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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1967년 1월 19일, 대한민국 해군 소속 초계함 당포함[1]이, 한반도 동해안에서 조선인민군 육군 해안포의 포격을 받아 격침된 사건. 일단은 북한의 대남 도발사 에 들어가는 사건으로 문제의 발단은 NLL, 즉 북방한계선이었다.
2 화약고 NLL
NLL은 서해뿐만 아니라 동해에도 그어져 있는데, NLL 그을 때야 군사적, 정치적 판단으로 그은 거지만 동해 어민들 입장에선 NLL 북쪽 해역에서 명태가 더 잘 잡혔다.(…) 안 그래도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인지라, 어민들은 뻔질나게(…) NLL 북측수역에서 어로작업을 했고, 이를 말려야 했던 해군은 어쩔 수 없이 같이 넘어가서 보호작전 및 철수요구를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가 맞는게, 당시 북한은 저렇게 넘어가던 어선 몇 척을 나포해갔다. 사실 '나포'만 하는건 북한 '영해'[2] 에서 불법어로작업을 하는 거니까 북한의 정당한 권리가 맞는데, 나포해놓고 왠만하면 석방 안 시켰으니 문제.
당시는 위성항법장비(GPS)는 커녕 인공위성이란 말도 생소하던 시절로, 옛날식으로 해도를 펴놓고 컴퍼스와 측거의로 항해를 하던 시대였기에 해상에서의 위치를 명확하게 판단하기가 힘들긴 하다.[3] 하지만 육지가 뻔히 보이는 연안 가까운 바다에서, 그것도 그곳을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어민들이 어느 선을 넘어가면 북방한계선이라는 걸 모른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 장사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결론은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이거 고의성이 다분한 월북인데?[4]
이러한 현상은 계속해서 벌어졌고, 해군은 원래 할 일인 북한군과의 대치보단 오히려 어민들 말리는데 더 큰 힘을 쏟아야 할 판국이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해군 세력이 약했던 북한은 60년대 한국 해군 함정에게조차 어쩌지 못해 훨씬 작은 경비정으로 슬쩍슬쩍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히든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3 사건 당일
1967년 1월 19일, 늘 그렇듯(…) 어선들은 명태 잡으러 NLL을 넘었고, 이에 당포함도 덩달아 넘어가서 "아저씨들 빨리 좀 내려와요 여기 북한 수역이란 말이에요!"를 외쳤지만 당연히 씹혔다(…).
그리고 그 순간 북한 경비정 2척이 출현했다. 당포함은 이들이 어선을 납북해 가려는 것으로 파악하고 즉각 대응에 들어가 북쪽으로 전진했고, 북한 경비정들은 퇴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의 노림수였으니….
13시 55분, 북한 해안가 포진지에서 기습적으로 포격이 시작되었다. 소련에서 들고 온 강력한 122㎜ 해안포 10여 문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당포함 주위에 물기둥을 만들었고, 기관실을 시작으로, 스크류, 기관포탑 등이 계속 피탄당하며 당포함은 순식간에 전투능력을 상실했다. 당포함도 급히 응사했으나 당포함의 무장은 3인치(76.2㎜) 포 1문, 40㎜ 6문, 20㎜ 4문에 불과했으므로 화력면에서 상대가 되질 않았고, 40㎜와 20㎜ 기관포는 아예 인민군 포대에 도달하지도 못 했으며 3인치 함포는 북한군의 포탄을 맞고 조기에 제압되고 말았다. 게다가 북한군 포들은 해안의 진지에 잘 은폐되어 있었으므로 20발을 발사한 3인치 함포탄도 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뒤이어, 작전 중인 다른 해군 함정들이 달려오자 북한군의 포격은 멎었다. 그러나 이미 당포함은 만신창이가 되어 기동 불능 상태에 놓였고, 결국 함장은 퇴함명령을 내렸다.
이 공격으로 당포함은 결국 침몰했고, 승조원 39명이 전사했다. 이중 28명은 시신도 건지지 못했다.
4 사건 이후
북한측의 치밀하게 준비된 도발로서 비록 우리 측이 NLL을 먼저 넘었긴 했지만 경고 없이 바로 조준사격을 한다는 것은 국제적 관례를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는 짓이라 북한측의 책임이 크다. 1999년 이후 제 1, 2차 연평해전이나 대청해전 모두 북한측이 넘어왔어도 한국 해군은 처음부터 조준사격을 가하기는 커녕 사전 경고를 먼저 보냈고, 북한 해군은 포탄으로 대답했다.북한군에 국제적 교전규칙을 바란다는게 무리일지도
이 사건으로 당시 어로작업에 참가했던 어민 중 몇 명이 해군에 미안하다며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명태가 북한 수역에서 더 잘 잡히는건 여전한 사실이었고, 어선들은 계속 NLL을 넘었다(…)코렁탕 맛을 봤어야 했는데. 이렇게 어로자원을 따라 남북한 어선이 NLL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90년대 들어서야 사라졌다.
5 트리비아
- 근래 동해상에서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동해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동해의 수온도 높아지고 너무 남획하는 바람에 이제 NLL 근처에서는 명태가 잡히지 않는다고.
- 일부 언론 등에서 "당진호(함도 아니고 호란다....)"라고 잘못 표기해 이 이름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다.
- 권주혁 작가가 쓴 바다여, 그 말 하라!의 2부에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 위키백과에서는 '대한민국 해군 56함 침몰 사건'이라고 명시되어있다.
6 같이 보기
- ↑ 미군이 2차 세계 대전 당시 건조한 PCE-842급 경비정을 61년 들여온 것. 초계함 항목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 기준의 차이로 정(Craft)에서 함으로 분류가 격상된 사례다.
- ↑ 다만 북의 영토나 영해는 이론상 모두 대한민국의 주권이 닿아야 한다 (휴전선이나 북방한계선 모두 일반적인 국경선이 아니다.) '영해 논리'를 썼다가는 북이 떠드는 공간만 만들어 주기 떄문에 주의해야 한다.
- ↑ 레이더는 당시에 있는 물건이긴 했으나, 당시 한국의 형편상 해군 함정이라면 모를까, 어선들에게 레이더가 있었을리 만무하다.
- ↑ 실제로 이렇게 넘어갔다가 나포되어 공산화 교육을 받고 북한체제 선전을 위해 이용된 후 남한으로 풀려났다가 다시 북한으로 자진해서 월선한 사람에 대해서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판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