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훈(洪啓薰, ?~1895년) 조선 후기의 무장으로 1895년 음력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새벽5시 50분,6시) 을미사변 때 일본군을 막다가 장렬하게 죽었다. 초명은 재희(在熙),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신원은 확실치 않으나, 무사 집안 출신으로 무예청 별감으로 관직을 시작한 그는 1882년 8월에 일어난 임오군란 당시 난리통에 명성황후 민씨를 그의 동생 홍상궁으로 속인 다음 자신의 등에 업고 피신시킨 공으로 출세하였다. 전라 병사의 후임으로 1894년 장위영 영관(領官)을 지냈다. 그 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로 출전했고 이경호가 의정부에서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것을 표창하자고 했다.[1]
전주를 탈환하고 그 공으로 훈련대장이 되었으며, 서양식 화기를 들고 외국 군대가 아닌 우리 백성들을 상대로 나름 잘 싸운 편이지만 민영익이 청나라군을 부르면서 망했어요..[2] 이후 철원 부사, 훈련대 연대장, 군부 부령, 사무 위원 등을 역임했다.
을미사변 때 광화문 앞에서 일본군의 침입을 저지하다가 죽었는데 다만 《고종실록》에서는 광화문 밖에서, 《한국통사》에서는 궁궐 안에서, 《대한계년사》에서는 궁궐 안에서 칼을 맞고 죽었다고 하였다. 또 《매천야록》에서는 총을 맞고 쓰러진 뒤 며칠 뒤에 죽었다고 되어 있다. 이사벨라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들》에서 일본 장교의 칼에 피습한 뒤 여덟 발의 총탄을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고 썼다. 이건 무슨 분신술이냐?[3]
그는 역시 명성황후를 지키다가 죽은 궁내부 대신 이경직과 함께 1900년 장충단에 제향되었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홍계훈을 “졸병에서 일어나 높은 지위에까지 올랐는데, 인품이 염결(廉潔)하고 근신(勤愼)했다.”라고 호평했다.
명성황후(드라마)나[4] 명성황후(뮤지컬)에서는 이런 일화들을 묶어 명성황후를 지키려다 죽어간 순정남으로 만들어버렸으며, 줄리엣 모리오는 소설 운현궁에서 그와 명성황후의 로맨스를 다루기도 했다. 또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주인공 무명(조승우 분)도 홍계훈을 모티브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 때문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한 일본군이 쓰러져 있는 홍계훈 앞에서 "참으로 수미일관한 삶을 사셨군. 왕비를 구해 출세하고 왕비를 구하지 못해 죽고" 라고 했다.
- ↑ 근데 사실 주도한건 왕이다.
- ↑ 신뢰도를 보면
일제에서 편찬되었건 뭐건고종실록이 가장 높고, 한국통사와 대한계년사의 내용이 그에 비견될만한하고, 매천야록은 그런게 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매천야록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사실관계가 틀린 것으로 밝혀진 것이 너무 많아서 사료적 가치가 별로 없다. - ↑ 정확히 말하면 드라마 OST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가 그렇다. 드라마에선 전하와 중전마마를 지켜드려야 한다며 소수의 부하만 대동하고 싸우다 마지막화 초반에 죽는다. 드라마판과 뮤직비디오는 명성황후와 홍계훈 배역을 맡은 배우부터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