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역사

1 개관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3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기준선은 안성천과 진위천의 두 하천으로서, 진위천 서부의 광활한 평야지역(안중을 중심으로 한 서부)은 수원, 안성천 이북(진위, 송탄, 평택 시가지 일대)은 진위, 안성천 이남(팽성읍)은 평택[1], 이렇게 세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렇게 세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조선시대엔 저 하천들이 감조하천이라 바닷물이 들어오던 하천들로, 사실상의 바다로 보면 된다. 이는 조선시대의 교통 수단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던 대상들이었고, 자연스럽게 행정구역이 서로 다르게 되는 이유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팽성 밑에 있는 아산시에도 아산만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 까지는 바로 동네 앞까지 바닷배가 들락날락 하던 곳이었고, 평택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의 군문교(옛 군물포) 근처까지 바닷배들이 들락날락 거렸다. 아직도 세개의 권역으로 알게 모르게 서로 나뉘어져 있는 이유가 바로 하천을 비롯한 지형의 영향이다.

2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구 진위군 일대는 백제의 아술현(1914년까지 구 아산군 지역)에 속하였다. 그러다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 이후 부산현이 되었다. 한편 구 평택군 일대는 삼국시대 하팔현이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대에 부산현이 진위현으로, 하팔현이 팽성현으로 개칭되었다.

3 고려

태조 때 팽성현이 평택현으로 개칭되었다.

공민왕 대에 진위현, 평택현은 충청도에 속하였다.

4 조선

태조 때 진위현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평택현은 연산군 대에 처음으로 경기도로 편입되었다. 그 이유는 금표(왕 전용지, 민간인 출입 금지)의 지나친 확장으로 경기도의 관할구역이 축소되자, 평택·진위 등의 몇몇 군현을 충청도에서 떼어다 붙인 것. 중종 대에 다시 충청도로 복귀했으나, 고종 대에 이르러 진위군은 경기도로 다시 편입되었다. 그러나 평택군은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여전히 충청남도 관할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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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평택·진위·수원의 행정구역 상황.

5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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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평택·진위·수원 일부를 통합하여 출범한 진위군의 행정구역 상황.

1914년 진위군, 충청남도 평택군 및 수원군의 일부를 진위군으로 통합하면서, 현재의 평택시 영역이 확정되었다. 이 당시 진위군청은 북면(현 진위면)에 두었다가, 1926년 병남면으로 이전하였다. 1931년 병남면이 평택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34년 부용면과 서면이 팽성면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1938년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개칭되고, 동시에 평택면이 평택읍으로 승격되었다.

6 대한민국

해방 이후 1948년 북면을 진위면으로 개칭하고, 1963년 송탄면이 송탄읍으로, 1979년 팽성면이 팽성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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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평택시·송탄시·평택군 통합 직전 행정구역 상황.

1981년 송탄읍이 송탄시로 승격[2]되어 분리되었다. 1983년 안성군 원곡면 용이리, 죽백리, 청용리, 월곡리, 공도면 소사리가 평택읍으로 편입되었으며, 1986년 평택읍도 평택시로 승격되어 분리되면서 송탄시, 평택시, 평택군의 3개 행정구역이 공존하게 되었다. 1987년엔 화성군 양감면 고렴리가 청북면에 편입되었으며, 1989년 오성·청북·포승·현덕면의 각 일부를 떼어내어 안중면을 신설하였다. 그러다가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송탄시, 평택시, 평택군이 다시 통합되어 오늘날의 도농복합형 평택시가 되었다. 이 때, 진위면 갈곶리, 청호리, 고현리의 일부가 오산시에 편입되었다. 이후 2002년 안중면이 안중읍으로, 2006년 포승면이 포승읍으로, 2016년 청북면이 청북읍으로 승격되어 현재에 이른다.

6.1 도시구조와 지역 간 갈등 문제

도시구조는 남부(原평택권)[3], 북부(송탄권)[4], 서부(안중권)[5]로 구분된다.

고덕국제신도시가 완성되고 인구가 증가한다면 평택(안중 포함), 송탄을 중심으로 각각 일반구가 설치될 가능성이 있다.

평택시가 다시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송탄 지역과 평택 지역 사이에 갈등이 존재했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현재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꽤 남아있다. 시장선거의 경우나 아주 가끔 지역 시설의 확충 등을 둘러싸고 지역 갈등이 꽤 발생한다. 여전히 '평택'이라 하면 평택시 전체가 아닌 북부 지역을 제외한 구 평택시+평택군 지역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으며, 평택 서·남부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평택 사람', 평택 북부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송탄 사람'이라 부르는 편이다.
때문에 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서로 어디 출신이냐며 묻는 풍경이 펼쳐진다.

그렇지만 외지인들이 급속히 유입되면서 평택과 송탄의 반목이 많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평택시 통합과정의 역사를 자세히 알고 싶으면 평택시립도서관에서 평택시통합편찬위원회 저, 『평택시통합사』를 참조).

최근에는 남부와 북부의 대립보다는, 서부의 소외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LG그룹이 북부, 삼성그룹지제역 KTX가 북부와 남부의 중간, 고덕국제신도시가 중북부, 소사벌지구 및 여러 택지지구가 남부 등 평택시 남·북부 지역에 개발이 집중되고 있고, 반면 서부지역에는 이렇다 할 개발이 없는 편이다.(서해선이 지나가긴 하나...) 그나마 기대하던 평택항과 평택호 개발도 지지부진해서, 서부지역 사람들의 실망이 큰 상황이다. 지역 내에 핵폭탄 급의 위력을 지닌 개발떡밥인 삼성과 지제역 KTX는 서부와 거리가 너무 멀어 별 효과가 없다.

지역안배 차원에서 서부에 배정해준 개발사업이 하나같이 지지부진해서, 현 평택시장(공재광)도 난감해하고 있다.
  1. 정작 현재의 평택 시가지는 원래 평택이 아니라 진위의 영역이었다.
  2. 읍 승격은 송탄이 평택보다 늦었으나, 시 승격은 오히려 송탄이 더 빨리 이루어졌다.(...)
  3. 팽성읍, 원평동, 신평동, 통복동, 비전동, 세교동
  4. 송탄동, 중앙동, 서정동, 지산동, 송북동, 신장동, 진위면, 서탄면, 고덕면
  5. 안중읍, 청북읍, 포승읍, 오성면, 현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