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헤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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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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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olutely~ Perfect!"

완벽했던 그의 레슬링 인생

1 소개

WWE(당시 WWF)와 WCW에서 활약했던 프로레슬링선수. 빼어난 기량으로 가장 위대한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으로 첫손에 꼽히는 테크니션 레슬러다.

본명은 커티스 마이클 헤닉 Curtis Michael Hennig. 1958.3.28 ~ 2003.2.10

2 생애

미네소타 주 로빈스데일에서 태어났다. AWA의 레슬링 스타였던 아버지 래리 '더 액스' 헤닉의 뒤를 따라 프로레슬링을 시작, 아버지의 태그팀 파트너로 데뷔했다.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 AWA의 챔피언에 오를 만큼 성장한 그는 WWF로 이적한다.

1988년 커트 헤닉은 운동만능의 재수밥맛인 캐릭터 '미스터 퍼펙트'로 WWF에 입성한다. 이 캐릭터를 위해 WWF에서는 볼링에서 한핀도 안 놓친 퍼펙트스코어, 농구 3점슛-하프 코트슛-림을 등진 상태에서 슛 성공, 야구에서는 홈런을 펑펑 쳐대고 미식축구에서 자기가 던진 공을 자기가 받아내는(!!!) '퍼펙트한' 그의 모습을 선전하는 프로모를 틀어 주었고, 그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야구선수 웨이드 보그스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 스타들이 홍보에 동원되었다. 악역 매니저인 바비 '더 브레인' 히난의 매니지먼트를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퍼펙트는 데뷔후 자버와 미드카더들을 잡아내며 1년 가까이 무패행진을 이어나가기도 하였다.

티토 산타나에게 승리하며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오른 미스터 퍼펙트는 '텍사스 토네이도' 케리 폰 에릭(프리츠 폰 에릭의 넷째 아들)과 벨트를 주고 받으면서 절정에 올랐지만 허리디스크로 인한 등부상으로 벨트를 내려놓아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바로 그 경기가 역대 최고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시합중 하나로 꼽히는 1991년 섬머슬램에서의 브렛 하트와의 경기.

이후 선수생활은 잠시 쉬고 바비 히난과 함께 릭 플레어의 매니저를 맡기도 했으며, 해설자로 등장해 빈스 맥마흔과 만담을 주고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릭 플레어와 바비 히난에게 배신을 당하며 턴페이스, 다시 선수 생활로 복귀하여 1993년 1월 RAW에서 릭 플레어와 패배자가 WWF를 떠나는 조건의 경기로 맞붙어 승리한다. 이후 렉스 루거, 숀 마이클스와 대립을 맺었다. 그 후론 데뷔 초기 귀족 기믹시절 트리플 H의 조언자 역할로 등장하다 퇴사하였다.

WWF를 떠나 1997년에 WCW로 이적, 포 호스맨에 잠깐 있다 배신 후 nWo로 넘어가 US챔피언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nWo 축출 후에는 웨스트 텍사스 레드넥스라는 남부카우보이 기믹의 집단을 이끌기도 하였다. 그러나 WCW에서 커트 헤닉의 행보는 그리 잘 풀리지 않았다. 무릎부상에 시달렸으며, nWo에서 존재감도 낮았고 축출시의 대우도 형편없었고, 웨스트 텍사스 레드넥스는 헤닉 자신은 가장 맘에 들어했던 기믹이지만 Rap is crap이라는 커리어 최악의 흑역사를 남겼다. 2000년까지 뛰다 계약이 끝나고 WCW를 나왔다.

2002년 로얄럼블에서 깜짝 등장, 커트 앵글에게 퍼펙트 플렉스를 날리며 파이널 4까지 버티는 활약을 보이며 다시 WWE로 복귀하지만, 동년 '지옥의 비행 사건(the plane ride from hell)'이라 하여 WWE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가 벌어지게 된다. 2002년 유럽투어와 영국 PPV 인서렉션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스테파니 맥마흔, 짐 로스, 폴 헤이먼 등 최고위 관계자들이 타고 있었음에도 선수들이 과도한 음주로 인해 난동을 부렸던 사건. 정확한 사정은 함구되고 있지만 스캇 홀이 술에 쩔어 면도거품을 사람들에게 마구 뿌려댔다거나, 골더스트가 기내방송을 통해 전처 테리 러널스에게 세레나데를 불러댔다거나, 릭 플레어가운만 입고 속에 아무것도 안입은 것을 스튜어디스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거나, 각본진이던 마이클 헤이즈가 술에 취해 노출을 시도하던 것을 브래드쇼(이후의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가 제압하였다거나, 뻗어있는 헤이즈의 꽁지머리를 엑스-팍이 싹둑 잘라버렸다거나, 고향 선후배사이이던 커트 헤닉과 브록 레스너가 누가 레슬링 더 잘하냐며 말다툼하다가 통로 뒤에서 즉석 레슬링 시합을 벌였다거나, 이를 결국 트리플 H가 끼어들어 말려아 했었다던가 하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커트 헤닉과 스캇 홀이 해고되고 골더스트의 재계약이 거부되었다. 그런데 골더스트는 얼마 지나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TNA에서 활동중이던 2003년 2월 10일 플로리다 주 탬파의 한 호텔방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사인은 코카인 중독. 향년 44세.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피니쉬 무브퍼펙트플렉스는 말그대로 완벽하여 흠을 잡을수가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 그 무거운 빅 쇼에게도 깔끔하게 들어갈정도니..무참히 씹어버려서 그렇지경기장 입장시, 씹던 껌을 뱉음과 동시에 손바닥으로 쳐서 날리는 퍼포먼스가 유명했다. 최고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경기력에 백스테이지에서 농담 잘하고 장난 잘치는 호인이었다. 숀 마이클스의 별칭 '하트브레이크 키드'를 지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얍삽한 이미지와는 달리 의리있고 할말 다 하는 성격때문에 자신이 손해 보는일도 잦았고, 친한 친구인 야구선수 웨이드 보그스가 사냥중 덫에 발목이 끼는 사고가 발생하자 그걸 완력으로(!!) 열어 구해준 일화도 있다.

2007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 헌액자는 오랜 친구였던 웨이드 보그스였다. 이때 아들 조 헤닉이 아버지가 입던 자켓을 입고 나와 아버지의 등장신을 그대로 재현하기도 하였다.

3 가족

아들 조 헤닉과 딸 에이미 헤닉이 WWE 수련생 계약을 맺었으나 에이미는 행실이 문제되어 탈락. 장남 조 헤닉이 WWE의 산하단체인 FCW에서 활동... 하다가, 마이클 맥길리커티라는 이름으로 NXT 시즌 2를 통해 WWE에 데뷔했다. 아버지의 운동능력과 카리스마는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 이었지만 NXT에서 타이슨 키드와 경기로 트리플 H의 눈에 들고, 레슬메니아 29 컴백을 위한 더 락의 훈련 파트너로 일하면서 탄탄한 기본기와 성실함을 인정받아 푸쉬 확정. 뒷빽이 사위와 단기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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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인터컨티넨탈 챔피언하지만 아버지 따라갈려면 멀었다

2014년 현재 이름을 커티스 액슬로 바꾸고 퍼팩트의 테마를 어레인지하여 활동 하고 있다. 액슬의 행적은 커티스 액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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