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 Dr.1

(포커 삼엽기에서 넘어옴)
제1차 세계대전의 독일 제국군 항공기
전투기포커 아인데커, 알바트로스 D시리즈, 할버스타트 시리즈, 포커 Dr.1, 지멘스 슈커트 시리즈, 포커 D.VII
폭격기타우베, 고타 G IV, AEG G.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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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차대전 전투기의 아이콘과도 같은 붉은 남작의 포커 삼엽기. 재미있는 점은 1차대전 독일 전투기들의 항공화를 보면 항상 솝위드 카멜 전투기가 추락하고있다.야라레메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항공기 중 가장 많이 알려진 항공기이며 붉은 남작의 애(愛)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전투기. 원래 단엽기보다 복엽기나 삼엽기가 기동성이 더 좋은데, Dr.I은 삼엽기로 세장의 주날개를 가졌고, 이 세장의 주날개가 만드는 굉장히 날렵한 기동성이 이 기체가 가진 최강의 무기였다. 동시기의 다른 기체들보다 항력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 속도가 약간 낮긴 했지만, 당대의 기체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기동성과 독일 에이스 파일럿들의 노련한 기동술이 합쳐진 덕분에 사실상 당시 기체들중 기동성이 중요한 수평선회 전투로 이 전투기를 이길 수 있는 전투기는 없었다고 봐도 좋다. 그리하여 저 유명한 붉은 남작을 필두로한 독일 에이스 파일럿들의 사랑을 받았다. 제식명칭의 Dr.I은 드라이데커(Dreidecker)의 줄임말로, '삼엽기'의 독일어다.

2 성능

- 최대 속도 : 115 mph (185km/h, 해수면 고도에서)[1]
- 실속 속도 : 45 mph (72 km/h)
- 작전 반경: 185 mi (300 km)
- 실용 상승 한도 : 20,000 ft (6,095 m)
- 상승력 : 1,130 ft/min (5.7 m/s)

3 개발


V.4 시제기의 사진. 캔틸레버식 날개를 사용했기 때문에 날개 사이의 지지대가 없다.


V.5 시제기의 사진. 날개 사이에 지지대가 추가되었고 꼬리날개 모양이 곡선이 없는 형태를 취하고있다.


포커 삼엽기의 최종 양산 버전인 Dr.I의 사진. 꼬리 날개의 모습이 약간 곡선을 가지고 있는걸 확인할 수 있다.

1917년 2월 알바트로스 전투기는 RNAS(영국 해군 항공대) 소속의 신형 전투기인 솝위드 삼엽기가 등장하자 더이상 연합군 전투기들을 상대로 성능상의 우위를 가질 수가 없어졌고, 독일 공군은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연합군 전투기들에 대비해서 더 뛰어난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솝위드 삼엽기의 강력한 성능에 고무된 독일 항공사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항공사들은 솝위드 삼엽기와 같은 항공기를 만들려고 각자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대부분 기존에 만들어진 정찰기나 전투기를 베이스로 만드는게 전부였다. 대표적인 예가 알바트로스 항공사에서 만든 Albatros Dr.I 삼엽기이며, 단순히 알바트로스 D.V 복엽기의 몸체에 날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능 향상이 없었다. 알바트로스 Dr.I은 시제기 1대를 끝으로 개발이 중단되었다.

여러 항공사들이 기존의 항공기를 이용해서 개조하는 수준에 그쳤던 반면 아인데커 전투기로 명성을 널리 알렸던 포커 항공사는 라인홀트 플라츠(Reinhold Platz)의 주도하에 복엽기로 개발중이던 V.4 시제기의 계획을 갈아엎고 완전히 새로운 삼엽 전투기를 만들게 된다.[2] 플라츠가 설계한 삼엽기는 지지대가 날개를 떠받치지 않는 캔틸레버 날개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동체의 뼈대들은 강관(강철로 만들어진 튜브)재질로 구성되었다.

V.4 항공기는 초도비행에서 조종이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방향타의 조작성은 괜찮았지만 보조날개와 승강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굉장한 힘을 주어야 움직였다고 한다. 승강타와 보조날개가 제대로 반응 하지 않은 이유는 돌출 균형이 공기 역학적으로 맞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포커 항공사는 새로운 시제기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다.


왼쪽 그림에서 검게 표시된 부분이 돌출균형(Horn balance)인데 경첩 처럼 접히는 방식으로 동작하는 방향타나 승강타, 보조날개 등을 공기역학적으로 쉽게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시제기는 V.5로 불렸는데 승강타와 보조날개의 돌출 균형을 다시 설계해서 조종반응을 향상시켰으며 날개의 넓이가 좀 더 넓어졌다. 또한 큰 비행중 날개의 휨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날개 사이에 지지대를 추가했고 원반 모양의 곡선을 가졌던 꼬리 날개의 외형을 곡선이 없는 삼각형 모양으로 바꿔서 공기 역학적으로 이점을 가지도록 했다. V.5에 사용된 무장은 알바트로스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싱크로나이즈 기어로 작동하는 두 정의 7.92mm MG08 스팬다우 기관총이 기수 앞에 장착되었으며, 엔진은 9개의 실린더를 가진 82 kW (110마력)출력의 Oberursel Ur.II 로터리 엔진이 사용되었다.[3]

이런저런 부분들이 향상된 V.5 삼엽기는 1917년 7월에 처음으로 배치되었는데, 당시에는 여러 항공사에서 실험적인 성격으로 만들어내는 신형 전투기들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섣불리 대량의 항공기를 주문했다간 큰 낭패를 보기 쉬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독일 공군은 포커사에서 만든 삼엽기를 본격적으로 배치하기 전에 일단 성능 평가를 할 겸 20대의 V.5 삼엽기만 주문해서 시범적으로 운용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굉장히 뛰어난 성능을 가졌던 포커 삼엽기는 조종사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고 리히토펜과 같은 에이스 조종사들도 이 전투기를 강력하게 추천했기 때문에 독일공군은 포커 삼엽기를 본격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한다. 독일공군은 1917년 9월에 100대를 주문했으며 11월에는 추가로 200대를 더 주문해서 연합군이 장악한 제공권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20대의 항공기중 처음에 납품된 세대의 V.5는 Fokker F.I라는 명칭이 부여되었고 이후에 양산된 버전들은 몇가지 개선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Dr.I이라는 명칭으로 전선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Dr.I의 변경사항은 꼬리 날개가 약간 곡선 형태로 변경되었고 지상 활주시 기체가 기울어지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날개 끝에 스키드를 추가하는 등 자잘한 수정사항들이 있었다.


최근에 만들어진 Fokker Dr.I의 복제품인데 맨 아래쪽 날개 끝에 스키드가 추가되어있는걸 확인 할 수 있다. 사진의 레플리카 항공기는 존 페리클스(John Perikles)가 만들었다고 하며 Jasta 27 소속의 루돌프 클림케(Rudolf Klimke) 중위가 사용한 도색을 참고했다고 한다.

포커 Dr.I은 삼엽기로 제작된 덕분에 강력한 상승력과 뛰어난 기동력을 가질 수 있었지만 반대로 저항도 증가했기 때문에 롤 기동이 둔했다고 하며 속도도 동시대의 전투기들 보다 느렸다고 한다. 게다가 이륙과 착륙시에 시야가 좋지 않았던 점도 있었고, 개머리판이 조종석 앞부분에 돌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상착륙과 같은 충돌 상황에서 조종사가 개머리판에 부딪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단점들은 조종사들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고 일단 기동력 하나만큼은 굉장히 뛰어났었기 때문에 이정도 문제점들은 용납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날개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서 포커 삼엽기의 평판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한다.

1917년 10월 29일 하인리히 곤터만(Heinrich Gontermann) 중위는 Dr.I 전투기에 익숙해 지기 위해서 곡예비행을 하고 있었는데 곡예비행을 하던 도중 갑자기 날개가 부러지는 바람에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다.[4] 날개가 부러지는 문제는 당시 독일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알바트로스 전투기 또한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였기에 곤터만 중위가 너무 무리하게 비행해서 발생한 사고로 생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틀 후 귄터 파스토어(Günther Pastor) 중위가 조종하는 Dr.I 전투기는 수평비행 도중에 날개가 부러지는 바람에 추락했고 파스토어 중위는 이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곤터만 중위와 파스토어 중위가 사망하면서 독일공군은 Dr.I에서 날개가 부러지는 원인을 해결하기 전까지 포커 삼엽기의 비행을 중단시켰으며 항공 사고 조사단을 조직해 사고의 원인을 조사한다. 조사단들은 추락한 포커 삼엽기를 조사한 결과 생산과정에서 날개가 불완전하게 만들어 졌음을 발견했고, 시간이 오래된 기체일 수록 날개가 부숴지기 쉽다는것도 찾아냈다. 시간이 오래된 기체일 수록 날개의 내구성이 취약했던 이유는 제작 과정이 엉성했던 탓도 있지만 방수처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던 탓이 컸다고 한다. 당시 항공기의 날개에 사용된 재질은 대부분 목재였기 때문에 방수처리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이런 처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건 포커 항공사의 명성에 큰 누가 될 수 있는 문제였다.

포커 항공사는 즉각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방수도료를 날개의 뼈대에 집중적으로 발라 습기에 대한 내성을 높이면서 날개 자체의 구조를 강화시키는 작업을 진행시켰는데, 이미 전선에 상당한 수의 포커 삼엽기가 배치되어있던 탓에 꽤 큰 비용을 지출해야했다고 한다. 이 작업은 1917년 11월 28에 끝나면서 포커삼엽기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임무를 재개할 수 있었지만 날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계속 발생했다고 한다.

1918년 2월 3일 야스타 11소속의 한스 요아힘 볼프(Hans Joachim Wolff) 중위는 착륙 후 자신이 탔던 Dr.I 전투기의 윗 날개 앞전 뼈대가 부러져있는것을 발견했으며 3월 18일에는 붉은 남작의 형제인 로타어 폰 리히트호펜(Lothar von Richthofen)이 솝위드 카멜Bristol F.2Bs 항공기와의 교전에서 윗 날개가 부러지는 바람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사고를 겪게된다.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독일군 조종사들은 포커 삼엽기의 안정성에 걱정을 가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1918년 여름의 독일은 내부적으로 피폐해져갔는데 전쟁이 지속되면서 엄청난 자원을 소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라의 근간을 책임지는 민간인들의 생필품 마저 나날이 열악해져 가는 마당이었으니 군에 보급되는 여러가지 물건들의 상태는 말도 못할 정도였다. 항공기 로터리 엔진에 사용되는 피마자 기름[5] 또한 예외가 아니었는데 딱히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독일 공군은 어쩔수 없이 질이 떨어지는 윤활유를 사용하면서 무리하게 전쟁을 진행시켜 나갔다. 엔진과 같이 정밀한 기계에 사용되는 오일의 질이 떨어지다 보니 포커 삼엽기의 Oberursel Ur.II 로터리 엔진은 당연히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고 하며 날개가 부러지는 문제점과 비행기의 심장과도 같은 엔진 또한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문제가 겹치면서 좋은 전투기였다기 보단 문제가 많은 전투기로 점점 명성이 추락했다.

이런 저런 심각한 문제점 때문에 결국 포커 삼엽기는 1918년 5월에 생산이 중단되었고 전장에서 보여준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총 생산댓수는 겨우 320대에 그쳤다. 나중에 Fokker D.VII가 등장하자 포커 삼엽기는 전선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전선에서 물러난 기체들은 훈련용으로 쓰이거나 새로운 엔진을 테스트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운이 좋으면 기지를 방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훈련용으로 사용된 포커 삼엽기는 양산 버전 보다 출력이 낮은 75 kW (100 마력)의 Goebel Goe.II 엔진이 장착되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연합군이 이 훈련용 기체들을 테스트해 본 결과 조종 성능이 굉장히 뛰어났다고 한다.

전선에서 물러난 포커 삼엽기 중 몇대는 엔진 실험용으로 사용되었다. V.7으로 알려진 모델에는 120 kW (160 마력) 출력의 Siemens-Halske Sh.III이 장착되어서 여러가지 테스트를 수행했는데 Siemens-Halske 엔진을 장착한 포커 삼엽기는 선회율과 상승율이 더 좋아졌다고 하며 최대 상승 한도 또한 증가되었던 반면 조종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외에도 시리얼 넘버 108/17를 가졌던 삼엽기는 118 kW (160 마력) 출력의 Goebel Goe. III 엔진이 장착되어서 여러가지 실험 비행을 했고 469/17 넘버를 가졌던 삼엽기는 108 kW (145 마력) 출력의 Oberursal Ur. III 엔진이 장착되어서 다양한 실험 비행을 했는데 아쉽게도 포커 삼엽기에서 실험된 여러 엔진들은 실험 용도로만 사용되었다고 하며 다른 양산기의 엔진으로 채택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영국의 솝위드 삽엽기의 복사판이란 비난도 있었다.참고

4 전장에선?


붉은 남작이 이끄는 서커스 비행단(The Flying Circus)의 출격

1917년 9월 포커 삼엽기는 20대만 배치되었는데 이중 가장 처음에 배치된 세 대의 V.5 시제기는 Fokker F.I 라는 제식명을 부여 받았다. F.I의 각 기체 넘버는 101/17, 102/17, 103/17이 순서대로 주어졌는데 첫 번째 F.I인 101/17 기는 1917년 8월 11일 아들러스호프(Adlershof)에서 시험 비행을 하다가 파괴되었지만 102와 103은 포커 삼엽기의 전설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들을 하게 된다.

붉은 남작으로 유명한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은 1917년 9월 1일에 102/17 기를 수령해서 비행했는데, 이틀 후에 두 대의 연합군 항공기를 격추시키고 나서는 독일공군 지휘부에 F.I 전투기가 영국의 솝위드 삼엽기 보다 훨씬 뛰어 나다면서 포커 삼엽기를 가능한 빨리 각 비행단에 배치시켜야 한다고 보고했다. 재미있는 점은 리히트호펜이 102/17 을 타고 격추시킨 연합군 항공기는 솝위드 삼엽기가 아닌 솝위드 펍R.E.8 2인승 항공기였는데 포커 삼엽기로 솝위드 삼엽기와 제대로 붙어 보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했다는 게 좀 의아하다. [6]

리히트호펜은 102/17 기로 2기를 격추시키면서 60대 격추를 달성했는데 독일 지휘부에 보고하고 난 후에는 알바트로스 D.V 전투기를 탔다고 하며 주인이 없어진 102/17 기는 쿠르트 볼프(Kurt Wolff) 중위가 수령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103/17 기는 베르너 포스(Werner Voss) 중위의 개인적인 항공기로 사용되었다. 포스는 9월 6일 부터 9월 23일 까지 103/17 기로 10대를 격추하면서 총 격추수 48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이 격추 스코어는 붉은 남작 다음으로 많은 격추수였다.

두 대의 F.I 전투기는 전선에 배치되자 마자 연합군 전투기들을 뛰어넘는 엄청난 성능을 보여주면서 독일 공군에 전면적으로 배치될 수 있는 초석을 다졌지만 아쉽게도 102/17기와 103/17기는 교전중 모두 파괴되고 만다. 1917년 9월 15일 쿠르트 볼프 중령이 조종한 102/17 기는 솝위드 카멜 전투기와 교전하던 중 격추당해서 사망했고, 23일에는 포스 중위가 103/17 기로 다수의 SE5a 전투기와 교전하던 중 격추당하면서 사망했다. 비록 F.I 전투기들은 모두 격추 당했지만 이미 Dr.I 전투기들도 같이 배치된 상태였고 성능이 뛰어난데다 조종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덕분에 포커 삼엽기의 배치는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초기에 배치된 포커 삼엽기들이 좋은 성적을 내준 덕분에 포커 삼엽기는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했고 1918년 1월에는 Jasta 6와 jasta 11이 Dr.I 전투기로 완전히 무장했고, 총 14개의 비행대대가 Dr.I 전투기를 주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1918년 4월에는 리히토펜이 이끌었던 서커스 비행단으로 유명한 Jagdgeschwader 1 (JG 1)과 JG 2, JG 3 등 새롭게 개편된 전투 비행대대에서 포커 삼엽기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고 하며, 총 171대의 포커 삼엽기가 서부전선에 배치되었다.

야스타 6 소속이었던 프란츠 헤머(Franz Hemer) 하사가 말하길 "포커 삼엽기는 내가 좋아한 전투기였는데 비행성능이 아주 멋진 전투기였다. 포커 삼엽기를 탈 때면 루프 기동이나 롤 기동과 같은 곡예 비행을 자연스럽게할 수 있었고 적기에게서 벗어나야하는 상황에선 하강 기동으로 벗어났는데 굉장히 안정성있게 하강하는게 가능했었다. 그러나 기동력이 좋았던 반면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았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포커 삼엽기를 타고 출격하는걸 단념해야만 했다." 라며 포커 삼엽기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내렸었다.

헤머 하사의 말 처럼 포커 삼엽기는 방향타와 승강타의 조작감이 가벼우면서도 강력하게 작동한 덕분에 선회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전투기였다. 특히 오른쪽으로 선회할 때가 유난히 빨랐다는데 솝위드 카멜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엔진 자체가 회전을 하는 로터리 엔진을 장착했었던 탓도 있었고, 포커 삼엽기 특유의 불안정한 비행능력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날개가 많이 달려있는 삼엽기의 구조를 취해서였는지 상승율도 굉장히 뛰어 났는데 상승율이 뛰어난것과는 별개로 포커 삼엽기의 엔진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엔진의 출력이 저하되어 제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었다.[7]

그리고 연합군 전투기들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교전 고도 또한 점점 높아지게 되면서 포커 삼엽기의 느린 속도와 엔진은 독일군 조종사들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고 포커 삼엽기가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문제들이 부각되면서 Dr.I 전투기는 소수로 운용되는데 그쳤으며 나중에는 포커 D.VII 와 같은 신형 전투기로 전부 대체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포커 삼엽기는 독일 공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알바트로스 전투기 시리즈와 대전 말기에 등장하는 포커 V.II 전투기를 상회하는 강력한 기동력을 갖춘 전투기였고 연합군 전투기들 중에서 포커 삼엽기와 선회전투를 벌여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전투기는 없었기에 근접 전투를 선호하던 독일 에이스 파일럿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5 유명한 파일럿

  • 베르너 포스


포커 삼엽기로 유명한 파일럿은 리히트호펜이 아니라 베르너 포스가 더 유명한게 아닐까 싶다. 포스의 포커 삼엽기에는 말굽 모양의 카울링에 눈과 수염을 그려 넣은걸로 유명한데 포스는 이 그림을 황제의 얼굴이라고 불렀다.

Dr.I의 에이스 파일럿이자 리히트호펜 다음으로 격추수가 많았던 포스는 초기에 배치된 세대의 Fokker F.I 중 103/17기를 타고 많은 활약을 했는데 영국의 에이스 파일럿들이 조종하는 7대의 SE5a 전투기들과의 전투 덕분에 항공 전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전설의 인물이 된다.

베르너 포스와 싸운 영국 조종사들은 제임스 매커든(James McCudden) 대위가 이끄는 B편대의 SE5a 전투기들이었다. 매커든의 B편대는 56비행중대 소속의 레지널드 호이지(Reginald Hoidge) 대위 부터 시작해서 리처드 메이버리(Richard Maybery) 중위, 제프리 힐턴 보먼(Geoffrey Hilton Bowman) 중위, 아서 리스 데이비즈(Arthur Rhys Davids) 중위로 구성되었고 60 비행중대의 키스 머스프랫과 V.P. 크로닌 중위도 있었는데 크로닌 중위를 제외하고는 전부 에이스 파일럿들로 구성된 엘리트 편대였다.


B편대와의 교전을 묘사한 항공화. 꼬리에 알파벳 G가 그려진 SE5a 항공기가 바로 매커든이 사용한 항공기이다.

1917년 9월 23일 아침 베르너 포스는 자신의 애기인 103/17 기로 영국 육군 항공단 소속의 DH.4 폭격기를 격추시키면서 총 격추기록 48대를 기록했는데 이 말은 앞으로 두 대의 적기만 더 격추한다면 50대 격추를 달성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50대 격추에 가까워진 포스는 들뜬 기분으로 다시 초계 비행 임무를 수행하다가 두 대의 SE5a 전투기를 발견하곤 50대 격추기록을 달성시킬 목적으로 공격했는데, 포스가 발견한 전투기들은 60 비행중대 소속의 해럴드 헤이머즐리(Harold A. Hamersley) 중위와 로버트 치들로로버츠(Robert L. Chidlaw-Roberts) 중위가 조종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8]

60 비행중대 소속의 SE5a 전투기들은 베르너 포스의 공격에 거의 격추될 위기에 쳐했었지만 매커든이 이끄는 B편대가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급습한 덕분에 두 전투기들은 전장을 이탈하여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포스는 즉각 전투를 중단하고 포커 삼엽기의 뛰어난 상승 능력으로 B편대의 SE5a 전투기들을 따돌릴 수 있었지만 이대로 돌아가기가 아쉬웠는지 B편대의 전투기들과 계속 교전을 이어 나갔다.

영국의 엘리트 조종사들과 베르너 포스가 엄청난 전투를 치루고 있을 무렵 독일의 또 다른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카를 멩켄호프(Carl Menckhoff)가 알바트로스 전투기를 타고 초계임무를 수행하던 중 이 광경을 목격하곤 우군기를 구하기 위해서 혈혈 단신으로 달려들었지만 애석하게도 수적으로 너무나 불리한 상황이었기에 B편대의 아서 리스 데이비즈에게 되려 격추당하고 말았다. 멩켄호프는 가까스로 불시착에 성공한 덕분에 별 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홀로 남게된 포스였지만 포커 삼엽기의 우수한 상승율과 선회율로 7대의 SE5a 전투기들과 호각을 다투는 치열한 전투를 10분 동안 벌였는데, 방향타를 이용해서 수평 선회를 하는 슬립 턴 이라는 기술을 굉장히 잘 활용했다고 한다. 슬립 턴을 적절히 사용한 덕분에 포스는 영국의 베테랑 조종사들의 공격을 재빠르게 피해낼 수 있었고 이 기술로 자신의 뒤에 따라붙은 SE5a 전투기를 공격하기까지 해서 B편대의 베테랑 조종사들을 당혹케 만들었다.

그러나 포스의 뛰어난 조종술도 여기까지가 한계였는지 매커든과의 헤드온 교전 [9] 직후 이탈하는 과정에서 B편대의 호이지 대위의 사격을 받는 바람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된다. 호이지 대위는 헤드온 교전 직후 이탈하는 포스의 103/17기의 우현으로 사격을 가했는데 이때 발사된 총알중 하나가 포스의 폐를 관통하는 바람에 포스는 전과 같이 날렵한 기동을 더이상 보여주기는커녕 생과사를 넘나드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참동안 날뛰어 다니면서 자신들을 공격하던 포커 삼엽기가 잠잠해고 난 후에는 데이비즈가 후미로 달려들어 포스의 숨통을 끊기 위해 엄청난 사격을 개시한다.

데이비즈는 날개위에 장착된 루이스 기관총의 드럼 탄창 두개를 소모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사격을 가한 끝에 포스의 103/17 기가 중심을 잃고 추락하는 걸 확인했으며 최종적으로 포스의 격추를 목격한 조종사는 편대장이었던 매커든이 포스의 추락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했다. 매커든은 "포스의 전투기가 급격한 경사각을 지닌채로 하강하는 걸 계속 지켜봤는데, 포스의 전투기는 지상에 충돌하자마자 수천 개의 조각들로 조각나 사라져 버렸으며, 그 광경은 가루가 된다는 모습이 뭔지 알 것 같은 장면이었다." 라고 말하며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다. 포스의 103/17기는 영국이 점령하고있던 벨기에의 프레첸베르크(Frezenberg) 근처 자두 농장에 추락했는데 오직 방향타와 카울링 그리고 몇 개의 착륙바퀴 부품들만 찾을 수 있었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리히트호펜과 격추 경쟁을 벌이면서 50대 격추를 눈앞에 두었던 베르너 포스는 영국의 에이스 파일럿들과의 전투에서 놀라운 비행술을 보여주었지만 너무 무리한 전투를 벌였던 탓에 결국 48대의 격추기록을 가진채로 사망하고야 말았으며 단 세 대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F.I 전투기는 보스와 함께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고야 말았다. 이 전투로 편대장이었던 매커든은 빅토리아 십자 훈장을 받았으며 베르너 포스의 죽음에 굉장히 아쉬워 했다고 하며 포스를 격추시킨 아서 리스데이비즈 중위 또한 포스가 살아있길 바랐다며 포스의 죽음을 아쉬워 했다. 그렇게 쏴갈기고 살아있길 바라긴 개뿔

이 전투에서 포스가 유명해졌던건 7:1의 전투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고 용감히 맞서 싸운 점도 있었지만 가장 놀라웠던것은 전투 도중에 B편대의 모든 전투기들을 명중시켰다는 것이었다. 머스프랫의 전투기는 라디에이터에 총알이 박혔으며 메이버리의 전투기는 오른쪽 위의 세로날개 뼈대가 거의 부서진 상태였던 탓에 생마리카펠(St Marie Cappel)에 착륙해야 했고, 크로닌의 전투기는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라 결국 폐기 시켰다고 한다. 만약 보스가 홀로 싸우지 않고 자신의 동료들과 싸웠다면 결과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실력을 너무 과신했던지 포스는 20살의 젊은 나이로 전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전투로 인해서 베르너 포스는 역사의 한 귀퉁이를 장식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 시즌2 에피소드 중 최초의 공중전에서 그의 마지막 전투가 어땠는지 볼 수 있다.

위키에 나와있는 내용과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Rise of Flight의 한 유저가 위 일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동영상을 만들기도했다.

포커 삼엽기하면 누구나 붉은색의 강렬한 도색으로 큰 인상을 남긴 붉은 남작을 떠올릴 것이다. 사실 리히트호펜은 자신의 애기였던 알바트로스 전투기 시절 부터 붉은 도색을 사용했지만 어찌된 건지 포커 삼엽기에서 사용한 붉은 도장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있다.

리히트호펜이 세운 80대의 격추 기록에서 포커 삼엽기를 타고 이루어낸 격추 기록은 총 19대로 이중에서 2대는 Fokker F.I 102/17기로 달성했으며 나머지 61대의 격추는 알바트로스 전투기로 달성했다. 1차세계대전을 뛰어넘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의 파일럿이었던 리히트호펜은 포커 삼엽기로 전투를 치루다가 사망했는데 지상에 배치된 기관총 사격으로 사망했다는 설과 영국 조종사였던 아서 로이 브라운(Arthur Roy Brown)이 격추 시켰다는 설로 나뉘는데 아마 두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사망한 게 아닌가 싶다.

1918년 4월 21일 아침 영국공군(Royal Air Force)의 209 비행중대 소속의 올리버 리부틸리어(Oliver leboutillier)가 이끄는 B 편대가 초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륙했으며 이들은 솝위드 카멜 전투기를 타고 있었다. B편대는 솜강 계곡 근처에서 2인승 알바트로스 폭격기를 발견하고 공격했는데 리부틸리어 로버트 포스터(LeBoutillier Robert Foster)와 메릴 새뮤얼 테일러(Merrill Samuel Taylor)가 격추시켰다고 한다. 그 순간 포커 삼엽기로 이루어진 편대가 나타나면서 치열한 공중전이 펼쳐졌는데 이들이 만난 이들은 독일공군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로 구성된 붉은 남작의 전투비행대대(Jagdstaffel 11)였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 B 편대의 신참이었던 웝 메이(Wop May)는 실전경험이 부족했었기 때문에 전투가 벌어지면 최대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라는 명령을 받았고,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서 메이는 전투로 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동료들이 싸우는 걸 애타게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메이는 자신과 같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외곽에서 구경만하는 포커 삼엽기 한 대를 발견하게 된다.

메이가 발견한 포커 삼엽기는 붉은 남작의 사촌이었던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Wolfram von Richthofen)이었는데, 볼프람 또한 실전 경험이 적은 상태였기에 메이와 같은 명령을 받고 전투에서 벗어나 구경만 하고 있었던 처지였다.[10] 메이는 외곽에서 홀로 날아다니고 있는 삼엽기가 만만해 보였는지 지휘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볼프람을 격추시키기 위해서 애썼는데 전쟁터의 한복판까지 들어가서 공격했지만 이 날은 메이의 날이 아니었는지 기관총이 고장나 버리는 바람에 교전을 중단하고 하강 도주하여 전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촌을 공격하다가 도망치는 메이를 본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은 이 건방진 조종사를 격추시키기로 마음먹고 하강하는 메이를 쫓아갔다.

전투에서 벗어나던 중이었던 메이는 자신의 뒤에 붙어있는 전설의 파일럿을 확인하곤 초 저공 비행으로 붉은 남작을 떨쳐내려 했지만 붉은 남작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지 끝까지 쫓아와서 자신에게 사격했다고 한다. 전투 경험이 풍부했던 붉은 남작은 이상하게 이 전투에서 지상포화의 위험성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저공비행을 감행했는데, 어느새 두 사람은 강력하게 방어된 솜 근처에 도달하게 되었고 근처에 주둔중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소속의 기관총 사수들은 붉은 남작의 전투기를 보고 기관총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붉은 남작의 사촌을 잘못 건드렸다가 졸지에 죽게 생긴 메이는 같은 학교 출신이었던 친구 아서 로이 브라운이 나타나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브라운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급하강 기동으로 내려와 붉은 남작에게 한차례 사격을 가했지만 붉은 남작과 메이는 너무 낮은 고도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에 더 하강했다가는 지면과 충돌할 상황에 직면했다. 어쩔 수 없이 하강을 멈추고 급상승 기동으로 상승해서 지면과의 충돌을 피한 뒤 브라운은 친구와 붉은 남작의 위치를 다시 찾으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브라운은 친구와 붉은 남작을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많은 논란이 있는데 이때의 사격으로 붉은 남작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결국 사망했다는 것과 근처에 배치되어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소속의 기관총 사수들의 사격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는 것으로 나뉜다. [11] 가장 가까이 있었던 메이가 이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실전경험이 부족했던 메이는 붉은 남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없이 지그재그 비행을 하고 있었던 터라 브라운이 공격했던 순간을 침착하게 볼 시간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브라운의 사격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지 아니면 지상에 배치되어있던 기관총 사수의 총격에 맞았을지 정확한 여부는 아무도 모르지만, 7.7mm 기관총 탄환이 붉은 남작의 심장과 폐를 가격하면서 붉은 남작은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된다. 붉은 남작은 죽기 직전에 가까스로 보쉬르솜(Vaux-sur-Somme) 마을 북쪽에 위치한 브레코르비(Bray-Corbie) 도로의 언덕 근처에 착륙했는데 호주 병사들이 도착했을 때까지 살아있었지만 너무 심각한 상처를 입었었기 때문에 곧 사망했다고 한다.

논란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같이 비행했던 조종사들은 브라운이 붉은 남작을 격추시켰다고 증언해주었기 때문에 영국은 아서 로이 브라운이 붉은 남작을 격추했다고 인정해줬으며 수많은 연합군 조종사들을 도륙한 리히트호펜은 아서 로이 브라운의 10번째이자 마지막 격추의 희생양으로 생을 마감했다.

리히트호펜이 마지막으로 탑승했던 425/17기는 리히토펜이 죽기직전 안전하게 착륙시킨 덕분에 별다른 손상이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기념품 사냥꾼들에 의해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리히토펜 또한 자신이 격추시켰던 항공기에게서 상징적으로 삼을만한 부품들을 떼어내 수집했었다는 점인데 생전에 저질렀었던 리히트호펜의 오만한 행동에 대한 벌 같기도 하다.

위키에 나와있는 내용과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Rise of Flight의 한 유저가 위 일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동영상을 만들기도했다.

  • 쿠르트 볼프(Kurt Wolff) 영화 레드바론의 그 커트 울프가 맞다

102/17기를 조종했던 볼프 중위의 등짝을 보려하는 마지막 전투를 묘사한 항공화.

처음에 납품되었던 Fokker F.I의 세 전투기들 중 101/17기는 시험 비행도중 추락해서 파손되었고 103/17기는 베르너 포스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았으며 102/17기는 쿠르트 볼프 중위와 함께 마지막 운명을 같이했다.

볼프 중위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리히트호펜을 굉장히 존경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리히트호펜이 성능평가를 위해서 조종했던 F.I 전투기인 102/17기를 굉장히 타고 싶어했었다고 한다. 볼프의 소망은 4일 후인 9월 15일에 이루어졌는데 리히트호펜이 알바트로스 전투기를 사용하면서 102/17기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볼프는 기상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형 전투기를 타고 날고 싶은 소망이 컸는지 카를 폰 쇠네베크(Carl von Schoenebeck) 중위가 조종하는 알바트로스 D.V 전투기와 함께 전선으로 날아갔는데 공교롭게도 그토록 타고싶어했던 102/17기는 그가 마지막으로 조종한 항공기가 되었다.

그 시각 영국 해군 항공대 소속 10 비행중대의 피츠기번(Fitzgibbon) 중위가 이끄는 8대의 솝위드 카멜 전투기들은 폭격임무를 마치고 귀환중인 DH.4 폭격기들을 호위중이었다. 피츠기번 중위는 벨기에의 모르슬레더(Moorslede)나 빈시티(Vincty)쯤을 지날 때 자신들 보다 낮은 고도에서 날고있는 알바트로스 전투기들을 발견하곤 자신의 부하중 반을 데리고 공격하기로 결심한다. 영국 조종사들은 이때 적기의 규모를 잘못 계산했는데 피츠기번 중위가 공격한 독일 전투기 편대는 5대의 알바트로스 전투기와 4대의 포커 삼엽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국 남아있던 솝위드 카멜 전투기와 DH.4 폭격기들도 공격 받게 되었고 볼프와 쇠네베크의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12]

다시 볼프 중위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볼프 중위가 카멜 전투기 한대를 격추시킬 무렵 뒤에서 노먼 맥그레거 중위가 조종하는 솝위드 카멜 전투기에게 공격을 받았는데 맥그레거는 포커 삼엽기와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잠깐 사격을 가한뒤 상승했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에서 사격했던 탓인지 볼프의 포커 삼엽기는 맥그레거의 사격 이후에 추락하고야 만다. 쿠르트 볼프 중위의 윙맨이었던 쇠네베크는 쿠르트 볼프를 도와주려 했지만 자신도 적기에게 쫓기고 있었기 때문에 쿠르트 볼프가 추락하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쇠네베크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쿠르트 볼프는 맥그레거의 사격 직후에 스핀에 빠져서 추락했다고 하는데 사격을 받는 순간 즉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33대의 연합군 항공기를 격추 시켰던 쿠르트 볼프는 중위는 그가 존경했었던 스승의 102/17기를 타다가 사망했는데 17시 30분 베르비크(Wervicq) 북쪽 지점에 추락했으며 충돌과정에서 기체가 폭발하는 바람에 102/17기는 전소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전장에 단 세대만 배치되었던 Fokker F.I 전투기들은 모두 파괴되었으며 독일의 유능한 에이스 조종사이자 지휘관이었던 쿠르트 볼프를 격추시킨 맥그레거는 7번째 격추 기록을 인정 받았으며 이 전과 덕분에 청동 수훈 십자장을 수여 받았다고 한다.

6 대중매체속의 포커 삼엽기

  • 일단 이 기체 자체가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과 함께 1차대전의 공중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1차대전 공중전을 다루는 매체에서는 거의 대부분 리히트호펜과 함께 등장한다. <레드바론3D> 라든가...
  • 문명 5에서는 1차대전 전투기의 유닛 모델로 등장한다.
  •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라는 비행 슈팅 온라인 게임에서는 스카이 가챠라고, 랜덤으로 기체 1기를 뽑는 캐시 아이템에서 얻을 수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기체중 개조를 거치지않은 기체의 순수한 기본 기동력이 가장 높은 기종으로 이 게임에선 기체의 능력치를 총 7칸 만점으로 따지는데 당연히 복엽 타입의 기체가 통상의 단엽 기체들보다 기동성이 높다. 이 기체는 기본 기동력이 5칸이라는 괴물로 기동성만은 높게 평가받는 제로센조차도 한 수 접어주는 높은 능력치를 자랑하며 실제로 조종해보면 움직임이 굉장히 부드럽다. 독일의 기술력은 세계 제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일!! 그런데 문제는 게임의 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독일의 기술력
  • 배명훈 작가의 2011년작 SF소설 <신의 궤도>에도 등장한다.
  • 붉은 남작의 포커 삼엽기는 레고로도 출시되었다. 모델 번호 10024.
  • 배틀필드 1의 티저 영상에 등장 함으로서 배틀필드 시리즈에 등판이 예고되었다.
  1. 사실 포커 삼엽기의 최고 속도는 알바트로스 D.V형과 비슷한 속도로 그렇게까지 느린 속도는 아니었다.
  2. 개발 초기에는 유명한 항공 기술자인 후고 융커스(Hugo Junkers)와 협력해서 개발되기도 했다.
  3. Oberursel Ur.II 엔진은 포커 아인데커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Le Rhône 9J 엔진을 카피해서 만든 복제품이었다.
  4. 곤터만 중위는 추락하고 나서도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지만 안타깝게도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몇 시간 후 사망했는데 추락 당시 개머리판에 머리가 부딪히면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5. Castor oil : 윤활유나 의약용 기름 등 다양한 곳에 쓰인다.
  6. 아마도 예전에 솝위드 삼엽기와 싸워 본 경험으로 포커 삼엽기의 성능을 파악한것 같다. 실제로 붉은 남작은 알바트로스 전투기로 솝위드 삼엽기를 격추시킨 적이 있었다.
  7. 방향타와 승강타의 조작과는 반대로 보조날개 반응은 굉장히 비 효율적이었다고 한다.
  8. 종전까지 매커든은 57대, 호이지는 28대, 메이버리는 21대, 보먼은 22대, 데이비즈는 25대, 머스프랫은 8대, Hamersley는 13대, 치들로로버츠는 9대의 격추 기록을 달성했다. 크로닌 중위는 총 격추 기록 4대로 에이스 칭호를 얻지는 못했다.
  9. 적기와 마주보며 날아가는 상황에서 공격하는 교전 방법.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10. 2차 세계대전에서 볼프람은 원수의 자리까지 올라간다.
  11. 대다수의 사람들은 붉은 남작이 브라운의 공격을 피해서 선회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12. 영국 호위 전투기들과 독일군 요격기들 간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공중전이 그랬듯이 전투는 금방 끝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