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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문세(李文世) |
출생 | 1959년[1] 1월 17일, 서울특별시 |
신체 | 177cm, 80kg |
본관 | 전의 이씨 |
학력 | 서울광성고등학교 명지대학교 전자공학과 명지대학교 대학원 정보처리학 수료 |
가족 | 배우자 이지현, 아들 이종원 |
데뷔 | 1978년 CBS '세븐틴' |
종교 | 개신교 |
1 소개
대한민국 발라드 역사의 대명사이자 밤의 문교부 장관
잠실 주경기장을 매진시킬 수 있는 몇 안되는 가수[2]
1959년 1월 17일생. 1980년대를 대표하는 표상이며, 이문세-변진섭-신승훈-조성모로 내려오는 가요계의 발라드 황제 계보의 최선두에 위치한 태상황, 가요계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가수이다. 제라드 헌정 가수이기도 하다. 스티븐 제라드?? [3][4]
대부분의 히트곡은 작곡가 이영훈의 작품으로 이문세-이영훈 라인은 가요 전체 역사를 놓고 봐도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작곡가 듀오로 손꼽히며 대중 가요 100대 명반 중 4집이 16위, 5집이 50위에 랭크되었다. 물론 그가 작사 및 작곡, 혹은 프로듀싱을 한 것은 아니지만 대중에게 직접 표현을 하는 가수로써 그 전달력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티스트이고 대한민국 음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정태춘, 조용필 등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구세대 음악가처럼 아직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원래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시작한 가수일이 생업이 되었다고...[5] 어쨌든 무지막지한 히트곡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공연에서도 빼어난 퀄리티를 자랑한다.
말솜씨도 좋고 유머감각도 좋아 전성기 때엔 토크쇼 진행이나 예능 출연도 많았다. 활동이 뜸해진 요즘에도 간간히 나타나 터트려 주시는 듯. 하지만 그의 업적(?)중 가장 무시무시한 건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인 별밤지기. 1985년부터 1996년까지 11년동안 이 프로그램의 DJ로 있었고, 지금도 당시 청소년이었던 세대들에게는 지금도 별밤지기는 곧 이문세다[6]. 오죽하면 당시에 붙어있던 별명 중 하나가 밤의 문교부[7]장관. 그 이후 이문세의 2시의 데이트를 거쳐 오늘아침 이문세입니다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20년 넘게 활약 중이다. MBC 라디오 명예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골든마우스를 수상했다.
1990년대 초중반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를 맡았을 때도 반응이 좋았는데, 이휘재의 <인생극장>에서 썬그라스를 끼고 특유의 BGM과 함께 나레이션을 하는 모습은 원단 개폼, 아니 말(馬)폼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이문세도 자기 이름을 단 <이문세의 오아시스>라는 프로그램을 단 7회 만에 말아먹은 흑역사가 있다(...) 그리고 10집 "화무"에 수록된, 김현철이 작곡한 "난 괜찮아"가 표절 판정을 받은 또 다른 흑역사가 있다.[8]
긴 하관으로 인해 말이라고 놀림당하는 일도 잦았다, 방송에서도 이 말상이 캐릭터였다.[9] 비슷한 외모의 유열, 이수만(SM의 그 분 맞다!)과 더불어 馬삼 트리오라고 불리기도 했다.[10] 셋이 같이 콘서트를 하기도 했고 심지어 CF도 같이 찍기까지 했다. 해당 CF는 바로 아래의 유튜브 영상으로 나오는 1세대 현대 엑센트 CF이며, 세명이 한 컷에서 '취향에 따라 골라타세요'라 말하며 광고가 끝난다(...).
예전엔 말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예인이었고 경마장 드립 등 다양한 유머[11]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건 본인도 인정하는거라 공식 홈페이지 이름은 이문세의 마굿간(…).그의 사이트 프로필을 참조하면 얼굴길이는 무려 483cm... 1994년 출간한 이문세의 자서전 제목도 "마굿간 이야기"이다. 예전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 당시 게스트였던 솔리드는 이문세가 제안한 야자타임에서 "이 말같이 생긴놈" 드립을 쳤고, 이문세 역시 호기롭게 웃으며 받아주기도 했다. 또한 1994년 LG 트윈스 우승 주역인 우완 선발 투수 김태원과 닮은 꼴이라 일밤 진행 당시 김태원이 LG 트윈스 경기복 입은채로 초대된 적도 있다. 그리고 이문세는 LG 트윈스 명예 선수이기도 하다.##
슈퍼스타K2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참가자들이 자신의 곡을 미션으로 불렀는데 이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다시 인지도가 높아졌다. 예전에는 말상이라고 놀림받는 등 비쥬얼이 뛰어난 가수는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폭풍간지 미중년으로 변신했다. 슈퍼스타K에서는 참가자들이 엄청 몸 좋고 키크고 잘생긴 분이 들어오셨는데 이문세 선생님이셨다라는 말을 할 정도. 그도 그럴게 이문세는 배드민턴 매니아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운동을 통한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한다. 심지어 배드민턴 잡지에 표지모델로 나온 적도 있다고 하니. 내일모레가 환갑이다.
과거의 이문세는 '말랑말랑하게 노래하는 가수', 혹평을 받을 때는 '작곡가 잘 만나서 좋은 곡 받고 덜 부담스러운 외모로 친근감이나 어필하는 가수'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아무리 가수를 갈궈도 최종 출력물인 앨범에서 그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문세는 수 많은 명곡을 자기 스타일로 잘 해석하는 가수이며, 음역대가 좁고 음색이 쉽게 틀어지는 단점을 잘 커버하면서 표현력의 교과서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특히 내공이 쌓이면서 공연을 수행하는 능력이 탁월해졌고 뛰어난 음악적 직관력까지 갖춘 전형적인 대기만성형의 노고수. 그리고 외모가 환골탈태.
나는 가수다에서 김연우가 '나와 같다면'을 불러서 높은 인기와 많은 관심을 받을 때,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문세가 불렀던 '나와 같다면'도 덩달아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문세는 가수 설운도와 나이가 몇 개월 차이 밖에 안 나는 동갑이지만 [12] 데뷔는 훨씬 빠른데(설운도는 1981년, 이문세는 1978년), 한번은 설운도는 라디오에 나와 "사람들이 이문세 선배님보다 내가 나이가 아주 더 많고 더 선배인지 아는 사람이 많다"면서 후배 가수들은 이문세에게 형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무슨 선배님이라면서 나이가 더 많게 대한다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터넷으로 올리면서 네티즌들도 어? 설운도가 이문세 선배 아니었어? 반대라고? 놀라워하는 경우가 많다. 설운도 지못미
한때 나는 가수다 2에 김영희 PD가 섭외하려고 했다는 기사가 떴었다. 딱히 한다 안 한다의 의사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7월까지는 남아공에서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때문에 참가가 힘들거라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TV조선에 편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문세와 떠나요! 비밥바룰라 참조.
2013년 히든싱어(E12, 13년5월18일 방송분)에 출현하여 멋진 무대를 펼쳤다. 특히 마지막 미션곡이었던 옛 사랑에서는 연예인 판정단 전부가 기립까지 하는 모습을....참고로 이 방송에서 박경림이 말하기를 이문세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아서 두문불출한 것이라 한다.
첫 해외 콘서트를 한다.
갑상선암 재수술을 받는다.
2015년 4월 7일 13년만에 앨범을 발표했다.
2015년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박정현과 같이 출연했다. 본인이 이르길 목양인 체질이라고 카더라.
2015년 응답하라 1988의 시청지도서 내레이션을 맡있다.
2015년 만우절에서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일일 안내 방송을 맡았다. 서울대입구역이 서울대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디스한건 덤
한 방송에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 MC로 잘나가던 시절, 예능을 그만두고 뮤지션으로서 자존심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이상은의 말한마디 때문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2 대표곡
이문세/음반 목록 참고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 붉은 노을
- 옛사랑
- 그녀의 웃음소리뿐
- 가을이 오면
- 광화문 연가
- 알 수 없는 인생
제라드 헌정곡 - 깊은 밤을 날아서
- 할 말을 하지 못했죠
- 기억이란 사랑보다
- 솔로예찬
가정이 있으신 분이 이런 노래 부르는 거 아닙니다.[13] - 조조할인(with 이적)
- 난 아직 모르잖아요
- 안개꽃 추억으로
-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 이별 이야기
- 소녀
- 사랑이 지나가면
- 빗속에서
- 그대 나를 보면
- 해바라기
- 나는 행복한 사람
- 파랑새
- 굿바이
- 휘파람
- 사랑은 늘 도망가
- 밤이 머무는 곳에
- 그대와 영원히
- 그게 나였어
- ↑ 호적에 1957년생으로 알려졌다.
- ↑ 2013년 대한민국 이문세 콘서트를 통해 최대 정원인 4만 5천명을 매진시키는데 성공했다.
- ↑ 이승환의 경우 신승훈과 90년대 초중반에 같이 활동하며 발라드 왕자로 불리긴 했으나, 당시 신승훈 보다는 인기도나 음반판매량에서 약간 아래였던데다 활동 전반기에만 발라드를 구사했을 뿐 인기를 얻고 나서 후반기 부터는 록 장르로 완전히 옮겨 지금까지도 록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기에 발라드 계보를 잇는 뮤지션으로서는 다소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윤종신의 경우 신승훈, 이승환 바로 아래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윤상은 1993년 이후 활동이 뜸해졌을 뿐더러 2000년대 이후 일렉트로니카 장르로 바뀌면서...
- ↑ 일각에서는 김동률 - 성시경, 김범수 - 박효신, 테이 이 계보를 잇고 있다고도 하지만, 모두 2000년대 전반적으로 침체를 맞은 음반판매량 감소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위의 계보에 위치한 가수들보다 히트곡들이나 가요순위 입지에서 아직 부족한 편이다. 물론 이들이 실력이 없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지만...
- ↑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전유성에 의해 픽업되서 무대를 최초로 설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 ↑ 방송사에서도 이문세가 쌓아온 별밤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하고 계속 그 시간대 방송은 별밤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 청취자들(특히 이문세 시절에 주 청취자들
그러니까 지금 별밤 주 청취자의 부모님 세대들은 진행자가 이문세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이후 별밤을 사도로 취급한다. 나아가 이문세가 진행하는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2시의 데이트,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 등)을 오히려 별밤의 후속으로 여길 지경이다. - ↑ 지금의 교육과학기술부. 실제로 1995년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 ↑ 김현철은 이문세의 9집부터 11집까지 프로듀싱을 맡았는데, 이 사건으로 김현철의 커리어에 큰 오점을 남겼다. 이문세도 오점을 남긴 건 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황신혜가 출연했다.
- ↑ 그리고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해서 진짜로 당근을 좋아해서 작업실 냉장고에 당근이 떨어진 적이 없다고 밝혔다.
- ↑ 물론 이 마삼 트리오는 음악적 요소가 기본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셋다 당대 음악계를 풍미할 정도는 아니었어도 각자의 영역에서 인정받았고, 그것이 감성을 자극하는 발라드 -발라드의 황제라 불리는 신승훈 이전에- 로 듣는 이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시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후대에는 셋 다 하관이 긴 걸로 기억에 남지만(...)
- ↑ 가령 이런 거다. 최불암과 이문세가 등산을 갔다가 미끄러진 이문세를 최불암이 붙잡았는데 "이문세 씨 괜찮으세요?"라고 묻자 매달린 이문세가 "선배님 말놓으세요~"라고 답하자 말을 놓아서 떨어져 버렸다거나(…).
- ↑ 이문세는 빠른 1959년생, 설운도는 1958년생이다.
- ↑ 1993년에 이미 종원에게 라는 아들에게 바치는 노래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 노래는 1998년에 나온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