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서

(회의자에서 넘어옴)

六書

1 개요

한자의 제자 원리로 널리 알려진 방식으로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의 여섯가지를 가리킨다.

분서갱유로 인해 웬만한 경전들이 순식간에 날아간 뒤 다시 한대가 된 후 한동안 중국 학문계에 혼돈의 카오스가 찾아왔을 때, 절반 정도는 학자가 몰래 숨겨왔던 경전이나 공자 집에 들어차있던 경전에 적혀있던 고문을 해석하던 고문파, 다른 절반은 끝까지 찾지 못해 입으로 전승되오던 사실을 기록해 예서로 남겨놓은 금문파로 연구자가 나뉘었다. 이들은 연구 방법이 달랐으므로 학풍 역시 달랐는데, 고문파는 글자 해석부터 어려웠으므로 고답적으로 정론을 파고들었고, 금문파는 따로 해석할 거리는 없었고 내용의 이해에 어려움이 없어 현실적인 방향으로 발전했으나 참위설이나 음양오행설을 가지고 억지해설을 늘어놓는 등 영 안좋은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를 고문파의 일원이었던 후한의 허신이 문자의 구조를 분석하는 기법을 최초로 들고온 《설문해자》를 통해 소전체를 파고들어 의미를 분석하는 기법을 보여주며 논란이 종결되었으며, 이때 나온 기법 중 하나가 바로 육서. 즉 설문해자에서 최초로 육서의 개념이 정립되었으며, 설문해자의 설명이 그대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한자를 가르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설문해자의 설명이 매우 간결하고 모호하다는 것이다. 설문해자의 육서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一曰指事。指事者,視而可識,察而見意,上下是也。

二曰象形。象形者,畫成其物,隨體詰詘,日月是也。
三曰形聲。形聲者,以事為名,取譬相成,江河是也。
四曰會意。會意者,比類合誼,以見指撝,武信是也。
五曰轉注。轉注者,建類一首,同意相受,考老是也。
六曰假借。假借者,本無其字,依聲託事,令長是也。

첫째는 지사다. 지사란, 보면 부호임을 알 수 있고 살피면 그 뜻이 보이는 것으로, 上과 下가 그러하다.
둘째는 상형이다. 상형이란, 사물을 그 물체의 굴곡을 따라 그려낸 것으로, 日과 月이 그러하다.
셋째는 형성이다. 형성이란, 사물로 뜻을 삼고 비유한 것을 취해 서로 이루는 것으로, 江과 河가 그러하다.
넷째는 회의다. 분류를 나란히 하고 뜻을 합쳐서 가리키는 바를 나타내는 것으로, 武와 信이 그러하다.
다섯째는 전주다. 전주란 같은 분류를 한 수(首)에 세워 같은 뜻을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考과 老가 그러하다.
여섯째는 가차다. 가차는 원래 그 글자가 없어 소리에 의거해 사물을 의탁하는 것으로, 令과 長이 그러하다.

개념을 정립하는 자의 설명치고는 뭔가 내용이 비정상적으로 부실하지 않은가? 그 빌어먹을 옛사람들의 함축사랑 덕분에 글자수를 최대한 네 글자로 맞추느라 설명은 물론 예시까지 부실해진 것이다. 이러다 보니 후대에 육서의 개념을 더 명확히 하고자 하는 한자학자들은 설문해자의 모호한 설명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

2 분류

2.1 조자법(造字法)

한 종류의 대상을 돌이나 뼈에 끄적인 게 그대로 문자가 되어 버린 경우다. 한자가 갓 만들어질 때 사용된 방법이자, 진정한 의미의 '글자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진 글자는 글자를 더 이상 둘로 쪼갤 수 없기 때문에, 독체자(獨體字)라고 하며, 설문해자에서는 독체자를 문(文)[1]이라고 부른다. 상형과 지사가 여기에 속하는데, 앞서 말한 대상이 구체적인 사물이면 상형, 추상적인 기호이거나 '사물+보조기호'이면 지사이다.

2.1.1 상형(象形)

이 문단은 상형자(으)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형태가 있는 것들의 형태를 본따서 글자를 만드는 것이다. 예컨대, 요일 이름에 들어가는 월화수목금토일(月火水木金土日) 중 '금' 자만 빼고 전부 다 상형자로, 각각 초승달, 불, 흐르는 물, 나무, 싹이 나온 흙, 해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이다.[2] 문자의 기원이 그림에서 출발한 만큼, 상형은 문자를 만드는 가장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상형문자'라는 한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존한 방법이다.

원시시대에 인류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상형자의 수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몇 만자가 넘는 글자 들 중에 상형자는 천 자도 안 넘는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 수록 복잡한 대상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회의나 형성이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한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들(해, 달, 말, 소, 냇가, 불....)이 상형문자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아 사용 빈도수는 글자 수에 비해 높은 편. 또한 시간이 갈수록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다는 말을 뒤집어 말하자면, 시간을 거슬러 갑골 문자까지 가면 상형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2.1.2 지사(指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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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이 구체적인 사물을 보고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라면, 지사는 추상적인 기호를 이용해서 문자를 만든 것이다. 지사자는 순전히 기호로만 구성된 글자와, 상형자에 보조 기호를 추가해서 만들어진 글자가 있다. 전자의 예로는, 기준선 '위에' 점 하나를 찍은 上(위 상), '작은' 점 세 개를 찍은 小(작을 소), 선 '하나'를 그은 一(한 일)이 있다. 후자의 예로는 나무(木)의 '뿌리' 부분을 표시한 本(근본 본), 나무의 '끝' 부분을 표시한 末(끝 말), 손(又)의 '손목' 부분에 점 하나를 찍은 寸(마디 촌) 등이 있다. 사실 후자는 후대 사람들이 추가한 것으로, 설문해자에서 직접적으로 제시한 지사자의 예는 전자, 그것도 上과 下 딱 두 글자밖에 없었지만, 이 정의대로 지사자를 정의하면 범위가 너무 좁아지기 때문에 새로 추가된 것이다.

이렇게 범위를 넓혔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호가 끽해야 점 아니면 선이었기 때문에, 상형자와 마찬가지로 지사자는 한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다. 하지만 상형자와 마찬가지로 지사로 표현하는 개념은 정말 기초중의 기초 개념(위, 아래, 숫자 등등)인지라 마찬가지로 사용빈도는 글자 수에 비해 높다.

2.2 조자법(組字法)

앞의 두 글자가 원초적인 글자생성이라면, 회의의 경우에는 기존에 만들어진 글자의 조합에 해당한다.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진 글자는 두 개 이상의 글자로 쪼갤 수 있기 때문에, 합체자(合體字)라고 하며, 설문해자에서는 합체자를 자(字)[3]라고 부른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독체자 '문'과 합체자 '자'를 통틀어서 '문자'(文字)라고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문자의 어원이다.

2.2.1 회의(會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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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포함하는 두 글자 혹은 두 글자 이상을 합쳐서, 조합된 글자가 가지는 뜻들과 연관된 새로운 뜻을 가진 글자를 만드는 방법이다. 예컨대, 明의 경우는 원래 밝다는 뜻을 "명"으로 발음 해 왔는데, 해와 달이라는 두 밝은 개체의 융합으로 더욱 밝아지므로 밝다라는 뜻의 "명"을 日+月의 글자의 합자인 明으로 쓴 것이고, 休의 경우는 원래 쉰다는 의미를 "휴"라고 발음하던 것을 사람이 나무에 기대는 모습을 묘사하여 완성한 것이다.[4]

두 글자 이상의 비슷한 위상을 가진 한자들을 조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회의자는 부수를 정하기 좀 애매한 감이 있다. 그래서 보통은 만들어진 회의자의 의미와 그나마 더 관계가 있는 한자를 부수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왜 이걸 부수로 삼았지?" 싶은 한자들이 나타나곤 한다. 예를 들어 男(사내 남)은 '밭'(田)과 '힘'(力)으로 이루어져, '밭을 갈 노동력을 가진 이', 즉 '사내'를 뜻하는 글자지만 이 글자의 부수는 田이다. 또한 解(풀 해)는 '소'(牛)의 '뿔'(角)을 '칼'(刀)로 '해체한다'[5]라는 뜻이지만, 정작 부수는 刀가 아닌 角이다.

회의와 형성을 겸하는 '겸성회의자'도 있다. 예를 들어 竊(훔칠 절)은 원래 글자가 𥩓으로, 穴(구멍) + 米(쌀)로 도둑질의 뜻을 나타내고 廿(疾의 옛 형태) + 卨로 소리 '절'을 나타낸 글자다. 후세에 廿과 米를 합쳐서 釆으로 줄인 게 현재의 형태. 형성자 중에 웬만한 것은 겸성회의 형태로 해석할 수 있지만, 진짜 겸성회의가 아닌 단순한 파자 드립인 것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밑의 '우문설' 문단도 참조.

2.2.2 형성(形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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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자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뜻과 연관된 글자인 형부(形符)이고, 다른 하나는 소리를 나타내느 글자인 성부(聲符)이다. 즉 형성이란 한쪽에서는 뜻을, 한쪽에서는 음을 빌리는 방식인 것이다. 예컨대, 듣다는 의미에 "문"이라는 발음을 쓰는데, 이 경우 듣다는 의미에서 耳를 발음인 문은 같은 발음의 글자인 門에서 따와서 聞이라는 새글자를 만드는 것이다. 음을 빌릴 구성요소를 적당히 선택하면 많은 글자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류의 한자는 대부분의 한자를 차지하며, 이 형성이라는 조자원리 덕분에 이른바 부수라는 개념도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성부가 같다고 해서 한자들의 음이 전부 그 성부의 음과 같지는 않다. 같은 工(공, gōng)을 성부로 가지는데도 불구하고 攻(공, gōng), 空(공, kōng), 江(강, jiāng)과 紅(홍, ng)은 음이 전부 다 다르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로는 성부의 조건은 '비슷한' 음이지 '같은' 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으면 가장 좋겠지만 아님 말고'와 같은 방식인 것이다. 주로 운모(중성+종성)를 많이 일치시키는 편이며, 성모(초성)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간혹 江가 같이 운모가 확 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한자를 만들 당시에는 같거나 비슷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음운에 변화가 일어난 경우다.[6] 상고한어의 자음은 지금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다채로웠는데, 얘네들이 훗날 통합되고 또 분화하는 과정에서 후행하는 모음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한편 이 특성을 이용해서 상고한어의 한자음을 역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孤(고, gū)의 한자음은 현재 瓜(과, guā)랑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예전에는 각각 kʷa와 kʷra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식이다.

형성자의 성부에 많이 쓰이는 글자 중 豊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 글자를 성부로 삼는 글자들은 음이 풍·례 두 계통으로 나뉜다. 이는 豊이 豐의 속자면서 禮의 고자도 되기 때문. 참고로 豊은 제기에 제사 음식을 가득 담은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2.2.2.1 우문설(右文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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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설은 형성자의 성부에서 글자의 뜻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형부와 성부의 위치는 다양하나 좌형우성(左形右聲)의 꼴이 가장 일반적이므로 우문(右文)은 곧 성부를 가리킨다. 왕성미(王聖美)가 처음 주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주장은 심괄(沈括)의 '몽계필담'에 실려 전한다.

그는 좌문(형부)은 '종류'를 나타내고 우문(성부)은 의미를 나타낸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戔은 '작다'는 뜻을 갖고 있어서 물이 작은 것은 淺(얕음), 쇠가 작은 것은 錢(돈), 살바른 뼈가 작은 것은 殘(잔인함/부숨/상처)[7], 재물이 작은 것은 賤(천함)으로 이같은 것들은 모두 戔을 의미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형성의 성부가 때로 의미를 나타내는 현상은 동원자(同源字)의 의미가 분화되는 과정에서 형부를 덧붙임으로써 성부가 뜻을 갖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레의 바퀴가 2개라 兩이 수레를 세는 양사로 쓰였는데 (예: 百兩御之 '백 대의 수레로 이를 맞이하다' - 시경) 후에 車를 형부로 첨가해 輛(수레 한 채 량)으로 분화하고, 또 신발은 반드시 두 짝이므로 兩이 '켤레'를 의미하게 됐는데 (예: 葛履五兩 '칡 신 다섯켤레' - 시경) 후에 糸·革[8]을 형부로 첨가해 緉·䩫(신 한 켤레 량)으로 분화한 것이니 兩, 輛, 緉은 모두 동원자로서 兩이 의미도 나타낸다.

다른 예로, 拘(굽다), 鉤(갈고랑이), 佝(꼽추), 痀(곱사등이), 胊(굽은포)의 예에서 句는 '굽다'의 의미가 살아 있으며, 農이 농후, 후생(厚生)의 뜻[9]으로 쓰인 膿(고름), 醲(진한 술), 穠(꽃나무가 무성한 것), 襛(옷이 두툼하다), 㺜(털이 많은 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표음 요소에서 자의를 추구하는 기원은 성훈(聲訓)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성훈은 소리가 같거나 비슷한 글자로 글자의 뜻을 해석하는 것을 말하며 예컨대 東을 설명하기를 "東, 動也" 라 한 것이나, 논어서 "政者, 正也", 예기·중용에서 "仁者, 人也. 義者, 宜也"라 한 것 등으로, 모두 東, 政, 仁, 義라는 글자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 각각 발음이 같은 動, 正, 人, 宜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고대에 의미의 분화와 형성자의 생성이 밀접한 관계에 있어 성부가 의미로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나 우문설이 모든 형성자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매우 제한적인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왕안석 같은 이는 "滑은 水의 骨이다", "坡는 土의 皮이다" 따위로 형성자를 회의자로 둔갑시키는 견강부회로 비난받기도 했다. 앞의 "滑은 水의 骨이다" 같은 경우, 미끄러운 것이 물의 뼈라는데, 물은 흐르므로 물의 근본은 미끄러운 것이라고 해석은 할 수 있지만 좀 억지스럽다.

2.3 용자법(用字法)

2.3.1 전주(轉注)

육서 중에서 가장 말이 많은 부분. 전주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른 원리들은 그나마 설문해자에 제시된 예가 명확하거나 책을 잘 뒤져 보면 글자들마다 해당 원리가 사용되었다는 지표가 있는데, 전주는 제시된 예도 애매하고 책에도 어느 글자가 전주자인지 알 길이 전혀 없다. 이로 인해 후대 사람들이 전주를 설명하는 방법이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각각을 살펴보기 앞서 전주자의 예시로 제시된 考와 老를 살펴보자.

老:考也。七十曰老。从人、毛、匕。言須髮變白也。

老(로, lǎo)는 '늙다'(考)라는 뜻이다. 70살을 늙었다고 한다. 人과 毛와 匕의 뜻을 취하였다. 수염과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것을 말한다.
考:老也。从老省,丂聲。
考(고, kǎo)는 '늙다'(老)라는 뜻이다. 老의 생략형을 취하였으며, 丂(고, kǎo)는 성부이다.

전주가 이 두 글자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음에는 별 이견이 없다. 이제 두 글자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자.
1. 부수가 같다.
2. 뜻이 같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老의 설명에 考가 사용되고, 考의 설명에 老가 사용되었다. 훈고학에서는 이런 관계를 돌려막기'호훈'(互訓)이라고 한다.
3. 음이 비슷하다. 정확히는 운모가 같다.
이 세 가지 특징에 의거하여 전주에 대한 설명이 세 갈래로 나뉘는 것이다.

  • 형전설: 동일한 '부분'을 가지는 두 글자를 서로 전주한다고 보는 견해다. 여기서 '부분'이라는 것은 주로 부수를 뜻하지만, 꼭 '부수'를 공유하지 않아도 전주라고 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전주자의 설명 중 '建類一首'에 초점을 맞춘 해설이다.
  • 의전설: 호훈하는 두 글자를 서로 전주한다고 보는 견해다. 조금 더 확장하면, 동의어인 두 글자를 전주자로 보는 것이다. 전주자의 설명 중 '同意相受'에 초점을 맞춘 해설이다.
  • 음전설: 음이 비슷한 두 글자를 서로 전주한다고 보는 설이다.

그러나 위 조건 중 하나만을 채택하면 전주의 개념이 밑도 끝도 없이 넓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주를 설명할 때는 위의 설을 적절하게 절충
·종합해서 설명하며, 단지 어느 설에 초점을 둘 것인가를 달리 할 뿐이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한 전주자의 예는 이런 것들이 있다.
緝(꿰맬 집), 績(짤 적): 둘 다 絲(실 사) 부수에, '깁다'라는 뜻으로 호훈하며, 음이 비슷하다.
改(고칠 개), 更(고칠 경): 둘 다 攴(칠 복)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으며, '고치다'라는 뜻으로 호훈한다.
至(이를 지), 到(이를 도): 둘 다 至(이를 지)를 공통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르다'라는 뜻을 공유한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전주자의 예로는 樂(풍류 악, 즐거울 락, 좋아할 요)와 背(등 배)가 있는데, 이들은 앞서 서술한 내용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더러 있다.

먼저 樂의 예를 살펴 보자. 樂은 원래 나무(木)+실(幺 두 개)로 이루어진 악기를 본떠서 만든 글자로 '악기, 음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악'(*[ŋ]ˤrawk. 발음은 상고음 추정음이며, 읽는 방법은 상고한어의 Baxter-Sagart 부분 참고)이라고 읽었다. 그런데 이 글자는 후에 '즐겁다'라는 뜻의 '락'(*[r]ˤawk)과 '즐기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요'(*[ŋ]ˤrawk-s)라는 한자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락'과 '요'는 '악'에서 분화되어 나온 한자음이며, '즐겁다', '즐기다'는 '악기'라는 뜻에서 파생되어서 나온 뜻이다.

이와 같이 한 글자가 본래의 뜻에서 파생되어 나온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따로 인신(引伸)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분화된 한자음은 원래의 한자음과 같거나 비슷한 것이 보통인데, 樂은 음의 변이가 각각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일어나서, 세 한자음의 기원이 같다는 걸 알아채기 어려운 특이한 케이스다. 문제는 이 인신의 대표적인 예로 長('어른, 자라다': *traŋʔ, '길다': *Cə-[N]-traŋ*) 자가 있는데, 이 글자는 허신의 설문해자에서 가차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전주자의 사례로 열거된 글자들은 전부 두 글자가 동일한 의미를 갖는 사례인 반면, 樂은 이와 정 반대로 한 글자가 여러 의미를 갖는 사례이다. 따라서 樂을 전주자로 받아들이는 시각은, 따지고 보면 설문해자의 분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시각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이러한 시각을 가진 학자들은 설문해자에서 가차자의 예로 든 令과 長을 전주자로 편입시키기도 하며, 대신 가차자를 '본래의 뜻과 전혀 상관 없이' 음만 같은 한자를 차용하는 것으로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이런 시각을 가진 학자로는 朱謀瑋, 顧炎武, 戴震 등이 있다.

다음으로 背는 北(북녘 북)에서 나온 글자이다. 北은 원래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 '등, 등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북'(/pˤək/)이라고 읽었으나, 이 글자가 후에 원래의 뜻에서 파생되어 '북쪽'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까지의 과정은 樂과 동일하나, 北의 경우 '북쪽'이라는 새로운 뜻이 너무 지배적인 나머지 본래의 '등, 등지다'라는 뜻이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원래의 뜻을 살려내기 위해 새로운 글자가 만들어지는데, 뜻의 기원이 되는 北에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月(고기 육, 肉의 변형된 형태)을 덧붙여서 만든 글자가 바로 지금의 背(*pˤək-s)이다. 여담으로 현재 北에서 원래의 의미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례가 '敗北(패배)'이며, 한국에서 이 北을 '북'이라고 읽지 않고 '배'라고 읽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여튼 이렇게 어떤 글자 A가 인신이나 가차로 인해 본래의 뜻을 잃어 버린 후, 본래의 뜻은 나타내기 위해 A에 뜻을 보충하는 글자를 더하거나 약간의 변형을 가하는 방식으로 만든 글자 B가 있을 때, A와 B의 관계를 고금자(古今字)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고금자는 전주의 관계로 보는 것이 정당할까? 두 글자는 北이라고 하는 공통된 부분을 가지고, 뜻과 음(상고음 기준)도 서로 비슷하다. 따라서 北과 背는 허신의 분류를 따라서 보면 전주자가 맞다. 그러나 앞서 서술한 전주자가 만들어진 과정과 背자가 만들어진 과정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둘을 단순히 동급으로 취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2.3.2 가차#s-2(假借)

이미 있는 한자에서 별 의미가 없이 글자 모양만 빌린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자면 自(자)는 원래 의 모습을 본뜬 글자인데, 똑같이 '자'라고 발음하던 단어 중에 '스스로'라는 의미의 말이 있으나 그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어서, 自에 스스로라는 뜻을 부여하는 식이다. 亦(역)도 사람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에 겨드랑이(...)를 강조한 두 점을 찍은 글자로 원래는 '겨드랑이'를 뜻하는 단어였으나 '또한'이라는 의미가 가차되었고, 然의 경우 원래 '불타다'라는 뜻이었으나, '그러하다'라는 뜻이 원 뜻을 꿰참에 따라 원 뜻인 '불타다'는 옆에 火를 붙인 '燃'으로 전주되어 떨어져 나갔다. 간화자 항목에도 예로 든 云의 경우 본래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양을 본뜬 상형자였으나 '이르다(말하다)'라는 의미가 가차되자 둘을 구별하기 위해 '구름'을 뜻하는 글자로 雲이 전주되어 떨어져 나갔다. 주기율표/중국어에도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옛날부터 있었으나 잘 쓰이지 않던 한자들이 각 원소에 해당하는 의미를 새로 가지게 된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가차에 해당한다.

흔히 아시아→亞細亞(아세아), 프랑스→佛蘭西(불란서) 등과 같이 외래 인명·지명 등을 비슷한 음의 한자로 적는 것을 가차라고 알고 있거나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교과서나 시중의 한자 교재들이 이를 가차의 예로 드는 경우가 많다), 이것들은 엄밀히 말하면 음차(音借)라고 하며 가차가 아니다. 애초에 아세아나 불란서 같은 방식은 외래어를 한자로 표기하는 방식이지, 개별 한자의 제자원리가 아니므로 하등 관계가 없는 개념이다.

3 육서의 의의와 한계

이에 따라 육서라는 개념으로는 한자를 정확히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문자의 범위와 뜻의 범위에 따라 개별의 분류에 분류할 수도 있다. 예를들어서 亦은 문자의 범위를 생각하면 상형자지만, 뜻의 범위로는 가차에 해당하며, 背는 문자의 범위로는 형성자지만, 뜻의 범위로는 전주에 해당한다. 然 또한 문자의 범위로는 회의자지만, 뜻의 범위로 생각하면 가차가 되고[10], 이 원의미에서 떨어져나간 燃은 조자원리는 형성자지만, 뜻의 범위는 전주가 된다. 이때문에 육서라는 원리는 분명이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글자 자체를 만드는 과정만이라고 하면 사실 사서(四書)로 보는게 맞을 수도 있다.

4 관련 문서

  1. 그림의 범위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자로 치면 紋(무늬 문).
  2. 金은 今과 土를 합성한 형성자로 설명되고 있다.
  3. 말 그대로 그림을 벗어나 하나의 글자로써 인식되는 범위.
  4. 사족으로 明자는 최근 새롭게 발견된 갑골문 해석을 바탕으로 창에 달빛이 들이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는 이론도 부상하고 있어 이 예시는 틀린 예시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의 정설로는 해와 달의 합자라는 것.
  5. 사실 갑골문에는 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손이 있었다. 즉 칼이 아닌 손으로 부러뜨리는 것이다.
  6. 참고로 江의 상고음은 kroŋ으로 추정된다.
  7. 원문은 '歹而小者曰殘'이다.
  8. 신을 천 또는 가죽으로 만들기 때문.
  9. 通醲, 濃厚. 《書·洪範》農用八政. 《註》農者, 所以厚生也.
  10. 然은 말그대로 肉+犬+火로 개고기를 굽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