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담

筆談

1 개요

구어(口語)는 불일치하나 서면어(書面語)는 일치하는 두 언어의 화자가 말이 아닌 문자로 대화하는 것.
일반적으로 한자를 사용한 한문 필담을 일컫는다. 중국어의 제방언과 한국어, 일본어, 월남어 화자는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다면 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인(벙어리)이나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필담을 사용하기도 한다.[1] 소설이나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는 도청이나 엿듣기에 대비하여 필담으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예전엔 종이와 펜을 사용했지만, 현재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2 역사

필담은 중국이 아직 지역마다 방언이 강세였고 한문한국, 일본, 월남 3국의 서면어로 남아있던 전근대에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한국 사신이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해서 글로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현대 중국에서 북방방언을 기준으로 표준중국어 문언일치가 이루어져 말하는 중국어와 쓰는 중국어가 같게 되고, 한국과 베트남 역시 한문이 아닌 자국어를 서면어로 채택한 이후 필담은 많이 줄어들었다. 영어라는 강력한 국제어의 부상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열하일기를 쓴 연암 박지원도 당시 청나라에서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했는데[2] 이로 인해 가벼운 낭패를 본 일이 있다. 아래의 사례에도 나온다.

19세기에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이 조선과 접촉할 당시 이 필담을 사용한 예가 있다. 중국과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한문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조선인과 한문으로 필담을 나눈 것.

3 현재

필담은 중화권 중 표준중국어가 방언을 몰아내지 않은 지역인 홍콩마카오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이들이 사용하는 방언인 광동어는 표준중국어와는 의사소통이 안 되지만, 홍콩인들은 글을 쓸 때에는 표준중국어 문체로 글을 쓴다. 따라서 이들은 필담으로 기타 중화권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중국의 여행 안내책자 등을 보면 한자문화권 여행시 의사소통이 안되면 필담을 나누라고 조언해 주고 있다.

현재는 여행 책자, 외국어 학습교재, 번역기의 발달로 인해, 여행할 때 필담을 사용하기보다는 간단한 외국어를 직접 구사하거나 써서 외국인한테 보여주는 사람이 늘었다. 아무래도 한중일의 자체가 미묘하게 다른 글자들도 있고, 편지지가 필요하다고 편지(便紙)를 써서 보여주는데 변지로 해석해서 화장지를 가져다주면 곤란하니까(...). 그러나 바디랭귀지처럼 사람에 따라서는 적당히 사용하면 외국어를 하나도 몰라도 의사소통이 되는 유용한 도구로 써먹을 수도 있다.

4 필담으로 인한 일화들

필담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있다. 일부는 진짜로 일어났던 일이고 일부는 '오래된 농담'으로 상대국가와 한자어 사용의 차이를 지적하는 창작된 이야기일 것이다.

  • 우리가게는 국수집이 아닌데요? (출처:박지원의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이 당시 청나라에서 친분을 쌓은 상인들에게 가게에 걸어둘 만한 휘호를 써주게 되었다. 길에서 자주보았던 문구인 기상새설(欺霜賽雪, 서리와도 같고 눈보다 더 흼)을 써주었다. 박지원은
"장사치들이 자기네들 마음이 깨끗하여 마치 가을 서릿발과 같을 뿐만 아니라, 땅에 내린 희디흰 눈의 빛깔보다도 훨씬 더 희다고 스스로 과시하려고 그런 말을 문에 걸었을 게다”
라고 해석했는 데 상인들 반응이 떨떠름해서 왜 그런지 물어보았다.
"우리가게는 국수집이 아닌데요?"
사실 기상새설(欺霜賽雪)은 '흰 국수 파는 집'이라는 간판이었던 것이다.원조할매보쌈 이런거 보고 옷가게에 똑같이 써준 격
  • 계란 좀 내놔
중일전쟁 시절 중국에 있던 일본군 병사 한 명이 계란이 먹고 싶어 부대를 몰래 빠져나와 근처 마을로 몰래 숨어들었다. 일본군 병사는 닭장을 찾다가 마을 사람들과 마주치고, 총든 일본군과 마주친 마을 사람들은 기겁했다. 병사는 이왕 이렇게 된거 마을 사람에게 직접 달걀을 받기로 마음먹고, 한자 지식을 총동원해서 글을 썼다.
"아욕식대란다수(我欲食大卵多數) - 큰 계란 많이 먹고 싶소."
글을 본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겁에 질려 하며 주민 한 명이 나서서 글을 썼다.
"몰유대란(沒有大卵) - 큰 계란 없소."
마을 사람들 반응이 심상치 않자 병사는 전쟁통에 닭도 얼마 없는데 내가 너무 요구했나 싶어 글을 다시 썼다.
"소란소수(小卵少數) - 작은 계란 조금만 주시오."
그러자 마을사람들이 더 웅성거리며 공포스러워하자 병사도 혼란에 빠졌다. 그러던 중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주민이 와서 병사에게 물었다.
"병사, 당신 요구가 뭐요?"
"아, 이제 말 통하는 사람 왔네. 아니 이 마을은 계란도 없소?"
"병사 양반, 마을사람들이 란(卵)을 영 좋지 못한 곳으로 이해했소."
알은 알이네.
  • 편지지 좀 주시오
중국에 출장간 일본인이 숙소에서 편지를 쓰려고 편지지를 구할 수 있냐고 종업원에게 물어보는데 영어와 일본어 모두 종업원이 못해서 곤란했다. 결국 메모지에 한자로 '手紙'라고 써서 보여 주자 종업원이 알았다는 표정으로 휴지를 가져다 주었다. 일본어에서 편지를 뜻하는 '手紙'는 중국어에서 휴지(衛生紙)와 같은 뜻으로 쓰인 것.
일본 버전에서는 역시 한국인 사업가가 일본인 종업원에게 편지(便紙)라고 쓰자 변지로 해석해서 휴지를 가져오거나 편지(片紙)라고 쓰자 종이조각(一片の紙)으로 해석해서 포스트잇을 가져다 준다. 여담으로 편지를 뜻하는 한자어는 한국은 便紙/片紙, 일본은 手紙, 중국은 書信[3]를 쓴다.
  • 화장실이 얼만큼?
일본인 사업가가 중국 출장에서 낮동안 사업장을 방문 후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다니면서 중국에 유료 화장실이 많았던 것을 기억한 사업가는 혹시 이 숙소 화장실도 유료인가 싶어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다.
"便所、有料、無料 - 변소, 유료, 무료?"
그러자 이 종업원은 한참 생각하더니 메모지에 이렇게 썼다.
"有料, 非常多 - 유료. 비상이 많음."
사업가는 화장실 갈 때 낼 동전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짐 정리를 하던중 호텔 지배인이 찾아왔다.
"아까 종업원에게 말씀하신 비료 사업을 상의하러 왔습니다."
"???"
일본인이 아까 종업원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자 지배인은 폭소하며 설명해줬다. 중국어에서 유료(有料)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재료가 있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즉 종업원은 '호텔 변소에서 생산되는 비료(인분)가 많이 있는가?'로 해석한 것이다. 여담으로 중국어에서 무료는 면비(免費), 유료는 부비(付費)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 금구슬이 가득한 집
중국인 사업가가 사무실에 금옥만당(金玉滿當) 현판을 걸어 놓았다. 고사성어로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함'을 뜻하면서 '귀한 신하가 조정에 가득함'을 이르는 속뜻이 있는 단어다. 일본인 사업가들이 방문하면서 현판을 보고 피식거리는 것을 여러차례 보고 궁금해진 사업가는 단골 일본인 사업가에 물어보았다. 일본인 사업가는 그냥 볼 때마다 일본어 농담이 생각났을 뿐이라면서 일본어 속어에서 금구슬(金玉)의 속뜻을 말해주었다.
  1. 변론에 참여하는 사람이 듣거나 말하는 데 장애가 있으면 통역인에게 통역하게 하여야 하지만(민사소송법 제143조 제1항 본문), 위와 같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문자로 질문하거나 진술하게 할 수 있다(같은 항 단서). 형사소송법 제181조, 군사법원법 제223조는 민사소송법과 달리 필담에 관해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형사공판 역시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2. 물론 역관도 같이 갔다.
  3. 근데 이 서신이라는 단어는 한국, 일본에서도 쓴다. 근데 한국에서 편지, 일본에서는 手紙의 비중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