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반적인 의미
2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
『위서』 「한최고손왕전(韓崔高孫王傳)」 | ||||
한기 | 최림 | 고유 | 손례 | 왕관 |
韓暨
(? ~ 238)
삼국시대 위나라의 관료. 자는 공지(公至).
남양군 자양현 사람으로 같은 현의 호족 진무가 부친과 형을 무고해 사형에 이르게 되자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일을 찾아 재산을 축적해 사람을 죽이는 자와 몰래 결탁하면서 끝내 진무를 찾아 그의 머리를 부친의 묘에 바치고 제사를 지내면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효렴으로 천거되고 사공에 초빙되었지만 모두 취임하지 않았으며, 이름과 성을 바꿔 노양산 속으로 전란을 피해 은거했다. 산에 사는 백성들이 도당을 결성해 약탈을 자행하자 가산을 팔아 고기와 술을 사서 제공하면서 그들의 두목이 되기를 청했으며, 그들을 위해 안정과 위험에 대해 진술해 산의 백성들은 그에게 설복되어 끝내 해를 끼치지 않았다.
원술의 초빙을 피해 산도라는 산으로 옮겨 거주하다가 유표가 예로써 초빙하자 도망가서 잔릉현에 거주했으며, 어느 곳에 가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유표가 매우 원망하자 두려운 나머지 초빙에 응해 의성현의 장이 되었다. 조조가 형주를 평정하자 한기를 부르면서 승상사조속에 임명되었으며, 후에는 낙릉태수가 되었다가 감치알자로 옮겨졌다.
과거에 금속을 만들 경우에는 말의 힘을 이용했는데, 광석을 한 번 달굴 때마다 말 백 필이 사용되었다. 인간의 힘을 이용했지만 너무 많은 인력이 소모되자 한기는 물을 이용하면서 이익을 계산하니 이전보다 세 배나 되었으며, 7년간 재직해 기물이 충실하자 조조는 조서를 만들어 그를 포상하고 칭찬했다.
사금도위에 임명되었다가 조비가 황제가 되자 의성정후로 봉해졌으며, 238년에는 태상으로 승진하면서 남향정후로 봉해져 식읍 2백 호를 받았다. 당시에 수도를 낙양으로 옮겼으므로 제도는 완비되지 않았지만 종묘의 위패를 모신 석실이 모두 업에 있자 상주해서 업에 있는 네 개의 묘에 있는 신주들을 맞아들여 낙양에 묘를 세우면서 사계절 제사에는 황제가 직접 공물을 바치기를 청했다.
또한 정당한 의례를 하도록 밝히면서 음란한 제사를 없애고 바로 잡았다고 하며, 관직에 몸담은 지 8년 째 되던 해에 질병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238년 봄에 조칙이 내려져 사도에 임명되었다가 여름 4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당시의 평상복으로 염을 하면서 흙으로 된 무덤으로 매장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시호는 공후(恭侯)로 그의 후사는 아들 한조가 이었다.
3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韓琪
위나라의 장수로 서량의 대장인 한덕의 사남이자 한영, 한요, 한경의 아우이다.
3명의 형들과 함께 무예에 정통해 활 솜씨와 말 타기가 뛰어났다고 하며 227년에 제갈량이 북벌을 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 아버지 한덕이 서강 군사 8만을 거느리자 아버지를 따라 형제들과 함께 종군해 봉명산에서 촉군과 마주치자 한덕이 욕설을 퍼부으면서 조운이 한덕에게 달려들었다.
첫째 형인 한영이 조운을 상대했다가 사망하고 둘째 형인 한요가 조운을 상대하다가 당해내지 못한 것을 보고 셋째 형인 한경도 나가 둘이서 협공했음에도 당해내지 못하자 두 자루의 일월도를 들고 조운을 상대하러 갔다.
그러나 한요, 한경과 함께 협공했음에도 결국 당해내지 못했다. 더구나 셋 중에서 가장 먼저 창에 찔려 말에 떨어졌으며 진에서 편장 한 명이 급히 나와서 한기를 구해서 돌아갔다. 그러나 한요, 한경이 모두 죽은 이후에 한덕은 네 아들이 모두 조운의 손에 죽는 것을 보고 놀라고 슬펐다는 것이 나온 것으로 볼 때 결국 한기도 죽은 것으로 보인다.
3.1 미디어 믹스
삼국지 : 용의 부활에서는 한영이 죽은 후에 한요와 함께 조운과 싸우기 위해 달려들어 조운과 한 번 엇갈리면서 지나쳤으며, 이어서 곧바로 창에 찔려 사망한다.
84부작 삼국지에서는 형인 한영이 조운에게 죽자 달려들었다가 한 방에 나가떨어져 사망한다.
4 삼국시대 공손연의 수하의 인물
韓起
(? ~ 238?)
손권이 사신을 보내 여러 보물을 주면서 연왕에 책봉하자 공손연이 사자를 죽이기 위해 군사를 보냈는데, 공손연의 지시로 삼군을 이끌고 급히 달려가 답진에 도착했다. 사신들이 배에서 내리자 징, 북 등을 울려 화살을 쏘아 3백여 명을 죽였고 약 2백여 명을 익사하게 만들었다.
공손연이 위군의 공격으로 멸망하자 공손연이 임명한 가짜 관원들을 사마의가 모두 처형했기에 만약 이 때까지 살아있었다면 238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4.1 미디어 믹스
진삼국무쌍6에서는 공손연의 난에서 등장해 남서쪽에 있는 요충지 3곳 중에 1곳에 해당하는 중앙동관문에 위치하며, 남서쪽 요충지 3곳을 격파하기 위해 가범, 공손수와 함께 격파해야 할 장수이다.
진삼국무쌍7에서는 양평의 전투에서 등장해 남서쪽, 서쪽의 적들을 모두 격파하고 남동쪽의 본진을 공격하려고 남하한 적들을 모두 격파하면 동쪽에서 유원과 함께 원군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