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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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庶
(? ~ ?)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는 원직(元直). 초명(初名)은 서복(徐福). 예주 영천군 사람.

연의 덕분에 뛰어난 군략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정사에서의 그는 그냥 제갈량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2 정사

2.1 초기 생애

서서에 대한 기록 중에 本單家子, 즉 단가의 자식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단가(單家)란 친척이 없는 단독 가구를 의미하며, 친족 간에 상부상조가 굳건하던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보면 서서는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된다.

또한 젊은 시절에는 임협, 격검(검술)을 좋아하며 불량하게 살았다. 대략 189년 정도에 서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원수를 갚아준 후 얼굴에 하얀 흙을 바르고 머리를 흩트려서 얼굴을 숨긴 채 달아나다 관원에게 붙잡혔다. 관원이 그의 이름을 물어도 서서는 입을 닫고 말하지 않았다. 이에 관원이 그를 수레에 태우고 기둥에 묶고는 북을 치며 저자 거리를 돌아다녔으나 감히 그를 식별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일당들이 그를 풀어줘 죽을 뻔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마음을 고쳐먹은 서서는 무기를 버리고 학문을 닦기 시작했다.

처음에 학사에 나오자 여러 유생들은 그가 예전에 도적질했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서서는 늘 성실하고 겸손하게 행동하였고 마침내 동향인 석도와 친애하게 되었다. 중원에 전란이 일자 석도와 함께 남쪽으로 와서 형주에 의탁했다. 도착한 후 또한 제갈량과도 서로 친하게 지냈다.

상랑전에 주석으로 달린 양양기에 따르면 상랑은 젊어서 사마덕조(사마휘)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서원직(서서), 한덕고(한숭), 방사원(방통) 등과 친하게 지냈다.

제갈량전에 따르면 제갈량은 늘 자신을 관중, 악의에 비교했으나 당시 사람들은 이를 수긍하지 않았다. 오직 친한 벗으로 지내던 최주평, 서서 만이 참으로 그러하다고 인정했다.

제갈량전에 주석으로 달린 위략에 따르면 제갈량은 형주에 있었는데, 건안 초, 석광원(석도), 서원직(서서), 맹공위(맹건) 등과 함께 타향에서 공부했다. 이 세 명은 정밀하고 세세하게 공부했으나 제갈량은 홀로 전체의 큰 내용을 살피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매양 새벽부터 밤까지 차분하고 침착하게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크게 읊조리며 세 사람에게 말했다. "경(卿) 세 사람이 벼슬하면 가히 주자사나 군태수까지 오를 것이오." 세 사람이 제갈량 자신은 어떠한지 물었으나 제갈량은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2.2 유비 휘하에서

제갈량전에 주석으로 달린 양양기에 따르면 신야에 머물던 유비가 사마덕조(사마휘)에게 세상 일에 관해 물었다. 사마휘는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 모른다며 시무를 아는 준걸은 복룡과 봉추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누구인지 유비가 묻자 사마휘가 말했다. "제갈공명(제갈량)과 방사원(방통)입니다."

제갈량전에 따르면 유비가 신야에 주둔 중일 때 서서는 유비를 섬긴다. 유비는 서서와 만나고 그를 중히 여겼다. 서서가 유비에게 제갈량을 천거하며 말했다. "제갈공명은 와룡(臥龍)입니다.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쓰지 않으십니까?" 유비가 말했다. "그대가 데리고 오시오." 서서가 말했다. "이 사람은 가서 만나볼 수는 있으나 몸을 굽혀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장군께서 의당 몸을 낮추시고 방문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유비가 제갈량을 직접 방문했고 세 번 만에 만날 수 있었다.

서서가 정사에서도 저명한 군략가였는지는 알기 어렵다. 서서의 사적은 촉서 제갈량전의 주석을 통해서만 간략하게 전해지는데 그에 대한 기록이 너무 미비하기 때문에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기 힘든 것이다.

갑자기 유표가 죽고, 유종은 조조가 형주를 정벌한다는 것을 듣고 사자를 보내 항복을 청했다. 유비는 번성에서 이 일을 듣고 군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도망갔다. 제갈량은 서서와 함께 유비를 뒤따랐다.

서서가 유비와 작별한 것은 장판파의 도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시점이다. 한진항을 향해 도주하던 유비군은 장판교를 지나 벌판에 이르자 조조군 기병대의 추격에 의해 행렬이 붕괴, 유비를 따르던 민초들이 학살당하고 물자가 실린 치중대는 물론 유비와 중신들의 가족들이 타고 있는 마차 또한 조조군에게 크게 노획되기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서서의 모친이 타고 있던 차량 또한 조조군에게 탈취되었기 서서의 모친이 조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모친이 붙잡히자 서서는 유비에게 "당신을 따른 것은 가슴이 시킨 일이었으며 지금 어머니가 조조군에 붙잡혀버리셔서 어머니를 구하고자 당신을 떠나는 것도 제 가슴이 시킨 일이므로 이해해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조조군으로 가서 항복했다. 제갈량은 유비와 남쪽으로 떠났고, 서서는 석도와 함께 북쪽으로 갔다.

2.3 위나라에서

조조에게 투항한 뒤 서서는 꽤 높은 벼슬에 올랐다. 서서는 이후 조위에서 팽성상을 거쳐 우중랑장 겸 어사중승 같은 주로 감찰관 직을 맡았다. 여기서 어사중승은 삼공의 일원이자 최고 감찰관인 어사대부 바로 밑의 관직으로 꽤나 높은 직위에 오른 것이다. 서서는 어사중승에 오르기까지 이름을 서복으로 하다가 서서로 개명했다고 여겨진다.

동화전에 따르면 제갈량이 후에 승상이 되어서, 아랫사람들에게 가르치며 말하였다. "진실로 서원직(서서)의 십분의 일과 동유재(동화)의 힘써 부지런함을 따를 수만 있다면, 나라에 충성함은 물론이요, 나도 가히 잘못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당신들이 서서의 1/10 정도만 해줘도 내가 편하겠다.'는 뜻으로 서서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나중에 제갈량이 북벌할 때, 공명의 학우였던 서서, 맹건, 석도 등이 위나라에서 맡고 있던 직책을 알게 되자 그가 말하기를, "위에는 얼마나 인재가 많길래 그들이 겨우 그 정도 지위 밖에 오르지 못했단 말인가!!!"하고 탄식하였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서서의 직책이 그렇게 낮은 지위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명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으니 서서는 상당한 능력의 소유자였을 듯하다. 서서는 몇 년 뒤에 병으로 죽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처럼 뛰어난 지략가로 나온다. 정사에서는 그냥 제갈량 친구로 한 것이라곤 제갈량 천거한 것 밖에 없는데 엄청난 버프를 받은 것.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은 단가(單家)라는 단어를 '선(單)씨 가문'이라고 잘못 해석하여, 서서의 다른 이름인 복(福)과 합쳐 서서가 선복(單福)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는 내용을 연의에 첨가하였다. 그리고 이는 서서가 친구의 원수를 죽이고 도망다니던 시기에 사용한 것이라는 것과 더해져서 왜 가명을 사용했는지도 설명해놨으니, 짜맞추는 실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연의에서는 서서가 유비 밑에서 여광, 여상 형제를 계략으로 격파하고, 이어서 조인이 친 '팔문금쇄의 진'을 깨고 조인과 이전을 격퇴시킨다.

조조가 그 재능을 탐내자 정욱이 꾀를 쓴다. 정욱이 서서의 어머니를 후하게 대접하자 서서의 어머니가 정욱에게 감사의 편지를 쓴다. 정욱은 그녀의 필체를 흉내내 서서에게 허도로 오라는 거짓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에 속은 서서는 유비와 헤어지면서 조조를 위해서는 어떠한 계책도 주지 않겠다고 말하고 제갈량을 추천한다.

서서의 어머니는 어진 군주를 버리고 허도에 온 서서를 질책하고 자결한다. 이 일화에서 식자우환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가능성은 적다. 이후 유비에게 항복을 권유하라는 조조의 명령을 받고 유비에게 찾아오지만, 정작 서서는 유비에게 절대로 항복하지 말라고 충고해 주었다.

적벽대전 직전, 방통이 연환계를 퍼뜨리고 조조의 진영에서 탈출하기 직전 "연환계를 써서 우리 조조군을 몰살시킬 셈이구나!"라고 떠봐서 방통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방통이 "친구여, 이 책략은 우리 강동 81주 백성들의 목숨이 달려 있네."라고 말하자 "그럼 이 80만 장병들의 목숨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란 대화를 나눈다. 이후 방통의 조언을 받아 서량의 마등이 쳐들어온다는 거짓 보고를 하고, 허도를 지키며 후방에서 뒤처리를 하겠다는 허락을 조조에게 받아서 그 전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4 기타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꽤 인기있는 삼국지 인물인데 그 이미지의 대부분은 연의에서 기인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죠쇼(ジョショ)라고 읽는데 이게 죠죠(ジョジョ)와 발음이 비슷해서 조조가 아니라 서서가 등장하면 죠죠의 기묘한 모험 네타가 나온다.

유비 패왕설이라는 유머에서는 쌍검을 잘 다루며 관우와 장비를 때려잡고 제갈량을 세번 패서 끌고 온 괴물같이 힘이 쎈 유비에게 맞아죽기 무서웠던 서서가 어머니를 핑계대고 조조에게 도망갔다고 추정했다.

5 미디어 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