃들지 않는다고 보기도 한다.

여의도 직장인 모임이나, 여의도 건물주 모임도 있다. 이런건 어디에나 있는데 심지어 조깅 모임도 있다카더라

11 참고 항목

  1. 서울에서 제일 번화한 이다. 여러모로 맨해튼과 닮은 점이 있어 별칭으로 자주 불리곤 한다.
  2. 보면 알겠지만 이미 섬 남쪽 강변은 개울 수준이라 섬의 정체성을 잃은지 오래. 하지만 올림픽대로로 인해 시가지가 단절되어 있어, 섬으로써의 고립감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헌데 사진이 조금 오래돼 보이는게, IFC가 보이지 않고 여의도고등학교에 잔디구장이 안깔린점, 한강변의 콘크리트제방이 원형을 유지하고있는점 등 최소 2011년 이전의 사진으로 추정된다.
  3. 다른 사례로 시흥의 옛이름 '늠내'를 仍伐奴(잉벌노), 정선군의 옛이름 '늣물'을 仍買(잉매), 괴산군의 옛이름 '늣내'를 仍斤內(잉근내)라고 부른다.
  4. 용을 뜻하는 순 우리말 '미르'도 발음상 물과 비슷하기는 한데 어원마저 같은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참고로 만주어로 용은 '무뚜리'다.
  5. 현재 용산 해방촌 일대에 위치
  6. 도성 방어를 위해 발간한 책자로, 도성 및 성저십리 구역을 '계(契)'라는 단위로 분할하여 방어책임을 명시하였다.
  7. 이전 문서에는 공항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사실 비행장이다. 당시는 활주로와 가건물 막사만 있으면 쌍발복엽기 이착륙에 전혀 문제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
  8.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설계안으로, 한국에서는 21세기 대형 주상복합 아파트단지에서나 실현되고 있다. 여의도 뿐만 아니라 세운상가에서도 이와 같은 설계를 하였으나 세운상가 역시 시행 과정에서 흐지부지되어 보도데크는 단순 복도로 변질되었고 현재는 흉물이 되었다.
  9. 당시는 지방자치제도가 폐지되어 있던 시기라 모든 행정조직의 장은 정부각료였다. 광역단체장 -> 정부각료, 기초단체장(시·군) -> 광역단체 공무원으로 되어 있었다. 이 흔적은 광역자치단체의 부시장·부도지사 1인이 정부에서 내려 보내는 국가직 공무원으로, 기초자치단체의 부시장(단 100만 도시의 경우 부시장 2인중 1인)·부군수·부구청장이 광역단체에서 내려 보내는 지방직 공무원으로 임명되는 것에서 남아 있다.
  10. 20평대 이하가 거의 없고 중대형 아파트들이 대부분이어서 중산층, 상류층 계층 주민이 입주한 경우가 많았다.
  11. 당연히(?) 해당 부처와 협의도 안 되어 있었는데 김현옥은 밀어붙였다. 무슨 배짱이야 이 사람... 각하님께서 지시하면 모두가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결국 이 때 이전에 실패한 대법원, 대검찰청, 서울고법, 서울고검 등을 비롯한 사법관련 기관들은 한참 후 80년대 말 90년대 초가 되어서야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전하게 된다.
  12. 구자춘 시장은 전임자인 김현옥의 작품인 여의도에 힘을 실어 줄 이유가 없었다. 강남 개발하기도 벅찬 서울시 재정
  13. 마포구 상암동 소재.
  14. 사실 고층빌딩이 있었다면 국회의사당의 위엄이 상당히 떨어지긴 했을 것이다.
  15. 원래는 기아자동차의 본사 소재지였다.
  16. 지금은 부산광역시로 본사 이전.
  17. 사진에 보이는 한화증권의 간판을 봤을 때 2000년대 초중반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18. 과거 동양그룹 계열사였던 동양종합금융증권 - 동양증권
  19. 미래에셋의 경우 현재 본사는 을지로에 있는 센터원 빌딩으로 이전하였고, IT 관련부서와 일부 트레이딩 부서만 존재한다.
  20. 참고로 국민은행은 특이하게 여의도공원을 중심으로 각각 영업부가 있는데, 서여의도에 있는 것이 옛 장기신용은행 본점이었고, 동여의도에 있는 것은 옛 한국주택은행 본점이었다.
  21. 윤중초, 윤중중, 여의도초, 여의도중, 여의도고, 여의도여고.
  22. 원래 TBC 신사옥이었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언론통폐합으로 KBS로 넘어왔다. 바로 옆에 앙카라공원이 있다.
  23. 물론 SBS는 주로 양천구 목동아파트 일대의 학교에서 찍는 일이 잦다. 아울러 신문 기사의 경우는 신문사들이 광화문 쪽에 많이 때문에 풍문여고 학생들을 취재하곤 한다. 그럼 이제 MBC는 DMC 부근? 상암고등학교
  24. 대방역에서 찍는 이유가 귀찮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근처 보라매 공원에 기상청 청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5.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와 접한다.
  26. 무려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의도로 몰려든다!
  27. 여의도 거주민으로서 정말 이날과 벚꽃축제는 지옥이다. 윤중로 주변은 벚꽃축제에 마비, 불꽃축제에는 한강 공원쪽이 마비되고 각종 쓰레기가 증가한다. 그리고 간간히 범죄행위도 있어서 매우 불편한 날이다. 특히 불꽃축제날이 연세대 수시 논술 고사와 겹치는 날이 종종 있는데 이런날은 여의도 거주 수험생들은 차라리 걷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여의도를 들어오는데만 한참 걸린다.
  28. 여의도로 직접 들어가는 지하철이 개통되기 전에는 대방역을 통해 시내버스로 들어가는 루트가 메인이었다. 이 때문에 대방역은 일종의 여의도로 들어가는 환승거점이었고, 5,9호선이 개통된 이후에도 그 역할이 남아 있는 것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 용산 착발 급행열차의 구로역 - 용산역 구간 중 대방역이 환승역도 아니고 영등포역처럼 일반열차 역도 아니라 이를 모르는 꼬꼬마들이 도대체 이 역에는 왜 급행열차가 서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도 가끔 있다.
  29. 신길역에서 1호선, 5호선 환승 거리가 길어서 보통 버스를 많이 이용한다.
  30. 여의도 주민이든지, 여의도에 통근하거나 통학 등의 용무상 왔다갔다하는 타지역 사람이든지 간에
  31. 이 때문에 T-Money로 결제하더라도 휴대폰 인증을 받고 이용시간이 초과하면 휴대폰 요금에 합산된다.
  32. 덤으로 이 시스템은 상암동 지역의 공공자전거와도 호환되기 때문에 여의도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한강공원에서 달리다가 한강 건너서 상암동에서 반납하거나 반대의 플레이도 가능하다.
  33. 후자쪽은 지명이 번갈아가며 바뀌지만 실질적으론 여의도쪽이다. 또다른 이유는 다른곳에 돌아다녀 사건해결
  34. 예를 들면 국회의원 선거재보궐선거초선으로 당선되어 등원하게되면 금배지달고 여의도에 입성한다는 말을 관용어처럼 쓴다.
  35. 2000년 총선에서 민주당 김민석 후보가 영등포을에서 60.4%를 얻어 서울시 최다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정작 여의도동에선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43.6%를 얻는데 그칠 정도로 보수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강하다.
  36. 오히려 60년대 후반~70년대 중반에 지어졌지만 80년대~9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보다 더 튼튼하게 지어졌다고 한다. 사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중반에 지어진 신도시 아파트들은 모래가 모자라서 바닷모래에서 소금기를 안 빼고 지어올려서 철근 부식이 빠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1970년대 중반부터 자리를 잡은 여의도 주민들은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37. 다만 주택의 가격이나 주민들의 자산, 소득수준에 따라 득표율 편차는 존재한다. 2012년 대선에서 여의도자이(고가, 대형평형 위주 주상복합, 2008년 입주) 주민들이 투표하는 여의동 7 투표소에서 박근혜가 얻은 득표율은 75.3%, 여의동 전체 65.5%에 비해 무려 10% 가까이 높다. 반면 서여의도 주민들이 투표하는 8 투표소는 비록 전체투표자는 909명에 불과했으나 문재인이 48.5%를 득표했다. 서여의도의 주택 대부분이 중소형 규모의 오피스텔인데다 주민들 또한 여의도 출퇴근을 위해 자리잡은 직장인들이 많기 때문.(여의도의 인구는 여의도공원 기준으로 동쪽에 집중되어 있다. 국가 공성전 경기장에 있으신 국가 공성전 선수, 높으신 분들 때문에 서여의도에는 건축 및 고도제한이 걸려있다.)
  38. 각각 지금의 고양시, 서울 마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