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간기

Interwar period
戰間期[1]

다만, 戰間期는 중국어 사전에는 없지만 戰間期의 간체자인 战间期는 중국어 사전에 등록되어 있다.[2]

파일:The interwar period by 1blomma-d689jy7.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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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 사이의 20년. 년도로 따지자면 일반적으로 1919년부터 1939년까지를 가리키며 제2차 세계 대전 개전일을 중일전쟁의 개전일로 본다면 1919년부터 1937년까지의 기간으로 전간기가 줄어들게 된다. 파시즘군국주의 그리고 국가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했던 시기다.

2 과정

2.1 전쟁 직후

제1차 세계 대전의 피해는 막대했고, 유럽 국가들은 전후 피해로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이 전쟁의 여파로 전제군주제 국가들, 이를 테면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은 전제군주정이 폐지되게 된다. 그 중 독일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지고 러시아 제국에는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소비에트 연방이 되는 등 유럽 국가들에게 공화주의적 열풍이 불던 시기였다. 물론 공화정민주공화정은 다르기도 하고, 민주 공화국이었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는 나치가 대두하고 소비에트 연방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가 확립되는등 독재가 유럽에서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후일의 일이지만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내전으로 프랑코 독재정이 세워지기도 했다. 또한 제국들의 급격한 붕괴로 정세가 불안해졌다.

2.2 세계 권력의 이동

이 전간기 시기에서 세계 경제의 중심은 유럽이 아닌 북아메리카, 더 정확하게는 미국으로 옮겨갔으며, 역설적으로 그것은 미국에서 일어난 대공황이 세계 전체로 퍼져 세계 대공황을 만들어 냈다는 것으로 여실히 증명되었다. 지금의 문어발식 개입주의적인 미국과는 다르게, 전간기의 미국은 철저히 고립주의적인 국가였다. 그 일본 제국과도 외교로 해결하려 했을 정도로. 전간기의 일은 아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초중반에도 미국의 고립주의적 성향은 여전해 랜드리스 정책으로 연합국에게 도움을 줬을지언정 참전은 하지 않았다. 추축국 입장에서는 무기는 줬지만 참전은 하지 않았다 정도로 생각되지 않겠지만, 법적으로 따지자면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추축국도 랜드리스에 따라 무기를 수령할 수 있었다.

2.3 기술 발전

전쟁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전쟁은 인류 기술사에서 일종의 치트키 역할을 한다. 국가의 모든 역량을 군사 기술 개발에 쏟지 않으면 멸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모든 역량을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빠른 기술 발전을 가져오는 것. 하지만 이건 평시에도 마찬가지이며 일부 분야 이외의 분야에서는 엄청난 후퇴를 가져온다.

대표적으로 이 시기에서 급격하게 발전한 기술로는 탱크, 비행기 등이 있으며 이것이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러다임인 참호전을 깨부수게 된다. 기관총의 발명이 그 이전의 패러다임인 라인배틀을 깨부수게 된 것처럼.

2.4 전간기의 끝

한편, 이 시기의 동아시아에선 중국장제스의 북벌반장전쟁으로 연달아 군벌들을 격파하는 등 조금씩 통일의 길을 걷고 있었고, 조선일본 제국에게 합병당해 식민지 상태에 있었으며, 일본 제국다이쇼 데모크라시라는 잠깐의 호황을 끝으로 미친놈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겨버리고 말았다.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한 다음 페르디낭 포슈 원수는 베르사유 조약을 일컬어 기껏 해야 20년 정도의 평화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귀신 같이 들어맞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국제 연맹은 휴지통에 처박혔으며, 세계는 의 공격을 시작으로 전쟁의 불길에 휘말리게 된다.
  1. 사전에 없는 단어다.
  2. [1] 네이버 중국어 사전에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