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정다운 평화은행
平和銀行
Peace Bank of Korea
은행코드 | 83 |
SWIFT 코드 | PBOKKRSE |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있던 시중은행. 어용노조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주도해서 설립한 은행이다. 설립목적은 근로자 금융지원. 한국노총 조합원과 구 국민은행, 포항제철 등 당시 국영기업들이 출자해서 설립했다. 계좌번호나 신용카드나 직불카드가 Maestro인 것을 보면 볼 수록 국민은행 근로자금융같다.. 본점은 강남역과 역삼역의 정확히 중간에 있었다.[1]
당시 주택은행만 취급할 수 있었던 국민주택기금대출을 근로자주택마련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은행 처음으로 취급했었다. [2]
지점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점포망이 많이 부족했던 터라, 제휴를 통해 우체국창구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고, 2000년 가을부터는 뱅크라인통장도 취급했다.[3]
또한 존재감이 미미했던 것과는 달리 1992년 개점 당시 은행권 최초로 서명 거래 제도를 도입했으며 이것이 모든 은행으로 확산되었다. 이 은행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거래를 하려면 닥치고 도장 ㄱㄱㅆ이었다. 또한 평화비자카드는 신용카드에 사용자의 사진을 넣어주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한다고 평화비자카드 광고를 직행좌석버스에만 집행하기도 했다.[4]
그렇지만 재무구조가 그리 안정적이지는 못했던지라 외환위기 이후 부실이 심화되어 1998년 제1차 금융구조조정에서 퇴출 여부까지 검토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자산이 부채보다 많아서 간신히 퇴출은 면했다. 그러나 2000년 제2차 금융구조조정에서는 현대건설에 반강제 전환출자했던게 부실화되는 등의 여러 타격이 온지라 정부 주도로 한빛은행 등과 우리금융그룹에 편입되었고 이후 2001년 12월에 한빛은행으로 합병[5]되었다. 이후 2002년 5월 한빛은행이 우리은행이 되었다.
1999년 ~ 2000년 코스닥시장이 IT버블로 흥청거릴때, 이놈의 평화은행 우선주가 말썽을 부리면서 우선주 주제에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보다 더 많이 나간 적이 있었다. 결국 코스닥지수 산출종목에서 제외되더니 평화은행 보통주에 합병.
여담이지만 자동화코너가 병맛이었다. 역삼동에 있었던 본점 영업부에조차 입금 가능한 기기가 단 한대도 없고 죄다 출금/이체 전용이었던 것. 합병되기 직전이었던 2002년 기준으로 입금 가능한 기기를 전혀 들여놓지 않은 은행은 평화은행이 유일했다. 지방은행조차 지점당 1대 정도는 갖고 있었으니 이뭐병. (...)- ↑ 평화은행이 합병된 이후에는 일반 빌딩으로 변신. 이 빌딩엔 현재 우리은행 지점이 아니라 평화은행과는 전혀 상관없는 매우 화가나는 은행의 지점이 있다. 여담으로 이름이 대공빌딩(...) 참고로 바로 옆 건물에 우리은행이 있다.
- ↑ 이 상품은 국민주택기금 대출이지만, 출시 초창기에는 주택은행은 취급하지 못했다.
- ↑ 그래서 평화은행에서 발행한 뱅크라인 통장은 모든 지방은행뿐만 아니라 우체국에서도 거래가 가능했다. 나름대로 거의 전국을 커버 가능한 통장이었던 셈.
- ↑ 2016년 현재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좌석버스가 왜 고급이지? 라고 이해 못할 수도 있는데, 90년대~2000년대 초반만 해도 '좌석버스'는 일반 시내버스에 비해 당시 물가 기준으로 가격차이도 많이 났고, 에어컨 설치도 먼저 되는 등 꽤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지금은 광역/직행/고속버스를 제외하고는 일반 시내버스로 격하된 경우가 많다
- ↑ 엄밀하게는 평화은행의 은행부문을 분할하여 한빛은행과 합병했다. 평화은행 존속법인은 우리신용카드라는 회사로 신용카드업을 전문으로 하였으나, 카드사태의 유탄으로 2004년 우리은행과 합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