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Hippocrates
(BC 460? ~ BC 377?)

1 생애

의학은 학문이고 기술이다(Medicine is a science and an art.)

영원한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코스 섬에서 태어난 히포크라테스는 소아시아, 그리스, 이집트 등을 여행하여 학식을 쌓았다. 이후 그는 코스 섬에 돌아와 학교를 세워 그의 의학을 가르쳤으며 의학서를 남겼다. 그의 의학서는 이후 <히포크라테스 문헌>으로 엮여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2 히포크라테스 문헌과 히포크라테스 의학

히포크라테스 문헌은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저작들이 집성되어 히포크라테스가 쓰여진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중 어느 것이 히포크라테스가 직접 쓴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히포크라테스 문헌의 여러 저작들은 어떤 공통적인, 즉 히포크라테스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학문적 의학을 추구하였다라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문헌에는 '의학은 하나의 학문이자 과학이다'라는 일관된 사고방식이 드러나있었다. 각 문헌에는 질병의 본성과 원인에 대해, 인체와 우주에 관해, 나아가 처방과 치료의 원리에 관하여 나름의 관점, 즉 어떤 자연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들이 질병에 관해 사색하였던 사상가나 철학자였든 아니면 당시에 환자들을 치료했던 내과의사였든, 이들은 모두 자연철학과 치료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약이나 수술보다는 자연적인 치료를 중시했다. 그리고 그것이 환경과 병의 연관성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져 기후와 질병간의 관계를 많이 연구했다.

감정이 뇌에 기반한다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감정이 심장에서 생겨난다고 믿었는데, 머리를 다친 환자를 많이 봐왔던 히포크라테스는 감정,생각,기쁨,고통이 전부 뇌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했다.[1]

3 생명과학의 역사에서의 히포크라테스

4 명언?

예술에 대한 유명한 구절중 하나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표현이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말로, 엄밀하게 따지면 대단한 오역이다. 그래서 히포크라테스의 구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하기도 한다.
히포크라테스 경구의 원 구절은 다음과 같다
라틴어 : Ars longa, vita brevis, occasio praeceps, experimentum periculosum, iudicium difficile.
영어: The art is long, life is short, opportunity is fleeting, experiment is uncertain, judgement is difficult.
한글: 기술은 길고, 생명은 짧고, 기회는 빨리 지나가고, 실험은 불완전하고, 판단은 어렵다.
결국 'the art'의 해석 문제인 것이다. 손자병법의 영문명인 The Art of War전쟁의 예술이 아니라 전술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의학자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저 art는 의술이고 의사들의 능력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 정도가 된다.[2]

5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는 의술의 신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휘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를 비롯한 모든 남신들과 여신들의 증언자들로 삼으며 이 신들께 맹세코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다음 선서와 서약을 이행할 것이다.

내게 이 기술을 가르쳐준 스승을 내 부모와 똑같다고 여기고 삶을 함께하며 그가 궁핍할 때에 나의 것을 그와 나누고, 그의 자손들을 내 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그들이 이 기술을 배우고자 하면 보수와 서약없이 가르쳐줄 것이다. 의료지침과 강의 및 그 밖에 모든 가르침은 나의 아들과 나를 가르친 스승의 아들 및 의료 관습에 따라 서약하고 선서한 학생들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전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섭생법을 쓰는 반면, 환자가 해를 입거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겪게 하기 위해 그것을 쓰는 것은 금할 것이다.

나는 그 누가 요구해도 치명적인 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와 같은 조언을 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여성에게 임신중절용 페서리(pessos)를 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

나는 절개를 하지 않을 것이고 결석환자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나는 어느 집을 방문하든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방문할 것이지만, 고의로 온갖 올바르지 못한 행위나 타락 행위를, 특히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남자나 여자와의 성적 관계를 금할 것이다.

치료하는 중에는 물론이고 치료하지 않을 때조차도 사람들의 삶에 관해 내가 보거나 들은 것은 무엇이든 결코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서, 나는 그러한 것들을 성스러운 비밀이라고 여겨 누설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선서를 이행하고 어기지 않으면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평판을 받고 나의 삶과 기술을 향유할 수 있길 기원하고, 내가 선서를 어기고 거짓 맹세를 하는 것이라면 이와 반대되는 일이 있길 기원한다.[3]

 
그의 문헌 중 <선서>는 어느 시기에 쓰여진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기원전 6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까지 여러 주장이 나왔으나, 대개 기원전 5세기나 4세기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밖에도 현재 전해져 오는 것이 과연 원본인가하는 점이나 훼손이나 가필되었을 가능성, 또 그것이 의무 이상의 구속력을 가졌는지, 누구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누가 선서를 하였는지, 또 선서를 한 이가 모두 의사였는가 하는 여러 의문들이 남아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 외과 수술이나 낙태용 약을 금지하는 내용은 왜 제시되었는가는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에 에델슈타인은 <선서>는 히포크라테스의 코스 학파가 아닌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만든 것이라고 가정하며, 많은 히포크라테스 연구자들은 에델슈타인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의 현대적 버전은 1948년 제네바 선언 당시에 만들어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직에 입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약한다.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마땅히 나의 스승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
-나는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라도 누설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능력이 허락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의료직의 명예와 위엄 있는 전통을 지킨다. 동료는 나의 형제며, 자매다.
-나는 환자를 위해 내 의무를 다하는 데 있어 나이, 질병 / 장애, 교리, 인종, 성별, 국적, 정당, 종족, 성적 성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
-나는 위협을 받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그 시작에서부터 최대한 존중하며, 인류를 위한 법칙에 반하여 나의 의학지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약속을 나의 명예를 걸고 자유의지로서 엄숙히 서약한다.[4]

6 기타

가나다순 덕분에 한국어로 출간된 세계인명사전을 펴보면 100%확률로 맨 나중으로 나오는 사람이다. 이제 힉스가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팀 포트리스 2메딕은 '해로움이 없게 하라'라고 쓰인 그의 흉상을 무기로 쓴다(...) 이 무기는 적의 체력을 보여준다. 이미 세계관부터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히포크라테스의 선택적 권고사항(...)으로 그 위상이 떨어진 상태. 도전 과제 중에는 아예 '히포구라테스 선서'(Hypocritical Oath, 위선의 맹세)까지 있다. 내용은 변장한 스파이를 회복해주다가 처치하는 것.
  1. [1] 의 p11 참고
  2. 억지로 비슷한 구절을 가져오면, 소년이로 학난성 정도가 딱 적당할 것이다.
  3. 히포크라테스, <히포크라테스 선집> (여인석·이기백 역, 나남)
  4. 세계의사회, <의료윤리지침> (대한의사협회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