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제

1 우표기장군 호제

胡濟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로 자는 위도(偉度). 호박의 형. 정사 삼국지의 촉서 <동화전>의 주석에 주된 내용이 나오며, <이엄전>, <동윤전>에 이름이 등장한다.

의양 사람으로 제갈량의 주부가 되어 진심으로 나아가 힘썼으므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231년에는 소무중랑장, 행중참군을 지내면서 이엄을 탄핵하는 글에 서명했다.[1] 제갈량이 죽고 나서 중전군이 되어 여러 군대를 통솔했으며, 성양정후로 봉해졌고 돌아와서 중감군, 전장군, 독한중, 가절에 연주자사에도 올랐다가 우표기장군까지 이르렀다.

제갈량이 여러 사람들을 얘기할 때 최주평에게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자주 지적받은 것, 서서에게서 그의 가르침을 여러 번 받은 것, 동화에게는 함께 일할 때 매번 자신의 의견을 전부 말한 것 등을 얘기하면서 호제에 대해서는 일을 처리하면서 여러 차례 간언을 해 부당한 결정을 제지했다는 것을 얘기해 호제를 칭찬했다.

그가 중전군으로 있을 때 동윤, 비의와 함께 연회에 간 적도 있었다.[2]

1.1 동일인? 동명이인?

아래의 진서대장군 호제와 동일인인지 동명이인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일단 동명이인이라는 가정 하에 나누어 서술하며,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서술.

단 각각의 출신지와 한 명의 사망시점이 명확하여 자까지 똑같음에도 동명이인이 확실한 유대와 달리, 호제는 동일인일 가능성도 높다

2 진서대장군 호제

胡濟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이다. 정사 삼국지의 촉서 <후주전>, <강유전>에 등장한다.

256년에 대장군으로 승진한 강유가 융마를 지휘하게 되면서 진서(대)장군[3]을 지내고 있던 호제는 강유의 북벌에 참가해 상규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호제는 약속을 어기고 만나지 않아 강유는 결국 단곡에서 등애에게 격파되어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매우 많은 수가 사망했다. 이 때문에 병사들이 모두 강유를 원망하면서 농서 서쪽 지역에도 소동이 일어나 안정되지 못해 강유가 잘못을 사과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의 관직을 삭탈할 것을 요구해 후장군 및 행대장군사로 강등되었다.

단곡 전투는 촉한의 북벌 사상 최대의 패배 중 하나였고, 그 여파로 총사인 강유도 자리 보전을 못한 마당에 패배의 원흉이라 할 만한 호제는 당연히 목이 날아가거나 최소 삭탈관직을 당했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다. 하다못해 투옥이나 벼슬이 깎이거나 문책을 받았다는 기록조차 없다. 때문에 호제가 훼방을 놓거나 농땡이를 피워서 약속을 못 지킨게 아니라[4] 약속을 못 지킬 수 밖에 없었던 어떤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추정하는 의견이 많지만 관련 기록이 부실한 탓에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숫적으로 우위에 있던 위군에게 길막당했다거나, 전투 상황이 지나치게 급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무언가 타이밍이 어긋났다는 설[5] 등이 제기되고 있지만 추정일 뿐이다.

258년에는 독한중으로 지낼 때 강유의 지시로 한수까지 물러났으며, 호제 이외에도 강유는 감군 왕함, 호군 장무 등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2.1 동일인? 동명이인?

전(傳)을 남기지 못 해 서술이 흩어져 있어 명확히 동일인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동화전> 등에 기술된 호제와 <강유전> 등에 기술된 호제의 주된 활동 시기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촉의 다른 후기 장수들 역시 제갈량 북벌 시기에 활동했던 이들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보통 동일인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호제를 동명이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화양국지의 다음 기술이다.

"十一年, 鎭北將軍王平卒. 以中監軍胡濟爲驃騎將軍, 假節, 領兗州刺史, 代平督漢中事."

"(연희) 11년(248년), 진북장군 왕평이 죽었다. 중감군 호제를 표기장군, 가절, 영 연주자사로 삼아 왕평을 대신해 한중의 일을 감독(독한중)하게 했다." (화양국지 유후주지)

호제가 이미 248년에 군 최고위직급인 표기장군이 되었다면, 256년 단곡 전투 때 진서(대)장군이라는 더 낮은 직급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적다. 그런데 심지어 저 내용을 기술한 화양국지조차 별다른 언급 없이 256년 시점에서 진서대장군 호제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동화전> 주석에 나열된 호제의 직책 중에 진서(대)장군은 없다. 때문에 둘을 동명이인으로 보는 분석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단, <동화전> 주석에서는 호제가 맡은 직책들을 나열할 때 가절, 연주자사 전에 표기장군이 아닌 전장군이 기술되어 있으며, 우표기장군이 되었다는 기술은 나중에 나온다. 기술순서를 감안하여 화양국지의 표기장군 기술을 시기를 앞서 적은 오기로 보고, <동화전> 주석 서술에서 최종직책인 우표기장군을 서술하느라 진서대장군 직이 빠졌다고 보면, 동일인인 호제가 전장군, 진서대장군을 거치는 과정에서 독한중 직도 맡고 나중에 우표기장군에 이르렀다고도 설명할 수 있다. 촉의 부실한 기록 때문에 논란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듯.

3 연의

이들은 삼국지연의에는 한 사람으로 합쳐졌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우표기장군 호제가 했듯이 제갈량의 북벌에도 참가하며, 진서대장군 호제가 한 것 처럼 강유의 북벌에도 참가해 한수성을 지킨다. 후에 종회에게 양평관이 함락되자 구원군을 청하기 위해 성도로 향한다.

4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도 역시 동일인으로 출연한다. 일러스트는 무관같이 생겨놓고 막상 능력치는 문관형. 원래 생몰년 미상이지만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207(생년) ~ 264(몰년)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63/45/70/72의 문관. 제사, 덫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8/42/68/72/66 에 특기는 겨우 3개.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57/39/68/72/65이며, 특기는 없다. 촉 후반부~극후반기 장수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일단 호제가 나올 당시의 촉나라의 인재 상황은 극히 좋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인재는 쓰일 수밖에 없다.

삼국지 12에서는 57/39/68/72의 능력치이며, 전법은 창방어강화.

진삼국무쌍 BLAST에서 요화, 왕평, 장익, 미당(?)에 이어서 쟁쟁한 후기 무장들을 제치고 참전. 미남형으로 나왔으며 관련 스토리가 없어서 연의 기반의 동일인인지 정사 기반의 동명이인인지는 불명. 지도를 보고 해메는 표정을 짓는걸로 보아 기반 스토리는 호제가 제때 지원을 가지 않아 강유가 대패한 단곡전투가 배경인 듯하다.

삼국전투기에는 닭치高의 등장인물로 등장하였다. 시크릿 에이전트랍시고 얼굴 전체가 까만 색이었는데, 강유에게 혼날 때는 까만 색이 사라지고 닭치고의 등장인물처럼 닭벼슬이 있고 코에 콧물을 칠한 분장을 하고 있다.
  1. 출처는 <이엄전>.
  2. 출처는 <동윤전>.
  3. <후주전>에서는 진서장군, <강유전>과 <화양국지>에서는 진서대장군
  4. 만일 이런 케이스였다면 호제의 죄질은 마속, 이엄 못지 않다. 웬만한 빽이 있었다고 해도 도저히 무사히 넘어가기는 어렵다.
  5. 강유의 주둔지와 호제의 주둔지는 수백km나 떨어져 있었다. 단곡 전투 같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는 호제 잘못은 아닌데 뭔가 어긋나는 상황 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