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쉬(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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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 회사이자 해당 회사의 초콜릿 제품군.

1894년 밀튼 스네이블리 허쉬(Milton Snavely Hershey, 1857년 9월 13일 ~ 1945년 10월 13일)가 '랭커스터 캐러멜 컴퍼니'의 자회사로서 허쉬 초콜릿 컴퍼니(Hershey Chocolate Company)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름이 바뀐 것만 봐도 알겠지만 원래는 밀크캐러멜을 만드는 회사였다. 참고로 캐러멜 회사로도 매우 유명해서 한때 영국에서 대량으로 주문이 들어와서 이걸로 창업 대출을 한큐에 상환했을 정도라고 한다.

흔히 Hershey's라고 알려져 있는 이 기업의 예전 사명은 2005년 4월까지 '허쉬 식품 주식회사(Hershey Foods Corporation)'이었으나, 이후 '허쉬 기업(The Hershey Company)'으로 개명하였다.

밀튼 스네이블리 허쉬는 당시 자본가들과 달리 매우 선량한 인물로, 자사에 근무하는 근로자에게 전기와 온수가 펑펑 나오는 집도 주고, 극장이나 경기장 같은 여가 시설도 충분히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대공황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리해고는 최대한 피하려 했고, 임금도 인상해주려 노력했다. 그 때문에 허쉬사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상낙원이라 여겨졌다고. 게다가 원래부터 향토기업가였기에 생전에 그의 공장이 있던 마을이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가 생겼다.

하지만 이 양반도 결국은 자본가다 보니 노조를 불허했고, 결국 임기 말년에 회사에서 대규모 노동쟁의 투쟁이 일어났다. 그래도 어떻게든 협상으로 완만하게 해결을 보려 했지만, 공장에 우유를 공급하는 농민들이 파업으로 손실을 입으면서 빡친데다, 노조에서 공장부지 내에 있는 국기대에 국기를 내리고 노조깃발을 내걸면서 전역군인회에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다. 결국 허쉬의 강성노조는 농민+온건노조원+전역군인 연합군의 러쉬에 강제 해산 당했고, 이 과정에서 무수한 부상자들이 발생했다.
이 일로 실의에 빠진 밀튼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만다[1]. 그러나 이후 허쉬사의 복지수준은 달라지지 않았고, 현재는 사회복지사업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그리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어도 부지런히 자선활동을 계속했다. 밀튼 허쉬는 자녀가 없었기에 재산의 대부분을 자신의 이름을 딴 학교의 신탁 기금인 Milton Hershey School Trust에 기부했다. 그리고 아예 신탁회사를 세워서 학교와 기업 두개를 다 관리하게 했다. 실제로 펜실베이니아에는 은근히 허쉬 이름 들어간 것이 엄청 많은데, 거의 대부분 다 이 사람이 관여한 것이다.

아직 펜실베니아에 Milton Hershey School이 있는데 1909년에 자녀가 없었던 허쉬 부부가 고아원겸 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만든 것이 그 시작이다. 처음에 세워진 부지는 허쉬가 자랐던 농장의 부지라고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2천명 정도의 재학생이 다니는 매우 거대한 규모의 기숙학교로, 사회,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주로 입학시켜 운영되고 있는 학교다[2]. 그리고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운영되는 학교다보니 당연히 학비는 없다. 게다가 위에 써놨듯이 실질적으로 이 학교가 허쉬 회사의 최대주주라고 봐야하기 때문에 자금력도 엄청나다(...)

모 국가에서 판매중인 제품엔 식물성 유지[3]를 사용하는 훌~륭한 로컬라이징을 시전했다. 로컬라이징이 된 버전이 수입과자점까지 점령하고 있지만, 가끔 원판 그대로를 판매하는 상점도 있으니 찾아보자. 스티커 말고 포장지에 한글이 쓰여져 있으면 로컬라이징 버전이다.

전시중인 미군에 납품되는 초콜릿 메이커로도 유명하다. 2차대전 때도 엄청난 양의 초콜릿을 생산해 병사들에게 공급했는데, 군부의 주문 내역은 단단하고 잘 안녹고 오래가고 맛없게[4]였고, 이걸 전부 완벽하게 해내서 미군병사들에게 밞아 뭉갠 감자맛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거기다 단단하고 녹지도 않으니 먹기도 불편 (...).

그리고 소련에도 무기대여법으로 엄청난 양이 공급되었는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수세에 몰린 소련군이 최후까지 지급할수 있었던 유일한 식량이라고 한다. 어쨌든 스팸과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양대 군납식품이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등장한다. 네덜란드에 입성한 부대원들이 동네 꼬마에게 초콜릿을 나누어주는데 그게 바로 군납 허쉬 캔디 바. 이 꼬마들은 유럽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초콜릿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2차대전 이후에도 미군 보급품으로 활약했다.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허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6.25 전쟁때 미군들이 구호물자로 나누어 준 물량에서 비롯된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80, 90년대경까지는 해태제과가 국내 라이센스를 가졌다가 매일유업으로 넘어갔고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 오리온에게로 넘어갔다가 현재는 허쉬 키세스,허쉬 너겟 제품은 롯데제과가 그 외 나머지 대부분 허쉬 초콜릿 제품은 한국로투스가 국내 라이센스를 양분하여 소유하고 있다.[5]

다만, 허쉬초콜릿 드링크는 매일유업이 독점판매하고 있으며[6] 허쉬 아이스크림바와 콘은 라보떼로 유명한 중소기업 라벨리에서 생산판매중.

여담으로 롤러코스터 타이쿤 3편 확장팩에 허쉬와 관련된 테마로한 놀이기구와 상점이 등장한다.

2 신맛

유럽에선 구토맛[7], 미국에선 허쉬만의 풍미

허쉬의 밀크 초콜릿에서 나는 특유의 시큼한 맛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것은 허쉬가 원치 않았던 결과물이었으나, 지금은 허쉬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로 자리잡아버렸다.

원래 밀크 초콜릿은 스위스의 다니엘 페터의 아이디어와 우유를 농축하는 기술을 발명한 앙레 네슬레의 합작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유럽 내에서 이를 업계 비밀로 만들었다. 허쉬도 처음에는 이 방식을 도입하려고 애썼으나, 결국 기술을 빼오지 못해서 자체적으로 제조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방식은 특유의 신맛을 남게 하였다. 신맛의 원인은 허쉬 방식의 농축우유 제조 중 유지방 처리 과정에서 낙산(Butyric acid)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유럽 방식에 비해 저급한 기술이며 초콜릿의 풍미를 심하게 망치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허쉬 초콜릿에서는 구토 맛(시큼한 맛)[8]이 난다'고 놀리곤 한다. 다만 대량생산에는 허쉬 방식이 유리하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허쉬 초콜릿을 먹다보니 동시에 허쉬의 신맛에 익숙해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오히려 시큼한 맛이 나는 것이 초콜릿의 스탠다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9]. 후발 기업들의 경우 허쉬와는 달리 제대로 된 유럽 기술을 도입하면서 시큼한 맛이 별로 나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이 이미 허쉬만의 신맛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터라, 결국 후발 기업들도 멀쩡한 초콜릿에 별도로 낙산을 소량 첨가하서 허쉬처럼 신 맛이 나도록 만들게 되었고, 허쉬는 이제 자신의 제조 방식을 영업 비밀로 만들어 버렸다는 아이러니한 일이 생겨버렸다. 모로 가도 미국인만 사로잡으면 장땡

심지어 이 결과는 창업자인 밀튼 허쉬도 원하지 않는 결과였다고 한다. 그는 유럽의 고급 초콜릿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해 꾸준히 연구해봤으나 한계가 있었다. 심지어 재료조차 최상품만을 가져와서 꾸준히 연구해봤으나 제조법을 모르니 계속 실패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한국의 경우, 국산 초콜릿들의 경우 대부분 유럽식 농축법을 도입한 터라 신맛이 나지 않으므로, 허쉬 초콜릿이나 키세스 등을 먹이면 약간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맛에 민감한 경우에는 허쉬 초콜릿에서 시큼한 맛이 난다고 불평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상술한대로 전후 미군에게서 구호품으로 허쉬 초콜릿을 받아먹은 경험이 있는 노년층의 경우 오히려 요즘의 유럽식 초콜릿 맛이 낯설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 신맛은 밀크 초콜릿 제품군 한정이다. 허쉬 제품일지라도 우유 함량이 적은 다크 초콜릿화이트 초콜릿 제품군은 신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

2014년 즈음 제품군 전체를 리뉴얼 했는데 신맛과 특유의 똥내향이 확 줄었다. 포장지가 기존과 다르게 하단에 다른 톤의 색상으로 레이블이 깔려 있어 이것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creamy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기존의 맛이 워낙 독특한 맛이었기에 소비자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특히 기존의 맛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도 같은 맛을 느낄 수 없게 되어 크게 실망하는 중...이래서야 다른 초콜릿과 차이가 없다 롯데를 죽입시다 롯데는 허쉬매니아들의 원수

3 생산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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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래부터 메노나이트라서 폭력을 매우 두려워하며 혐오하던 그였기에 이 사태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허쉬는 별세하기 몇년전인 1940년에 허쉬에 공식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보고 축하해줬다.
  2. 대공황때 고아가 된 소년이 이 학교겸 고아원에 받아들여져 교육받고 자란 뒤에 허쉬에 입사해서 아예 CEO가 된 훈훈한 사례도 있다.
  3. 원래 초콜릿에는 카카오버터가 들어가야 한다. 카카오 버터의 녹는 점이 체온보다 낮기 때문에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초콜릿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것. 식물성 유지는 그런 거 없다. 당연하게도 풍미는 말할 것도 없다. 모든 것은 다 원가절감. 하지만 가격은 원가절감하지 않았다.
  4. 구체적으로 삶은 감자 수준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맛있으면 미리 다 먹으므로 막상 필요할 땐 못먹게 되니까. 사실 현대도 이 때문에 비상식량 대부분이 맛있지 않게 만든다.
  5. 허쉬 쿠키앤크림 초콜릿,허쉬 다크펄 제품은 롯데의 상하이 법인에서 생산하고 한국로투스에서 수입해온다. 아무래도 국내 판매권이 한국로투스로 넘어간 듯 했으나 2015년 3월 기준으로 수입판매원 : 롯데제과주식회사로 되어었는 걸로 보아 다시 롯데로 넘어간 듯 하다.
  6. 근데 허쉬초콜릿 뒷면에 "수입판매원:한국로투스(주)"라고 되어있다. 아마 위탁판매인듯.
  7. 유럽은 세계에서도 최고를 운운할 유명한 초콜릿 강호들이 대전을 벌이는 곳이다
  8. 실제로 사람의 구토 냄새를 내는 주성분이 낙산이다.
  9. 미국의 대배우인 진 헤크먼이 이 허쉬 특유의 맛을 엄청 좋아한다. 본인 말로는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최고급 초콜릿을 다 먹어봤으나 허쉬가 제일 맛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