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한영애(韓榮愛) |
출생 | 1957년 7월 [1] |
학력 | 서울여자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
종교 | 불교 |
데뷔 | 1976년 해바라기 1집 앨범 |
사이트 | 공식사이트트위터페이스북 |
1 개요
소리의 마녀. 혹은 나무님 [2]
대한민국의 여성 가수, 연극배우.
2 바이오그라피
신촌 일대에서 그냥 노래를 좋아해서 노래를 부르던 중에 1977년 해바라기의 리더 김의철의 발탁으로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한영애 자신은 1986년 데뷔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솔로 앨범 1집을 발매한 게 이때이기 때문. 여하튼 한영애는 해바라기 1, 2집에서 보컬로 활동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솔로 앨범을 준비해 내놓으려고 했지만 발매 직전에 음반사가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엎어버렸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다른 음반사가 한영애에게 말 한마디 없이 무단으로 한영애의 음반을 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나마 무단으로 낸 이 음반도 대중들의 외면을 받으며 실패했다.
한영애는 일련의 사태로 가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에 친구의 대학 졸업 작품을 보러 갔고 그 뒷풀이 현장에서 연극 배우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한영애는 주저없이 배우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출신이기도 하니.
6년에 걸쳐 연극 배우로 활동한 후 3년 정도 공백기를 가진 한영애는 자신의 길은 가수라고 생각해 다시 가수로 돌아오게 된다.[3] 1986년 1집 "여울목" 을 냈는데 이 음반은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동시에 1986년부터 신촌블루스 활동을 하는데 신촌블루스 1집 "신촌Blues" 에서 소울풀한 창법을 보여줘 큰 반향을 얻었다. 이어서 1988년 자신의 2집 앨범인 "바라본다" 를 냈는데 이 음반은 한영애의 대표곡들이 수록된 명반이 되었다.
1992년 3집 "한영애 1992" 에는 한영애의 또 다른 명곡인 "조율" 이 수록되어있는 걸로 유명하다. 이듬해인 1993년 63빌딩에서 "아.우.성" 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고 이 콘서트 실황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개인 콘서트나 연극 배우 활동을 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2012년 5월에는 보이스코리아 시즌1에 출연하여 Super Voice4와 본인의 노래 누구없소, 조율을 부르기도 하였다.#
2014년 11월 26일, 오랜만에 새 앨범 <샤키포>가 발매되었는데 그에 앞서 절판되었던 "아우성" 음반과 4집 "불어오라 바람아"가 8월에 재발매되었다.
2.1 나는 가수다 2 출연
한동안 대중들과 약간 거리가 있던 그녀는 2012년 나는 가수다 2에 전격 출연했다. 그녀의 출연은 예상한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였다. 본래 제주도에 살고 있던 그녀를 김영희 PD가 직접 찾아가서 설득해 출연했다고 한다.
첫 무대에서 손시향의 "이별의 종착역" 을 선곡했는데 편곡이 조금 어지러웠다는 지적이 있긴 했으나 한영애의 블루스를 잘 느낄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고별가수전에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를 선곡했는데 불과 이틀만에 이 곡을 알고서 불렀다고 한다. 개성이 워낙 뚜렷해서 다들 어려워하는 이소라의 노래를 한영애는 더욱 깊은 절망과 초탈이라는 느낌으로 승화시켰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한영애만이 가능한 무대라는 찬사를 받았다.
7월에는 B팀 예선전에서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 를 불렀는데 원곡이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적인 살풀이로 원곡을 재해석해 한영애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로 처음으로 상위권 진출에 성공했다! 비록 소향 때문에 조금 묻힌 바가 없진 않지만.
이후 7월의 가수전에서는 조용필의 미지의 세계를 선곡했는데 편곡이 썩 좋지 않아서 회식비에 당첨되고 말았다. 그리고 한미지씨가 된 건 덤.
8월 A팀 경연에선 이문세의 "옛 사랑" 을 불렀는데 독특한 편곡과 한영애의 음색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럼에도 하위권. 인터넷상에선 왜 한영애가 하위권이냐는 원성이 터져나왔다.
"만약 상위권이었다면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봐>나 2NE1 <Lonely>를 부르려고 했는데..." 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4]
8월 고별가수전에서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 를 불렀는데 1위를 했다. 전인권과 음색이 비슷하다면 비슷한 편인 한영애에게는 딱 맞는 선곡인 데다가 바람이 분다와 마찬가지로 원곡의 쓸쓸한 정서를 한영애식으로 더욱 극대화해서 어둡고 음울한 정서를 그대로 드러냈다. 사실 고별가수전에서 이런 무대가 나왔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매우 훌륭한 무대였고, 많은 이들이 나가수에서 한영애의 무대 중에 사랑한 후에가 최고라고 꼽을 정도다.
9월 B팀 경연에서는 보니엠의 써니의 주제곡인 "Sunny-Boney M" 을 불렀는데 파격적인 금발을 하고 무대 위에 올라왔지만 결과는 하위권이었다. 빠르고 느린 템포의 곡을 다 집어넣는 바람에 편곡이 어지러웠다는 평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블루스로 내공을 다진 한영애가 리듬을 요리하는 솜씨를 인증한 무대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왜 한영애가 하위권이냐는 원성이 다시 보였다.
9월 고별가수전에서 강산에의 "라구요" 를 불렀다. 경연 녹화 전날에 남한산성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열창을 하는 바람에 성대결절이 와서 의사는 경연을 포기해야 한다고 충고했고 한영애는 탈락하고 오겠다고 할 정도. 많은 이들이 한영애의 탈락을 예상했으나 오히려 결과는 정엽의 탈락으로 나왔다. 목 상태를 감안한다면 최선의 무대였다는 평가가 많다.
10월 A팀 경연에서 충격스럽게도 녹화일 기준으로 나온지 10일밖에 안되는 나얼의 "바람기억" 을 불렀다. 가사를 중시하는 한영애의 가수 철학의 입장에서 훌륭한 가사의 이 노래가 선곡된 건 당연한 결과인 듯. 최신곡이라 나얼의 원곡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거의 편곡을 가하지 않았고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으나 하필 그 경연에서 국카스텐과 시나위가 빅매치를 펼쳤고, 게다가 이영현, 김연우, 조장혁이라는 후덜덜한 라인업이라 결국 낙킹온 때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별전행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게다가 당시에는 최신곡인 바람기억을 선곡한 죄로 나얼의 원곡을 망쳤다는 거센 비난까지 들었다.
10월 고별 가수전에서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를 불렀는데 2위를 했다.
11월 예선전에서 부활의 "회상 I" 을 불렀다.
묘하게 한영애의 무대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호불호가 엇갈린다. 물론 이런 현상은 이소라나 조관우도 겪었던 바이지만 한영애만큼 무대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가수도 없는 듯. 이는 한영애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에 대한 호불호가 큰 탓으로 보인다. 대체적인 나가수 팬덤의 분석으로는 10-20대들은 한영애에게 거의 표를 주지 않는걸로 보이며 중장년층에게 한영애의 무대가 더 어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깔끔한 보컬을 선호하는 젊은 층의 입장에서는 한영애가 어필을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영애는 나가수에서만 보여지는 것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가수다.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고 한영애 자신도 이런 호불호에는 거의 초탈한 면모를 보이지만 한영애가 음악적으로 이룬 성취는 나가수 무대만으로 평가하기엔 너무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 게다가 나가수 2에서 가장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가수가 바로 한영애다. 블루스로 쌓은 내공에 연극 배우 경험으로 드라마틱한 무대까지 선보이는 한영애를 단지 순위와 허스키 보이스의 호불호만으로 평가하기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2.1.1 나는 가수다 2에서 불렀던 곡들
경연 | 노래 | 순위 |
6월 B조 | 이별의 종착역 - 손시향 | 하위권 |
고별가수전 | 바람이 분다 - 이소라 | |
7월 B조 | Knockin on heaven's door - 밥 딜런 | 상위권 |
7월의 가수전 | 미지의 세계 - 조용필 | 6위 |
8월 A조 | 옛 사랑 - 이문세 | 하위권 |
고별가수전 | 사랑한 후에 - 들국화 | 1위 |
9월 B조 | Sunny-Boneym - 보니엠 | 하위권 |
고별가수전 | 라구요 - 강산에 | |
10월 A조 | 바람기억 - 나얼 | 하위권 |
고별가수전 |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양희은 | 2위 |
11월의 가수전 예선전 | 회상 I - 부활 | 탈락 |
2.2 음악성
우리나라의 여가수 중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로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는 인물. 흉내내는 것조차도 불가능해서 그녀가 부른 노래라는 걸 누가 들어도 금방 알아낼 정도로 유니크한 음색의 소유자다.
한영애가 데뷔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여가수가 허스키하고 거칠게 노래를 부른다는 건 상상하기가 힘들었던 일이었지만 윤시내와 더불어 독특한 허스키 보이스가 한국 가요계에 여성 보컬의 다양성을 가져온 것은 부정하기 힘들 듯. 물론 인기는 윤시내가 더 많긴 했으나. 또한 블루스 장르에 있어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5]
따라서 음악적 스펙트럼에 있어서도 한영애는 R&B, 포크록, 트로트, 블루스 등 매우 다양한 장르에서 모두 그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은 대가이다. 1999년 발매한 5집에서는 트립합을 선보이기도 했고,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던 한국 가요들을 리메이크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고, 가장 최근에 낸 6집에서도 R&B, 레게 음악을 시도한 바 있다. 나는 가수다 2에 출연해 그녀가 보여주는 무대만을 보고 음악적 스펙트럼을 평가하기엔 앨범 디스코그래피가 너무도 아쉬울 정도.
3 디스코그라피
- 1집 여울목: 1986년 발매. 한영애의 첫 앨범으로 한돌이 작사작곡한 "여울목" 이 타이틀곡. 그 외에 엄인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도시의 밤", 이정선의 "건널 수 없는 강"도 수작으로 꼽히는 수록곡들.
- 2집 바라본다: 1988년 발매. 한영애의 최고 걸작 앨범으로 꼽히는 앨범으로 한영애하면 떠오르는 대표곡 대부분이 이 앨범에서 나왔다. 한영애가 자신의 보컬 정체성을 획득한 앨범이기도. 윤명운이 작사작곡한 "누구 없소" 나 엄인호가 작곡한 "루씰", 이승희가 작사작곡한 "코뿔소" 등은 한영애의 대표곡 넘버에 손꼽히는 곡들이다. 유재하가 만든 "비애" 도 수록. 타이틀곡이자 김수철이 작곡한 "바라본다"는 후덜덜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코러스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름아닌 전인권, 김현식, 정윤정, 박주연, 김련, 윤명운, 홍찬숙, 정정은의 올 스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거물들. 한영애에 의하면 이들에게 코러스를 해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들었는지 녹음시간에 맟춰서 스튜디오에 들어왔다고. 앨범 속 표지를 보면 이들 모두가 모여 사진을 찍은 것을 볼 수 있다.
저중 두 명은 심심해서 구경 왔는데 어영부영 분위기에 떠밀려 코러스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6]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19위에 선정되어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3집: 1992년 발매. 한돌이 작사작곡한 "조율" 은 한영애의 또다른 대표곡으로 꼽힌다. 모던 포크와 락을 시도한 앨범.
- 라이브 앨범 아.우.성: 1993년 발매. 63빌딩에서 열린 한영애의 단독 콘서트 실황을 수록한 앨범이다. 신대철, 송홍섭 등의 후덜덜한 뮤지션들이 세션으로 참여. 아우성에 수록된 "조율" 은 3집 정규 앨범보다 더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8월 6일에 재발매되었다.
- 4집 불어오라 바람아: 1995년 발매. 이 시점에서 한영애는 대중들과 약간 거리가 생겼지만 오히려 더욱 깊어진 음악을 선보였다. 기타리스트 이병우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앨범. 2014년 8월 6일에 재발매되었다. 2010년 음악웹진 100BEAT가 선정한 1990년대 100대 명반에서 77위에 랭크되었다.
- 5집 난.다: 1999년 발매. 한영애가 가진 포크와 블루스의 정서에 현대적인 테크노 음악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앨범. "봄날은 간다"의 리메이크가 유명하다.
- Behind Time 1925-1955 a memory left at an alley: 2003년 발매. "봄날은 간다"의 리메이크가 주목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의 옛 가요 300곡 중에서 14곡을 골라 리메이크 했다. 2010년 음악웹진 100BEAT가 선정한 2000년대 100대 명반에서 59위에 랭크되었다.
- 6집 샤키포: 2014년 11월 26일 발매.
- ↑ 1981년 2월 12일자 경향신문에서는 26세로 나와있지만, 정확하게는 알려진게 없다. 다만 언제나 28살 딸기띠이기를 바란다. 언제나 변신할 수 있고, 그래야 팬들에게 좋은 대화 상대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 ↑ 친분이 있는 후배들은 한영애를 나무님이라고 부른다. 후배들이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격이 생기는 것 같아서 싫어한다고.. 대신에 나무를 좋아해서 "나무"라는 애칭이 있다고 한다...
- ↑ 다만 이후 한영애는 여러 방송에서 연극 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노래를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여러 번 밝혔다. '노래는 말하듯 하고, 대사는 노래하듯 하라'는 가르침을 얻기도 하고, 음악의 공간성을 체득하게 되었다고.
- ↑ 그냥 한 말이 아니라 진짜로 불렀을 수도 있다. 윤도현의 MUST에서 2NE1의 <Ugly>를 부른 것을 보면..
- ↑ 아무래도 허스키하고 중량감있는 음색과 블루스의 궁합이 좋다보니 유독 인기가 많은 편이다. 다만 한영애 본인은 여러 차례 밝히기를 자신의 음악이 블루스 음악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전통적인 블루스 음악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며, '블루스의 여제'란 별명에 대해서도 특정 음악 장르에 구속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 ↑ 2013년 5월 22일 엠넷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숲"에서 밝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