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1 독일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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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ürnberg. 독일의 도시로 186.38㎢의 면적에 바이에른주에서 마인강의 지류 페그니츠강 우안의 해발고도 3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뮌헨 다음의 규모를 자랑하며 독일 유수의 상공업도시이기도 하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로 오랜 제국도시로서 옛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으며, 환상성벽과 역사적인 탑, 재건된 성이나 교회가 중세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11세기 중엽 하인리히 3세가 뉘른베르크 성을 건조하면서 발전했다. 1219년 제국도시가 되어 제국의회가 열렸으나, 이후 영주에 대한 독립투쟁이 일어나 1427년 시(市)에 성을 매도하였고, 16세기까지 예술과 과학의 최성기로서 알브레히트 뒤러, 조각가 아담 크라프트, 바이트 슈토스, 황동 주조공 비셔, 시인 한스 작스 등이 활약하였으며, 1525년 종교개혁 때에는 프로테스탄트 쪽에 섰으며, 1532년에는 '뉘른베르크의 종교회의'를 체결하는 등 지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가 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바이에른 왕국에 편입되었다.

1919년 독일 제국이 무너지면서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하에서 바이에른 자유주의 일부가 되었고, 1933년 10일부터 16일까지 독일 국민 50만여명이 참가한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가 열린 장소이기도 하며 이 때문인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

16 세기 무렵에는 시계공업 등 정밀 기계 공업의 중심으로 뉘른베르크의 달걀이라고 불리던 회중시계나 오토마톤이라는 자동인형으로 유명했다. 근대부터는 공업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기 대문에 교외에 금속·전기·기계·자동차·광학기계·완구·문방구 등의 공장이 많으며 그 연안을 따라 새로운 공장지대가 형성되었으며, 특히 완구박람회가 열리는 도시로 널리 알려졌다. 또한 마인강과 페그니츠강 사이에 운하를 개통하면서 상업 또한 활발하다.

문화적으로는 옛 고도이기에 카이저부르크 성, 장크트 세발트 성당 등의 많은 유적지가 있으며 바그너가 작곡한 희가곡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로 유명해졌다. 그외에도 나치의 발상지이기도해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한 나치 전당대회장과 전당대회장이 건축되기 이전 전당대회가 열린 체펠린 비행장이 있다. 이중 전당대회장은 전쟁중 시공이 중단되었기에 파사드만 완성된 무한성 상태이다가 현재는 나치의 만행을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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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중앙역 식당가에 이런 가게가 있다 카더라. 하긴, 독일에 터키 이민자들이 많으니 저건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근데 저거 히다마리 스케치유노미야코 아닌가??? 이런거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 찾아낸다

교육기관으로는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교가 있다. 바이에른 주에서는 뮌헨 대학교에 이어서 둘째가는 규모.[1]

카논으로 유명한 요한 파헬벨이 이 곳 출신이다.

지역 특산물로는 아무래도 뉘른베르크 소세지가 꼽힌다. 일반적인 독일 소세지와는 다르게 약간 얇은 두께가 특징. 먹어보면 약간 딱딱하고 퍼석퍼석하게 씹히는맛이 다른 소세지와는 다른 느낌이다. 지역 특산물 치고는 상당히 유명해서 타 지역에서도 구하기 어렵지 않은 편이고 맥도날드에도 뉘른베르크 소세지를 베이스로한 메뉴가 있을정도다.

대중교통으로는 버스와 트램도 있지만 의외로 U반이 다니는 도시다. 노선이 3개밖에 안되지만 뉘른베르크 시내 자체가 크지않아서 그닥 불편하진 않다.

2 독일축구 구단

1을 연고로 하는 축구 구단. 자세한 내용은 1.FC 뉘른베르크 참조.

3 독일경순양함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항목으로

4 영화

알렉 볼드윈이 주연한 리메이크판 영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브라이언 콕스가 괴링 역을 맡아서 열연했는데 뉘른베르크에선 뉘른베르크 재판 시절의 괴링은 나치 독일 시절의 괴링과 달리 상당히 멀쩡했던 것도 그렇고 가히 진주인공으로 아주 멋있게 카리스마 넘치게 나온다.(...) 그야말로 간지폭풍을 보여준다.제정신이 몇년만 일찍 돌아왔으면 아마 천수를 누렸을지도(...) 연합군을 매우 통렬하게 질책하며(...)[2] 특히 폴란드를 침략하고 유태인을 박해한 나치스를 추궁하는 미국판사에게, 미국은 멕시코를 침략해 거대한 영토를 빼앗았고, 흑인을 제도적으로 차별하지 않느냐는 논리를 구사해 미국까지 물귀신 작전으로 끌어들여서 자신의 죄는 오직 전쟁에 패한 것밖에 없고 이런 재판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호방한 성격과 입심으로 미군 간수와 친해져서 나중엔 그의 도움을 받아 음독자살한다. 이 영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괴링과 친해진 미 육군 소위[3]가 괴링의 부탁을 받고 독약인줄 모르고 독약을 건네준 설을 보여주는데 영화의 해석상 괴링과 친해졌던 소위가 알고 줬다고 암시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1. 참고로 이 학교는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에도 해외 캠퍼스가 있다.
  2.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들먹이면서 질책했다. 유대인 장교가 일본은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미국을 기습했다고 하자 일본인이 비백인계여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반박하며 당신이 이러는 이유도 유대인이기 때문이라고 쏘아붙인다. 나치 독일이 워낙에 미친 상또라이라서 그렇지 사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연합국도 세계의 반을 식민지로 점령하고 착취하고 있었고 처칠만 해도 독가스로 쿠르드인을 학살했으니(...)
  3.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연합국은 주요 전범 1인당 1명씩 미 육군 위관급 장교들이 붙어 그들의 고충을 듣고 상부에 보고해 관철 혹은 거부하거나 하는 역할을 맡곁다. 이들과 전범들간의 관계는 제각각이었는데, 괴링의 경우처럼 이들과 굉장히 친밀해진 경우도 있었고, 딱히 적대적이진 않았지만 사무적인 딱딱한 관계에서 끝나기도 했으며, 종종 담당 전범을 은근히 괴롭히고 무시하는 유형도 있었다. 영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도 괴링과 친해진 간수만 나오는게 아니라 괴링에게 모욕을 주고 방청소를 지시하는 간수도 나온다. 괴링은 이에 대걸레를 바닥에 팽개치며 거부하다가 발작하며 쓰러진다.