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왕후

조선의 역대 왕세자빈
영조
빈궁 서씨
(왕세제빈)
진종
현빈
장조
혜빈

틀:조선의 추존 왕비


대한제국의 추존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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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효장세자의 빈. 세자가 요절하였으나 이후 진종으로 추존되어 그녀 역시 사후 왕후로 추존되었다.

2 생애

1716년 풍양 조씨 가문에서 출생했다. 1727년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의 빈으로 간택되었으나, 바로 이듬해 세자가 요절하면서 14살에 과부가 되었다. 이후 죽을 때까지 영조의 병수발을 들며 살았으며, 영조는 그녀가 해주는 밤을 좋아했다는 일화도 있다.

영조가 정쟁에 휘말려 목숨을 위협받을 때 주변의 남자들은 혈육도 못 믿을 지경이어서인지 남자에게는 까다로웠다. 대신 그 와중에 자신에게 호의적이던 사람들이 주로 궁중의 여성들이었던 탓에, 유난히 주변 여성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면이 있었다. 실제로 영조의 불같고도 깐깐한 성격을 달래서 가정의 화목을 지키는 데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 정비인 정성왕후 서씨, 며느리였던 현빈 조씨, 딸 화평옹주, 숙종의 계비이자 영조의 법적 어머니인 인원왕후 등이 영조에게 치이는 사도세자를 그나마 감싸주었는데 이 여성들이 줄줄이 죽은 후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히스테리도 심해졌다. 이 점은 마더 컴플렉스로 여성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여서 유난히 여성에게 적대적이던 성종과 비교된다.

후에 남편의 이복동생인 사도세자가 태어나자 자식뻘인 사도세자에게 잘 대해주었고, 사도세자의 아들 의소세손[1]에게도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빈 조씨도 남편처럼 병을 얻어서 37세의 나이로 요절해 남편 곁으로 갔다. 영조는 그녀가 삶아주는 밤을 좋아해서 자주 그녀의 처소에 찾아가 밤을 얻어먹었고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에도 '나를 위해 준비한 밤이 아직 소반 위에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피가 섞이지 않은 후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1752년 병을 얻어 그녀 역시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사후 효장세자 묘에 합장되었으며 생전 영조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켰으므로 정조 즉위 후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됨에 따라 함께 왕비에 추존되었다. 이후 1908년 대한제국 순종황제에 의해 다시 황후로 추존되면서 효순소황후로 불리게 됐다.

여담으로 정조가 양자가 됐다고는 하지만 효장세자는 정조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했다.
  1. 정조의 동복형. 병으로 3세 때 죽었다. 정조는 조씨가 죽은 후에 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