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tz Von Erich, 1929~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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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명은 잭 바튼 애드킨슨(Jack Barton Adkisson). 텍사스 출신. 대학 시절에는 미식축구 선수로 뛰었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한 시즌 정도 '달라스 텍산' 팀에서 NFL 선수로 활동했다.
스튜 하트의 지도를 받고, 1954년 부터 프로레슬링 선수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프리츠 폰 에릭'이라는 링네임을 썻으며 나치(...)라는 기믹을 가지고 힐(악역)로서 활동했다. 50년대 후반에는 왈도 폰 에릭(Waldo Von Erich)[1]이라는 '형제' 기믹으로 선수와 태그를 이뤄서 '폰 에릭 형제'라는 태그팀으로 냉혈한 나치스 독일인 기믹으로 활동했다. 텍사스 인과 캐나다 인의 나치 형제 컨셉이라는 뭔가 괴이한(...)
1966년 텍사스 달라스에서 NWA 산하 단체인 NWA 빅 타임 레슬링을 설립. 오너 겸 에이스로서 활동했다. 1975년에는 1년간 NWA 회장직을 역임했다. 1980년에 단체명을 WCCW(World Class Championship Wrestling)로 개칭, 1982년에는 프로레슬러로서 은퇴했지만 WCCW의 회장으로서 단체 운영에 전념하고 5명의 아들들을 단체의 에이스로 내세웠다.
80년대 WCCW는 흥행이 잘 되어 프리츠 폰 에릭은 사업가로서 성공했다. "달라스 프로 레슬러는 에릭의 호텔에서 묶고, 에릭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에릭의 은행 수표로 파이트 머니를 지급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1980년대 NWA 체계가 붕괴하기 시작하자 단체의 이름을 WCWA(World Class Wrestling Association)로 개칭하고 NWF를 탈퇴했다. 하지만 WWF의 약진으로 사업은 잘 풀리지 않고 결국 프로레슬링 사업에서 철퇴했다. 만년에는 부인과 이혼했으며, 1997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60,70년대에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 프로레슬링, 전일본 프로레슬링 등에서 경기를 가졌다.
2 폰 에릭 패밀리
The Von Erich Family
그 자식들도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며 '폰 에릭'이라는 링네임을 물려받아 '폰 에릭 패밀리'라고 불린다. 전원이 '아이언 클로' 등 프리츠 폰 에릭의 기술을 이어받아 사용했으며, '폰 에릭'이라는 링네임을 쓰기는 했지만 프리츠와는 달리 독일인 기믹은 없어졌다.
아들은 6명이 있었으나, 장남 잭 애드킨슨 주니어는 어려서 요절했다. 차남부터 6남, 그리고 프리츠 폰 에릭 본인을 합쳐서 6명이 '폰 에릭 패밀리'로 프로레슬러로 활동했었다. 하지만 80년대 중반부터 10년 동안 연이어 불행을 겪게 되는데, 삼남 데이비드 폰 에릭은 1984년에 25세로 요절, 5남 마이크 폰 에릭은 1987년에 23세로 자살, 막내 크리스 폰 에릭은 1991년에 21세로 자살, 1993년에는 사남 케리 폰 에릭[2]이 33세로 자살했다. 연달아 일어난 불행에 '저주받은 에릭 일가'라고 불리게 된다.
1997년에 프리츠 폰 에릭도 68세 나이로 암으로 사망하여, 차남 케빈 폰 에릭만 남게 된다. 2009년에 에릭 일가의 공적을 기려서 WWE에서 6명을 명예의 전당에 헌액했다.
프리츠의 손자 세대 역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고 있는데, 케빈의 장남 로스 폰 에릭과 마샬 폰 에릭이 2012년 프로레슬러로 데뷔하여 프로레슬링 노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켈리 폰 에릭의 딸 레이시 폰 에릭도 프로레슬러로 활동하고 있으며 TNA에서 이름을 알렸다.
프리츠 폰 에릭의 동생이라는 기믹으로 에릭 형제 태그를 이뤄서 활동한 왈도 폰 에릭(Waldo Von Erich), 왈도 폰 에릭의 자식이라는 기믹으로 사촌 형제 기믹으로 활동한 랜스 폰 에릭이라는 프로레슬러가 있으나, 둘 다 이 일가와 혈연관계는 없다. 물론 왈도와 랜스 사이에도 혈연 관계는 없다.
3 미디어
근육맨에서 '갓 폰 에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필살기로 아이언 클로를 사용햇다. 프리츠 폰 에릭의 유명세와 더불어 아이언 클로가 여기저기 인용된다.
이것이 바로 원조판 아이언 클로. 200킬로그램(자칭)의 악력으로 상대의 머리를 쥐어짜는 기술이라는 컨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