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FC 카이저슬라우테른

2016-17 독일 2. 분데스리가

1860 뮌헨
(1860 München)

뉘른베르크
(Nürnberg)

뒤셀도르프
(Düsseldorf)

드레스덴
(Dresden)

보훔
(Bochum)

뷔르츠부르크
(Würzburg)

슈투트가르트
(Stuttgart)

아우에
(Aue)

브라운슈바이크
(Braunschweig)

빌레펠트
(Bielefeld)

우니온 베를린
(Union Berlin)

잔트하우젠
(Sandhausen)

장크트 파울리
(St. Pauli)

카를스루에
(Karlsruher)

카이저슬라우테른
(Kaiserslautern)

퓌르트
(Fürth)

하노버
(Hannover)

하이덴하임
(Heidenheim)
1.FC 카이저슬라우테른
1.FC Kaiserslautern
정식 명칭1. Fußball-Club Kaiserslautern
창단1900년
소속 리그독일 2. 분데스리가(2. Bundesliga)
연고지라인란트-팔츠 주 카이저슬라우테른(Kaiserslautern)
홈 구장프리츠-발터 슈타디온(Fritz-Walter-Stadion)
49,780명 수용
회장슈테판 쿤츠(Stefan Kuntz)
감독코스타 루냐이치(Kosta Runjaić)
애칭Die roten Teufel(붉은 악마)
공식 웹사이트[1]


1 개요

독일 2. 분데스리가의 축구 클럽으로 2012년부터 2부 리그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연고지는 카이저슬라우테른이다. 흔히 줄여서 라우테른, 라우텐이라고도 한다.
팀의 주 라이벌은 마인츠이며, 그 외에도 바이에른 뮌헨과도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 역사

팀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2014년 SWR 방영)

1900년 여러 클럽들의 통합으로 인해 탄생했다. 그 뒤로도 꾸준히 동네 축구 팀들을 하나로 끌어모아서 1931년에 비로소 최종적으로 현재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그때부터 독일 전국 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이 당시 위세를 떨치던 샬케 04에 밀려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래도 우승권에 도전하는 강호로서 이름을 날리는 데는 성공했다.

1950년대 비로소 클럽의 전성기를 맞아 1951년과 1953년에 우승을 차지한다. 당연히 팀의 주축 선수들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독일 대표로 차출되었는데, 총 다섯 명의 선수들이 독일 대표로 나갔고, 그 중 프리츠 발터는 독일 대표 팀의 주장으로서 당시 무적의 팀이었던 헝가리를 결승에서 격파하는 베른의 기적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런 위세 덕분에 1963년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첫 16개 클럽으로 초청받아 리그에 합류했고, 꾸준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우승 컵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DFB 포칼 결승에 1972년과 1976년, 1981년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에는 실패했다. 리그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어느 정도 팀의 운이 풀린 것은 1990년대의 일이었다. 1990년 DFB 포칼 우승을 달성하더니, 1990-1991 시즌 마침내 분데스리가 출범 후 첫 우승의 감격을 안았다. 그리고 1996년 두 번째 DFB 포칼 우승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그 해인 1995-1996 시즌 충격적인 강등을 맛보면서 2부 리그로 추락했다. 하지만, 팀의 감독인 오토 레하겔은 오히려 이 시기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다. 1996-1997 시즌 2부 리그 우승으로 1부 리그에 복귀하더니, 1997-1998 시즌 충격적인 우승을 차지한다.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승격 팀이 우승을 차지한 기록으로[1] 이 기록은 다시는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홈 경기장의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많은 빚을 지고, 여기에 선수 영입에도 실패하면서 나락으로 빠지게 되었다. 많은 부채로 인해 선수 영입이 어려워졌고, 그나마 있던 선수들도 팔아야 했다. 결국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2004-2005 시즌에 강등되었으며, 그로부터 5시즌을 2부 리그에서 보냈다. 2010-2011 시즌 1부 리그로 다시 복귀했지만, 팀의 운명은 그리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11~12 시즌 31라운드까지 겨우 3승을 거두며 승점 20점(11무 17패), 18위 꼴지로 강등을 거의 확정지었다. 7연패 부진 속에 다음 경기는 강등 탈출에 작은 희망을 남겨둔 17위 헤르타 베를린(28점) 원정 경기인데 결국 패하면서 강등이 확정되었다.

2012~13 시즌 2부 리그에서 31차전까지 52점으로 3위를 지키면서 승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1, 2위가 확정되었으므로 남은 3경기에서 마지막 승격권인 3위를 두고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승점 1점 차로 추격 중인 1.FC 쾰른(51점)과 FSV 프랑크푸르트(50점)와 혈투를 벌인 끝에 2경기를 이기면서 58점이 된 카이저슬라우테른이 남은 1경기와 상관없이 3위를 확정지었다(프랑크푸르트는 53점, 쾰른은 50점). 그리고 분데스리가에서 막판에 극적으로 16위로 오른 TSG 1899 호펜하임과 플레이오프를 치루게 되었다. 하지만 1차전 원정에서 1:3으로 패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가 2차전 안방 경기에서도 1:2로 패하면서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다음 시즌에도 2부 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13-14 시즌에는 16차전까지 1.FC 쾰른과 승점 2점 차이인 2위를 기록하며 승격 분위기를 높이는 중이다. 다만 6위와 승점 차가 겨우 3점이라서 언제라도 바뀔지 모르는 상황. 결국 23차전 종료 시점에서 7위까지 추락해버렸다. 그나마 3위와 승점 차가 3점이라 승격 희망이 남아 있긴 하다. 심기일전하여 27차전까지 4위로 올라서면서 그나마 승격 희망을 남겨뒀다. 하지만 막판 33차전까지 그 3점 차를 좁히지 못하고 4위를 기록하면서 사실상 승격은 물거품이 되었다. 한편 DFB-포칼 4강전에서는 라이벌 바이에른 뮌헨과 맞붙어 1-5로 졌다.


3 주요 출신 선수

미로슬라프 클로제미하엘 발락의 고향 팀이기도 하다. 팀의 홈 구장인 프리츠 발터 슈타디온은 팀의 전설이자, 1954년 서독의 월드컵 우승 당시 주장인 프리츠 발터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2] 1920년에 지어져 2002년 리모델링해서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쓰였다. 참고로 이 양반은 커리어를 이 팀에서만 보낸 걸로도 유명해서 이 동네에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맥주가 있을정도. 요즘에 홈플러스 등 수입 맥주를 많이 취급하는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 외의 유명 선수로는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있다.


4 우승 기록

  • 독일 챔피언십 우승 2회
1951, 1953


  • 1. 분데스리가 우승 2회
1991, 1998


1990, 1996


  • DFL-슈퍼컵 우승 1회
1991
  1. 다른 유럽 주요 리그를 보면 2차대전 이후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각각 세 번씩 나왔다.
  2. 클로제도 발터를 본인의 우상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